🎧랜디서의 사적 리뷰 | 피프티피프티의 보컬은 왜 다를까?

🎧 TMI.FM의 DJ 랜디 서 | 대중음악의 여성들은 아티스트로서, 제작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랜디 서의 사적 리뷰]는 국내외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거기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짚어봅니다. 

신인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5주 연속 미국의 빌보드 핫100 차트에 올랐다. 심지어 꾸준히 순위가 오르고 있다. 3월 27일 기록한 첫 등장 100위 후 2주차인 4월 4일엔 94위, 3주차인 11일은 85위, 4주차인 18일에는 60위, 5주차에는 50위를 기록했다.

빌보드 핫100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팝음악 시장인 미국의 싱글 차트다. 빌보드지의 많은 차트 중에도 가장 뜨거운 신곡들의 각축장이라 보면 된다. 피프티피프티는 원더걸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뉴진스를 이어 빌보드 핫100에 오른 여섯 번째 케이팝 그룹이자, 케이팝 역사상 가장 이른 데뷔 4개월 만에 이 성과를 이룬 팀이다. 2월에 썼던 [사적 리뷰] 속 '칠(chill)한 요즘 케이팝'으로 소개한 ‘HIGHER’를 부른 바로 그 그룹이기도 하다.

틱톡을 중심으로 보컬 멤버들의 영어 버전 ‘Cupid (Twin ver.)’이 사랑 받은 힘이 컸다. 틱톡의 고정 트렌드인 스페드업 버전(Sped up version: 임의로 원곡의 속도를 올린 버전)부터 시작해 달콤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원곡도 배경음악으로 두루 이용되었다. 여타 아티스트들도 틱톡 공략을 꿈꾸며 여러 챌린지를 기획하지만 ‘Cupid (Twin ver.)’의 바이럴 현상은 청자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차이가 있다. 규모는 더 작았지만 작년 초 엔하이픈의 ‘Polaroid Love’도 이와 비슷했다.

메인 보컬 아란과 시오의 음색 

‘Cupid’는 틱톡에서의 인기가 스포티파이로까지 확장된 경우다. 여기서 얻은 탄탄한 스트리밍 플레이 횟수가 성적에 반영되고 있다. 순위가 꾸준히 오르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계속 듣고 있다는 의미다.

‘Cupid’는 2019년 도자캣의 ‘Say So’ 같은, 레트로 무드의 여성 보컬 디스코 팝의 영향권 아래 있는 곡이다. 몽환적이면서 달콤하다. 뾰족한 개성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한다. 가사의 주제가 되는 사랑의 신 큐피드도 은근한 복고 분위기를 자아낸다. 50년대에 나온 미국 가수 코니 프랜시스의 ‘Stupid Cupid’ 같다. 이 곡은 2001년 맨디 무어가 디즈니의 하이틴 무비 [프린세스 다이어리]에 출연하며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자극을 지양한 자연스러움은 요즘 한국 시장에서도 뉴진스 등으로 인해 그 수요가 증명된 부분이다. 뉴진스를 쫓아 급하게 준비했을 거란 말은 아니다. 두 팀이 다루는 음악의 장르부터가 전혀 다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호흡이 적당히 섞인 편안한 보컬이라는 점이다. 

피프티피프티의 보컬에 보다 주목하고 싶다. 도입부를 도맡는 메인보컬 아란의 목소리가 이 팀의 캐릭터를 크게 결정한다. 소리를 숨으로 잘 감싸 내놓는 창법에, 대부분의 프레이즈를 레가토로 연결해서 부드럽게 들린다. 적재적소에 긴 벤딩을 넣는 솜씨가 예스러운 느낌을 전하면서, 노래에 어울리는 옅은 웃음기가 늘 머문다. 온라인에서는 요즘 아이돌보다는 ‘인디 가수’ 같다며 백예린이나 권진아의 이름이 함께 언급 되고는 한다. 레트로한 느낌에서 디즈니 클래식 사운드트랙이나 카펜터스 등을 연상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최근 십여년 간 케이팝 아이돌 음악에서 유행한 보컬은 아니다.

또 다른 메인보컬 시오는 조금 더 콧소리가 있어서 아란과 대비를 이루고, 곡에 따라 감정을 선명하게 전한다. 래퍼인 키나와 새나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미료처럼 카랑카랑하고 뾰족한 톤을 갖고 있어서 시오의 이런 보컬이 아란과 래퍼들을 다리처럼 이어준다. 

인디 느낌과 숏폼, 크루너, 디즈니 클래식의 유행

아이돌 팝에서는 대체로 고음역대를 노래하는 귀여운 미성, 혹은 ‘가창력’이 돋보이는 벨팅 가능 보컬이 주류였다. 2NE1의 성공 이후, 박봄처럼 성대 접촉이 많아 카랑하게 들리는 동시에 콧소리가 강조되는 소울/알앤비형 보컬도 한 조류를 이뤘다.

국내 뿐만이 아니다. 해외 팝 차트에서도 성공적인 여성 보컬은 대체로 ‘디바’형 벨팅 보컬 혹은 힙합에 어울리는 알앤비 보컬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나 라나 델 레이 같은 싱어송라이터 역시 호흡을 많이 섞는 스타일은 아니다.

반면 아란과 같은 산들바람 느낌의 목소리는 아이돌 케이팝보다는 주로 ‘인디 팝’에서 들렸다. 최근 10년 정도를 돌아보자면 인디 포크나 베드룸 팝 여성 보컬로부터 비롯됐을 것 같다. 레이블이나 아티스트가 ‘인디펜던트’는 아니라도, ‘이런 목소리면 인디 가수지’ 하는 인식은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백예린이나 권진아 등이 그 예다.

정식 발매곡은 아니지만, 2021년에 비슷한 감성의 짧은 영상이 웹상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창 틱톡의 ‘듀엣’ 기능이 유행할 때, 준 바눈(June Banoon)이라는 이용자가 동네 고양이를 보며 가볍게 부른 노래(혹은 흥얼거림)에 다른 이용자들이 피아노, 신스, 바이올린, 플룻 등의 악기를 얹으며 합주 콘텐츠를 만든 것이다.

새소리가 들리는 어느 평범한 날 사랑스러운 존재를 친근하게 맞이하는 이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짧은 영상은 일상의 한 조각을 마치 디즈니의 클래식 만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준 바눈이 전문 뮤지션은 아닌 것 같지만 (TMI로, 그의 틱톡을 보면 요즘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영상에 한해선 앞서 말한 아란의 보컬 특성을 갖고 있다. 레트로한 느낌의, 속삭이듯 숨으로 잘 감싼 목소리와 부드럽고 긴 벤딩, 옅은 웃음기 말이다. 여유 있고 편안한 태도가 느껴진다.

디즈니 클래식과 비교하자면, 하이피치 목소리의 백설공주보다는 낮은 음역대의 신데렐라(아일린 우즈 분)가 40~60년대 크루너 싱어처럼 부른 ‘So This Is Love’(1950)가 비슷한 바이브를 갖고 있다. 피프티 피프티의 창법에서 레트로한 느낌이 나는 건 이 시기의 음악과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크루너 뮤직은 마이크 음향의 발전으로 등장한 장르였다. 속삭이는 듯 부르는 부드럽고 센티멘탈한 팝을 일컫는 말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발표된 재즈 스탠다드 넘버의 다수가 크루너 뮤직이다. 일반적으로 프랭크 시나트라나 빙 크로스비 같은 아티스트를 크루너라 부른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본인을 크루너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2020년대에 새삼 크루너 스타일이 유행의 범주에 돌아왔다고 하면 생뚱맞게 들릴 수 있지만 여기에도 전조는 있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2021년에 2집 [Happier Than Ever]을 내놓으며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 줄리 런던 등의 크루너 싱어를 꼽았다. 온라인 상에서도 그의 그런 “축음기”스러운 보컬이 꾸준히 회자 되고 있고 말이다. 

40~60년대의 크루너 뮤직은 2023년에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숏폼 동영상 플랫폼의 배경 음악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럭셔리한 일상이나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 또는 쇼핑 하울 언박싱 등에 어우러져 ‘클래식한’ 느낌을 불러오는 도구로 자주 등장한다.

아시안 여성 보컬의 다양성에 대한 기대

아란의 보컬은 크루너 뮤직 중에도 소울풀(흑인 음악)한 영향이 거의 없는, 백인 소녀 가수나 영화 배우들의 부드럽고 (당시 통념으로서의) ‘여성스러운’ 보컬과 닮아있다. 시오는 노래의 맛을 살리는 강세들이 좀 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알앤비 보컬에 가까운 창법이다. 그러나 그런 시오도 요즘 케이팝의 평균을 생각하면 자극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이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창법이 미국 팝 시장에서 아시아인 여성 팝 보컬의 어떤 유형 하나로 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보컬이 아시아인 아티스트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영미 음악계에서 그런 싱어들이 요즘 자주 눈에 띄었다. (아시아인 아티스트라면 좀 더 열심히 팔로우 하는 나의 편향에서 비롯된 착시일 수도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의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도 있고, 필리핀계 영국인 가수 비바두비, 추구하는 음악은 다르지만 미츠키 같은 아티스트도 떠오른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사라 강도 있다.

이들은 위에 말한 ‘인디 가수’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보컬임과 동시에, 블랙 뮤직이나 라틴 팝처럼 인종/지리적 문화와 창법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는 대중 음악의 바깥에 존재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실은 피프티피프티 아란의 보컬을 들으며 가장 먼저 생각난 아티스트는 일본의 보사노바 가수 리사 오노였다.

그가 2000년대 동아시아를 비롯해 브라질과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었던 것을 생각해볼 때, 부드러운 목소리의 아시아인 여성 보컬이란 세계 시장이 비교적 받아들이기 쉬운 성질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시아인 여성은 여리고 부드럽다는 편견의 작동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영미권에서도 다양한 이미지의 아시안 여성 아티스트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크게 걱정 되지는 않는다. 빌보드 핫100에 오른 요즘의 케이팝 걸그룹들, 블랙핑크와 트와이스, 뉴진스, 피프티피프티만 해도 음악적으로는 다들 다른 이미지다. 지금 영미권은 아시아인 아티스트 몇이 출신 대륙 전부를 거의 대표해야 하던 시절로부터 열심히 멀어지고 있다.

한계도 있지만 전보다는 훨씬 희망적이다. 나 역시 영미권의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이런 현상에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피프티피프티도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하기를, 롱런하는 팀이 되기를 바라본다. 음악도 기획도 좋지만 멤버들의 기량도 좋은, 쉽지 않은 삼박자를 다 가진 그룹이다. 앞으로 이들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이 많다. 🎧 DJ 랜디 서 | rndy.s.music@gmail.com 

📻 FIFTY FIFTY 노래 모음 (19:46)

음색에 집중해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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