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강남규 FB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어디에서 올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 이 복잡하고 바쁜 세계에서 남을 이해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타인의 상황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세상이 됐나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공감능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감능력의 문제라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타고난 능력의 문제라는 얘기 아닌가?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그런 사실을 믿고 싶지는 않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결국 ‘믿고 싶어지는’ 답안은 이런 것이다. 이해하고 싶은 그 타인과 일단 관계를 맺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쉽지, 그게 정말 답이 되나? [어쿠스틱 라이프]로 잘 알려진 난다 작가의 작품 [도토리 문화센터]는 흥미롭게 설계된 이야기로 그게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40대 여성 ‘고두리’는 대기업 ‘유니버스그룹’의 부장이다. 평생 일에만 집착해 온 일 광인. 그에게 취미나 여가란 사치에 불과하며, 목표는 오로지 성과와 승진이다. 당연히 사람을 사귀는 데도 별 관심이 없는 냉정한 인간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취미 광인이었다. 취미에 매진하느라 집안을 팽개치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고두리는 취미를 혐오하고 일을 숭배하는 일중독자가 됐다.
그런 고두리에게 회사의 중대지시가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역의 노른자위 중 노른자위, 요지 중 요지에 자리잡은 ‘도토리 문화센터’를 인수해 허물고 그 자리에 거대한 쇼핑몰을 세우려고 하는데, 도토리 문화센터의 토지 지분을 나눠 가진 네 사람이 도무지 지분을 팔려고 하지 않으니 그들을 설득해보라는 지시. 그 네 사람은 모두 문화센터의 회원이거나 회원이었던 이들이다. 고두리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문화센터에 위장잠입 한다.
이 정도만 들어도 [도토리 문화센터]가 어떻게 구성되는 이야기인지 대강 감이 올 테다. 네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 각각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누군가는 완고하고, 누군가는 온화하며, 누군가는 사적인 이유로, 누군가는 별 이유 없이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다. 고두리는 이들이 지분을 팔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일상을 나누며, 그들의 입장에 서 보기로 한다.
고두리는 작전에 성공했을까. 물론 그렇다.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지만, 어찌저찌 회원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 지분을 매각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다만 고두리도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한다. 조금은 따뜻한 인간으로, 그리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인간으로.
네 사람의 이야기에는 그럴 만한 마력이 있다. 5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이 중년 여성들에게 문화센터는 삶의 중심이었고 전환점이었다. K-장녀로서 평생 받아본 적 없는 인정과 다정을 이곳에서 얻었고, 남편의 가스라이팅을 벗어날 힘을 이곳에서 얻었으며, 인생 내내 받아온 차별감을 이겨낼 능력을 이곳에서 얻었다.
40대 여성 고두리는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왜 거액의 보상 대신 도토리 문화센터를 택해 왔는지를 이해하게 된 고두리는 임무를 완수하면서도 그들의 행복을 이어갈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가 평생 충성을 바쳐온 회사의 방침과 충돌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고두리는 기꺼이 그렇게 하기를 택한다.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토리 문화센터]의 마지막 화를 보던 날 즈음, 우연하게도 대구경북의 지역언론 <뉴스민>에서 보도한 기사를 봤다.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라는 제목이 붙은 그 기사는 이주노동자를 실은 통근버스를 운행하던 중 출입국 공무원들의 단속차량을 마주하자 버스로 들이받고 도주하다가 붙잡힌 한 40대 남성 김민수(가명)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니 본인이 단속에 걸릴 일은 없었다. 버스를 둘러싼 단속차량이 3면을 둘러싸고 있어 도망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거리낌 없이 단속차량을 들이받고 도망치려 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 20년을 일했다. 다시 말해 20년 동안 이주노동자들과 교류해왔다. 고두리가 문화센터의 여성들과 관계를 쌓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듯이, 그도 공장의 이주노동자들과 관계를 쌓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민수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래 함께 일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나랑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인 걸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이주노동자들의 절규에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영웅적인 행위는 단지 그런 이유로 일어나기도 한다. 단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DJ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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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랑 - 신의 놀이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랑은 ‘신의 놀이’에서 거의 간청하듯이 이 말을 반복적으로 읊조립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제가 내놓은 답이 사실은 ‘그렇게 믿고 싶어서’ 우기듯이 내놓은 주장인 것처럼요.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는 약 20개 직업군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해 만든 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바닥을 닦고 수화를 하고 바느질을 하고 조립을 하는 평범한 노동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춤으로 형상화된 것이죠. 인터뷰와 관찰이라는 ‘관계’를 바탕으로 타인의 노동을 이해하고, 그것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성을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오늘 주제와 꼭 맞는 뮤직비디오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사실 좋은 이야기는 이미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정확히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죠. 다가가 청하면 금세 세상으로 나올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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