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review | 걸 인 레드(girl in red)와 대안적인 뮤직 비즈니스

🎙추천/리뷰 콘텐츠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차우진입니다. 얼마 전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음악이나 책을 추천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꽤 있어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봤습니다. 텍스트(TMI.txt), 영상(TMI.mov), 음악(TMI.mp3) 콘텐츠 코너입니다. (랜덤이에요~) 

이왕이면 '팬덤, 크리에이터 경제, 구독모델, 음악 비즈니스'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소개할 생각입니다(제가 이미 썼던 글을 리터칭해서 실을 때도 있을 거에요). 동시대 트렌드와 새로운 콘텐츠가 구독자님에게 좋은 자극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잘 부탁, 굿 만남! 종종 보아요. 🤘 

존재로서의 메시지, girl in red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마리 울벤의 프로젝트 ‘걸 인 레드(girl in red)’는 현재 가장 유명한(그리고 가장 성공한) Z세대의 아티스트다. 1999년에 태어난 그는 자기 세대의 방식대로 음악을 만들고 성과도 낸다. 

10대 초반에는 인터넷으로 작곡과 편곡, 레코딩을 배웠다. 그렇게 만든 음악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가 소위 대박이 났고(2016년 11월에 사운드클라우드에 업로드한 데뷔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는 5개월 만에 5,000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명해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국적의 팬을 만났다.

'요즘 음악가'답게 스포티파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대형 레이블과 계약하는 대신, 걸 인 레드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팀을 구성하고,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어서 활동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인디펜던트 음악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에이전시와 협업하는 건 기본이다. 

이런 얘기는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들릴만큼, 걸 인 레드는 음악계의 뉴 제너레이션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걸 인 레드는 2020년 이후 록 음악의 새로운 국면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다.

그럼 도대체 걸 인 레드는 얼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까? 단적으로 2021년 1월, 두 곡의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와 "We Fell in Love in October"가 RIAA(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았다. 나처럼 오래된 사람이야 오 리아! 오 골드! 뭐 이렇게 반응하겠지만, 지금의 음악 팬들에게 이런 권위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스포티파이에서 걸 인 레드의 월간 청취자는 9백만 명이다(정확히는 9,568,576명이다). 첫 싱글인 "I Wanna Be Your Girlfriend"의 유튜브 조회수(공식 채널 기준)는 2천만 뷰에 가깝고, "We Fell In Love In October"의 조회수는 4천5백만 뷰를 넘겼다. 그의 영향력을 설명하기에는 이쪽이 더 직관적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걸 인 레드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퀴어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그걸 음악 활동에 이용하지도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고? 걸 인 레드는 10대 시절에 이미 커밍아웃했다. 그러니까 데뷔곡인 "I Wanna Be Your Girlfriend"는 제목부터 퀴어 러브 스토리인데, 이 노래가 히트한 덕분에 틱톡에서는 한때 “Do you listen to girl in red?”라는 표현이 곧 성정체성을 묻는 뜻으로 쓰일만큼 유행했다. 그의 음악과 퀴어 정체성은 사실상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정작 그는 자신의 음악적 성과를 성정체성과 연결하려는 미디어의 질문(퀴어 싱어송라이터로 사는 건 어때요?), 혹은 성정체성에서 그의 음악적 성과를 발견하려는 '레거시의 욕망'(퀴어 아티스트로서의 진정성 블라블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창작에서 내 성적 지향은 부차적인 문젠데? 왜냐면 그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맞는 말이다. 이성애자로 사는 게 창작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까? 아티스트가 헤테로 남성일 때에는? 그런데 왜 창작자가 '퀴어'나 '여성', '장애인'이나 '어린이'일 때엔 거기에 뭔가 특별한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걸 인 레드의 음악적 방향은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태도와 연결된다. 그러니까 새삼 중요한 건 성정체성이 아니라 관점과 가치관이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걸 인 레드는 우문현답으로 이 당연한 얘기를 새삼 환기시킨다.

얼마 전 그의 정규 1집 <If I Could Make It Go Quiet>가 나왔다. 그런데 이 앨범의 음악을 하나의 맥락으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게 느껴진다. 상이한 음악과 다층적인 맥락이 촘촘하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피니어스 오코넬과 공동 프로듀싱한 첫 곡 “Serotonin”은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감각이 일품인 기타 팝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Body and Mind”는 끈적거리는 네오 소울에 가깝다. “hornylovesickmess”는 깡총거리는 건반을 따라가는 인디 팝, “You Stupid Bitch”는 9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을 재현하는 펑크 록이기도 하다. “Rue”와 “Apartment 402”는 어떤가. 이 두 곡은 저 깜깜한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슬픔을 단번에 터뜨리는 드라마틱한 팝이다. 그리고 마침내 피날레를 장식하는 “it would feel like this”는, 어딘지 우울하고 외롭던 틴에이저가 그럭저럭 어른이 되어가는 독립영화 OST 엔딩 타이틀에 흐를 것 같은, 1분 20초의 짤막한 연주곡이다. 

곡의 메시지는 어떨까? 

앨범의 타이틀이자 첫 곡인 “Serotonin”은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 안에 따끔한 우울을 숨겨둔 이 노래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 부정적인 생각, 약물과 상담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풀어놓는다. 

한편 “Did You Come?”은 즉흥적이고 유혹에 약한 파트너에 대해 실망한 마음과 복잡한 분노를 담는 곡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Body And Mind”는 내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슬픔과 무력감을 털어놓는 곡이기도 하다.  

“hornylovesickmess”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도 육체적 사랑에 집착하는 엉망진창인 상태를 고백하는 자학적인 노래고, “You Stupid Bitch”는 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상처받는 '당신'에게 나야말로 완벽하게 딱 맞는 사람이라고 돌직구 고백을 날리는 러브 송이다. 상이한 감각이 나란히 놓인다는 점에서, 사실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창작자'의 내면을 상상하게 된다. 

작년에 이미 공개되어 인기를 끈 “Rue”는 2019년 HBO의 화제작 <유포리아(Euphoria)>의 주연 캐릭터 '루'에 대한 노래인데, 이 노래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약물, 섹스, 폭력, 인터넷에 중독된 10대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식의 드라마와 캐릭터 정보가 필요하다.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위대한 쇼맨>으로 유명한 젠데이아가 '루'를 연기했다)

어쩌면 이런 구성은 '음악의 완성도는 앨범'이라는 기준에서는 살짝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팝 역사를 꿰고 있는 평론가라면 이런 혼란을 (긍정이든 부정이든) ‘신인 아티스트의 혼돈’으로 정의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걸 인 레드가 존재 자체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인’이라는 포지션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지만 거기에 포섭되거나 사로잡히지 않는 아티스트답게, 음악적으로도 그는 다양한 장르를 왔다갔다하면서 록과 팝, 대중음악을 계보적이며 관습적으로 정의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는 가장 자본집약적인 시장에서 가장 인디펜던트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자신의 내면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니까 걸 인 레드는 너무나 제멋대로이고, 바로 그 ‘제멋대로’인 점 때문에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놓인다. 99년생인 그가 또래 집단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AWAL, 걸 인 레드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트너

한편, 노르웨이의 평범한 10대였던 걸 인 레드의 국제적인 성공을 이해하려면, AWAL이라는 유통사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여 년 간 디지털 환경 아래 점진적으로 진행된 음악 산업의 구조 변화를 상징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화제가 된 걸 인 레드의 첫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는 2018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유통되었다. 당시 유통사가 AWAL이었다. 'Artists Without A Label'을 줄여서 AWAL인데, 그 이름 그대로 '레이블 없이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그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이런 방향성 덕분에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AWAL은 1997년에 설립되었다. 

보통의 레이블은 시장성을 알 수 없는 독립 아티스트나 신인 아티스트와 계약할 때 음원의 소유권(마스터에 대한 권리)을 요구한다. 이것이 레이블의 자산, 즉 카탈로그다. 그런데 AWAL은 마스터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일부 레이블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아티스트에게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 채널별 퍼블리싱 및 다양한 수익화에 대한 컨설팅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목표는 해당 아티스트 수익의 극대화다.

2011년 12월, AWAL은 코발트 뮤직 그룹에 인수되었다. 코발트 뮤직 그룹은 2000년에 설립된 유통사로, 아티스트에게 적절한 저작권료를 신속하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웠다. 그를 위해 2005년에는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포털 서비스도 론칭했다. 코발트는 (2015년 기준으로) 영국 1위, 미국 2위의 독립 음악 유통사로서 약 60만 곡의 음악과 8,000여 명의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와이어드).

2021년 2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코발트 뮤직 그룹을 인수했고, AWAL 역시 그 산하 조직으로 편성되었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나 워너 뮤직 그룹과 달리, 음악의 부가 사업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소니/ATV는 세계 최대의 음악 싱크(광고/드라마/영화/게임 등의 영상 콘텐츠에 삽입되는 음악의 부가 수익, '권리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매출을 올린다.

이런 맥락에서 AWAL은 플랫폼 시대에 독립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트너에 가깝다. 아티스트에게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는 디지털 음원의 유통 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마케팅 지원, 라디오 및 싱크 라이센싱, 플레이리스트 프로모션, 유튜브 수익 창출, A&R과 제작비 투자도 포함된다. 스트리밍 수익에 있어서도 아티스트에게 80%를 지급하고 있다.

AWAL이 이렇게 '대안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이유는 뭘까?

일단, 새롭게 등장하는 신곡의 개수가 늘었다. 2002년 미국에서는 3만 장이 조금 넘는 앨범이 발매되었지만, 2020년에는 '스포티파이에서만' 180만장 이상의 앨범이 발매된다. 매일 업로드되는 신곡의 수는 6만 곡 이상이다.

바꿔 말하면 아티스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레이블이 아티스트의 마스터 권리를 가지는 것은 소수일지라도 크게 성공하는 아티스트가 꾸준히 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 만 명씩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런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한편 음악을 전달하는 미디어가 늘었다. 텔레비전, 라디오, 음악 서비스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와 게임이 새로운 음악 유통 채널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상 공간에서는 매우 다른 기준으로 사용자 그룹이 나눠질 수 있다. 연령, 장르가 아니라 게임 취향이나 선호하는 만화 캐릭터에 따라 소비하는 음악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악은 앞으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유통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회비용이 늘어난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레이블과 계약할 이유는 없다. 아티스트의 핵심 자산인 마스터 권리를 원래 자리에 남겨두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 채널을 만들고 수수료를 높이는 것은 레거시 아티스트에게도 매력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덕분에 AWAL은 더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수익모델을 갖게 된다.

걸 인 레드가 성공한 배경에도 이런 음악 산업의 구조 변화가 존재한다. 걸 인 레드의 입장에서는 굳이 레이블과 계약하느니 자신의 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고 AWAL 같은 파트너와 협업하는 모델이 더 합리적이다. 걸 인 레드의 자체 레이블은 월드 인 레드로 이 브랜드를 통해 투어 티켓, 음원 안내, 굿즈 판매, 그리고 뉴스레터 등을 제공한다. 그의 레이블 홈페이지는, 대부분의 독립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아티스트 자사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디펜던트, 혹은 크리에이티브 오너십

콘텐츠를 비평하거나 추천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글쓰기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호한 감정과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걸 인 레드는 기존의 관점과 태도로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가일지 모른다. 물론 새롭게 등장하는 아티스트들, 새로운 세대의 행동 패턴과 감수성이란 원래 그런 쪽에 가깝다. 경험의 차이가 이해의 차이를 유발한다고나 할까.

AWAL과 같은 회사나 비즈니스 모델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의 아티스트십과 비즈니스 모델을 상징한다. 기존의 관점으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다른 감수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덕분에 가끔 하염없이 그림자를 뒤쫓는 기분이 되기도 하지만, 기존 관점에서 벗어난 방향성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실을 보는 것 또한 매우 신선한 자극이 된다.

이들의 등장과 성과는 바야흐로 음악 산업이 창작과 생산, 유통과 판매 구조에서 마침내 '크리에이티브 오너십'이라는 태도를 전방위로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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