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 줄임표 | 말 안 듣는 강아지들이 우르르 멍멍!

💬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이자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토론의 즐거움]을 운영하는 강남규 DJ가 함께 읽고 싶은 웹툰을 소개합니다.

4월 말에 강아지를 입양했다. 이름은 밀크, 나이는 세 살쯤, 특징은 매우 귀여움. 결혼 전 본가에서도 강아지를 키워왔으니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한 생명을 돌본다는 결정은 그 중압감이 만만치 않았다. 설렘 반, 걱정 반. 이 아이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은 확실한데, 또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날만 가득하진 않을 것이라는 경험적 예상이 걱정의 근원이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보호자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생명이 아니다. 먹지 말라도 먹고, 기다리래도 움직인다. 왼손 달라면 왼발 주고 돌라면 도는 강아지? 그런 강아지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만 흔하다. 산책할 땐 자기 가고 싶은 길로 가겠다고 멈춰 서서 고집 부린다.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잠을 깨우는 일도 자주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 좀 했으면 좋겠는데, 녀석은 말도 할 줄 모른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 잘 싸는 것만 바랄 뿐인데, 세상엔 변수가 왜 이리도 많은지.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나름의 의지를 가진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까지 미디어가 강아지를 그려내는 방식은 그렇지 못했다. 대전에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300km를 홀로 걸어 진도로 돌아왔다고 알려진 ‘돌아온 백구’ 이야기는 강아지 재현에 관한 상징과도 같다.

‘주인’(이 말은 ‘보호자’와 크게 대비된다)에게 충성을 바치거나, 인물 중심의 서사에서 풍경처럼 묘사되거나(집 마당에 묶여 있거나, 모험을 졸졸 쫓아다니거나). 그나마 인간에게 버림받아 야생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독창적인 편이랄까. 어쨌거나 ‘말 안 듣는 강아지’는 잘 그려지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일의 희로애락’에 관한 이야기도. 아마도 한국 사회는 강형욱 훈련사의 등장 이후에 강아지라는 생물, 그리고 강아지를 키우는 일, 혹은 강아지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최근 이런 이야기들이 담긴 웹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들이 아주 반갑다.

먼저 이선 작가의 <개를 낳았다>, 이 작품은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 관한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명동이’를 입양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초보 집사의 성장기, 강아지를 통해 이웃과 만나는 풍경들, 강아지를 매개로 맺어지는 인연들, 강아지를 떠나 보내는 일, 여자가 큰 강아지 키운다고 거리에서 욕을 먹는 경험, 유기견이라고 차별 받는 경험, 갑자기 병에 걸린 강아지를 돌보는 일, ‘동물권’ 판에서의 갈등과 기쁨들… 강아지 키우는 일의 A to Z, 흑과 백, 희로애락이 모두 이 작품에 담겨 있다.

모죠 작가의 <마루는 강쥐>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강아지였던’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어느 날 주인공 ‘최우리’가 키우는 강아지 ‘마루’가 사람이 된다. 다섯 살 강아지였던 마루는 다섯 살 아이가 되어 인간 세계를 배워간다. 아이가 됐지만 강아지의 습성을 지우진 못한 까닭에, 마루의 매일매일은 천방지축의 연속이다. 강아지는 목줄이라도 채우지, 아이한텐 목줄을 채울 수도 없다. 다섯 살 아이이니 어쨌든 유치원도 보내야 한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말릴 수도 없다. 최우리는 언제나 마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전전긍긍하지만, 순수한 마루가 만들어내는 뜻밖의 가능성에서 최우리의 삶은 차츰 확장되어 간다.

얼마 전 연재를 시작한 얄라리 작가의 <강아지는 멍멍하고 짖지 않아>는 아예 ‘지랄견’ 키우는 얘기다. ‘말 잘 듣고 예쁜 강아지’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허상’일 것이라면서, 자신이 키우고 있는 ‘쉽지 않은 강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제멋대로 산책하고, 항문낭 문제로 보호자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내향적인 보호자에게 또 고통을 안겨주는 강아지 밤빵이.

이렇듯 강아지를 돌보는 게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나는 이게 반가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환영하고 싶을 정도다.

한국은 강아지를 쉽게 키워왔고, 그래서 쉽게 버려왔다. 쉽게 버리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쉽게 키울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쉽게 키울 수 없게 만드는 제도를 당장 도입하기 어렵다면, 일단 쉽게 키우기 어렵다는 인식부터 확산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앞선 세 작품이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지만, 세상에 순순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순순하지 않은 개를 키우려면 당신도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물론 저 작품들이 강아지 키우는 일의 고됨만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도무지 쉬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보호자가 인내심과 애정, 책임감을 갖고 준비한다면 강아지들로부터 얼마나 큰 행복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아낌없이 그려낸다.

세상과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개를 낳았다>의 다나는 명동이를 계기로 세상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프리랜서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던 <마루는 강쥐>의 우리도 이웃들과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고, <강아지는 멍멍하고 짖지 않아>의 작가도… 음, 연재 초반이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행복하지 않을까.

어떻게 아냐고? 내가 지금 행복하니까.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나름의 의지를 가진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일이니까. 💬 DJ 강남규 | FB

📻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제가 아는 한, 강아지와 살아가는 삶을 가장 잘 그린 노래예요.

언젠가 결국은 울게 될 테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 행복할 거라는 거. 내가 흘릴 눈물에 후회와 미안함이 아니라 순도 높은 그리움과 고마움만 담아낼 수 있으려면, 지금 더 많이 준비되어야 하고 더 아낌없이 사랑을 줘야 한다는 거. 처음 키웠던 강아지 ‘모래’를 떠나 보낼 때는 후회와 미안함만 가득했지만, 지금 키우고 있는 강아지 ‘무지’(형이 키우고 있어요)와 ‘밀크’에게는 그리움과 고마움만 남길 수 있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합니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작사했으며 가을방학의 멤버이기도 했던 정바비의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피가 언젠가 가을방학 해체 소식을 알리며 인스타그램에 쓴 말도 기억합니다. “누가 쓰고 누가 불렀든, 노래로 위안받았던 순간의 기억은 무엇에도 침범 받지 않을 오로지 여러분의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첫 강아지 모래를 떠나 보낸 뒤 이 노래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댓글에 가득 담긴 강아지와의 추억들도 역시 그런 기억의 조각들일 겁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불편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함께 듣는 노래로 꺼내 왔습니다.

정바비로 인해 세상을 등진 피해자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디 늦게나마 정의가 피해자의 영전 앞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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