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서의 사적 리뷰 | 표절과 유사성

🎧 TMI.FM의 DJ 랜디 서 | 대중음악의 여성들은 아티스트로서, 제작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랜디 서의 사적 리뷰]는 국내외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거기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짚어봅니다. 

5월 10일, 강남 경찰서에 가수 아이유를 표절 혐의로 고발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일제히 뉴스를 탔다. 저작권법 상 표절은 피해 당사자가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이기에 해프닝으로 사라지는 게 적당한 수순이었겠으나, 왜인지 8일날 접수되었다는 이 고발은 영리 목적이 있거나 상습적일 경우 고소 없이도 공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까지 들며 아이유의 혐의를 주장했다.

고발장에 언급된 곡들은 ‘분홍신’, ‘좋은 날’, ‘삐삐’, ‘가여워’, ‘Boo’, ‘Celebrity’ 여섯 곡으로, 이 중 아이유가 작곡에 참여한 곡은 ‘Celebrity’ 한 곡 뿐이나, 아무튼 고발은 싱어송라이터로서 명성이 높은 아이유를 겨냥하고 있다. 고발 내용을 확산 시키는 기사들의 논조도 자극적이다.

KBS 전북의 뉴스픽은 ‘누리꾼들 사이에선 안티팬의 돌발 행동으로 여기기엔 고발인이 ‘진심’인 것 같다는 반응도 나온다’며 그의 집요함이 진실 여부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유의 여섯 곡이 표절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판례가 보여주는 음악저작물 표절 판단의 기준은

하박국의 유튜브 채널 ‘사람들은 왜? - 대중문화 탐구 채널’에서는 이 기준을 보다 쉽게 설명하고 있다.

1. 창작성: 원곡의 표현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고유한 표현인지,

2. 의거성: 원곡을 훔칠 의도성이 있었는지,

3. 실질적 유사성: 원곡과 표절 의혹 곡의 의혹 구간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음악의 소단위 프레이즈(Phrase)로 판단한다는 것.

해당 영상에서는 왜 해당 의혹이 표절일 수 없는지 간단한 법리 해설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분명한 이유로 창작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사법 시스템도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댓글란을 보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귀에 유사하게 들릴 수는 있다. 주관이 들어가는 영역이니 누군가 의혹 곡들을 비슷하게 들었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가 아이유의 여섯 곡이 표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표절 혐의를 제기하는 측이 근거로 내미는 곡들에는 모두 각자의 좋음이 있고, 곡 안팎의 맥락 속에서 유니크하다. 그러나 ‘이 표현법을 쓴 곡은 지구상에 이 곡이 유일하다’ 싶을 만큼의 유일성을 인정하기는 힘들다. 특히 대중 음악에서 인기 있는 (다른 말로 대중들이 들었을 때 좋다 느끼는) 작법이나 기법은 어느 정도 관용구로 정해져있기도 하다.

2. 여섯 곡의 작곡가들에게 원본의 표현을 훔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입증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고의로 훔치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겹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3. 표절 시비가 있는 구간들 사이에 유사성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건 곡을 이루는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미세한 것에까지 천착해 표절 판정을 내린다면 창작자들의 미래 창작 행위와 동기를 구속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본래 저작권법의 목적인 문화의 향상발전에 오히려 어긋난다.

이밖에도 요즘 대두되는 대부분의 표절 시비에 나는 비슷한 입장이다. 당연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여야 한다는 원론을 깔아둔채로 주장한다면, ‘봐, 이렇게 들어보면 비슷하지 않냐’ 하고 올라오는 2000년대 이후 노래의 대부분이 표절이 아니라 생각한다. 하박국의 ‘사람들은 왜?’ 채널에서는 “21세기는 전처럼 표절을 하기 쉽지 않”다고 소개하며 “표절했다고 노래가 히트할 가능성이 커지는 건 아닌데 히트하면 금세 표절 의혹을 사고, 표절 판결이 나면 곡의 수익도 얻지 못한단 말이죠. 표절했을 때 얻는 건 확실하지 않은데 리스크는 큽니다” 라고 설명한다.

작년 유희열의 표절 의혹 사태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94년 데뷔한 이래 발표곡의 모든 레퍼런스를 다 정리해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유희열은 그래도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등을 통해 자기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나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알려온, 비교적 오픈된 창작자에 속했다. 그의 그런 행보가 작년 사태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것에 더욱 아쉬움을 느꼈다. 영감의 기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더 큰 비판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당시 담론에 참여하던 분들에 대보면 이런 생각은 급진적 소수인 것 같다. 대중이 공감할 만큼의 유사성이 발견 되었고, 그에 근거해 윤리적으로 ‘표절’이라 결론 지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관련해서 이루어진 티비 토론이나 평론, 칼럼, SNS 포스트 등에도 이런 결론에 동의하거나 ‘대중의 선택’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이슈를 둘러싼 온도가 워낙 뜨거웠기에 일단은 거리를 두고자 하셨던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일단 나는 요즘은 유사성을 발견하는 즉시 ‘표절’ 라벨을 붙이러 달려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느껴, 내 나름 저항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치우친 입장을 정했다. ‘표절’은 참고, 아류, 패러디, 오마주, 샘플링, 장르 미학 추구 등 유사성의 많은 케이스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법으로 가부를 가려야 할 만한 항목인데, 이런 최상급 부정적 표현을 작은 유사성에까지 붙이는 건 지나치다고 본다.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넘어가기엔 해악이 크다.

사람들이 대중 음악 속 유사성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유나 유희열에 선호가 딱히 없거나, 심지어는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작품이 다른 작품과 유사하다는 것에 실망을 느끼는 이들도 있어보인다. 그들이 전부 유명인 아이유나 유희열에 악의를 가졌을 리는 없다. 내가 ‘표절 렉카’와 라벨링 문제가 심각하다 느껴 상기한 급진적 입장을 택했듯, 그 분들도 자신이 보기엔 현재의 대중 음악계에 유사성 문제가 너무 심각해 ‘표절 판단’이라는 강력한 입장으로 균형을 맞추려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 분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에서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릴 거라 가정하며 그 이유의 배경을 상상해봤다.

한국 대중 음악에서 유사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국 대중 음악의 토양을 먼저 생각해본다. 현재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대중 음악 대부분의 장르는 해외에서 수입 돼왔다. (물론 예술은 여러 작품과 창작자가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아서, 우리가 어느 특정 국가에서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그 나라에 도달하기까지 숱한 국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미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있었다.)

지금 한창 케이팝을 즐기는 국내 인구 중에 한국의 토속 음악이 케이팝의 주류가 아님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세기 한국은 유력한 다른 나라들의 영향을 받기 쉬운 조건에 있었다. 식민 지배(문화 말살 시도를 포함한)를 받은 적도 있고, 영토 내에서 당대 세계 패권 국가들의 대리전을 치룬 적도 있으니 말이다. 짧은 시간 내에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이기도 한데, 이는 한국 내에서 어떤 문화가 태동하고 자리 잡기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결과로 나타났다. 실질적이나 개념적 공간이라 불릴 신(scene)이 흐릿해서,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한 역사가 거의 없다.

또 하나 결정적인 역사는, 90년대부터는 정말로 여러 대중 음악 창작자의 표절이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문화 개방 전에는 숱한 창작자가 이미 존재하는 남의 나라 노래, 특히 일본 곡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 당시의 일반 대중이 외국곡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악용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음악 뿐만 아니라 출판, 방송, 영화, 소프트웨어 복제 등 사회문화 전반에 퍼져있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인프라나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대중 음악의 표절 문제를 검증할 길이 충분치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며 잡지나 방송 등을 통해 정보가 유통 되고, 해외의 음반들이 수입 되어 팔리며 음악에 견문을 넓히는 인구가 늘었다. PC통신과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며 정보 접근은 더욱 쉬워졌고, 이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음악들을 검증해 다수에 공유하기도 쉬워졌다. 이렇게 조건이 맞아떨어지자 부정직한 창작자들이 고발 되기 시작했다.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일어난 부정이 관행처럼 굳어진, 견제 받지 않던 당대의 창작 윤리를 향유자들이 바로 잡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때 표절 의혹 곡을 적발하거나 또 대응하며 대중 음악을 주제로 한 담론 움직임이 활발해지기도 했고, 당시 활동한 기고가 중 지금도 활약 중인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 유산이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내려오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종합해보면, 한국에서 어떤 노래가 다른 곡과 유사할 시 그건 호의로서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나 장르 혹은 신(scene)이 태어나는 과정으로 보기 어렵고, 분명 ‘훔치기’ 같은 나쁜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아이유처럼 젊고 재능 있는 창작자의 이미지가 있는 경우에는 ‘남이 힘들게 만든 작품을 쉽게 베껴서 창조적이라는 명성을 얻었다’는 윤리적 분노가 가장 크지 않을까 짐작한다. 원곡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힘들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곧 오리지널리티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표절 의혹을 받는 후행 저작물의 작가 역시 표절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힘들게 만들었음은 매한가지다. 들인 공을 알아주고 공감하는 것은 동료 시민으로서 하면 좋을 일이지만서도, 이 경우는 표현의 고유성이나 의거성 등을 보아야 한다.

시장 경제의 논리로 볼 때에, 저작물은 원저작자의 사유 재산이며 그 내용물을 훔친 것은 원저작물로 벌 수 있었던 돈을 훔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음악 창작으로 충분한 수입을 벌지 못 하는 아티스트가 훨씬 더 많은 세상에 이는 민감한 문제다. 표절 의혹을 받는 아티스트가 부와 명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욱 괘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표절을 판가름 짓는 건 아까 말한 표현의 고유성이나 의거성 등의 조건이지, 표절 시비 양자 중에 누가 더 유복한가의 문제는 아니다. 

범작을 만드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현재의 저작권 수익 모델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애초에 저작권법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호해 창작자에게 창작 활동을 더욱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대중 음악처럼 우연히 겹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필드에서는 기준을 엄격하게 할수록 창작 활동은 억제 된다. 최근 히트곡 ‘Thinkin’ Out Loud’로 표절 혐의를 받아 소송을 당한 에드 시런이 패소 시 은퇴할 각오를 내비쳤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 온다. 예술은 인류만큼 오래 됐지만 정작 물성 있는 재화나 남의 노동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와는 다른, 시장 경제에서 잘 통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 존재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루이스 하이드는 1983년 저서 [선물(Gift)]에서 “예술의 노동 자체에는 그것을 보상해줄 자동적 이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짚는다. 예술은 본래 창작자가 ‘선물’처럼 받은 영감과 재능을 통해 작품을 탄생 시키고 그 작품이 향유자를 감화시키는, 그래서 그 감사로서 후원하거나 환원하는 선물 경제 속에 있었다. 지금이야 시장 경제 논리를 따라야만 예술가도 배를 곯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예술의 이 선물 경제적인 특성도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40년이나 된 책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며, 작품의 고유 인식표 역할을 하는 NFT 등의 기술이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지금은 더욱 필요한 텍스트다. (작년 유유출판사에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미 존재하는 작품과 비슷한 걸 또 내 봐야 예술적으로 무슨 존재 의의가 있나 하는,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질문도 있을 수 있다. 나도 어떤 작품이 그다지 새롭지 않을 때 종종 이것이 세상에 나와야만 할 이유가 있었나를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움(novelty)이 부족하다 해서 범작들의 생산을 막아버리면 그 풀에서 가끔 태어나는 획기적인 작품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숱한 창작자가 걸작을 만들기 위해 매달릴테지만 대부분은 범작을 만드는 데에 그칠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드물게 태어나니 걸작 아니겠는가. 유튜브에서 유사성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실은 표절작이라기 보다는 범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범작을 만드는 것이 곧 범죄는 아니다. 음악을 직업 삼는 이들에게 어째서 세상이 놀랄 새로운 걸 만들지 못 하냐며 노상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걸작을 만들고 싶은 것은 누구보다 다름 아닌 창작자 자신일 것이다.

설명은 늘 어렵고 길고 재미없다 

표절 시비로 시끄러울 때마다 생각한다. 유사성이 싫다면 싫다고 말하면 된다. 어디가 비슷해서 싫다, 아류작에 불과해서 싫다, 이런 노래는 이미 많이 들어봐서 싫다, 무엇이 싫은지를 짚어서 말하면 된다. 다만 유사성이 곧 표절이라 굳게 믿고 판정을 내리는 모습들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대중 음악은 누구나 접근하기 좋은 낮은 장벽의 예술이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면 빠르게 확산 되고, 많은 사람이 자기 의견을 얹게 되기도 한다. 표절 시비 영상보다 표절이 아님을 설명하는 영상이 더 길고 제작에 더 공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시비 영상은 두 곡의 유사한 구간을 순차 재생하면 그만이지만, 설명 영상은 장르적 특성이 무언지, 이게 어떤 리듬인지, 유사한 다른 예시에는 뭐가 있는지 등을 든 후에야 어째서 이런 우연의 산물이 태어났는지를 말할 수 있다. 또는 표절이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 되는지 여러 판례를 소개해야만 한다. 너무 길고 재미 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도 꼭 표절의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면, 그 길고 재미 없는 설명도 한번쯤 귀기울여보았으면 한다. 그리고도 타인의 검증을 믿기 어렵다면 스스로 알아보았으면 한다.

우리는 여론이 내리는 표절 판정이 누군가에게는 커리어의 위기 혹은 종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안다. 그런데도 창작자들의 적극적 소명을 동종 업계인의 편들기 정도로나 해석한다면, 그러면서 악보나 음악 이론적 설명을 업계인의 엘리티시즘의 발로라고만 생각한다면, 결론은 확증 편향과 반지성주의일 수 밖에 없다. 답을 이미 정해놓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창작 윤리나 타인의 권리 보호 같은, 공익적이고 이타적인 동기에서 표절 논란을 보는 분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분들을 설득하고자 부족하나마 내 생각을 이야기해보았다. 🎧 DJ 랜디 서 | rndy.s.musi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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