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경의 핫아메리카노 |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TMI.FM의 DJ 홍수경(Janis Hong) | 영화 잡지 기자로 일하며 한국 영화계의 대소사를 기록하다가 미국 뉴욕으로 이주, 그곳에서도 각종 영화 및 팝컬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어권 음악만 듣던 팝 덕후가 뒤늦게 미국에서 케이팝 팬으로 거듭났고, 최근에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의 작품 덕에 한국과 미국의 접점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북미주재원으로도 활동 중.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헤어질 결심]이 국제 장편영화상 최종 후보에 탈락하면서 화제성을 잃었습니다. 한국 관객 입장에선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하고,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스카는 여전히 미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시상식입니다. 특히 2022년 시상식은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극장 상영이 정상화되고 OTT 구독 체계가 자리를 잡던 시기여서 영화의 미래에 대해 많은 질문과 예측이 교차했습니다. 더군다나 애플TV플러스의 [코다]가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영화(극장 중심)와 콘텐츠(플랫폼 중심)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했죠.

2023년 시상식은 '모든 출품작이 미국내 6개 도시에서 반드시 상업적으로 극장 상영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부활한 뒤 치러지는 첫 시상식입니다. 업계에서는 ‘극장 영화'에 대한 가치 뿐 아니라 ‘오스카'라는 인증 마크가 여전히 관객에게 압도적인 설득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업계 종사자에게 오스카 수상은 영화인으로서 최고 명예 중 하나이자 몸값을 올리는 최고의 스펙으로 작용할 수도 있죠. 

컨설팅 회사 Morning Consult는 명성보다 수익이 우선하는 시대에 스트리밍 서비스에게 오스카가 중요한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오스카 팬들이 일반 관객보다 극장과 스트리밍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 때문인데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결정할 때의 기준 중 하나가 오스카 후보작이나 수상 유무였다고 하네요. 

오스카는 창작자와의 관계에도 중요합니다. 출중한 감독과 배우를 두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창작자는 배급사의 지난 실적을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적인 오스카 후보와 수상은 스튜디오의 통찰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입니다. 또한 오스카의 후광을 얻은 창작자와 제작자는 거금의 계약금을 받고 OTT로 작품을 완전히 넘기는 대신, 공개 이후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도 합니다. 작품의 판권을 분기별로 나눠서 팔거나 수익 배분을 조절할 협상력을 얻게 되는 거죠.  

이런 맥락이라면 오스카는 충성심 있는 영화 팬과 존경받는 창작자를 위한 일종의 '품질 보증 제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스카는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당대 영화인을 모으는 대표적인 행사기도 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톰 크루즈, 케이트 블랜쳇, 미셀 여, 제임스 캐머런,  라이언 쿠글러, 마이클 베이와 각 배급사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풍경이 그리 흔할까요? 아카데미 시상식은 진정 할리우드의 잔칫날입니다.  

더불어,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던집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이유: OTT 영화를 살펴볼까요?

우선 OTT를 봅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품질을 증명하는 일환으로 수년동안 열심히 오스카 캠페인을 해왔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월드 클래스 콘텐츠임을 가장 빠르게 증명하는 방법은 오스카 후보작이 되는 거였죠. 그 결과 [로마], [아이리쉬맨], [결혼이야기], [파워 오브 도그] 등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올해는 의외로 비영어권 영화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문에 올랐습니다. 그 외 [나이브스 아웃 2: 글래스 어니언](각색상),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와 [씨 비스트](애니메이션 작품상), [블론드](여우주연상), [바르도…](촬영상), [RRR](주제가상) 등이 후보가 되었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특이한 점은 인지도가 높거나 영화제용 화제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0월에 비교적 조용하게 공개된 이 영화는 시네필 영화 앱 ‘레터박스드'와 ‘레딧'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순위 4위를 기록하더니 서서히 국제 장편영화상의 다크 호스로 떠올랐죠. 아카데미 회원 대상의 극장 상영 행사가 지속되는 오스카 캠페인 기간 동안, 스트리밍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효과가 배로 커진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후보 지명이 스트리밍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2월 국제 장편영화상 예비리스트 발표 이후부터 지금까지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순위 10위 내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주제가상 후보에만 올라 몇 주 간 반짝 주목을 받았던 [RRR]과는 상반된 결과죠. 대신 [RRR]은 인도 영화에 대한 재미를 상기시키며 이후 인도 영화들이 넷플릭스에서 지속적인 주목을 받도록 도왔습니다. 

두번째 이유: 장편 국제영화상을 주목하세요

올해 OTT가 유독 힘을 발휘했던 영역은 장편 국제영화상입니다. 넷플릭스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아마존 프라임의 [아르헨티나, 1985]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잠깐. [헤어질 결심]은 극장 개봉 후 예술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MUBI를 통해서 공개되었지만 그리 대중적인 플랫폼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일찌감치 스트리밍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장시간에 걸쳐 입소문을 얻기에 충분한 수작들이었어요.

다른 후보작들은 여러 번 오스카를 경험한 배급사의 작품들입니다. [기생충]의 배급사로 유명한 네온(Neon)의 벨기에 영화 [클로즈], 유럽 영화를 주로 배급해온 슈퍼(Super)의 아일랜드 영화 [말없는 소녀], 작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배급한 재너스 필름(Janus Film)의 폴란드 영화 [EO]가 나머지 후보들이죠.

[기생충]이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문을 열고 [미나리]와  [드라이브 마이 카]가 연이어 수상을 하면서 국가들은 오스카상이 자국 문화와 콘텐츠를 소개하는 창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출품 편수가 증가하고 경쟁도 치열해지는 현재, OTT가 국제영화상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플랫폼이 된다면 비영어권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 같습니다. 

세번째 이유: 스트리밍 말고 다운로드를 봅시다

OTT 공개가 아닌 작품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극장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극장 재개봉과 스트리밍 공개를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몇 달간 디지털 콘텐츠 대여/판매로도 수익을 극대화한 다음, 첫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케이블TV ‘쇼타임’을 선택했습니다. 2019년 배급사 A24는 2022년 11월까지의 개봉작을 ‘쇼타임’에 독점 공개한다는 계약을 맺었거든요.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 대여/구매도 가능합니다. 현재 극장-디지털 구매-스트리밍 구독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 거죠.

비단 [에에올]만 이런 상황인 것은 아닙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저예산 영화들도 이 삼각 편대를 동시에 진행합니다. [이니세린의 밴시]는 HBO 맥스, [타르]는 피콕에서 스트리밍되고 동시에 다른 플랫폼에서 구매도 가능합니다. 이 두 작품과 더불어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파벨만스], [우먼 토킹]은 아카데미 후보 발표와 함께 상영관을 대거 확대하고 관객 몰이에 나섰습니다.

후보 발표 주말을 제외하고 관객이 드라마틱하게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콘텐츠 대여/판매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를 대여/판매하는 아마존, 구글, 애플의 차트에서도 오스카 후보작은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오스카는 후보작의 극장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디지털 판매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콘텐츠 유통 업체가 비록 자체 오리지널 작품이 주목을 못 받더라도 오스카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죠. 

이 디지털 차트는 극장의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넷플릭스를 제외하고 온라인으로 대여/구매/스트리밍 가능한 영화의 상위권 작품들은 모두 극장 개봉 영화입니다. 사람들이 극장 개봉작을 기꺼이 돈을 주고 사본다는 의미죠.

[탑건: 매버릭]이 예상보다 장기 상영되며 극장에서 승부를 봤다면, [엘비스]는 극장과 디지털 판매 양쪽에서 수익을 거두며 할리우드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극장에서는 스펙터클로 승부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승승장구 하면서, 저예산 영화는 전보다 관객 수가 줄었습니다. 그런데 저예산 영화는 관객 대신 2차 콘텐츠 판매와 OTT 판매를 위한 프리미엄을 얻고 있어요. 극장이 일종의 쇼케이스 장소로 작용하는 겁니다. 극장에서 화제가 되어야 극장 밖에서도 화제가 됩니다.

종합: 영화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가 보입니다

이번 오스카는 재미있게도, 극장 영화, 스트리밍 영화, 외국어 영화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순수 영화 관객에게 이번 오스카는 ‘영화란 무엇인가’를 재고할 기회를 안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바타: 물의 길]을 비롯해 [탑건: 매버릭]과 [엘비스] 등 이번 오스카에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작품상 후보로 대거 올랐습니다. 흥행작이 후보가 되면 주목도가 높아져 시청률이 올라가니 시상식 측에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상식 측이 주도한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카데미 회원들의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재고가 반영이 되었다고 봐야 하죠. 제임스 캐머런은 [아바타]나 [타이타닉]으로 이미 후보에 오른 적이 있으니 그럴 만 하다곤 해도, [탑건: 매버릭]과 [엘비스]는 전과 같은 오스카 성향이라면 기술 부문에서나 봤을 법한 영화들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기존 오스카 입맛에는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2022년 한해 동안 영화 관객은 굳이 시간과 돈을 할애하며 극장을 방문해 꼭 봐야 하는 영화에 대한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고 [탑건: 매버릭], [엘비스], [아바타: 물의 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러한 기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2022년 오스카 수상 결과에 대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기호 및 미국 사회 변화에 대한 해석이 가능했다면, 2023년의 오스카 시상식은 영화의 정체성과 생태계에 대한 영감을 안길 것 같습니다. 때마침 OTT의 구조 조정도 한창이고 선택과 집중 전략도 바뀌는 시기라서 흥미롭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작품이에요. 이번 후보작들은 유례없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미국 시간 3월 12일, 좋아하는 작품을 응원하는 재미 또한 놓치지 마시길! 🗽DJ 홍수경 | FB 

📻 The lost generation - this is the lost generation (놉 OST)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아서 화제가 된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조던 필의 호러 영화 [놉]인데요. SF와 호러 영화는 오스카가 그리 사랑하는 장르가 아니긴 합니다만, 다른 후보작들과 비교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이죠. 그래서 '오스카가 놉에게 놉했다'는 농담도 돌았습니다.

엄청난 영화광에 장르에 사회 이슈를 섞어버리는 '미국의 봉준호' 조던 필 감독은 빈티지 사운드 찾기에도 열심입니다. [놉]으로 발견한 곡을 함께 듣고 싶어요.

1970년대의 보컬 그룹 '잃어버린 세대'의 "이것이 잃어버린 세대다"라는 노래 제목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만, 곡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놉] 또한 세대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이기도 해서 적절한 선곡이기도 하고요. 오스카 잔치에는 초대받지 못했지만 [놉]이 수작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구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스카 시상식이 무척 기대되는 홍수경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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