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서의 사적 리뷰 | 사이렌-여성-몸-케이팝

🎧 TMI.FM의 DJ 랜디 서 | 대중음악의 여성들은 아티스트로서, 제작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랜디 서의 사적 리뷰]는 국내외 여성 콘텐츠를 소개하고, 거기서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짚어봅니다. 

최근 본 예능 프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쇼를 꼽으라면 단연 넷플릭스의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 불의 섬]이다. 경찰관, 소방관, 경호원, 군인, 운동 선수, 스턴트 배우, 이렇게 여섯 개 직군이 각각 팀을 이뤄 경쟁하는 방식으로, 갯벌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섬에서 신체적, 전략적 싸움을 거듭해가며, 참가자들은 매일 한 번씩 있는 ‘기지전’을 통해 점유를 넓혀나간다. 마지막으로 생존한 한 팀이 ‘불의 섬’의 우승자가 된다. 참가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들 참가자 직군의 공통점은 강인한 육체가 업무의 중요 부분이라는 것이다. 직업의 필요나 목적에 따라 전략, 예방, 정보 수집 등 다양한 기술이 추가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강한 체력과 근력, 지구력 등을 가진 사람들이다. 팀을 직업 별로 분류했기에 각자 직군의 직업 의식도 돋보였다. 소방팀은 기회가 생기면 즉시 돌격하는 자세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이 직업의 특성을 보여줬고, 군인팀은 우열세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전술을 짜거나 때로는 잔혹해지기도 하는 모습 등이 눈에 띄었다. 이런 성향들이 강인한 육체와 결부되어 각자의 캐릭터성으로 빛났고, 결과적으로 이 프로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었다.

여성의 육체가 강인함이라는 기능으로 미디어에 비쳐지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SNS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들은 ‘여성 출연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이 없어서 좋았다’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웠다. 연출 자체는 강인하고 멋진 육체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촬영 역시 이를 집중적인 조명과 다이내믹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비췄다. 아마도 ‘성적 대상화가 없어서 좋았다’는 말은 전형적인 ‘메일 게이즈’가 아니라서 좋았다는 말 같았다.

시선의 권력과 대상화

‘메일 게이즈’는 영화 이론가 로라 멀비가 1973년 쓴 에세이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정신 분석 용어인 스코포필리아(인간이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데서 느끼는 미적이고 성적인 쾌감)를 들며, 할리우드 영화 대다수가 이성애자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쾌감 목적의 시선을 담아냄을 지적했다. 영화 뿐만 아니다. 예술 속 이런 시선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 BBC에서 1972년 방송된 존 버거의 TV 시리즈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는 2화는 서양 고전 미술 속 여성 누드화에 대해 설명하며 에피소드 전체를 이 이야기에 할애한다.

존 버거는 그림들 속 여성의 육체 각 부분이 그림을 보는 이성애자 남성의 눈에 잘 보이게끔 배치되어있음이 곧 그것을 보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려졌다는 점, 그리고 여성의 성적 욕망은 배제되어있다는 점을 짚는다. ‘메일 게이즈’는 여성의 특정한 모습, 예를 들면 성적으로 이용 당해도 반격할 수 없는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반복해왔다. 이는 착취나 다름 없다는 점에서 보는 사람의 불쾌감을 자아낸다. 대상이 되는 여성만 불쾌해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오랜 시간 반성 없이 재생산 돼왔기 때문에 이는 구시대적인 클리셰가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한다면 여기에서 벗어나야 함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본래 누군가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과정은 모두 대상화다. 우리는 그저 바라봄으로 본질을 알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조차 대상화를 거친다. 따라서 대상화 자체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우리 삶에서 몰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이렌 : 불의 섬]의 참가자들을 담는 카메라를 보며 ‘대상화 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상화 중 ‘메일 게이즈’가 미디어 속에서 반복해온 악습에 학을 뗀 이들일 것이다. 따라서 참가자들에게 찬사와 사랑을 보낼 때에 우리가 그들을 매력적이라든지, 영웅적이라든지, 어떠한 모습으로 대상화 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정도가 적당하다면,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이렌 : 불의 섬]이 시도한 대상화는 수천년을 반복된 ‘메일 게이즈’식 성적 대상화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 참가자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땀흘리며 장작을 패거나 물줄기를 막아서는 몸들을 비추며 슬로우 무빙을 걸기도 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을 터뜨리기도 했다. 불끄기에 집중하는 소방팀 참가자의 눈빛을 원샷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기지전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도 그렇지만, 그의 앞뒤에 맥락을 만드는 참가자들의 대화를 자르지 않고 넣은 것이 참가자들의 매력을 보여주는 대상화 렌즈를 통한 작업이고, 이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장작 패기나 수도관 터뜨리기처럼 육체 노동이 주가 되는 게임을 아레나전으로 선정했다는 것이 이런 모습을 멋지게 그려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메일 게이즈’에서는 보기 힘든, 전형적이지 않은 매력이기는 하다. 여성의 강인한 육체와 신체 활동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성애자보다는 여성애를 하는 여성의 눈에 더 분명히 보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대상화이지만, 사회가 끊임 없이 되풀이 해온 ‘메일 게이즈’의 대상화가 아니기에 신선하게 느껴진다.

케이팝, 혹은 몸의 정치학

몸은 케이팝에서도 중요한 주제다. 케이팝은 주로 무대에서 춤추고 동시에 노래해야 하는 댄스팝을 선보인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는 흔치 않고, 그래서 아이돌들은 데뷔하기까지 고된 트레이닝을 받는다. 그러나 케이팝은 또한 보여지는 요소가 너무나 중요한 취급을 받는 산업이기도 하다. 2023년 현재의 한국은 ‘탄탄하게 마른 몸’을 선호하는 듯 하다. (더 파고 들자면 미세한 조건들이 있겠지만 일일이 나열하자니… 그만 알아보자.)

대다수의 아이돌은 이런 몸을 갖기를 요구 받고, ‘이상적인 몸’에서 얼마나 가깝고 먼지로 평가 된다. 어떤 사람은 타고나길 이 '이상적인 몸'에서 가까울지 모르나 어떤 사람은 또 아니며, 이상적으로 보이는 몸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상적인 몸'이란 잣대는 현재 업계 전반을 지배하는 스탠다드가 되어, 때로 전자의 ‘무대를 잘 소화할 수 있는 육체’라는 조건을 넘어서버리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돼버리는 상황이다.

케이팝 여성 아이돌의 몸을 향한 비판은 대단히 복잡하다. ‘이상적인 몸’을 갖췄더라도 그를 둘러싼 부조리가 그들의 몸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르세라핌은 ‘가사로는 강한 여성을 표방하지만 결국에는 그 퍼포먼스를 마른 몸으로 선보이지 않느냐’라는 비판을 데뷔적부터 내토록 듣고 있다. 지난 달 컴백한 아이들은 ‘Queencard’의 브릿지에 ‘신체 긍정(Body Positivity)’를 연상 시키는 짧은 가사를 넣었으나 날씬한 케이팝 아이돌이 부르기에는 기만이라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인 어느 아이돌은 너무 말랐다는 이유로 여아들이 그를 선망해서 문제가 된다고 질타 받는다.

이중 여성화(double feminization)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아시아인 여성이 겪는 혐오를 교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아시아 인종이 서구 제국들의 식민주의로서 한 번 “여성화”를 겪기에, 아시아인 남성은 서구 남성에 비해 ‘남자다운 남자’로 인정 받지 못 하며, 아시아인 여성은 여성 중에서도 식민주의의 렌즈를 거친, 가냘프고 수동적인, 과하게 여성적인 존재로 취급 받는다는 것이다. 특정 직업군에 지리나 인종적 요소를 대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돌이라는 직업군은 “여성화”된 영역이라는 인상이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힙합처럼 마초 문화가 정통성과 연관이 있다 여겨진 장르에서는 남성 아이돌을 ‘게이 같다’며 욕해왔다. 여성 아이돌은 여타 연예 직군보다도 더욱 판에 박힌, ‘아무 것도 모르는 귀여운 소녀’이기를 기대 받았다. 역사적으로 아이돌 산업을 지탱해온 팬층이 나이 어린 여성들이었기에 이들을 향한 에이지즘과 여성멸시가 고스란히 아이돌이라는 직업군의 “여성화”로 향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중 여성화의 대상이 되는 여성 아이돌은 그들을 향하는 비판조차 서로 상충 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개인적으로는 케이팝 여성 아이돌 개인의 몸을 향하는 비판을 저어해온 편이다. 나 역시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한 섭식 장애 문제와 거시적인 바디 디스모피아(신체이형장애, 자기 몸이 잘못 생겼다고 믿는 병적 증상)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며, 미디어가 그에 미치는 영향이 클 거란 생각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신체 생김새를 비판할 때, 그 비판이 오로지 그 신체 앞에서 멈출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누구의 몸이 그 모양으로 존재함으로써 사회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책망할 때, 그 몸의 주인, 그 속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몸에 대한 비판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향한 비판은 대개 개인의 자아상과 가까울 수 밖에 없어서, 표현이나 작품에 대한 비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몸이 사회가 추구하라고 종용하는 ‘이상적인 몸’에 가깝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의 당위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여성 음악가가 새 음악을 들고 세상에 나왔을 때에 듣는 소리의 대다수가 몸에 대한 말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나 말했듯 케이팝은 보여지는 부분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나처럼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영원히 정답일 수는 없다는 생각도 한다.

아름다운 몸의 기준이 많아진다면?

[사이렌 : 불의 섬]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사회가 선호하는 여성의 몸이란 정형에 어쩌면 균열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등장한 댄서들의 몸이 아이돌 직군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해보였을 때도 이런 희망을 가졌었지만, [사이렌]은 그 다름의 폭이 더 크기에 조금 더 큰 기대를 해보게 된다. 물론 현재 [사이렌]의 팬덤이 대중 음악 전반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하지는 않고, 이들이 반드시 겹칠 거란 보장도 없지만, 여성 유명인에게 이런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변화의 단초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이렌 : 불의 섬] 참가자들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중심 문화의 직군들에서 편견이나 차별, 때로는 성추행 같은 범죄 시도와 싸운 사람들이다. 그 배경을 알기에 사람들이 그들의 전문성과 직업 정신에 더 열광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중 여성화 속 아이돌 직군은 이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타 직군보다도 더욱 마르고 여리여리할 것을 종용받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방향이 다를 뿐 당사자를 난처하게 하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들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찾고 싶다.

의외로 아이돌 산업의 팬들, 향유자들의 시선에 변화가 생긴다면 거기에서 돌파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최근 해외의 퀴어 팬덤에서 이런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 트와이스 중 몇몇 멤버의 직캠 속 근육질의 신체—이들의 세계 규모의 스태디움 투어를 견딜 수 있는—에 열광한다든지 말이다. 이 역시 대상화다. 그러나 기존의 아이돌에 바라던 가냘픔 보다는 좀 더 고강도의 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도 어떤 정형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정형의 가짓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다양성에 가까워질 것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몸의 종류가 많아지면, 케이팝 아이돌도 좀 더 숨쉴 틈이 있을 것이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가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 - 내가 쓰는 ‘헝거’]에 출연해 ‘여자 아이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관찰한 케이팝 산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2019년 방송 당시를 기준으로 4~5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여성 아이돌 당사자들이 음악이나 SNS 등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산업 자체도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 변화했다는 점을 짚었다. 애초에 꼬여있는 점이 많은 산업이기에 모든 요구가 곧이 곧대로 흡수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화계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변화가 빨랐다는 것은 2023년 지금 생각해도 분명해보인다. 지금으로서는 터무니 없어보이긴 하지만서도, 그래서 기대를 하게 된다. 좋은 거라면 뭐든지 빨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희한한 산업이, 우리가 아름답다 느끼는 몸의 형태를 조금 더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그로 인해 우리 미감이 좀 더 확장 되는 미래는 어떨까 하는 기대 말이다. 🎧 DJ 랜디 서 | rndy.s.music@gmail.com 

📻 성남시립교향악단 - 죽음의 무도, 생상스 (금난새 지휘, 2021)

[사이렌: 불의 섬]에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김연아의 테마곡'으로 더욱 유명한 곡인데요, 이번에는 랜디 님의 글과 함께 금난새의 지휘로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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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음악 산업 ©TMI.FM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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