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차우진 | "밤양갱"의 A.I. 커버 유행과 아티스트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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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가 만들고 비비가 부른 “밤양갱”이 이렇게까지 히트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수많은 분석과 설명이 있다. 왈츠 곡에 쌉싸름한 가사의 매력부터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라서 성공했다는 의견들이 있다. “나쁜 X”, “Weekend”처럼 거침없이 섹시하고 쎈 노래를 부르던 ‘어둠의 아이유’ 비비가 “밤양갱”처럼 단순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니 관심이 쏠린다는 얘기다. 

관심의 경제에서 주의를 끄는 방법

루미네이트는 매일 12만 개의 신곡이 업로드된다고 밝혔다. 2023년 5월 통계다. 한국에서는 매일 천 곡 이상으로 추정한다. 감각적으로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은 모든 영역이 초과 생산, 공급 과잉인 시대다. 

미국의 철학자 매슈 크로포드는 "주의력은 오직 인간이 가진 자원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의력’이란 개념을 경제학으로 확장한 것이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이고,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ics)’란 용어가 대중화된 것은 존 벡과 토마스 H. 데이븐포트가 쓴 [관심의 경제학](2006)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이야말로 관심의 경제가 지배하는 영역이 되었다. 

수많은 콘텐트 속에서 관심을 끌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밤양갱”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히트곡과 다르고, 비비의 이미지와 다르고, 장기하와 비비의 만남도 남달랐다. 차별화야 말로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이고,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 모델에 대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밤양갱”의 히트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바로 인공지능 음원의 유행이다.  

유튜브에서 “밤양갱”을 검색하면 자동 추천으로 박명수, 잔나비, 오혁, 이수현 버전이 뜬다. 이들은 모두 인공지능 딥보이스 기능으로 만든 커버 버전이다. 이밖에 안예은, 백예린, 성시경, 10센치, 장기하 버전이 있고, 아이유, 로제, 미연, 온유, 태연, 태양, 디오, 지드래곤, 이효리 버전도 있다. 양희은, 김광석, 송가인, 심지어 프레디 머큐리 버전까지 존재한다. 

인공지능 버전은 아니지만, 황정민 버전도 있다. 사실 이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유튜브 “밤양갱” 공식 뮤직비디오의 댓글 중 “황정민 버전 듣고 오리지널 들으러 왔습니다”란 댓글의 추천수도 매우 높다. 배우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 예고편의 대사를 짜깁기해서 만든 “밤양갱-황정민 버전”은 인공지능 커버 버전은 아니지만, 밈(meme)으로 유행 중이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이런 현상을 저작권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현상은 하이 테크놀로지와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UGC: User Generated Content)의 관계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더 많은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

유튜브가 대중화된 2005년 무렵, 유튜브에서는 ‘매쉬업(mash-up)’이란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비슷한 여러 음악을 편집해 하나로 만드는 콘텐츠다. 주로 뮤직비디오를 편집한 이 매쉬업은 당연히 저작권 침해 사례였다. 하지만 매쉬업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원곡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케이팝의 글로벌 히트가 가시화된 2018년 무렵에도 이런 매쉬업은 크게 유행했다. 이게 가능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유튜브가 주로 뮤직비디오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채널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 동영상 편집 툴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커버 버전의 유행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2023년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텍스트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스타트업과 개인이 제작한 인공지능 툴을 써서 “밤양갱”의 인공지능 커버 곡을 만든다. 중요한 건 이들의 심리다. 

그들은 저작권을 침해하려는 악의를 가진 게 아니다. 단지 재미있어서, 혹은 듣고 싶어서 만든다. 마침 방법도 쉽다. 결과물도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 “밤양갱”의 황정민, 박명수 버전은 재밌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혁오나 양희은 버전은 가수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로제와 태양, 지드래곤 버전은 그 가수의 목소리로 “밤양갱”을 듣고 싶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그러나 비슷한 방향으로 인공지능 커버곡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음악을, 더 다양한 음악을 원한다. 하루에 12만 곡 이상의 노래가 쏟아져나오는 시절인데도 말이다. 

핵심은 ‘참여’에 있다. 인터넷 환경에서 콘텐츠 소비자는 레거시 미디어 시절처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기사를 공유하고 댓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참여’, 다시 말해 ‘재생산’에 기여하게 된다. 얼마 전만 해도 히트곡과 유튜브 커버곡의 양은 비례했다. 이 욕망은 원초적인 것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심지어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참여하고 재생산하면서 유행을 확산시켰다. 

관계가 자원이다

이러한 특이점의 시대에 실제 아티스트는 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다시 말해 어떻게 관심을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생산 과잉 시대에는 노출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중요해진다. 기존의 노출(마케팅) 방식을 고수하려면 기하급수적인 비용이 들고, 거기에 비해 노출의 지속성은 짧아지기 때문이다.

음악의 커뮤니티는 팬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현재 음악 산업에서 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팬덤 전략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 구조가 복잡해진다는 데 있다. 음악의 팬 전략, 특히 케이팝의 팬 전략은 팬 클럽(커뮤니티)을 모집하고, 그들을 플랫폼에 락인시키며 지속가능한 소비자 그룹으로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지원하고 확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이 된다. 하이브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팬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워너뮤직그룹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한다.

초과 생산의 시대에는 마케팅보다 커뮤니티가 중요해진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음악의 팬덤'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팬, 우리에게 필요한 팬 등, 기존 팬의 (재)정의 뿐 아니라 앞으로 기대하는 팬을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아티스트의 팬일 수도 있고, 음악 장르의 팬일 수도 있고, 혹은 메시지의 팬일 수도 있다. 문제를 정의하고, 재발견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요구된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의 NFT

루미네이트가 발표한 '매일 12만 곡의 음악이 업로드된다'는 사실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기여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인간 아티스트가 생산할 수 있는 총량을 압도하는 수치다. 앞으로 이 수치는 더 압도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24시간이 아니라 분 단위, 초 단위로 무한에 가까운 음악이 생성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아티스트는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들과 경쟁해야 한다. 여기에는 슈퍼 스타가 만든 음악, 프로페셔널이 만든 음악, 아마추어가 만든 음악, 콘텐츠에 사용되는 저작권 프리의 배경음악도 포함된다. 무한 경쟁의 시대다. 

따라서 음악 생산자의 미션은 유명해지는 것, 히트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수라도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면서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된다. '의미있는 관계'란 팬 참여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통적으로 인디펜던트의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메인스트림의 아티스트들도 인디펜던트의 방식을 참고하거나 차용할 가능성도 높다. '관계'는 더 중요한 자산이자 전략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때 유행으로 여겨지는 NFT가 새삼 중요해질 수 있다. 이때의 NFT는 디지털 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신분증, 다시 말해 커뮤니티 멤버십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역할이 될 수 있다. NFT는 현재로선 전세계의 팬들, 언어도 다르고 문화와 욕구가 다른 팬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소속감을 부여하는 거의 유일한 기술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좀 더 과격하게 생각하자면, 인공지능 시대에 NFT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바이럴 현상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음악에 포커싱되거나, 아티스트 친화적인 모델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 당장 생산자들에게 필요한 고민은 신기술을 바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 팬을 발견하고, 그들과 어떻게 신뢰를 쌓으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다. 라포(rapport)가 소셜 미디어 시대에 유행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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