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AI와 싸워야 할까요?

지난 5월 30일, 부산 송도의 '윈덤그랜드 부산'에서 열린 [MWM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을 맡았습니다. 제가 발표한 주제는 'AI가 음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었고 부제는 '우리는 AI와 싸워야 할까요?'였습니다. [MWM 컨퍼런스]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KMCA)가 주최한 행사로, 주요 케이팝 기업들 뿐 아니라 유통사, 직배사, 플랫폼 사업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제 발표의 핵심은 사실 이 한 마디였습니다.

"AI는 음악 산업을 재정의하는 전환점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다면 가장 당연하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자리에 초대해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조 연설 내용을 공유합니다.

음악 산업의 역사는 사실상 기술과 미디어 혁신의 역사였습니다. 알다시피 음악 산업은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악보의 형태로 음악이 상품화되었고, 그 상품이 거래되면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음악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음악 산업은 음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의 결과기도 했습니다. 서부 시대의 자동 연주 피아노, 산업혁명 이후의 전기, 레코딩 기술, 셀릭으로 제작된 SP(Standard Play), 폴리염화비닐로 제작된 LP(Long Play), 자기테이프로 제작된 카세트 테이프, 디지털 저장매체인 CD(Compact Disc), 물리적 음반에서 음악 소스를 파일 형태로 분리한 MP3 포맷과 다운로드 기술, 그리고 저장 매체의 한계를 극복한 스트리밍... 이렇게 음악을 전달하는 매체와 포맷의 변화가 음악 산업, 다시 말해 음악의 생산과 유통, 소비 행태를 변화시키고 음악 산업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대략 10년 주기로 일어났습니다. 2020년대는 스트리밍의 다음 단계가 등장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AI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AI는 무엇보다 압도적인 발전 속도 때문에 중요합니다. 디지털 전환 이후, 사회 문화적인 혁신을 야기한 기술이 1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봅시다. 구글 번역기는 72개월이 걸렸습니다. 우버는 70개월, 텔레그램은 61개월이 걸렸습니다. 스포티파이는 55개월, 핀터레스트는 41개월, 인스타그램은 30개월이 걸렸습니다. 최소 3년에서 6년 동안 이 서비스들이 1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 정도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산업적 조정을 이룰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틱톡이 1억명의 사용자를 모으기까지는 9개월이 걸렸고, 챗GPT는 겨우 2개월 걸렸습니다. 기술의 파급력에 비해 논의할 시간 자체가 부족합니다. 우리가 AI 때문에 혼란스러운 건 당연합니다. 혁신과 논의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새로운 기술이 1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으는 시간은 더 짧아질 것입니다. 기술 발전에 의한 혼란은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AI는 생산 과정을 바꾸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립된 산업 구조를 해킹하고 있습니다. 음악 제작을 비롯해 유통과 소비의 변화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 단계에서 AI는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라이브 경험에도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와 AI 기술은 관객의 반응을 토대로 실시간으로 음악을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AI를 거부하거나, 보조적으로 사용하거나, 주도적으로 사용하거나, 완전히 AI에 음악 제작을 맡기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는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하거나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단계에 있지만, 앞으로는 AI가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거나, 완전히 AI가 생산하는 음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 창작자의 역할도 바뀔 수 있습니다. 먼저 인간 창작자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대신 AI에게 음악 생산을 맡기고 전략적 방향성이나 사업 모델을 책임지는 '전략가'의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혹은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콘텐츠 생산에서 좋은 것, 의미 있는 것, 혹은 실용적인 것을 선별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AI 기술의 노하우를 고도화, 개인화, 특화시킨 'AI 창작자'로 자리잡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창작자, 아티스트의 정의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시에 AI와 같은 파괴적인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 음악 산업의 이해관계를 재조정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파트너였던 관계가 대립 관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 기술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자들에는 프로듀서와 작곡가가 있습니다. 이미 DAW로 창작하는 음악가들에게 AI는 더 효율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들에게도 AI는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부터 MP3까지, 기술 발전은 언제나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들의 생산성을 더 효율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했습니다. 다만 산업 구조 전체를 흔들면서 수익성은 나빠졌지만, 생산성을 비롯한 여러 프로세스의 진입 장벽은 더 낮아졌습니다. 

AI가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영역은 세션 아티스트와 엔지니어 그룹입니다. 기술과 감각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쌓아온 이 그룹은 바로 그 이유로 AI가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그룹입니다. 

레이블, 퍼블리셔, 서비스 업체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사실 여러 이해 관계의 공존을 통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그룹들이기 때문에, 아직은 AI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조만간 이런 구도는 다시 조정될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AI가 음악 산업에 개입하면서 크게 3개의 시나리오를 잡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대략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 기간 동안 AI 기술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논의되면서 타협점을 찾아갈 것이고, AI 기술도 양자컴퓨터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고도화되어 다음 단계로 진화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겁니다. 이해관계자들의 협의 뿐 아니라 정책과 제도도 빠르게 대응하겠지만,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변화가 지연되면서 기존 구조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거센 저항과 규제가 강화되면서 AI 기술의 도입 자체가 느려집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정부와 제도가 매우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점진적 변화입니다. AI로 인한 산업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위해 애써야 합니다. 저작권 이슈를 비롯해 AI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 음악적 가치를 지키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관련해서 새로운 사업 모델과 파생 산업이 등장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혼란을 겪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혼란과 갈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산업과 생태계를 위한 제안을 드립니다.

창작자는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새로운 장르나 스타일, 혹은 창작의 다음 영역을 탐구해야 합니다. 

기업들은 AI 환경에서 좀 더 투명한 사용 정책을 수립하고, 보상 체계를 새로 정립해야 합니다. 또한 메타데이터를 표준화하면서 미래 가치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정책 입안자, 국회와 정부는 AI 같은 혁신적인 기술 환경에서 권리 관계자의 이익을 지키면서도 혁신적인 기술 발전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위해선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야 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교육 방향도 정립되어야 합니다. 기술, 정책, 산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어느 한 쪽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선, 무엇보다 팬과 청중의 참여를 위한 구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기술 발전은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동시에, 청중과 팬의 지위도 변화시킵니다. 기술로 인해 팬 참여는 더 쉬워질 것이고, 그 결과로 소비자, 청중, 팬 등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청중과 새로운 팬이 탄생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들은 어쩌면 기존 산업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기존 산업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음악 산업을 재정의하는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과거에 여러 기술들이 음악 산업의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AI는 결국 음악 산업의 확장과 생태계의 다양성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런 결과를 만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은 산업 뿐 아니라 창작의 개념까지 재정의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의 가치보다는 본질을 더 많이 얘기해야 합니다. 

이때 본질은,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본질이 아닐 겁니다. 2020년대는 본질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겁니다. 

그래서 좋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AI로 인한 변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과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관점의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공유합니다. 

이 발표 자료는 AI로 만들었습니다. (feat. Genspark) 물론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AI에 대한 발표 자료를 AI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꽤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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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리포터 에이미와 아이작의 [엔터문화연구소 브리핑] 듣기
차우진의 엔터문화연구소 ©TMI.FM |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