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넴의 bukku bukku(1) | “Hej! 뤠붸붸붸뷉!”

매주 수요일은 덕질 경험기부터 음악/영화/웹툰 리뷰에 이르기까지, 저의 동료들이 쓰는 아티클이 실립니다. 오늘은 '희미넴의 북구북구', 동아일보 임희윤 기자의 수줍은 북유럽 음악 가이드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됩니다.

“Hej! Fortsättning följer!”

“Hej!”

짧고 쿨한 인삿말이 반긴다. ‘TOFTAN’ ‘BJÖRKSTA’…. 이국적 표지판으로 가득한 공간. 카트 끌고 지난다. 장난꾸러기 아이일랑 스몰란드에 맡겨둔다. 연어 필레나 베지볼을 먹자. 우리는 이제 스톡홀름, 웁살라, 예테보리행 티켓을 끊지 않아도 좋다. 매일 그곳에 갈 수 있으니까. 머나먼 동화의 나라 스웨덴이 아닌, 여기는 경기도 고양시다.

2014년 가구 브랜드 ‘IKEA’의 한국 상륙. 먼 나라 스웨덴을 지척으로 움직였다. 나니아 연대기의 벽장 바깥 우거진 숲처럼 경기도 광명이나 고양 등지에 '북구'가 진을 쳤다.

오로라 뜨는 신비한 땅이라며 동경하던 스칸디나비아가 이제 백의민족 타임라인에도 빼곡하다. 라부르켓으로 샤워하고 바이레도를 뿌린 뒤 H&M을 입고 볼보에 오른다. 스포티파이로 맥스 마틴이 프로듀스한 "Take My Breath"(The Weeknd)를 들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스토케 유모차를 내린다. 이런 일들이 하루키식 허세도 아니다. 북구의 상품과 문화가 이 땅에도 침엽수림처럼 울창하다. 마리 메코 앞치마를 두르고 솔버그 & 한센 원두로 내린 아포가토에 오틀리를 살짝 부어 이딸라 디저트 볼에 담는 희미넴을 이제 와 새삼 엘프 코스프레나 하는 자로 매도할 사람이 있을까? (계시다면 하해와 같은 DM을….)

#1. “뤠붸붸붸뷉, 뤠붸붸뷉”

희미넴은 2017년 여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위성도시 솔나(Solna)에 갔다. 외곽 도로와 침엽수립에 싸인 호젓한 3층짜리 사무용 주택. 이곳에 레드벨벳의 작곡가들이 있다.

"빨간 맛"을 만든 프로듀서 듀오 ‘시저 & 루이’. 코인노래방만큼 작은 그들의 작업실에서는 금발의 사내가 저 유명한 "빨간 맛"의 인트로, 즉 정체불명의 옹알이를 자기 입으로 낸다.

“뤠붸붸붸뷉, 뤠붸붸뷉. 캬캬캬. 여기, 이 건물 지하에 사내 키친이 있어.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는데 배고파서 시리얼 말아먹다가 장난처럼 흥얼거려 본 소리야. 느낌이 좋더라고. 아이폰에 바로 녹음했지. 그때 그 소리가 이역만리 한국에서 그렇게 울려 퍼질 줄 알았겠느냐고.”

이곳, 작곡가 회사 ‘더 케널(The Kennel)’의 1.5층에서 만난 시저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2. 스웨덴은 세계 3위의 음악 수출 대국이다. 1위 미국, 2위 영국이 팝스타를 수출하는 대신 스웨덴은 음악을 수출한다. 스웨덴 음악 산업의 진정한 역군은 작곡가다. 맥스 마틴, 베니 블랑코, 쉘벡, 오스카 홀터…. 이름만으론 정확한 국적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대서양 북동쪽의 먼 나라 출신인 것만은 확실하다.

“가난하던 10대 시절에 맥스(맥스 마틴)랑 스톡홀름 시내 음반점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했는데, 이제는 연락도 안돼. 그때 더 친해 놓을 걸….”

헬렌 매클로플린, 더 케널의 A&R 총괄(+전 워너뮤직 스웨덴의 CEO)의 만시지탄이다.

이 바닥에서 스웨덴만 튀는 건 아니다. 인근의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역시 만만찮다. 케이팝 분야로 초점을 옮기면 더 그렇다. 1998년 S.E.S. 2집 타이틀 곡 "Dreams Come True"가 핀란드에서 날아온 지 어언 사반세기. 상당수의 케이팝은 수많은 북유럽 작곡가들 손에서 만들어진다. 노르웨이 트론헤임의 작곡가 그룹(디사인 뮤직)이 소녀시대의 노래를 만든다는 소식에 놀라던 것도 이젠 10년도 지난 옛날 얘기다.

#3. 가구, 향수, 의류, 자동차, 유모차, 식기류….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왜 북유럽에서 노래까지 사오는 걸까. 북유럽인들은 어쩌다가 멀고 먼 한국에까지 음악을 팔고 있는 건가. 비틀스도, 마이클 잭슨도 없는 북유럽의 팝 세계는 왜 이다지도 깊고 투명한 창작의 우물을 갖게 된 걸까.  

아바, 아하, 뷔욕, 시규어 로스, 에이스 오브 베이스, 록시트, 아쿠아…. 북유럽 출신으로 세계를 강타한 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그 중 제일 크게 빛나는 별은 역시 아바다.

몇 년 전, 마리 안데르손의 집에 초대받은 적 있다. 음악계의 노벨상이란 별칭을 갖고 스웨덴 국왕이 시상하는 ‘폴라 뮤직 프라이즈’의 뒤풀이 파티였다. 마리는 스티그 안데르손(1997년 별세)의 외동딸. 스티그는 아바의 매니저 겸 작사가였다. 마리의 집은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저택과도 같았다. 나선계단이 휘감은 높은 천장이 인상적인 그 저택의 실내는 근사한 샹들리에로, 또 스웨덴 음악계의 별들로 온통 반짝이고 있었다.

#4. “아, 드디어 내가 올라 할아버지를 만나다니…. 희윤과 한국에 감사해요!”

몇 년 전 스톡홀름 시내의 한 고풍스러운 건물 입구. 현관 손잡이를 돌리는 소피아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처음엔 스웨덴 음악 수출 기구의 직원인 소피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앙네타(A), 비에른(B), 베니(B), 안니프리드(A)도 아닌데…. 대체 올라가 뭐기에 저렇게 벅차오르지….?’

올라 호칸손. 음반사 ‘텐 뮤직 그룹’의 창립자인 올라 할아버지는 스웨덴 음악계의 전설이다. 아바의 "Waterloo"보다 무려 5년 앞선 1969년, "Let's Dance"로 스웨덴 그룹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이름을 올린(92위) ‘올라 앤드 더 쟁글러스’의 리더. 그가 세운 텐 뮤직 그룹은 자라 라슨(새라 라르손), 아이코너 팝, 벤저민 인그로소를 키웠다. 올라 할아버지의 전 회사인 ‘스톡홀름 레코드’는 ‘Lovefool’로 유명한 카디건스(The Cardigans)의 요람이기도 했다.

#5. 연재 첫 회부터 주저리주저리 떡밥만 던지다 끝난다. 하지만 첫 회가 그런 거 아니겠나. ‘미드’로 치면 파일럿 에피소드랄까... 일단 던졌으니 낚을 일만 남았다. 2화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련다. 아바와 올라 호칸손의 보유국, 조명과 가구, 생활용품의 명가, 그리고 K-컬처의 서포터.

오늘은 오딘의 날(Wednesday), 내일은 토르의 날(Thursday)이다. 전장에서 죽으면 발키리의 인도로 발할라에 간다 믿었던 바이킹의 땅. 유럽에서 기독교가 가장 늦게 전래됐으며 그 때문에 오랜 이교도(Pagan) 문화에 대한 향수 역시 짙은 곳. 죽으면 투오넬라로 간다고 믿는, 독자적인 신화인 '칼레발라'를 보유한 핀란드. 그리고 전 세계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기어코 고래 사냥의 전통을 지키려는 페로제도 사람들…. 요르문간드(북구 신화 속 거대 뱀)처럼 그들 자신을 휘감아 한반도에까지 흘러온, 저쪽 북구 문화의 힘과 힘줄에 대한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Hej! Fortsättning följer(개봉박두)!”

※ 수요일 코너 안내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4명의 필자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월 1회 연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주기나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답니다~;;;)

1) 핑크블러드의 덕질 에세이: 요즘 덕질은 '포카'가 핵심인데요, 이걸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할런지보다, 이 판에 막 빠져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엄청 궁금했어요. ㅋㅋ 

2) 랜디 서의 사적인 리뷰: '시사인'과 '위버스 매거진', '아이돌로지'에 글을 쓰고, 저와는 '360리뷰'를 진행한 랜디 서 평론가가 주목하는 싱글/앨범에 대한 리뷰입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계기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3) 희미넴의 bukku bukku: 동아일보 문화부의 임희윤 기자가 쓰는 북유럽 음악에 대한 칼럼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은 북유럽의 메탈이나 재즈, 팝을 가지고 장르부터 앨범 아트웍에 이르는 광범위한 얘기를 합니다. 어디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내용이 아닐까(ㅋㅋ) 싶네요. 

4) 강남규의 영화 이야기: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님이 쓰는 영화/드라마/웹툰 리뷰입니다. 특히 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고 졸랐습니다. ㅎㅎ 크리에이터든 비즈니스든 혹은 콘텐츠든 뭐가 됐든 결국 함께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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