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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BUSBAGMAN'S STRIDE | Oct. 2026

똑똑한 무능함도 가능할까? 15년 차 직장인의 다음 선택, 기록하는 방법, AI를 잘 쓰는 습관

2026.11.05 | 조회 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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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

 

  • Intro - 수신료의 가치, 애월 '홀츠'와 공작새
  • #1. 똑똑한 무능함이 가능할까?
  • #2. 있잖아, 나는 최대한의 내가 될 거야
  • #3. 기록하는 방법들에 대하여
  • #4. AI를 잘 사용하기 위한 습관 4가지
  • Outro - 모든 것에 현미경을 들이대지 말고 산책을 가자

 


 

1997년 5월 10일, 이소라의 프로포즈 방송에 출연한 노영심 님의 '그리움만 쌓이네'

 

유튜브 영상으로 시작합니다. 변진섭의 베스트 앨범을 턴테이블로 듣고 있으면 아내는 제게 “KBS 열린음악회가 시작된 거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늙크크'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는 05학번인 저는 성시경 님이 진행하는 ‘고막남친’ 영상을 유튜브에서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요. 이런 감상을 10월 18일,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성시경의 ‘고막남친’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때가 있다. KBS의 음악 프로그램은 노영심, 이문세, 이소라, 윤도현, 이하나, 유희열이란 MC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더 시즌즈’는 박재범, 최정훈, 악뮤, 이효리, 지코, 이영지, 박보검, 10CM를 거쳐 성시경에 이르렀는데, 성시경이 사회자가 된 이후 섭외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이다. 이번 게스트들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듣던 음악들을 다시 듣고 있다. 수신료의 가치를 음악이 주는 아련함에서 느낄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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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숲속 오두막, 제주 홀츠 ©REDBUSBAGMAN
비오는 날의 숲속 오두막, 제주 홀츠 ©REDBUSBAGMAN

 

구독자님, 조금 늦었습니다. 11월의 첫 번째 목요일입니다. 2026년의 가을은 잘 맞이하셨나요? 저는 아이와 함께 제주에 다녀왔는데 태풍이 왔습니다. 제주도에 비바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며 날씨가 사람에게 주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어요. 화창한 제주를 다시 만나고, 언젠가는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캘리포니아나 시드니에도 가는 날이 오겠지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도 소개해드립니다. 애월의 '홀츠'라는 베이커리 카페인데 달지 않은 빵이나 사워도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비 오는 날의 숲속 오두막 같은 곳이었습니다.

 

10월의 호암미술관 ©REDBUSBAGMAN
10월의 호암미술관 ©REDBUSBAGMAN

 

가을에는 잎이 물들고 떨어집니다. 피어나고 물들고 진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지기 위한 과정일까요? 아니면 다시 피기 위한 과정일까요? 단풍을 아직 못 보셨다면,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사진 속 호암미술관을 찾아가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12개월이 된 아기를 데리고 다녀왔는데, 미술관 1층엔 수유실도 잘 갖춰져 있었고요.

 

호수 너머의 단풍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공작 가족을 마주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미술관엔 이우환 화백의 작품도 있고, 호수를 거닐며 단풍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바람이 센 편이니 옷은 따뜻하게 입고, 따뜻한 커피도 준비해 가시면 좋습니다.

 


 

#1. 똑똑한 무능함도 가능할까?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9번째 시즌 ©REDBUSBAGMAN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9번째 시즌 ©REDBUSBAGMAN

 

배우지 않은 똑똑함이나, 똑똑한 무능함이 가능해진 세상입니다.
딸깍 하면 무엇이든 만들어집니다. 내가 모르는 것에도 쉽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모두 필요한가요? 쓸모가 있을까요?

글쎄요. 딸깍에는 소중함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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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9번째 시즌을 시작하며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AI 도구를 활용하지 않고, 멤버들의 독후감을 읽기 전에 발제문을 직접 쓰기로 했습니다. 이따금 AI 도구를 쓴 이유는 멤버들이 몰입할 수 있는 더 나은 발제문을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발제문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멈칫, 어색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번역투가 남아 있거나, 기계적 표현과 상투적 비유들이 그러했습니다. 제가 쓴 글에도 부족함이 있지만 곱게 갈리지 않은 현미의 껍질 같은 적당한 거침이 남아 있어서 레드버스백맨 다움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갈려나가 GMO 양품 같아졌습니다.

 

도구를 사용한 결과물엔 언제나 오탈자나 비문이 없습니다. 심각한 흠이 없지요. 읽고 나면 머리에 띵한 게 별로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아주 고운 가루엔 영양가가 별로 없었습니다. 독후감을 읽으면 멤버들의 생각을 토대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꼽을 수 있어 발제에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이 책에 담긴 문제의식을 한 사람의 생각으로 온전히 해석해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지만 앞으로는 가장 중요한 글은 직접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이건 외주를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어떤 질문이든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으니, 우리는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지적인 삶을 산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짧은 지식에 만족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생각을 길게 하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첫 모임에서 읽은 책은 홍진기 교수님이 쓴 『사고외주』입니다.

 

사고를 외주한다? 사고는 생각이고, 생각에는 의문과 답변의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고를 외주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다른 대상에게 맡기는 것이고, 이 과정이 꽤 잘 작동하는 요즘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는 서늘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AI를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한 고객센터에 피클을 통해 전화를 걸어 운전하는 동안 서비스 해지를 마쳤습니다. 고객센터가 AI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고객센터에 AI 에이전트 비서를 활용해 원하는 과업을 달성한 거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 걸까요? 나의 사고가 필요 없는 절차와 과정, 번거로움에는 AI를 인프라로 활용하고 내가 더 사유하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쏟는 것. 2026년 가을에 읽기 좋은 책입니다. 구독자님도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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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것인지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경쟁적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안 쓴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 않습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인공지능을 장착해서 정말 결정적인 일을 할 수 있다면 정작 그걸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왜 AI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강의와 커뮤니티로 판매하면서 돈을 버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목적에 맞게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은 비교적 소수입니다.

AI는 세탁기와 비슷합니다.
세탁기가 많아졌다고 빨래가 줄었을까요?
세탁기가 만들어진 이후 사람들은 더 자주 빨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건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많은 일이 줄지 않았고, 대신 사람들은 더 뽀송뽀송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랫폼 기업에서는 나의 일을 AI로 대체하는 작업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AI에게 맡긴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빨래를 돌릴 때에는 여러 코스가 있습니다.
울 소재에 마땅한 세제도 있습니다. 도구를 쓸 때에는 목적에 맞게 써야 합니다.

여전히 손빨래를 하거나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는 옷들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주로 소중한 옷들이 여기에 해당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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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있잖아, 나는 최대한의 내가 될 거야

 

어떤 아이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놀랍도록 탁월한 문장을 쓴다.
그가 제출한 원고지에서는 휘황찬란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재능의 광채다.

그런 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웬만하면 재능이라는 말을 빼고 피드백을 적는다.
그저 너의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쓴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이슬아 작가

 

지난달 뉴스레터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마음을 드러내며,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한 달은 어땠을까요? 뉴스레터에 담은 마음은 무심하게도 아직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DM이나 메일로 온 연락은 없었어요. 새로운 제안을 기다리면서 "그럼 그렇지"라고 체념하는 대신 사부작사부작 하나씩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더 나답다고 생각했어요.

 

연차가 많이 쌓였습니다.  앞으로도 더 일을 해야 하지만 만 15년을 일하고 나니 제 의지와 달리 무거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보다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제 기대보다 더 폭이 좁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던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 후회의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합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팀이 어려울 때 떠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후회의 감정이라니요.

한 번은 현업에서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인사팀에서 재입사라는 이유로 거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나는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을까? 그 모든 선택이 최대한의 나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떠오르는 몇 가지 구상을 적어볼까요?

 

  1. 갭이어를 갖는다
    1. 육아를 하며 아이와 한 번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2. 갭이어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재미있는 작업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해본다.
      1. 소설 쓰기
      2. 에세이 쓰기
      3. 인문학 기반의 디자인 강의
      4. 육아하는 초보 아빠들과 놀기
      5. 새로운 퍼스널 브랜드로 새로운 작업 해보기
      6. AI 도구를 적정기술로 사용하는 방법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2.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을 1과 병행하여 계속 찾는다
    1. UX 리서처
    2. Space UX 디자이너
    3. 공공 서비스 UX 개선 자문
    4. PM이나 기획자
    5. 디자인 조직의 리더
  3.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을 1, 2와 병행하여 만든다
    1.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 주 2~3일제
    2.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기 - 프리랜서로 인하우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어떤 날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때에는 침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나의 과거 선택을 돌아볼 때도 있었고요. 그때 내가 너무 호기로웠던 것일까? 그때의 결정을 지금의 나라면 동일하게 할 수 있을까? 다 사라지는 고민들이지만 이런 복기들이 모여 저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될 거라 믿습니다.

 

스트레스는 이러나저러나 공기처럼 존재하기 마련이니, 귀여운 저희 첫 번째 딸 자랑이나 하며 또 산책을 나가야겠습니다. 산책과 절제는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너무 깊이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이 다섯 가지 있다.

1. 타인의 행복
2. 과거의 실패
3. 끝난 연인
4. 미움받았던 기억
5. 아직 오지 않은 불안

마와 아키히로

 

 


 

#3. 기록하는 방법들에 대하여

 

생각은 한 번만 하면 비눗방울처럼 ‘팡’ 터지고 사라져요. 그런데 메모를 하면, 생각이 몸에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계속 쓰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피어오르고, 굳어 있던 마음이 ‘그럴 수도 있겠다’며 바뀌기도 하죠. 저는 메모가 그렇게 저를 바꿨다고 생각해요.

김지원 작가

 

기록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나름 즐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는 '앞으로 어떻게 일할 것인가?', '왜 일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메모의 빈도가 줄기는 했어요. 11월엔 더 기록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며 기록하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저장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트위터 등 여러 플랫폼에서 유용하거나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저장하곤 하지요? 그런데 그걸 다시 꺼내 보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보고 해석해서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 유용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새롭게 나타납니다. 끊임없이, 그리고 더 빨리 흘러갈 거예요.

 

그래서 지금, 봤을 때 제대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해야 합니다. 아이폰 메모든, 사용감 가득한 몰스킨 다이어리든 뭐든. 기록은 내 생각을 적는 것입니다. 핀해 두는 게 아닙니다.

 

둘째, 따라 적는 것과 생각을 적는 것은 다릅니다.

 

해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게 엄청 유용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 어디에 적용할 것인지를 함께 적어야 합니다. 이거 좋아 보이는데? 왜 좋아 보이는지, 어떤 점이 나의 흥미를 유발한 것인지 기록하면 흘러다니는 정보가 나의 취향이 깃든 메모가 됩니다. 그래야 다시 꺼냈을 때 그 정보에 얽힌 감각이 깨어납니다.

 

만약 본 것을 그대로 옮겨 두기만 하면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보더라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대충 끄적끄적 키워드만 적어도 괜찮습니다. 생각하고 그 생각에 담긴 키워드까지 적는 것이 핵심입니다.

 

셋째, 메모한 것을 공유합니다.

 

모든 메모를 공유할 수는 없지요. 나만의 고유한 비밀 데이터는 꽁꽁 숨겨야 합니다. 그 이외의 나머지는 웬만하면 공유해도 괜찮겠지요?

 

공유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 내 생각에 균열이 생기고 깊어집니다. 근육이 커질 때 기존 근육이 미세하게 손상되고 회복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공유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AI가 다 해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사고하는 힘과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결에서 오는 유대감입니다.

 

메모한 것을 공유하는 게 처음엔 참 어렵습니다. 남에게 평가받는 것 같고, 내 생각으로 인해 나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것 같고. 그 허들을 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은 내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공유해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망설여진다면 퍼스널 브랜드나 필명으로 생각을 나눠 보세요.

 

 


 

#4. AI를 잘 사용하기 위한 습관 4가지

 

피클을 통해 전화를 걸어 원하는 과업을 완료했다  ©REDBUSBAGMAN
피클을 통해 전화를 걸어 원하는 과업을 완료했다  ©REDBUSBAGMAN

 

AI는 인공지능을 뜻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이야기할 때는 하나의 도구를 가리킵니다. 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나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이런 도구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메타 뮤즈, 한국 분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만든 피클과 같은 개인 AI 에이전트들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대단한 연구 문제를 풀거나 논문을 찾아 과학적 근거를 내놓는 것보다 나를 대신해서 일정을 예약하고, 일정 충돌이 있을 때 알림을 주며, 기차표를 대신 예매해주는 서비스가 생활에 더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피클을 잘 쓰고 있고요. 오늘은 피클을 통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해지에 필요한 업무를 마쳤습니다. 피클은 “이승준 님의 AI 비서”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통화했는데, 나중에 상담사분과 직접 통화하며 듣기로는 아주 자연스러웠고 말귀도 잘 알아들었다고 하셨어요.

 

다만 동명이인이 있고 개인정보 확인이 필요해 본인과의 통화가 불가피했다고 합니다. 대신 전화를 걸어 필요한 업무를 처리해 주는 채팅 기반의 비서. 건강하게 AI 도구를 쓴다는 건 무엇을 말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러팔삼 님의 트윗을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하나. 피드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제가 작성한 답변을 검토하고, 잘못된 부분이나 놓친 점을 알려주세요. 정답을 바로 제시하기보다 제가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해 주세요.

 

오답이라도 내가 먼저 제안하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문제를 풀어 보고 모범답안을 보는 방식입니다. 여기엔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드는데, 이 과정을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있으니 ‘생산적 실패’입니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발달합니다. 내가 나의 몸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움닫기를 통해 더 멀리, 여러 번 날아갈 수 있습니다.

 

  •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학습 활동이 장기적인 기억 유지와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정답이나 해설을 듣고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는 실제 역량까지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자신의 현재 능력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과제에 집중하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부족한 부분을 반복해서 개선하는 연습입니다.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많이 푸는 것과는 다릅니다.
  • 인지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 작업기억의 한계를 고려해 학습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불필요한 인지적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 선택지를 요구하기

 

하나의 답만 추천하지 말고, 가능한 대안 3가지를 제시해 주세요. 각 대안의 장단점과 적합한 상황을 비교하여 제가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소중한 건 원 앤 온리이지만, LLM 도구를 사용할 때에는 여러 옵션을 요구해야 합니다. 나의 입맛에 맞는 답변만 내놓는 확증편향은 내 귀에 달콤한 캔디이죠. 문제는 이런 아첨형 답변이 사고를 방해한다는 겁니다. 무엇이 옳은지, 더 나은 선택인지 판단할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다 비효율적으로 느껴지지만 똑똑한 무능함, 배우지 않은 똑똑함을 자랑하게 됩니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무섭다는 말처럼, 조금 아는 것을 전부 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셋. 소크라테스식으로 문답하기

 

내게 배우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낳았다.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정답을 바로 알려주지 말고, 질문을 통해 제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한 번에 하나씩 질문하고, 제 답변에 따라 추가 질문이나 힌트를 제공해 주세요.

 

바로 답을 구하는 대신 질문을 통해 나의 가정과 추론을 검토하는 겁니다. AI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면서 조금씩 생각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지요. 이럴 때 AI 도구는 정답을 알려주는 선생님보다 페이스메이커에 가깝습니다.

 

넷. AI가 스며든 시대에 지키려는 것들을 정하기

 

  1. 트렌드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따라하지 않기
  2. 물성이 있는 일을 가까이 두기
  3.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기

 

당근에서 AI상담을 거쳐 상담사 연결을 시도했으나 걸리는 시간은 80분이었다 ©REDBUSBAGMAN
당근에서 AI상담을 거쳐 상담사 연결을 시도했으나 걸리는 시간은 80분이었다 ©REDBUSBAGMAN

 

AI 도구가 보편화되면서 생긴 부작용은 무엇일까요?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앱들이 마켓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재미 삼아 만들고 방치한 앱들이 꾸준히 관리되는 서비스들과 뒤섞여 있습니다. SNS에서는 스타벅스 통창 너머로 북한의 자주포가 보이는 이미지가 100만 뷰를 기록합니다. 누군가 오랫동안 고민해 만든 창작물은 몇 초 만에 만들어진 콘텐츠에 묻힙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점점 쉬워지는데, 그게 쓸 만한 것인지 알아보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생산성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누구의 생산성이 높아진 걸까요? AI가 스며든 시대에 플랫폼은 어떻게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쉽게 무언가를 만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플랫폼이 살펴보고 관리해야 할 것도 그만큼 많아졌을 겁니다.

얼마 전 당근 고객센터에 채팅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접속 후 예상 대기시간은 80분이었습니다. AI 덕분에 많은 일이 빨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AI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물을 살펴보고 책임지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졌을까요?

🎒 REDBUSBAGMAN

 

 


 

어떤 감정들은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아요.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나가게 둘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 감정은 뭐지? 내가 우울증이라서 그런가? 어릴 때 형성된 애착 유형 때문인가?’ 하며 끊임없이 해부하려 해요.

저는 그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살피고 평가하는 태도 자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내면이 아닌 바깥세상에 관심을 돌릴 때, 내 안의 괴로움이 해소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학자 이승연

 

11월 첫 번째 화요일, 뒷동산을 산책하며 ©REDBUSBAGMAN
11월 첫 번째 화요일, 뒷동산을 산책하며 ©REDBUSBAGMAN

 

이번 뉴스레터에서도 제 속마음을 많이 드러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더 나다운 글과 콘텐츠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솔직함과 부족함, 잘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자라고 싶은 마음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표본이 될 수 있겠지요?

 

응원의 마음을 저와 연결된 채널에서 이따금 전해 주세요. 소중한 에너지로 모아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AI에 사고까지 외주하지 않는 11월이 되길, 또 안부를 나누길 바라며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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