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총 8부작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중 6화가 지난 목요일에 공개되었는데요. 기록이란 의미에서 연출자와 기획자들이 제작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이데일리에서 연재되었습니다.
①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차우진 스토리 총괄 프로듀서
② 보이그룹은 언제까지 아이돌이야? | 김선형 PD·머쉬룸 컴퍼니 대표
③ 케이팝 뒤에 사람 있어요 | 하박국 스토리 프로듀서
④ 상자를 부수는 사람들 | 이예지 머쉬룸 컴퍼니 대표
⑤ “케이팝, 왜 하세요?” | 김윤하 스토리 프로듀서
⑥ 그래서, 케이팝은 어떻게 되나요? | 임홍재 제작 책임 프로듀서
상자를 부수는 사람들 | 이예지 프로듀서 (머쉬룸 컴퍼니)
내겐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딸이 있다. 딸의 독립된 우주는 빠르게 세상을 빨아들이며 학습한다. 그 세상엔 케이팝도 포함된다. 딸의 케이팝 우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팽창하여 블랙핑크와 르세라핌, (여자)아이들을 지나 뉴진스와 엔믹스에 이르렀다.
그 어려운 가사도 척척 외우고, 언니들이 카메라 앞에서 짓는 표정을 그대로 복사해 나에게 보여준다. 멋지다. 이 언니들은 당당하고, 자신 있고, 누가 뭐라고 하든 나 자신을 사랑한다. I LOVE MYSELF! 이 얼마나 다행인가! 걸그룹이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자신의 몸을 쓰다듬거나, 볼에 바람을 넣어 애교를 부리는 구애의 시대가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게!
“엄마! 나 뚱뚱해도 예뻐?”
얼마 전이었다. 딸이 이렇게 물은 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이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잡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저 멀리, 저녁으로 오렌지 하나를 먹고 윗몸 일으키기를 100개씩 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던 14살의 나, 여중생이던 내 모습이 보인다.
‘케이팝 제너레이션’ 2화 ‘Zero To One’과 6화 ‘Outside the Box’의 연출을 맡아, 두 편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문득 세어보니 100명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아티스트, 케이팝 산업종사자, 팬, 머글(케이팝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 평론가, 타 분야 전문가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케이팝에 대해 의견을 들려주었고, 이 의견들을 곱씹고 엮어내는 편집 과정은 나에게 큰 배움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6화 ‘Outside the Box’의 경우, 흐름을 도출해내는 작업 자체가 큰 도전과제였다. ‘케이팝 낯설게 들여다보기’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아이돌에게 주어지는 터부, 연습생 처우, 유사 연애, 젠더표현, 퀴어 문화에 대한 포용 등 쉽게 다룰 수 없는 소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다 보니, 늘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사이, 이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구멍이 크게 뚫린 상자’의 은유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상자의 모양을 상정하고, 이 상자는 결코 밀폐되어 있지 않다는 뜻에서 구멍을 냈다. 이 구멍을 통해서 케이팝은 많은 것을 세상에 흘려보냈고, 반대로 세상의 변화는 구멍 안으로 흘러들어와 케이팝에도 영향을 주었다.
‘Outside the Box’는 케이팝 상자 밖에서 벌어진 세상의 변화가 케이팝 안쪽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회차다. 제도적인 개선, 아티스트 인권, 사생활에 대한 감수성 등 많은 것이 변해왔고 내가 만난 그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말 중에서 유의미하지 않은 것 하나 없지만, 유독 케이팝이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뚱뚱해도 예쁘냐’는 딸의 말과 함께 오래도록 마음에 울린다.
인터뷰이 중 ‘일다’ 박주연 기자는, 최근의 걸그룹이 제창하는 ‘나 타령’, 즉 ‘LOVE MYSELF’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여성의 신체를 향한 잣대는 과거보다 오히려 더 획일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당당하고 멋진 여성이려면 일단 예쁘고 날씬해야 할 것. 아마 살이 찌면, 나이가 들어 피부가 처진다면,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힘들 걸?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S.E.S의 ‘I’m your girl’ 뮤직비디오를 입 벌리고 보던 나도 케이팝이 주장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영향을 받은 아이 중 하나였다. 14살, 저녁 식사를 오렌지 하나로 버티던 몇 달의 시간 끝에 나는 꿈의 40kg대에 도달했지만, 결말은 병원행이었다. 의사는 나를 혼냈고 나는 예전의 식사 습관과 체중을 되찾았지만, 엄마마저도 내 마른 몸을 보고 ‘예쁘다’며 칭찬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와 유사한 경험을 인터뷰이 중 한 명인 ‘퀴어돌로지’의 저자 연혜원도 갖고 있다. 그는 ‘소녀시대를 보고 인생이 바뀌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증언한다. “여자가 저렇게 마를 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말라야 사랑받을 수 있겠다.” 나는 케이팝 소비자들의 자존감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케이팝의 신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했다.
기획사 측도 당연히 사정이 있다. 우리가 좋아서 그러냐. 아이돌은 물론 사람이지만 판타지를 파는 상품이고, 더 나은 상품을 만들려면 1%의 확률이라도 올릴 수밖에 없다. 투자하는 돈이 얼만데. 주주들이 얼마나 압박하는데. 사회가 마른 사람을 원하는 이상, 체중 관리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더 나은’ 케이팝이란 가능할까?
"물론이죠, 다양한 체형이 사랑받는 케이팝이죠. 어린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제발 고려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케이팝이 지속할 수 있도록 연료가 되어주는 게 무엇인지, 그 중심에 어떤 시각적 이미지가 있는지 떠올려보면, 덮어놓고 기획사를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판타지는 비일상적인 것일진대, 현재 사회가 원하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판타지일 수 있는가?
6화에서 다루는 그 어려운 이야기들 - 연애, 결혼 등 아이돌에게 주어지는 터부, 미성년자 노동을 둘러싼 관점, 다양한 젠더표현에 대한 문제 등 - 한가운데 ‘모순’이라는 단어가 자리하는 이유다. 6화는 이 모순을 감히 해결하지 않고 질문들을 던진 채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단, 이 질문들에 대한 고민은 6화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붙잡고 있을 것 같다. “나 뚱뚱해도 예뻐?”에 대한 대답만큼은 똑바로 하기 위해서. 🎥 글 이예지 프로듀서 (머쉬룸 컴퍼니 공동대표)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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