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의 2026 FIFA 월드컵 공식 앤섬 "JUMP"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습니다. 반 헤일런의 1984년 원곡을 J 발빈(보컬), 앰버 마크(보컬), 트래비스 바커(드럼, 블링크-182 등), 스티브 바이(기타, 프랭크 자파 밴드, 알카트라즈, 화이트 스네이크 등)가 리메이크한 곡. 그런데 이 영상을 둘러싼 반응이 꽤 흥미롭습니다. 애니메이션 영상에는 열광하면서, 음악에 대해선 불만이 많습니다. 그 차이에 대해 좀 정리해봤습니다.
3분 28초의 애니메이션에 담긴 레퍼런스는 밀도가 장난 아니게 높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문법이 거의 모든 프레임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이 영상 제작자 중 일본인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감독이자 아트 디렉터인 맥플라이(McFlyy)는 LA에 기반을 둔 필리핀계 미국인 아티스트다. 레이디 가가와 크런치롤의 협업 디자인, MLB 월드시리즈 캠페인 등을 통해 힙합-아니메-패션의 교차점에서 경력을 쌓아온 크리에이터. 한편 애니메이션 제작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스튜디오 2veinte가 맡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3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약 130개의 애니메이션 샷과 100개의 배경을 만들었다. 이 영상의 핵심 비주얼 레퍼런스는 2009년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 [레드라인(Redline)]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레드라인]은 매니악한 선택이다. 매드하우스가 7년에 걸쳐 10만 장의 수작업 원화로 완성한, 애니메이션 매니아들 사이에서 '작화의 정점'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컬트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걸 월드컵 앤섬의 레퍼런스로 가져왔다는 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veinte 스튜디오는 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미국 코믹북의 영향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각 언어를 융합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한 문장에서 2026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의 현주소를 읽는다. 문화적 기원과 문화적 실행이 확연히 분리되는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
크레딧의 지리적 분포를 한번 정리해보자. 디렉터는 필리핀계 미국인. 스튜디오는 아르헨티나. 참여 뮤지션은 콜롬비아(J 발빈), 미국(앰버 마크, 트래비스 바커), 이탈리아계 미국인(스티브 바이). 영상에 출연하는 축구 선수 라민 야말은 스페인 국적. 레퍼런스는 일본의 컬트 애니메이션. 발주처는 글로벌 기업 코카콜라. 한 마디로, 일본 밖에서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이게 가능하고 이게 또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는 게 새삼 대단하다.
🆚 '문법'과 '콘텐츠'

문화적 영향력, 혹은 문화 수출의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 개념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콘텐츠의 수출'이고, 다른 하나는 '문법의 수출'이다. [드래곤볼]이나 [나루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건 콘텐츠의 관점이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의 진짜 승리는, 비일본인 크리에이터들이 아니메의 문법을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법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면서도 압도적이다. 80~90년대, [드래곤볼]과 [세인트 세이야], [캡틴 츠바사]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더빙 방송되면서 세대적 경험이 되었다. 그걸 보고 자란 세대가 이제는 글로벌 프로덕션의 핵심 인력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아르헨티나의 2veinte가 일본 애니메이션 문법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본 문화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자기 것'을 드러내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벌 아니메 팬들은 이 뮤직비디오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핵심은 레퍼런스의 깊이에 있다. [레드라인]처럼 매니악한 작품을 골랐다는 건 '내가 이 세계를 잘 안다'는 선언이다. 그 오타쿠 같은 면이 진정성을 만든다. 스타일만 가져오면 '카피'가 되고, 뿌리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면 '오마주'가 된다.
케이팝도 마찬가지다. 나는 수년 전부터 '케이팝은 팬덤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정의해왔는데, 그 비즈니스 모델이 이제는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미국 레이블은 하이브의 방법론을 연구하고, 동남아시아 기획사들은 케이팝 스타일의 오디션을 도입한다. 개별 아티스트의 성공이 아니라 방법론 자체가 확산된다. 이것이 '문법의 수출'이다.
물론 여기에 특허권은 없다. 수익으로 직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화가 수출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무언가 중요한 무엇'이 되는 것. 느낌적인 느낌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바로 문화적 영향력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생각해보자. 한국의 전문가들이 그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와 산술적 가치를 논할 때 전세계 사람들은 그 작품 덕분에 케이팝과 한국 문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AP통신은 이 뮤직비디오가 "전지구적인 문화적 관심을 반영하기 위해(to reflect global cultural interest)"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제작되었다고 보도했다. 코카콜라는 1978년부터 FIFA 월드컵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다. 이런 회사가 지구 상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의 앤섬 영상을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건 취향 문제가 아니다. 도달률(reach)의 문제다.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게 바로 애니메이션이라는 판단이고, 그것은 아마도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일 거다.
🤔 왜 영상은 성공하고 음악은 실패했을까?
유튜브 댓글은 흥미진진하다. 한쪽에선 애니메이션에 대한 레퍼런스 찾기 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레드라인] 외에도 더 많은 작품을 찾느라 사람들은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면서 흥분한다. 그런데 음악은? 반 헤일런의 원곡을 망쳤다는 불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차이가 흥미롭다.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은 일본 아니메의 문법을 가져오되, 우주선, 축구, SF, 슈퍼히어로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재구성했다. 다시 말해, 번역(의역)을 했다.
그런데 음악은? 반 헤일런의 "Jump"는 1984년 빌보드 1위, [롤링스톤]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에 포함된 명곡이다. 오프닝 신스 사운드는 그 자체가 한 세대의 문화적 기억이기도 하다. J 발빈은 여기에 스페인어 가사를 추가하고 라틴 팝의 리듬을 입혔다. 인터뷰에서는 "모나리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It's like touching the Mona Lisa)"고 표현할 만큼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원곡의 시그니처 사운드는 유지하되 장르를 살짝 비트는, 커버에 가까운 리메이크를 선택했다.
"Jump"는 무조건 에디 반 헤일런의 키보드 인트로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이건 바꿀 수 없다. 이걸 건드리면 복잡해진다. 시그니처를 바꾸면 원곡을 훼손하는 게 되고, 놔두면 열등한 복제품이 된다. 여기서 구조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맥플라이와 2veinte 스튜디오는 [레드라인]의 특정 장면을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선의 질감, 속도감, 캐릭터 등 작품의 문법을 가져왔다. 관객은 베꼈다고 말하는 대신 느낌을 잘 살렸네라고 말한다. 원작이 아니라 장르에 대해 얘기하게 된다.
음악은 다르다. "Jump"의 첫 네 마디가 울리는 순간, 우리는 반사적으로 1984년의 에디 반 헤일런이 재생된다. 따라서, 그 소리 위에 무엇을 더하든 자동적으로 원본과 비교하게 된다. "오, 이게 그 곡이야?"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바꿔놨어?"가 되는 것이다. 명곡을 리메이크하는 건 그만큼 어렵다.
사실 코카콜라의 월드컵 앤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곡은 2010년 K'naan의 "Wavin' Flag"였다. 19개국 톱 10에 진입하면서 사실상 그해 공식 FIFA 송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이 곡은 명곡을 리메이크한 게 아니라, 소말리아 출신 음악가 K'naan의 오리지널 곡에 월드컵의 축제 분위기를 더한 버전이었다. 원래는 전쟁과 가난에 대한 노래였지만, 코카콜라는 그 맥락을 바꿨다. 곡이 아니라 맥락만 바꾼 것이다. 일종의 '번역'이었다.
반면 2022년의 퀸의 "A Kind of Magic" 리메이크나, 이번 "JUMP"처럼 누구나 아는 클래식을 리메이크한 경우에는, 원곡에 대한 청중의 소유의식이 작동한다. "Wavin' Flag"를 들으며 자란 사람은 거의 없지만, "Jump"를 듣고 자란 사람은 수천 만 명이다. 원곡이 문화적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수록, 리메이크에 대한 저항은 커진다. 아무튼, 이건 구조적 한계다.
💿 코카콜라의 음악 레이블 RTR
한편, 이 프로젝트는 코카콜라의 자체적인 음악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2025년 코카콜라는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 손잡고 자체 레이블 Real Thing Records(RTR)를 설립했다. 장르 불문, 글로벌 신인 발굴을 표방하고 있다. 프랑스-뉴질랜드 출신의 맥스 알레이스, 인도의 악소매니악 같은 아티스트와 계약했다. "JUMP"는 이 레이블을 통해 캐피톨 레코드와 공동 배급된 첫 번째 대형 프로젝트다. 코카콜라가 음료 브랜드에서 음악 산업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것은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의 트렌드를 반영하기도 한다. 브랜드가 단순한 스폰서에서 콘텐츠 프로듀서로, 다시 플랫폼 오퍼레이터로 진화하는 흐름. 코카콜라의 조슈아 버크 글로벌 뮤직&컬처 총괄은 "음악에 대한 장기적인 헌신을 통해 프로그램에 재투자하고, 차세대 인재를 육성하며, 음악과 팬덤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계속 뿌리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3분 28초의 프로모션 뮤직비디오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종합 리포트 같기도 하다. 필리핀계 미국인의 아트 디렉팅, 일본 아니메 문법으로 아르헨티나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상, 콜롬비아 가수가 라틴 팝으로 리메이크한 미국의 80년대 록, 세계 최대의 다국적 음료 기업 코카콜라가 자체 레이블을 통해 전 세계에 배급한 FIFA 콘텐츠.
그냥 '글로벌'이라는 한 단어로 퉁치기엔 상당히 복잡한데,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 복잡함 자체일 것이다. 문화가 이동한다는 건 뭘까? 콘텐츠가 수출된다는 건 뭘까? 콘텐츠의 문법이 다양한 언어의 사람들에게 소비된다는 건 무엇이고, 한 세대의 공통 경험은 지금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하여 마침내, 케이팝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점에서 코카콜라의 "JUMP"는 일종의 거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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