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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항해담

태평양에서 표류하기: 한 세일러의 놀라운 생존 이야기

2023.05.07 | 조회 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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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혹시 콕핏 라커 뒤지다 이런 거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탈리아어로 '물에 뜨는 닻'이라고 부르는, 드로그입니다. 배에 고정하고 물에 던지면 저항을 발생시켜 배 속도를 늦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 높은 파도와 악천후에 사용하지만 닻 내릴 수 없는 깊은 바다에서 낚시하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고 하는군요.  

써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고, 앞으로도 써야 할 필요가없기를 기원하지만, 콕핏 라커가 아무리 꽉 차서 좀 비우고픈 욕구가 일더라도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서 싣고 다니는 장비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남의 항해담'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러더 파손으로 조타가 불가능한 배를 이 드로그를 이용해 조타한 세일러의 경험담으로, 요팅월드 기사를 번역했습니다. 

원문: https://www.yachtingworld.com/cruising/adrift-in-the-pacific-one-sailors-incredible-story-of-survival-145122

 


제임스 프레드릭은 첫 단독 대양 횡단 도중, 해안에서 1,000마일 떨어진 태평양에서 러더 고장으로 표류하며 험난한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콕핏에 서서 낡은 배의 실내를 내려다보며 물이 가득 차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어떤 물건부터 물에 떠다니게 될까요? 데크가 물에 잠기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저는 1965년형 알베르그 30피트 트리테이아를 타고 하와이 제도에서 1,000해리 떨어진 먼바다에서 러더 고장으로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러더를 어떻게든 조작할 방법을 찾거나 다른 선박에 구조를 요청하고 기다리거나.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는 트리테이아가 제 항로를 유지하도록 필사적으로 수동 조타를 하고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마리나 델 레이에서 출항해 하와이를 향해 항해하던 중, 태평양 무역풍이 불어오는 첫날이었습니다. 거친 바다와 풍랑에 맞서 항해할 때의 통상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트리테이아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형 세일로맷Sailomat 보조 러더 윈드베인을 해제하고 직접 조타대를 잡아 뱃머리를 돌리려고 했습니다. 바람은 포스 4-5였고 파고는 2m였습니다.

갑자기 손에 잡고 있던 틸러에서 힘이 완전히 빠지더니 배가 좌현의 풍상 쪽으로 급격히 돌아갔습니다. 무슨 큰 소리가 난 것도 아니고 별다른 충격도 없었죠. 하지만 틸러를 앞뒤로 밀어도 아무런 저항이 느껴지지 않자 상황의 심각성이 뇌리에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재빨리 세일을 내려 배의 속도 먼저 줄였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쩌면 틸러 헤드의 고정 볼트가 풀린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이건 한 시간이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거든요. 트리테이아는 컷어웨이 풀 킬 보트이며, 킬의 뒷부분에 마호가니 재질의 큰 러더가 달려 있는데, 밑부분에 브론즈 판이 덧대어 있고 굽은 브론즈 틸러 샤프트가 튜브를 타고 콕핏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물아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프로GoPro 카메라를 케이블 타이로 후크에 묶어 배꼬리 쪽에 걸고, 최대한 러더를 바라보게 했습니다. 영상을 살펴보니 러더가 틸러 샤프트에서 떨어져 나와 덜렁거리고 있더군요. 러더는 단단한 나무 판자를 붙인 샌드위치 구조로, 청동 재질의 긴 막대들에 고정돼 있습니다. 이 막대 중 세 개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물에 들어가서 러더를 고정해야 했습니다. 가능하면 양쪽으로 줄을 연결해 배를 조타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리듐 고로 육상 지원팀 중 한 명에게 연락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곧 물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알렸습니다. 제가 만약 배 위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한 사람은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요.

잠수복과 두 개의 테더가 달린 안전 하네스, 스노클을 착용하고 수영 사다리를 내렸습니다. 혹시나 배와 연결이 끊어질 경우에 대비해 매듭을 몇 미터 간격으로 묶은 30m 길이의 줄을 던져두고 그 끝에 부표를 달아 줄이 물에 뜨게 했습니다. 세일을 전부 내리자 배가 옆으로 뿐만 아니라 앞뒤로도 요동쳤습니다. 세일을 내린 상태에서도 여전히 1.5노트의 속도로 배가 바람에 밀려내려 가는 바람에 저를 묶은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배에 끌려갔습니다.

저는 우현 배꼬리 쪽을 붙들고 러더를 쳐다봤습니다. 뒤편에 있는 큰 조각이 이탈되어 있고, 크랙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러더는 브론즈로 된 밑부분과 핀틀로만 겨우 고정되어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과격하게 요동치는 움직임이 너무 두려웠고, 선체에 맞아서 기절해 익사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선체 밑으로 잠수하여 러더에 나 있는 프로펠러 구멍을 통해 줄을 연결할 계획이었지만, 매번 잠수할 때마다 줄에 묶인 채 자꾸 배 뒤쪽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러더에 줄을 감기는커녕 러더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입수한 지 10분이 지난 시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배 위로 올라왔습니다. 낙담한 채 흠뻑 젖어 콕핏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때 문득 끔찍한 환상이 떠올랐어요. 제 집이자 꿈이자 제가 가진 모든 소유물인 배가 태평양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이었죠. 저는 트리테이아를 어떤 식으로든 조종할 방법을 찾아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깊은 바다에서 롤링

저는 배꼬리쪽 콕핏 락커에서 바다 오징어Sea Squid라고 불리는 주황색의 딱딱한 플라스틱 드로그를 꺼내, 긴 줄에 연결한 뒤 바다에 던졌습니다. 이러면 조타 불가 상태로 항로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떠내려가는 배의 속도를 늦춰 주죠. 저는 메인세일을 이중 축범한 채로 올려, 배의 움직임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하룻밤 동안 배가 떠내려갈 수 있는 거리를 줄였어요. 그리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기 위해 실내로 내려갔어요.

저는 속도를 늦추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흥분하면 사고나 부상,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체력을 아끼기 위해 배멀미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배가 흔들리는 방식이 바뀌었으므로 배멀미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저는 드래마민Dramamine을 복용하고 저녁 식사를 가볍게 했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선체 옆으로 파도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와 트리테이아가 자꾸 바람을 정 뒷면에서 받으며 러닝하는 듯한 소리가 불안하게 했습니다. 저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헤드폰을 꽂고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때쯤 육상 지원팀들이 제 위성 위치추적 블로그에 나타난 급작스러운 변침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걱정하며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육상팀은 형제인 데이비드와 콜비, 오랜 친구인 사라, 그리고 노아 페퍼 선장과 데이비드 스토발 선장 등입니다. 저는 상황을 알리고 제 위치추적 블로그를 업데이트했습니다.

불안한 밤을 보낸 후 아침이 되자 바람은 22노트로 불고 바다는 더 거세졌습니다. 호흡 걱정 없이 천천히 배 밑으로 내려가, 이번엔 줄을 연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스쿠버 장비를 모두 꺼냈어요.

다시 세일을 모두 내린 후, 스쿠버 조끼와 탱크에 줄을 묶고 공기를 주입한 다음 물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하네스에 더 긴 밧줄을 묶어 배 밑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고 다시 바다로 기어 내려갔습니다.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커지면서 배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간신히 스쿠버 BCD까지 접근해 착용하자마자 순식간에 배 뒤로 끌려갔습니다.

스쿠버 장비의 끌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테더를 손으로 잡아당기며 다시 배로 돌아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우현 배꼬리쪽 토레일을 붙잡았는데 곧 팔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정말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만약 배 위로 다시 올라가지 못하면 어쩌지? 저는 재빨리 스쿠버 조끼를 벗어던지고 사다리를 타고 보트에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65파운드의 철제 산소통 등의 장비를 다시 배로 끌어올린 후 콕핏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두 번째 밤 역시 여전히 바람과 파도 방향으로 러닝하며 표류한다는 점에서 첫날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제 잠수는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페퍼 선장과 스토발 선장이 제안한 대로, 드로그로 배를 조타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테크닉이었지만 유일한 희망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출항하기 전, 트리테이아를 정리하면서 드로그를 마리나 쓰레기통에 거의 버릴 뻔했죠. 다만, 하와이에 도착한 뒤 알래스카로 항해할 계획이 있었고, 태평양 북서부에서 요트 딜리버리를 해본 경험으로 그 동네 바다가 얼마나 험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가져가기로 했었습니다.

 

비상 조타

스토발과 페퍼는 드로그 조타 시스템을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지침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핀내커 폴을 가져다가 배꼬리 푸쉬핏에 걸쳐 가로로 고정한 다음, 스내치 블록을 가져와 배 중앙에 연결했습니다. 배에 있는 줄 중 가장 긴 길이의 줄은 스핀내커 시트였기 때문에 블록을 통과해 앞쪽으로 연결한 다음 스핀내커 폴의 양쪽 끝을 통과해 배꼬리쪽 데크로 연결했습니다.

양쪽의 각 줄을 드로그 끝의 구멍에 묶고 각각 보우라인 매듭을 맨 후 매듭 끝을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세 번이나 세팅을 확인한 후 마침내 드로그를 바다에 던졌는데, 배 뒤쪽에서 따라오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줄을 더 풀어 배꼬리 뒤쪽으로 좀 더 멀리 보내봤지만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고군분투 한 후, 드로그 끝에 체인이나 추를 추가해서 수면 아래로 더 잠기도록 해보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저는 드로그를 다시 끌어올려 4파운드짜리 스쿠버 웨이트(무게추)를 구멍에 연결한 다음 바다에 다시 던졌습니다.

그제야 제대로 작동하더군요. 드로그를 당기는 방향에 따라 배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와이에 도착할 항로까지 배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페퍼로부터 "메인세일 올린 상태야? 그러면 메인세일 내리고 헤드 세일로만 항해해봐"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메인세일을 내리는 즉시 요트가 끔찍하게 흔들릴 것이 뻔하기에 망설였지만, 어떻게든 조타력을 확보할 방법이 절실했습니다. 메인세일을 내리고 약 90%의 헤드세일을 펴서 당기자 트리테이아가 쉽게 항로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진짜로 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지만 곧 팀원들로부터 "잘했어!"라는 축하 문자를 받았고, 위성 추적기를 통해 항로가 변경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일을 좀 더 올리고 드로그와 윈드베인을 함께 조정하며 안정적으로 3~4노트의 속도를 내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에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헤드세일을 더 많이 펴거나 바람이 강해지면 드로그를 좀 더 풍상 방향으로 이동시켜야 했습니다. 드로그를 이용한 조타는 카누 패들링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패들을 물속에 넣고 가만히 있으면 카누의 뱃머리가 패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드로그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아마 세팅에서 스피너커 폴을 없애고 드로그를 배 가운데에 더 가까운 위치에 설치할 수 있었다면 세일을 훨씬 더 많이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피너커 폴은 줄이 윈드베인 패들에 닿지 않게 하는 데에 필요했고, 이 사실은 처음 설치 때 폴 없이 드로그를 물에 던진 직후에 뼈아프게 깨달았죠.

줄 하나가 윈드베인 아래에 걸린 채로 드로그가 하중을 받으면서 윈드베인이 파손되어 무용지물이 될 뻔했습니다. 메인세일을 축범한 뒤 윙온윙으로 항해할 수도 있었지만, 육지에서 1,000마일 떨어져 혼자 항해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안전한 항해를 선택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배가 돌아가면서 뱃머리가 역방향을 향할 때 어떻게 정상 항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롤 스태빌라이저인 '로커 스토퍼Rocker Stopper'를 배의 중앙 부근 선체 외부에 장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뱃머리가 금세 제자리로 돌아와 올바른 항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 상륙지점

트리테이아와 저는 18일 동안 느리지만 꾸준한 속도로 항해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폭풍우를 이겨내면서 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다시 편안하게 평소의 항해 루틴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홀로 항해하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저는 주로 항해일지를 읽고,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이 밤으로 바뀌고 다시 아름다운 일출이 시작되면 바다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갑자기 항해가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바다에서 31일째 되던 9월 12일, 몰로카이 섬이 처음 눈에 들어왔을 때 저는 목이 쉬도록 기쁨에 겨워 울부짖었습니다. 섬의 실루엣은 41마일 떨어진 곳에서부터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쁨에 휩싸였고 러더 고장 이후 처음으로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와이 제도 사이의 해협은 바람과 해류가 병목 현상을 일으켜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언제라도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낮에 도착했고, 하와이 기준으로는 아주 순한 무역풍이 불었으며 파도도 3m 정도로 평상시보다 괜찮은 편이었지만, 여전히 러더 없이 안전한 상륙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웠어요.

오아후 섬과 몰로카이 섬 사이의 카이위 해협에 도착했을 때 견인 요청을 하려 전화했지만, 견인 보트가 없다는 대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엔진을 시동해 보니 이 드로그 조타 시스템이 엔진 동력에서도 잘 작동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덕분에 유명한 다이아몬드헤드 화산 분화구 주변을 자력으로 항해할 수 있었어요. 전화 통화가 가능해지자 섬에 있는 마이크 라로즈 선장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와이키키 앞바다에 정박할 좌표를 보내주었고, 마지막 스노클링 손님들을 하선시킨 후 파워보트로 저를 견인하러 왔습니다.

해가 질 무렵 드디어, 2,300마일을 달려온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트리테이아에서 하선하게 되었습니다.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부두에 등을 대고 누웠어요. 호놀룰루 상공의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안도감과 믿기지 않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바다의 신 덕분에 처음으로 단독 항해에 성공했구나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들이 있어 이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이런 먼바다 고생담을 들을 때마다 드는, 역시 이런 어드벤처 항해는 내 스타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직한 스키퍼의 그늘 밖에서 험한 바다를 헤쳐야 하는 상황은 오게 마련이더군요. 아무리 돌체비타 스타일의 느긋한 세일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위험상황에 대한 대비는 모자람이 없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안전장비를 쓰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더라도, 완벽하게 구비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것처럼요.

동력과 저항 사이 다이나믹한 밸런스에 의해 작동하는 요트의 기본 원리가 퍼포먼스 향상뿐만 아니라 곤경에 처한 스키퍼도 도울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제임스는 풍하 방향에 드로그를 띄움으로써 저항을 증가시켜 뱃머리가 풍하 방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만들었고, 메인세일을 내리고 헤드세일을 올림으로써 역시 풍하 방향으로 돌아가는 힘을 더해 러더 없이도 항로로 조타를 했습니다. 다만 풍하 방향에서 드로그가 배를 끌어당기고 있으므로 세일을 많이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배가 너무 기울면 뱃머리가 풍상 방향으로 돌아가는 힘이 생깁니다. 

물이 익숙하고 수영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일단 물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먼저 들 것입니다. 저와 북미 항해를 함께 한 문제의 선주도, 프로펠러에 감긴 시트를 풀기 위해 허리춤에 줄 묶고 물에 입수한 즉시 배 뒤로 끌려가는 참에 놀란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영화에서 보고 따라 했었나 봅니다....

배를 물 위로 올릴 때마다 매끈한 선체의 형태가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인 몸이 선체만큼 유선형이 아니라면 당연히 물속에서 저항이 더 크므로 뒤로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가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자마자 홱 뒤로 끌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죠. 동력원(엔진이나 세일)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배가 강한 바람이나 해류에 밀려나갈 수 있는 속도는 작지 않습니다. 특히나 혼자 세일링을 하는 경우 이렇게 체력이 소진되어 탈진하면 꺼내 줄 사람도 없기에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걸 메타인지라고 하던가요? 예상치 못한 러더 손상에 놀라고, 입수해 수리하려는 계획조차 수포로 돌아간 뒤 배가 가라앉는 공포에 휩싸였을 때, 제임스는 흥분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대신 속도를 늦추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노련한 세일러의 진면목은 이런 때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프로의 활약도 눈에 띄더군요. 후크 끝에 매단 채 물 속에 집어넣어, 입수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제임스가 러더 문제를 바로 진단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배 손상을 '추측'할 필요 없이 배 밑의 상황을 정확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니, 멋지네요. 이탈리아에서는 그 중요한 역할 때문인지 보트 후크를 '반쪽 선원mezzomarinaio'라고 부르는데, 후크에 연결한 고프로는 '반쪽 잠수 가능한 선원'이 될만 하겠습니다. 안전장비로서의 역할도 작지 않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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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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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ating CHOO

    0
    over 1 year 전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모습에 감동입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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