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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AI에게 묻다

요트 서베이어들의 눈

2023.05.21 | 조회 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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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

어리버리 항해일기를 함께 하신 스키퍼매뉴얼 뉴스레터 독자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올 여름에 북미 항해 시즌 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안전 문제로 항해를 중단하고 배를 미국 아스토리아에 올려놓았었는데요, 올해 멕시코까지의 여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랍니다. 예상치 못하게 시즌드 세일러(seasoned sailor: 노련한 세일러)가 됐다고나 할까요.

작년에 멋모르고 수영복만 세 벌 챙겨 갔다 태평양의 만만치 않은 세일링 환경에 고생한 만큼, 올해는 좀더 준비된 모습으로 출항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한달 남짓 남았기에 좀더 구체적인 배 준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Tayana 37
Tayana 37

배는 1980년 건조된 타야나 37피트입니다. 날렵한 IOR 레이스요트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시도를 하던 시기, 마치 100년전 요트를 보는 것 같은 전통적인 외형에 묵직한 무게, 바위에 부딛혀도 깨지지 않을 듯한 우직함과 튼튼함으로 대양에서 맹활약을 한 모델입니다. 미주 이민 120년을 맞아 이민 선조들의 뱃길을 거슬러 항해하고 있는 원정대가 타는 배도 같은 타야나 37피트입니다. 기사 링크 디자이너는 미국인이지만 건조는 대만에서 한 점도 특이하죠. 주로 보고 듣고 연구하던 배들이 가벼운 배들이라, 이렇게 전혀 다른 성향의 세일링 요트가 수많은 동시대 세일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날렵한 동시대의 요트 Frers 43, 노안과 동안의 차이?
날렵한 동시대의 요트 Frers 43, 노안과 동안의 차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유럽 요트들의 아방가르드한 시도나 혁신에 지중해라는 빽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섬유강화플라스틱 재질의 요트는 무게 대비 강도의 가성비가 좋은 샌드위치 구조로 만들어지는데요, 안쪽과 바깥쪽 라미네이트 사이에 가벼운 코어가 위치하죠.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당시 일하던 스튜디오에서 남들보다 앞서 과감하게 도입한 코어 재질이 무려 ‘종이’였는데요, 배가 진수된 뒤 “손으로 눌러도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온 적도 있었답니다. 항상 가벼운 배를 추구했기에 배를 무겁게 만드는 조선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피항처도 마땅찮고 대체로 험한 게 일상인 바다에서 항해를 해 보니, 타야나의 돌덩이처럼 튼튼한 선체가 한줄기 마음의 위안이 되더군요. 다른 배랑 부딛혀도 우리 배가 이길 것 같은 믿음직스러움 같은…(읭?)

배 스트럭처의 튼튼함에는 절대 신임이 있었으나 잠재적인 불안에는, 내가 이 배를 너무 모른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롱킬 요트도 처음이고 데크가 구성된 방식이나 러닝 리깅 등 새로운 게 너무 많았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세일 블럭은 빈티지 장신구인 줄 알았는데 타야나에서 중요한 하중을 처리하고 있는 걸 보니 좀 두렵기도 하더군요. 실제로 하중을 버티는 건 나무에 부착된 금속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번 시즌 2 항해는 배를 좀 더 알고 출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배가 출시된 지 40년이 넘었고, 조선소도 문을 닫아 자료를 요청할 곳이 없었습니다. 다만, 600척이나 진수된 모델이고 현재에도 항해중인 배가 많은지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서베이 레포트였는데요, 요트 구매에 앞서 요트 상태와 성능을 평가하는 전문가(서베이어)가 발행하는 문서입니다. 요트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탐지해 내서 가격 협상과 보험료 책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구매자가 전문가의 눈을 통해 요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문서는 2005년 진수된 타야나 37피트 대한 서베이 레포트입니다. 우리 배는 40살이고 레포트의 배는 20살이지만 같은 디자이너에 같은 조선소 건조이므로 비슷한 디자인상의, 혹은 건조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데에 20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니, 40년 된 우리 배에게도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요트 서베이어, 이미지 출처 www.boatus.com/
요트 서베이어, 이미지 출처 www.boatus.com/

 

궁금하던 문제들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나, 미국 국경 트랜짓 선착장에서 2주간 발 묶이게 했던 디젤엔진이 요주의 1순위입니다. 결국 전문가들을 불러 수리를 하긴 했지만 정체불명의 새로운 증세들과 여전히 새는 오일 등, 믿고 험한 바다로 나가기엔 좀 불안한 상태입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이 엔진 브랜드 자체에 고질적인 오일 누수 문제가 있고, 부품 수급도 쉽지 않아 수리를 할 때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엔진 교체가 이상적이지만, 타야나 37의 좁은 선형 때문에 비슷한 출력을 내면서 선체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엔진을 찾는 데에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다소 뻑뻑한 조타대와, 바다와 바람이 좀 거세진다 싶으면 우리를 버려두고 먼저 퇴근해 버리는 오토파일럿도 문제였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교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간 항해까지 해야 한다면 의문의 여지가 없이 개선이 필요합니다. 뻑뻑한 조타대 때문에 저는 금세 어깨가 뻐근해 오더군요. 막연히, 배가 무겁고 롱킬 요트라 원래 이런가- 생각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좀 무서울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조타가 불가능한 상황이 상상조차 하기 싫다면 타야나의 조타 시스템에 대해서도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레포트 구성

요트의 일반 정보와 등록 번호 확인으로 시작하는 레포트는

본체 구성 요소(Structural Components)
보조 엔진(Auxiliary Engine)
연료 시스템(Fuel System)
앵커링 장치(Ground Tackle)
전기 시스템(Electrical System)
등등..

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중요한 순서대로군요. 읭? 그런데 메인 엔진 말고 보조 엔진도 있나요? 세일링 요트의 메인 엔진(동력원)은 세일이므로, 디젤 엔진은 보조 엔진이라고 부른답니다.

레포트를 보니 요트 서베이는 클라이언트 참여 하에,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네시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배를 상가시켜 점검하고 물에서 세일링 테스트도 했습니다. 검사는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요트에 구멍을 뚫어야 하거나 접착된 구조물을 떼어내야 점검이 가능한 부위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그래서 잘 만들어진 요트는 구석구석 빠짐없이 검사 가능하도록 탈착 시스템이 잘 되어 있죠). 셀카봉에 카메라를 연결해 구석진 곳을 촬영하거나 쌍안경으로 마스트와 스탠딩 리깅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베이어가 하는 일 중 가장 눈에 띄는 일은 배를 플라스틱 망치로 두드리는 일인 것 같은데요, 오랫만에 마리나이를 소환해서 정확히 뭘 탐지하고자 하는 것인지 물어볼까요?

 

요트 서베이어들이 배를 망치로 두드려서 뭘 알아내려고 하는거지?

요트 서베이어들은 요트의 여러 부위를 두드릴 때 발생하는 소리와 진동을 들음으로써 구조적 상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추가 조사 또는 수리가 필요할 잠재적 우려 부위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입니다: 1. 박리: 선체나 갑판에서 층이 분리되는 박리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텅 빈 소리나 둔탁한 소리는 박리가 발생한 것으로, 구조적인 손상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2. 부패 또는 연약한 부분: 썩거나 약해진 부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부드럽거나 스펀지 같은 소리가 나면 요트의 구조 안전성에 영향을 주는 문제나 습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3. 격벽 무결성: 격벽을 두드림으로써 박리나 부적절한 접착 등의 손상 징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관성 없는 소리나 텅 비어 있는 소리는 격벽에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서베이어는 망치로 두드리거나 습도 측정기로 혹시나 있을 라미네이트의 박리 현상이나 수포osmosis blister가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순서대로 배를 점검하며 각 요소가 정상 작동하는지, 의심되는 문제는 없는지, 현재 적용되는 규정 및 기준을 준수하는지 등을 확인한 뒤  의견을 달아 놓았는데요, 

레포트 일부
레포트 일부

A. 긴급히 개입이 필요한 문제들
B. 요트의 안전과 가치 증대에 필요한 개선점
C. 기타 정보 혹은 제안

이렇게 세 카테고리로 분류해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인 요트에 대한 평가를 내리며 레포트는 마무리가 됩니다. 레포트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discoverymarinesurveys.com/resources/surveysamples/PPSurvey_Tayana37_WEB.pdf

 

레포트에서 얻은 정보들

예상했던 대로, 레포트의 타야나 역시 선체나 데크, 격벽 등에 구조적인 문제가 전혀 없이 깨끗했습니다. 껍데기(선체와 데크)가 단단해도 이 껍데기들이 잘 붙어 있어야 할텐데요, 타야나는 이 둘을 붙이는 방식이 나사와 리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베이어가 데크와 선체 접합 부위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사를 덮고 있는 나무의 상태와 요트 내부 누수의 흔적을 검토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도 검토 목록이 하나 더 늘었네요.

레포트의 본체 구성 요소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머리카락 크랙'이나 '거미줄 형태의 크랙'에 대한 주의가 나옵니다. 서베이어는 머리카락이나 거미줄처럼 얇은 크랙이 있는지를 유심히 보았던 것 같은데, 읽으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입니다.
"읭? 이건 오래된 배는 당연히 있는 거 아니었나요?"

C 카테고리로 분류된, "습기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완충 및 왁싱을 하세요" 라는 코멘트를 보니 이 미세한 틈을 통해서 습기가 침투할 수 있나 봅니다. 이미 많이 본 것 같은데...ㅠㅠ

이렇게 수리해야 하나 봅니다
이렇게 수리해야 하나 봅니다

요트 바닥은 쉽게 들어올릴 수 있는 마루판이 깔려 있는데요, 마루판을 올려 그 아래의 빌지 상태를 점검하기도 하고, 저장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항해 내내, 살룬의 마루판이 너무 뻑뻑해서 연장을 사용하지 않는한 손힘으로 여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습기 때문에 합판이 불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 문제로 선체에 변형이 왔을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이 레포트에서 같은 문제가 등장합니다. 서베이어의 코멘트는 "마루판을 완전히 건조시킨 후 끼우는 것이 쉬워지는지 점검하라"입니다. 전문가가 구조적 문제까지는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은 마음이 놓이지만, 지속적인 관심은 가져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건조시키면 마루판이 좀 줄어들어 헐거워지는지 확인하고, 만약 여전히 뻑뻑하다면 모서리를 좀 더 갈아내 맞춘 뒤, 시간이 지나며 또다시 뻑뻑해지는 지 관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타대 시스템 문제는 레포트의 배에서도 관찰됩니다. 조타대와 러더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헐거워져 있고, 조타 회로를 구성하는 블럭을 지지하는 구조물이 강한 압력에 휜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배의 뻑뻑한 조타대 문제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만약 조타 회로가 틀어져 마찰이 발생한 것이라면 케이블이 건강한지부터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레포트의 타야나가 우리 배보다 20년 뒤에 건조된 만큼, 그 사이 어떤 디자인 업그레이드가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마스트 콜라(마스트가 데크를 뚫고 지나가는 부분) 방식이 나무토막(?!)에서 고무 타입으로 바뀌었고, 엔진도 50마력 얀마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좁은 선체 때문에 엔진 교체해도 25마력이나 들어가겠다던 말도 들었는데, 이거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소식이 있는데요,

  1. 최근 맘 먹고 제대로 돌보기로 한 easysailing.kr가 기술적 문제를 일으켜 고치는 중입니다. 접속이 안되어 궁금하신 독자님이 계실까 하여 공지드립니다. 
  2. '어리버리 항해일기'는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책으로 나오기 위한 막바지 작업 중에 있습니다. 6월 말 한국을 떠나기 전에 책 파티를 하고 가는 것이 목표인데요, 책 파티가 아니라도 남해 자체가 방문할 가치가 넘치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간단한 강의도 준비해 좀더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질문 다섯 개로 구성된 짧은 설문에 참여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설문 링크: https://forms.gle/rFKRrR2R44h1Zti29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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