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로그: 아직 LA

출항 스트레스

2023.12.03 | 조회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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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일요일 오전 9시에 읽는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 이야기(격주 발행)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이 뉴스레터가 나가는 시간, 저는 출항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거나 출항 스트레스를 인내하며 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일요일 오전 6시, 드디어 멕시코 엔세나다Ensenada를 향해 출항합니다. 

오늘은 CBP(미국 관세국경보호청)에 가서 호라이즌스 호의 미국 출국을 위한 서류를 발급 받았습니다. 미국에 입국한지 1년이 경과한 것을 비롯, 몰라서 저지른 수많은 실수들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우리의 출입국 기록이 너무 복잡했는지, 오피서가 흰 A4용지를 꺼내더니 시간순으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대략, 작년 항해를 마치고, 미국 -> 브라질 -> 이탈리아 -> 한국 -> 미국

"그럼 그 때부터 지금까지 LA에 체류중인 건가요?"

"아뇨, 동생이 결혼해서.. 다시 한국에 갔다가 열흘 전에 다시 미국이요.."

오피서가 한숨을 쉴 만한 것 같습니다. 이 다음에도 미국 -> 멕시코 -> 미국(스키 타러) -> 이탈리아 -> 한국 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요. 

어찌 되었든, 이번에도 좋은 오피서를 만난 덕에 별 문제없이 출국 서류를 받았습니다. 둘이 세일링 요트로 서부 해안을 타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 신기했는지, 개인적인 질문도 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 주기도 하더군요. 이렇게나 친절한데 미국 CBP 오피서들이 왜 딱딱하고 거만하기로 악명이 높은지 모르겠습니다. 

 

통신

알고 보니(왜 몰랐을까요) 바하 캘리포니아 해안이 워낙 외진 곳이라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멕시코의 첫 항구 엔세나다와 바하 칼리포니아의 최남단 카보 산 루카스Cabo San Lucas 사이에 배를 댈 수 있는 항구가 전무하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엔세나다는 큰 도시이지만, 그 이후 800 마일 이어지는 해안 내내 인터넷 접속이 어렵다면, 지난 구간 항해기인 '씨즌드 어리버리'를 한동안 예약 발행할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매주 발행을 결정하자마자 이런 벽에 부딛히는군요. 연속으로 '씨즌드 어리버리'가 발행된다면, 호라이즌스 호가 인터넷이 어려운 지역에서 항해하고 있구나- 생각해 주세요....;;

 

날씨

걱정하던 바와 달리 LA 날씨가 덥다며 기뻐했었는데요, 이상기온 현상으로 그 때만 한낮 온도가 28도까지 올라갔던 것이더군요. 지금 기온은 최저 11도, 최고 18도 정도로, 봄가을 날씨입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훨씬 따뜻하지만, 야간 항해에 충분히 따뜻한 날씨는 아니라 실망했습니다. 심지어 엊그제는 비도 내렸습니다....

원래 사막 기후인 LA 지역이, 최근의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4월과 12월에 비가 많이 온다더군요. 비와 함께 하는 항해는 그야말로 예상 밖인데, 걱정입니다. 역시, 남캘리포니아까지 내려오면 항해가 쉬워진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하나의 기상 관련 변수로, 올해 거의 확정적인 수퍼 엘니뇨El Niño가 있습니다. 아메리카 쪽 태평양에서 아시아 쪽 태평양으로 부는 무역풍이 약화되면서 차가운 심해수가 올라오지 못해, 아메리카 쪽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기상청 링크]

올해 역대급 엘니뇨 소식은 여러 번 접해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내가 배 타고 항해할 동네가 바로 그 동네라는 사실은 떠올리지 못했네요. 습하고, 비가 많고, 파괴적인 허리케인의 가능성도 높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고문의 귀국

슬픈 소식, 고문이 한국으로 돌아갔답니다. ㅠㅠ 

LA 도착 엿새 째 되는 날, 이제 엔진 수리가 마무리되고 엔세나다를 향해 출항하기 위해 날씨 정보를 보기 시작하던 때, 고문이 급한 일정으로 이른 귀국 의사를 밝혔습니다. 고문과 함께라면 이제 호라이즌스 호 앞에는 꽃길만 있을 거라며 행복해 하던 중이라,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오자마자 일주일간 호라이즌스 호의 엔진을 수리해 준 덕분에, 이제 연료 새는 문제도 완전히 잡았고 배 속도마저 빨라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제 셋이서 편하게 항해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가 다시 우리 둘이 좌충우돌 고군분투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오는군요. 

지난 구간을 마칠 즈음, 워낙 이 고생에 질리고 겁을 먹은 상태에서 항해 의욕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이 마음을 잘 다스려 출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멕시코

이제 국가가 바뀌니만큼, 멕시코라는 나라에서의 항해 공부도 필요합니다. 미국처럼 믿음직스러운 코스트가드가 있을 것인가? 수돗물을 마시면 설사 직행열차라, 물탱크도 페트병 물로 채워야 한다는 낭설은 사실인가? 항구가 없는 기나긴 구간, 피항할 만한 옵션은 어떤 것이 있는가- 등등...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치안과 통신 환경입니다. 전자는 대도시 체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있지만, 후자는 큰 문제입니다. 기상 예보 업데이트를 받지 못하는 것만큼 불안한 일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년 가까이 사용법 터득을 미루고 있는 위성 메신저 기기도 만져보기 시작하고, 스타링크 구매도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중이랍니다.

출항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콕핏에 앉아 마리나의 수많은 배들을 바라보며 멍때리다 보니 이런 격언이 떠오르더군요: 

A ship in a harbou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남해에서 여유롭게 지내던 때가 벌써 그립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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