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로그: 해발 5000피트에서

터줏대감 그링고, 그리고 솔트레이크

2024.01.14 | 조회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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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매뉴얼

바다, 항해, 세일링 요트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랫동안 해발 0ft(바다)에서 소식을 전했었는데요, 이 레터를 읽으시는 순간 저는 해발 5,000ft의 산에서 고도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시티, 포트브랙에서 만난 친구들 다이애나&존의 동네에 놀러왔습니다. 세일링 대신 여기서 스키라도 신나게 탈 예정이예요. 

스키퍼 매뉴얼 뉴스레터는 지난 2구간 항해(아스토리아-로스앤젤레스)의 항해기와 현재 진행중 3구간(로스앤젤레스-??) 로그 두 가지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엔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고난의 첫 야간항해기가 발행되었는데요, 새해 첫 레터부터 너무 고된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원래 출항 소식으로 2024년을 활짝 열고, 눈물의 야간항해 스토리는 그 다음주에 보내 드릴 계획이었지만, 호라이즌스 호가 아직 엔세나다 항구에 멈추어 있답니다. 

쨘- 하고 엔진 수리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출항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약 2주 전, 그러나...

최근의 미국 기상 관련 뉴스마다 그 중심에 있는듯한 느낌이 좀 있는데요: 올 여름 로스 앤젤레스 80년만의 허리케인(이 될 뻔한) 힐러리, 오하이의 5.1 지진에 이어 이번엔 빅 파도의 현장에 있군요.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뉴스의 큰 바다가 지나간 뒤에도 며칠 간격으로 6-7미터 파도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650마일 안에 항구는 없고, 피항이 가능한 만도 200마일이나 떨어져 있어, 충분히 긴 웨더 윈도우weather window가 나타날 때까지 출항을 미루고 있습니다. 

 

세일러들의 조언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날씨 때문에 조바심이 나서, 페이스북 그룹에 질문 글을 올렸습니다. 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높은 파도가 예외적인 상황인지, 이 바다에도 그냥 나가는 것이 보통인지 궁금했거든요. 

작년 남캘리포니아에 '세기의 파도'가 덮쳐 피해가 컸다고 하는데요, 올해에는 그 기록을 경신하는 파도가 치고 있다는군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2년 연속으로 발생하다 보니 이제 이게 '뉴 노멀'이 되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페이스북 그룹의 동료 세일러들 덕에 우리가 너무 겁이 많아서 못 나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조바심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안전한 항구에서 충분히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 중 주옥같은 말들이 있어 뉴스레터에 소개합니다: 

It is better to be in port and realize it wasn't really that bad out, than to be at sea, perhaps 10 hours off shore, when you realize that it is much worse than you had hoped it would be.

항구 안에서 '바다가 예상만큼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지. 귀항에 10시간이나 걸리는 먼 바다에서 상황이 많이 안좋음을 깨닫는것 보다는 말야. 

Experienced sailors will sail in tough weather but never leave shore knowing it is going to be rough. 

경험 많은 세일러는 험한 날씨에도 항해할 수 있지만, 험할 걸 알고서 출항하는 일은 없다.

A wise old sailor asked me "What is the most dangerous thing to have on a boat?" His answer: A calendar.

어떤 현명한 노인 세일러가 물었어. "배에서 제일 위험한 물건이 뭔지 아니?" 그 답은: 달력.

 

스프레이후드 프로젝트

https://www.nautica-tende.hr/sprayhood_en.html
https://www.nautica-tende.hr/sprayhood_en.html

요트의 콕핏(조타구역) 앞부분에서 바닷물과 바람을 막아주는 스프레이후드Sprayhood라는 게 있는데요, 도저Dodger라고도 부릅니다. 지중해에서는 '오픈카'처럼 스프레이후드를 내리고 항해하는 배가 많은 반면, 북유럽에 가면 텐트처럼 콕핏을 사방으로 감싼 인클로저Enclosure도 많이 보입니다. 한 방에 요트를 못생기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라 디자이너들이 극혐하지만, 춥고 험한 바다에서 콕핏을 안락하게 해 주기에 장거리를 항해하는 요트의 필수품이죠. 

미국에 오니 인클로저가 많이 보입니다. 스프레이후드 역시 여닫지 않고, 고정으로 올리고 있더군요. 우리 호라이즌스 호는 아스토리아에서 스프레이후드가 파손되었지만, 모든 고비용 요트 수리는 멕시코로 미루고 한동안 '오픈카' 모드로 항해를 했습니다. 주로 뒷바람 항해를 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고, 시야가 탁 트이니 안정감을 주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콕핏 어디에도 바람을 피할 구석이 없는 게 어려운 순간들은 있더군요. 

드디어 멕시코 입성, 이제 저렴한 가격에 스프레이후드를 만들 수 있을 참이었습니다. 옆 배의 소개로 알게 된 업체는 그러나, 무려, 스프레이후드 하나에 3,500 미국달러 견적. 이건 그링고(gringo, 외국인) 가격 치고도 바가지가 심한 것 같았습니다. 수소문해 다른 업체를 찾아가니, 자재를 우리가 제공하는 조건에서 가격은 900 달러까지 확 내려갔으나, 워라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달의 작업시간을 제시합니다. 

친구 페르난도와 같은 선착장의 낚시배를 운용한다는 사람을 통해 세 번째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해 또다시 파토가 나고 맘고생만 했죠. 멕시코인에게 일을 맡길 때 열리는 헬게이트를 생각하면 저비용이란 허상이었음을 깨닫고, 그냥 계속 오픈카 컨셉을 유지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출항은 계속 미루어지고 할 일 없이 엔세나다 체류가 길어지던 중 선주의 기발한 아이디어: 

"우리 엔진 메카닉 찾아다녔던 것처럼 우리가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소파 천갈이 등을 하는 'tapicería'라는 마법의 단어로 구글 지도에서 찾으니 시내에만 열 개가 넘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한 블럭에 가게 세 개가 붙어있기도 하더군요. 이제, 우리는 처량한 그링고에서 칼자루를 쥔 클라이언트가 되었습니다. 단 일 주일만에 스프레이후드를 만들어주기로 한 '선택받은' 업체의 견적은 얼마였을까요? 

무려 210 달러! 멕시코의 가여운 그링고들 처지가 상상이 가시나요?

요즈음 한창 글로벌 솔로 챌린지Global Solo Challenge 항해중인 안드레아 무라Andrea Mura의 배, 사르데냐의 바람Vento Di Sardegna에 설치된 라 카포테La Capote에서 영감을 받아, 약간의 변형도 시도해 봤습니다. 흐흐.. 잘 나오려나요?

라 카포테 안의 안드레아 무라 https://www.vistanet.it/cagliari/2017/06/05/andrea-mura-aumenta-il-vantaggio-nella-ostar/
라 카포테 안의 안드레아 무라 https://www.vistanet.it/cagliari/2017/06/05/andrea-mura-aumenta-il-vantaggio-nella-o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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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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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yss

    0
    4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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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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