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월세 100만 원 사는 백수

구독자님, 한 주간 잘 지내셨죠?

저는 여느 날과 같은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반복적인 일상을 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데요, 저는 요즘 편지를 쓸 때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실감하고 있어요. 구독자님도 어쩌면 이 편지를 읽으며 일주일을 실감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제 바람입니다.)

그나저나 7월이네요.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땐 언제나 묘한 설렘이 있어요. 막상 2일째부터는 다시 아무 날도 아닌 날이 되어버리는 것 같지만요. 저만 그런가요? 아무튼 또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구독자님은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음을 언제 가장 실감하시나요? 달라진 나뭇잎의 색깔과 바람의 온도를 느낄 때? 아니면 제철 음식이나 과일을 먹을 때? 갤럭시 알람처럼 평화롭게 시간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게 한 달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건 유감스럽게도 재난경보와 맞먹는 아이폰 알람에 가까운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매월 1일은 월세를 내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네.. 저는 매달 월세를 낼 때마다 한 달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역, 방 크기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런던의 집값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럼에도 집 구하기는 전쟁과 같아서 돈이 있다고 무조건 집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게 함정이에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 자취를 무려 월세 100만 원의 방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자취를 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입니다.

비싼 월세 때문에 생활비에서 최대한 지출을 아끼게 되어 본의 아니게 미니멀 라이프와 알뜰한 삶을 살고 있어요. 저의 궁상 라이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선 최대한 외식은 자제하고 마트에서 장을 봅니다. 그중에서 많이 사먹는 건 '밀딜(Meal Deal)'이라는 건데요,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메인 음식 + 스낵 + 음료를 묶어 한국 돈으로 약 6천 원에 판매하는 세트메뉴입니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아 현지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요. 또 저녁시간이 되면 마트에 할인 상품들이 나오는데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마트에 가곤 합니다. 노란 할인 스티커가 붙은 제품들 중에 괜찮은 걸 찾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쇼핑은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1시간 이내 거리는 웬만하면 걸어서 이동합니다. 많이 걸어 다녀서 그런지 갖고 있는 양말 중에 절반은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그냥 신고 다닙니다. 포기하면 편해요.

처음엔 월세가 100만 원이 넘는 집에 살면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고 구멍 난 양말을 신는 제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과 감정이 스쳤는데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언젠가 어마무시한 이 월세보다 훨씬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거라 믿으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삶의 형태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하더라고요. 런던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깨우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저를 가볍게(?) 해주는 런던 월세입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살고 계시나요? 궁금하네요. 그럼 전 이만 마트 할인코너 기웃거리러 가보겠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구독자님의 행운을 빌어요!

수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