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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실험실] <에이전트 설계> 시즌 1 수강을 놓친 분들을 위한 2회 특강 -「클로드(Claude) 페르소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내 에이전트 설계하기」

강의실의 문답

[문답 S1-4]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세팅된 세계'로 느껴집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정말로' 보는 것인가

2026.02.27 | 조회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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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Note

이 문답은 강의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바탕으로, 강의 이후 이해를 돕기 위해 사유의 맥락을 보충·정리한 기록입니다.


 

Q. 수강생 질문

 

강사님, 어느 순간부터 제가 사는 세계가 ‘세팅된 세계’ 같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는데, 그 안에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상상(혹은 가상)인지 점점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실제’를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필터링된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걸까요? 그 경계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A.“경계를 ‘정답’처럼 그으려 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볼 수 없는 존재인지’부터 인정해보죠.”

 

저는 이 질문이 좋았던 이유가, 질문이 굉장히 정직해서입니다. “어디까지가 실제냐”는 물음은 사실, 그 뒤에 이런 말이 숨어 있거든요.

 

나는 제대로 보고 싶다.

 

강의에서 우리가 먼저 확인한 건 불편한 전제였습니다.

인간은 애초에 제대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설계된 존재가 아닙니다. 전자기 스펙트럼을 떠올려보세요. 태양은 어마무시하게 넓은 영역의 빛을 쏘는데, 인간은 그중 아주 좁은 가시광선 대역만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잘려 들어온 세계인 거죠. 그래서 “실제 vs 가상”을 칼로 자르듯 구분하려는 순간, 우리는 종종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는 ‘있는 그대로’이고, 가상은 ‘가짜’라고 가정해버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오늘 강의의 요지는 그 반대였습니다.

 

실제는 완전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조건, 어떤 필터, 어떤 언어를 통과한 세계만 만납니다.

 

이 지점에서 라캉의 삼부도식이 유효해집니다. 상징계는 언어와 규칙, 제도와 질서의 층이고, 상상계는 내가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게 만드는 이미지의 층이며, 실재계는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층—잠재된 압력, 무의식과 욕망이 포함된 ‘아직-드러나지-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가 진짜냐”가 아니라, 어느 층이 비대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AI는 우리의 삶에서 상징계를 극도로 강화합니다. 모든 것을 문장으로 정리해주고, 이유를 붙여주고, 맥락을 부여합니다. 동시에 상상계도 함께 증폭시키죠. 나에게 맞는 이미지, 나에게 맞는 서사, 나에게 맞는 세계를 아주 매끈하게 구성해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점점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나는 더 많이 알게 됐다. 나는 더 잘 보고 있다.

 

하지만 그때 실재계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강의에서 트루먼 쇼의 ‘조명’ 장면을 가져온 이유가 그거였어요. 완벽하게 세팅된 세계를 의심하지 않던 순간, 아주 작은 균열 하나가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구나’를 드러냅니다. 실재는 늘 마지막에 남아, 우리가 만든 완결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경계를 잡는 방법으로 “실제는 이쪽, 가상은 저쪽”이라고 선 긋기보다, 이런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1. 나는 원래 다 볼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2.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추적해 본다.
  3. 특히 매끈하게 정리된 설명 앞에서, 그 정리가 덮어버린 누락/불협화음/반례를 묻는다.

 

여기서 질문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 “이 설명은 무엇을 너무 빨리 완결시켰지?”
  • “이 추천은 무엇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지?”
  •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세계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질문이 바뀌면, <<가상에 속았다/실제를 찾았다>> 게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대신 더 중요한 자리로 이동합니다.

 

필터링된 세계를 ‘전부’로 착각하지 않는 능력. 그리고 균열이 왔을 때, 그 균열을 제거할 문제가 아니라 사유가 시작되는 자리로 받아들이는 능력.

 

이것이 이 질문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권신경아(權申庚娥)

 

 


 

 

 

 

 

 

오늘의 사유가 당신의 일상에 작은 파동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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