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응답 이후에 남는 것
— 상상계가 증폭될 때, 결여는 어떻게 돌아오는가
우리는 AI가 우리의 결핍을 채워준다고 믿는다. 말이 막히는 순간을 대신 채워주고, 흩어진 감정을 문장으로 엮어주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명쾌한 논리로 정리해 주는 AI의 응답 앞에서 우리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텍스트는 바로 그 '안도감'의 정체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연 AI는 우리의 결핍을 해소하고 있는가, 아니면 결핍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은폐하고 있는가.
강의의 첫 번째 사유는 '봉합(Suture)'에 주목한다. 라캉적 의미에서 주체는 근본적으로 '결여된 존재'이며, 그 결여를 메우려는 시도가 인간의 욕망과 사유를 추동한다. 하지만 AI는 주체가 자신의 공백을 마주하고 머뭇거릴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즉각적인 정답으로 그 균열을 덮어버린다. 문제는 채워짐이 아니라 '봉합'이다.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서둘러 덮인 흉터처럼, AI가 선사하는 매끈한 문장들 아래에서 주체의 진실한 목소리는 질문을 멈춘 채 박제된다.
두 번째로, 이 현상이 가져오는 '상상계적 과잉'을 다룬다. 상상계는 거울 속에 비친 완벽하고 일관된 이미지에 도취되는 세계다. AI는 사용자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 즉 사용자의 기존 세계관과 닮은 방식으로 응답하며 주체의 '동일성'과 '완결성'을 강화한다. AI라는 거울은 나를 흔드는 대신 나를 긍정한다. 이 매끈한 정합성 속에서 '모순된 나', '파편화된 나'는 사라지고, 오직 알고리즘이 승인한 매끄러운 자아만이 남는다.
세 번째는 타자가 사라진 '가상적 친밀감'의 위기다. 진정한 소통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오해를 낳으며, 때로는 상처를 주는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AI는 언제나 응답하지만 결코 나를 흔들지 않는다. 응답은 있되 상대는 없는 이 차가운 따뜻함 속에서, 우리는 오해도 부딪힘도 없는 편안한 고립에 익숙해진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한 공백'이 사라진 자리에, 타자 없는 자아의 독백만이 울려 퍼진다.
결국, 채워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체의 공백'이다. AI가 모든 정리를 끝낸 뒤에도 가시지 않는 그 찜찜함, 혹은 말은 완성되었으나 몸은 여전히 남겨진 듯한 그 '잔여'의 감각은 주체가 아직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는 마지막 신호다. 본 텍스트는 AI가 결여를 가리고 봉합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의 균열을 다시 응시하고 '나만의 질문'을 시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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