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벽이라면 기벽인 게 있는데, 예전에는 원고를 잘 남겨두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당연하게도 나중에 필요할 때 없어서 고생해서, 요즘은 보관 차원에서 브런치에 쌓아둔다. 기억력이 심하게 좋기도 하고, 대부분은 지면 매체라 실물로 남아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기야 그 지면 매체도 부모님 집에 두고 온 책더미에 파묻혀서, 거길 뒤지느니 차라리 도서관 가서 찾는 게 빠르다. 그래서 작년에 국립중앙도서관에 자주 드나들 때 생각날 때마다 찍어오곤 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대부분은 인터뷰 기사다. 생각해보면 내 기준에서 잘 된 인터뷰를 하면 늘 몸이 아팠다. 아프지는 않아도 진이 빠져서 며칠은 골골거리게 된다. 한 번은 사흘을 앓아 누웠는데, 사흘째에 그 사람이 한 이야기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꿈에 그대로 나온 적도 있다.
라이너스의 담요, 연진을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인터뷰 중 하나라서 가끔 들여다보게 된다. 그때 술자리까지 이어진 다섯 시간쯤의 인터뷰를 하고 나서, 다음날부터 거의 일주일은 제대로 운신이 힘들 정도였다. 나와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참 많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동년배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고.
연진의 인터뷰는 파일이 온전히 남아 있어서, 이것 역시 백업을 할 겸 공유한다. 월간 PAPER 2011년 10월호에 실렸던 기사다.
요즘은 옛날 글을 보면 당황스럽다. 기억은 다 나는데,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서다. 인터뷰는 타인의 이야기가 메인이라 해도, 저 시절은 나 역시 좀 더 단순하고 가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없지만 같을 수도 없는 나를 보는 느낌. 흥미로우면서 묘하다.
찰스 슐츠의 범지구적인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철학적인 꼬마에게서 이름을 따온 밴드,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t)의 첫 앨범 <Show me love>가 나오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 10년간 우여곡절도 많았고, 5인조로 출발했던 밴드는 두 명이 되었으며,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보고자 밴드를 시작했던 초창기 멤버 중에서는 이제 연진 혼자 남았다. 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일까, 라이너스의 담요는 사방으로 불려 다니느라 아이돌 못지않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고, 그래서 연진을 만나기까지는 몇 번의 통화와 시간조절이 필요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에게, 나는 “오늘은 에너지를 얻어가는 쪽으로 인터뷰를 해봐요”라고 말하며 녹음기를 밀어놓았다.
1.
곡을 쓸 때 번개 맞은 것처럼 써질 때 한방에 써진다. 지지부진하고 어렵게 만드는 편이 아니다. 앨범을 위한 곡을 만드는 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다 끝냈다. 그 대신 그걸 원하는 그림대로 구현하는 과정이 죽을 고생이었다. 원래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겨서, 하나의 단어를 입에 담았다가 그걸 놓을 때의 숨소리까지 집중한다. 다른 파트 녹음은 다 끝났는데 그녀 혼자 보컬 녹음한다고 일 년 넘게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노래라는 게 괴로울 때 쥐어짜서 몇 시간씩 부른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니, 다른 멤버들과 엔지니어들은 그녀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가 오토튠(Auto-tune: 불안정안 음정을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장치)을 전혀 안 썼어요. 그래서 노래를 잘 불러야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여러 번 불렀고, 오래 걸렸고. 스튜디오에 갔더니 집에서 혼자 데모 녹음 할 때의 분위기가 안 나는 거예요. 엔지니어 분이 그러면 집에 장비 몇 개 마련해놓고 녹음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몇 백 번씩 불렀는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편집도 거의 안 했어요. 한 방에 자연스럽게 부른 걸 찾으려고 녹음을 하고 또 한 건데, 남들이 보기에는 되게 답답한 방식인 거예요. 그게 결과적으로 저를 너무 지치게 만들어서. 또 이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그나마 내 마음에 드는 거 같고.”
워낙 예민한 성격이다. 특히 음악 할 때. 공연이나 방송 전에는 꼭 ‘시험 보는 기분’이 된다. 매번 살얼음판처럼 불안하고 표정이 굳는다. 그래서 멤버들한테 가끔 손 한 번 잡아달라고, 어깨 한 번 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덜 불안하고 괜찮아진다. 뭐든 자연스럽게 한다고 다 잘 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에 언니네이발관 이석원 아저씨가 공연에 대해 홈페이지에 써놓은 글을 보고, 와, 되게 예민하시다 생각했는데,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이해가 돼요. 근데 자기가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컨트롤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늘 눈을 감고 노래한다. 관객들과 눈도 마주치고 춤도 추면서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안 되면 음정이 흔들려버리니까. 게다가 절대음감이라 악기 튜닝이 조금만 틀어져도 바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모든 환경이 자기한테 딱 맞춰져야 한다. 밴드에서 가장 사람들 눈에 띄는 게 보컬이다 보니, 다른 멤버들이 자기가 노래하기에 최적의 상태를 맞춰주기를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싸울 일도, 미안한 일도, 고마운 일도 많다.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져서 뭔가 아니다 싶으면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가끔 그것에 상처 받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예민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안 좋은 감정을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예민함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또 예민해지고.
“그 친구들이 가끔 기분이 확 상하는 걸 제가 느낄 때가 있어요. 너무 미안해서 끝나고 얘기하긴 하는데. 저는 남이 안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성격이라.(웃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당장 뭘 해야 되는데도 계속 그것에 마음이 쓰여서 못하고.”
작업하다가 스트레스 탓인지 두 달 동안 꼼짝 못하고 앓아누웠던 적이 있다. 병원 가서 검사해보면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기운이 없고 열이 펄펄 끓는 증상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신종 플루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신종 플루 검사는 안 했거든요. 하루는 집에 부모님 안 계시고 저 혼자 있어서 응급실에 전화를 할까도 생각했어요. 밤새 앓으면서 친구들한테, 응급실 전화하면 얼마냐, 구급차 한 번 부르면 얼마냐, 물어봤어요.(웃음) 몇 십 만원 내야 된대요. 일단은 참아야지 하고 참았어요.”
이러다가 앨범 못 내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나중에 별 걸 다 의심했어요. 혹시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거 아닌가. 폐렴인가. 뇌수막염 걸린 거 아닌가. 너무 무섭기도 하고. 제작자 오빠한테 혹시 이러다가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여태까지 작업해놓은 거 다 하드에 있으니까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고 떼어가라고, 그거 정리해서 앨범 내달라고 얘길 했어요.(웃음) 그랬더니 차 끌고 막 달려온 거예요.”
그렇게 아팠으면 처음부터 그 오빠나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병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할 만도 한데. 거기서 또 우선순위로 생각한 게 음악이었다니.
“그때는 이거 하나만 붙잡고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거 하나만 바라보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저를 힘들게 해서.”
‘스스로한테 너무 못할 짓’ 같았다고 한다. 거의 히키코모리 수준이었다고. 사람도 안 만나고, 정작 만나도 말을 못하고.
“그때 어떤 친구가 저를 점심 때 자주 불러냈어요. 나와서 점심 먹어라. 나가서 걔랑 마주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밥만 먹고 들어가고.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너무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 친구 아니었으면 햇빛도 못 봤을 거예요. 심지어 오지은이나 페퍼톤스 같은 친구들이랑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만나면, 밥 먹으면서도 노트북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웃음)”
지인의 친구가 하는 카페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커피 배우고 카페 매니저 일을 6개월 정도 했다. 파트타임이 아니라 직장인처럼 풀타임으로. 결과적으로 그 일이 그녀를 어느 정도 구원해주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도 작업 하고. 근데 집에서 작업만 할 때는 너무 지지부진하고 지치고 우울했는데, 오히려 직장생활이랍시고 하니까 너무 힘들지만 잘 되는 거예요. 정신도 또렷해지고, 내가 이 시간 아니면 못한다 생각을 하니까 집중도 잘 되고. 평소엔 집에서는 그냥 눈뜨고 앉아가지고 무슨 생각 하는지도 모르고 화면만 보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그 일을 하기를 진짜 잘한 거 같아요. 안 그랬으면 끝까지 붙들고, 지금은 할 때가 아닌 거 같아, 무드가 아닌 것 같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이러다 말았을 텐데. 우리 멤버들도 네가 진작 취직을 했어야 된다고, 그동안 네가 정신을 못 차렸다고 그랬어요. 저도 모르게 슬럼프에 빠져서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던 거예요.”
2.
힘들 게 낸 만큼 반응이 좋다. 그런데 들인 돈이 너무 많아서 손익분기점 맞추려면 아직 멀었다. 연진과 또 다른 멤버인 이상준, 그리고 라이너스의 담요 음악을 좋아하는 순수 엔젤투자가 한 명이 공동으로 투자해서 자체 레이블 ‘FAB(Fabulos)3’를 만들었다. 다들 적금도 깨고 ‘시집장가 가려고 모아놓은 돈’을 털었다. 유명한 댄서를 섭외해서 뮤직비디오까지 스케일 크게 만드는 바람에 제작비가 4천만 원 가까이 들었다. 다행히도 불러주는 곳이 많아서 행복한 비명을 지를 법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다들 불러줄 때 가야지, 진짜 좋겠다, 말을 하는데, 막상 이걸 소화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 할 때 잘하고 싶은데 고만고만하게 여러 개 하는 거 같아서 집중이 안 되고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이러다가 컨디션 안 좋을 때 실력 없게 보일 수도 있을 거 같고. 뭐랄까, 대량생산하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인터뷰 할 때도 그렇고.”
그래서 라이너스의 담요가 요즘 가장 많이 숙고하는 부분은 공연에 관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베스트를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 한편,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알찬 공연을 봤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다. ‘잘하는 것’과 ‘재미있게 하는 것’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문제다. 어떻게 보면 쿨과 핫 중에서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워낙 다들 숫기가 없어요. 아직도 사람들 앞에서, 나 뭐하는 사람이야, 하고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노래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노래만 할 거면 완벽하게 해야 되는데 또 그렇게만 되지도 않고. 앨범은 어찌어찌 냈다 쳐도, 이젠 또 공연과의 챌린지라서, 이게 완전 무한도전이에요.(웃음) 뭐 하나 해놓으면 또 산 넘어 산이고.(한숨)”
이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음악 하게 될 줄 몰랐다. 지금도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음악가라고 하지 않고 그냥 프리랜서라고 얼버무리고, 이상준은 제약회사 직원이라고 얘기한다. ‘어쩌다보니 십 년 동안 여기까지 흘러왔다’는 심정이다. 물론 자신들이 만드는 앨범과 공연에 책임을 지자,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자는 마인드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자신이 프로 뮤지션이라는 확신이 없다. 처음부터 프로가 되겠다고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닌데다, 다른 일에 치어가면서 음악을 하다 보니 취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다들 우리를 직장인밴드라고 묘사를 하더라구요. 폼이 너무 안 나는 거예요.(웃음) 사실 우리가 처음부터 음악을 직업으로 하지 않겠다고 얘기를 하긴 했었거든요. 멤버들끼리도, 이걸로 돈 벌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 이건 좋아하는 걸로 남겨두고 돈은 딴 걸로 벌자.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요.(웃음) 저는, 평소에도 음악 안 할 거라는 얘기 되게 많이 하고 다녀요.”
“근데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지 않을까요?”
“맞아요. 친구들이 가끔,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별로 늙지도 않나보다, 재미있겠다, 부럽다, 이런 얘기해요. 나도 너처럼 하고 싶다, 너 너무 멋있다. 뭘 알고 저런 얘길 하는 건지!(웃음) 넌 이거 하면 이틀도 못한다고 그러거든요. 나는 니들처럼 그냥 직장생활 해보는 게 꿈이라고.”
그녀의 말이 조금 앞뒤가 안 맞는다고 느낀다. 그렇게 편집광적인 노력으로 비싼 돈 들여서 앨범 만들었고, 지금도 음악을 더 잘하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면서, 한편으로 음악 안 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단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본다.
“약간 애증의 관계가 있어요. 앨범 내기 전에도 나 때려치울 거라고, 안할 거라고 얘기 되게 많이 했는데. 주위에서는 쟤는 말만 저렇게 하지 계속 할 거라고 그러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거나, 원하는 대로 뭐가 잘 안 나와 줄 때. 늘 하는 얘기가,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음악 같은 거 안 들었어야 했다고 그래요.(웃음)”
“차라리 음악 말고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것에 관심 가졌으면 좋았을 걸.(웃음)”
“그러게요. 차라리 관심이 없었으면 하고 싶은 생각도 안 했을 텐데. 그럭저럭 잘 살았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진짜 후회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있어요. 남들이 모두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뭔가 희생하고 포기한 부분이 있다 생각을 하니까. 이십대 초반에야 내가 이거 아니면 할 게 없겠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삼십대가 돼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생각하면 제약이 많더라구요.”
그래도 그런 고민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건 팬들이다. 일단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한 마음이 있고,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솔직히 인디밴드 입장에서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게 얼마나 낯간지럽고 말도 안 되는 얘기인지를 아시잖아요. 팬이 얼마나 있다고. 슈퍼주니어도 아니고.(웃음)”
그래도 그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낯간지러워도 저절로 하게 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누가 자신을 기대하고 좋아해준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얼마나 크고 순수한 에너지가 되어 돌아오는지. 물론 나쁜 반응에 더 민감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냥 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한다.
“솔직히 우리는 팬이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창피했거든요. 우리가 뭐라고, 무슨 팬이야. 얼마 전에 인터파크에서 팬 미팅 자리를 만들어주셨는데 백 명이나 오신 거예요. 그분들이 공연 보시고 다 앨범에 사인을 받아 가신 거예요. 십 년 팬인 분도 계셨고. 너무 고마운 거예요. 바닥을 쳐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우리도 나름 바닥을 쳤기 때문에. 한동안 앨범을 안 내다 보니 불러주시는 곳이 없어서, 이제 우리 약발이 다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걱정을 하면서 앨범 냈는데,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 같아요. 한때는 잘 나갔기 때문에(웃음) 뭐 한 게 없는데도 자꾸 불러주는 상황을 겪어봤고, 아무도 자기를 찾아주지 않는 상황도 경험을 해보고.”
3.
어렸을 때는 장부 스타일이었다. 리더십이 있었고 반장도 했다. 동네 친구들을 모아서 클럽 비슷한 걸 만들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나무젓가락으로 동네 쓰레기 줍고, 노인정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랑 놀아드리기도 했다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걸 했나 신기해요. 오히려 크면 클수록 숫기가 없어져서. 원래 음악 듣는 사람들이 아웃사이더가 되잖아요. 밴드 하면서부터 만나는 사람도 한정되고.”
원래는 실용음악과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그래서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처음 인터뷰 섭외를 하면서 몇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을 때, 말투에서 뭔가 잘 정돈된 예의와 절도의 흔적이 느껴졌는데, 호텔경영학과를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또 원래 예의 없는 사람을 정말 싫어하기도 한다.
“제가 또 예의강박증 같은 게 있어서요. 예를 들어서 상준 오빠가 같이 있는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예의 없게 대하면, 저는 비록 오빠지만 바로 붙들고 가르치고 그래요. 창피한 일이라고. 서비스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조금 더 매뉴얼화된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학교 앞 음반점 주인아저씨 덕분에 비틀즈, 벨벳언더그라운드, 스키드로, 메탈리카, 너바나 등을 접했다. 헤비메탈 키드였다. 주로 하이텔 메탈동과 하드코어 음악 모임이 아지트였고, 콘(Korn) 팬클럽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밴드 파트너인 이상준을 비롯해 그때 만난 음악친구들이 다 지금의 친구들이다. 공부를 아예 안 한 건 아닌데, 선생님들 걱정을 꽤나 시켰다. 밤새 PC통신 하고 학교에서 졸곤 했다. 내신 성적은 안 좋았는데 모의고사 점수는 잘 나와서 다들 신기해했다고.
“고등학교 때 음악 듣고 다른 짓 하느라 정신이 팔려서요.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서 밴드나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었어요.(웃음)”
이 년 전쯤에 지독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마음이 피폐해진 적이 있다. 그때 술에 의지를 많이 했다. 전자양이라는 뮤지션의 밴드에서 건반 연주를 할 때였는데, 합주만 끝나면 뒤풀이에 따라가서 술을 마셨다.
“그때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다보니 만날 술을 먹었는데, 그때마다 취해서요, 한동안 제가 술 너무 먹는 게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전자양 밴드의 친구들이 제 뒤처리를 하느라 늘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 친구들한테 미안해요. 그래서 우애가 되게 깊어졌어요.”
전자양, ‘프렌지’의 유정목, ‘페일슈’의 박태성, ‘로로스’의 도재명. 이들은 라이너스의 담요 멤버들과 더불어 ‘영혼을 나눈 남매들’ 같은 사이라고 말한다.
“제가 방황하고 있을 때였는데 다 받아주고, 힘들다면 밤새 술마셔주고. 지금도 그 동생들하고는 다 잘 지내고. 너무 힘들어, 그러면 마셔, 나중에 저만 취해가지고.(웃음) 저 취하면 옆에 잘 재워놓고 자기들끼리 또 먹고, 토하면 닦아주고, 나중에 집에 잘 보내주고.”
“주위에 남자친구가 더 많지 않아요? 남자사람친구.(웃음)”
“오히려 여자친구보다 많아요. 어딜 가나 제가 여자로 안 보이나 봐요, 애들이.(웃음)”
음악 하는 친구들이 원체 남자가 더 많기도 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애들을 대하는 법을 잘 몰랐다. 남자애들과 늘 거칠게 대화를 하다 보니. 머리도 늘 짧았고, 고등학교 때는 여학교에 으레 한두 명쯤 있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여자’였다. 의외로 지금도 남자보다 여자 팬이 더 많다.
“고등학교 때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편지 받고, 머리카락 잘라서 보내는 편지, 손톱 잘라서 보내는 편지도 받아서 좀 무서웠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춤추는 걸 너무 좋아해서요, 비보이들 다니는 연습실 드나들면서 춤을 배웠거든요. 축제 때 댄스 팀 만들어서 공연도 했는데, 또 그런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고. 화장실에서 혼자 이 닦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벽 뒤에 숨어서 보고 있고.(웃음) 얘기하면 너무 웃긴데, 제 자랑이 아니라 정말 그런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나마 여성스러워졌는데, 대학교 들어가서 밴드 하면서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여성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워낙에 전부터 메탈이나 하드코어 음악 듣고 그랬으니까. 귀여운 면은 별로 없었어요. 근데 저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
4.
그래서 인터뷰 때마다 다들 의외라고 한다. 도도하고 까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캐릭터가 전혀 다르다고. 중성적이고 털털하다고. 라이너스처럼 인형 같은 거 안고 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럴 때면 “제 나이가 몇인데요. 잠자기도 바쁜데”라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물론 음악과 사람이 평소에 꼭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해진다. 연진이 만든 소녀 같은 노래들의 정서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상상력? 반작용? 환상? 아니면 희망사항? 그것도 아니면 뭘까요?”
“희망사항이라기엔 좀 그렇고, 대부분의 가사가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의 얘기거든요. 연애를 하는데 남자는 적극적이지 않고, 나만 너무 애가 타는 거 같고, 그게 억울해서 하는 얘기들인데. <Show me love>는 사실 제가 솔로로 지내던 시절에 왜 아무도 나한테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지내다보면 평생 연애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다가, 누군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만든 노래였는데, 대부분의 가사가 그래요. 욕구불만인 상태.”
사랑이라는 게 양쪽의 무게를 달아놓고 눈금을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덜 사랑하는 쪽이 권력을 가지고, 악의는 없었다 해도 상대한테 상처를 준다. 관계라는 우주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은 늘 동일하지 않다. <Stop liking, star loving>이라는 노래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항상 모든 감정의 관계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내가 원하는 것만큼 안 주고. 대부분 그래요. 지금까지의 경험이 늘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저도 그런 곡들을 쓴 거 같아요. 연애의 불합리함을 느낀 것에 대한 슬픔.”
뭐라 질문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시 침묵이 들어서고 나서, 그녀가 말을 잇는다.
“…그동안 많이 실패도 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 되지 않나.”
“삼십 대에 대한 특별한 느낌 같은 거 있어요?”
“제가 지금 서른 한 살이잖아요. 주위 사람들이 하도 노산(老産)이라고 하니까, 빨리 결혼해서 아이 낳아야 되나. 내가 지금 결혼해서 아이 낳을 때야, 하는 생각보다도, 하도 늦었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음악 하는 분들 중에는 더 늦은 나이까지 결혼 안 하신 분들도 있고, 아예 그럴 생각 없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의 재촉 때문에 압박감이나 조바심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 같다. 스스로의 욕심도 있는 거 아닐까. 언제가 됐든 스스로가 결혼을 꼭 하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저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살고 싶었어요, 진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남들 결혼할 때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큰 소망이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안 돼서 약간 조급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하도 그러니까. 이 나이에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니까. 점점 불안해지는 것도 있는데, 솔직히 원하는 건 저도 남들처럼 그렇게 해야 될 나이에 그렇게 하고, 사이클을 맞춰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근데 앨범 내고 다른 거 다 포기하고 살다 보니까, 남들…이라고 하기보다 그냥 평범한? 스탠더드한 삶에서 좀 멀어진 감이 있어서.”
의외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그린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는 스치는 푸념이나 투정이 아니라 무척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오래된 고민이고, 그만큼 지금의 모습과의 괴리도 크지 않을까. 아까 그녀가 꺼낸, 프로 뮤지션으로서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제 어렴풋하게 이해가 될 듯 싶다.
“나도 이 나이쯤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 낳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런 삶이 안 된 것에 대해서, 내 노력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음악 하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 요즘이야 워낙 집값도 비싸지고 결혼하기가 힘들어진 세상이라서, 하고 싶었으면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걸 억누르면서까지 돈을 모은다든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다든가 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주변 음악 하는 애들 보면 이런 고민 별로 안 하는 거 같아요. 저는 그냥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전부터. 결혼 되게 일찍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여건이 되질 않았어요. 연애라든가 제가 제 삶을 꾸려온 거라든가. 결혼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책임을 수반하는 건지, 개인적으로 희생과 노력을 해야 되는 건지를 생각하면 물론 부담스럽고 어려운 거지만, 빨리 결혼해서 삶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아직도 있어요. 이런 얘기 인터뷰 하면서 처음 하는 건데, 남들이 들으면 되게 의외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웃음)”
“연진 씨는 아무래도, 평화를 얻고 싶은가 봐요.”
“어! 잘 아시네요. 제가요, 평생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맸어요. 워낙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타입이고, 작은 일에 쉽게 동요되는 타입이라서. 혼자 어떤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게 자신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혼자라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요. 밴드도 상준 오빠가 같이 해줘서 좋고, 음악을 혼자 한다는 것에도 두려움이 많고. 다른 멤버들이 직장인이고 바쁘다보니 주위에서 저보고 솔로활동 해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저는 솔로 못하겠어요. 혼자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사실 이렇게 인터뷰 같은 거 혼자 하는 것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좀 무섭기도 해요. 저는 진짜, 화려한 삶을 원하고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기 때문에 하는 거고, 빨리 내 인생의 짝을 만나 결혼해서 그 사람이랑 같이 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이십 대 동안에 그게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커요. 어떻게 보면 되게 보수적인데.”
“그럼 음악은요?”
“만약에 제가 나중에 아이 낳고 살아야 된다면 솔직히 음악 그만둘 생각도 있어요. 이게 내 평생의 업이야, 이런 생각은 안 하고 있고. 그렇게 얘기하면 음악 듣는 분들이 섭섭하게 여기실 수도 있는데. 저는 음악을 잘하고 음악가로서의 삶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그냥 제 삶의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게 우선적인 문제고, 지금도 마음의 평화를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에요.”
십 년 후의 그녀가 궁금해진다. 아니, 십 년은 너무 길고 오 년쯤?
“되게 웃긴 게, 말로는 나 음악 꼭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안 되면 안 할 거라고 얘기하고 다니는데, 계속 할 거 같아요.(웃음) 오래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에는 다른 애들 다 그만둘 때까지 저 혼자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렇지만 마음의 평화와 창작은 쉽게 공존할 수 없는 대칭점 같은 것 아닐까. 우리는 그런 삶의 모델을 너무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 않나. 불행한 사람이 글 쓰고 음악하고, 또 글 쓰고 음악하려고 불행해진다는 말도 있으니까.
“사람이 뭔가 창작을 하게 되는 경우는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나, 자기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될 때 창작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냥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같고, 음악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저한테 잘해주고 안정적이게 만드는 사람보다,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기는 음악 하려고 연애하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글 쓰는 사람도 그렇고.”
“지금 생각하면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고, 감사함을 모르는 짓거리인 것도 같고.(웃음) 아무 자각이 생기지를 않아요.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뭔가 자각이 오기 시작하고.”
내가 강하고 자신감에 차 있을 때보다 부족한 게 있을 때 사람들에게 나를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 그래야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는 것, ‘매료되는 것’과 ‘소통하는 것’의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당사자들에게 폭발적인 행복과 함께 소스라치는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알면서 뛰어드는 지옥. 지반이 안정되면 못 견디고 일부러 파헤치고 흔들어야 하는.
5.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 불안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그런데도 도망치지 못한다. 막상 닥치면 해야 한다. 그건 책임감이 강해서라기보다 스스로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새장을 열어줘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부모님도 항상 얘기하는 게 너는 너무 쉽게 열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평상심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친구들한테 물어봐요. 나 어떡해야 되냐? 그냥 정신과 가보라고 하더라구요.(웃음) 정말 그래야 되나 생각도 했어요. 내가 살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 못살 것 같다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마음이 되게 약해요. 쉽게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정작 도망은 안 가요. 내가 책임져야 될 상황이 있으면 책임은 지는데, 그러면서 너무 많이 지치고 힘들어해요.”
“그러면서 하라고 하면 다 하죠? 누가 기대하면 그것에 부응해야 되고.”
“네, 하라고 하면 하는데, 속으로는 나 진짜 하기 싫다, 정말 도망가고 싶다, 나 자살할지도 모른다 생각해요. 정작 거절을 못해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그랬지? 차라리 못하겠으면 저 이거 못하겠습니다, 하고 애초에 안 하면 모르겠는데.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놓고 못하면 안 되잖아요.”
“길 못 찾을 때 안 물어보죠?”
“남들한테요? 네, 안 물어봐요. 못 물어보는 스타일이에요. 아이폰으로 찾는데, 아이폰 길찾기가 늘 정확한 것만도 아니라서.(웃음) 그게 되게 피곤해요.”
“혹시 누가 뭐 물어보면, 나랑 별 상관도 없는 일인데도,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대답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아니에요?”
“(박장대소하며) 맞아요! 누가 저한테 뭐 물어보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얘기를 못하겠어요.”
“뭔가 잘못해서 누가 뭐라 그러면 또 스트레스 받고? 스스로한테 화가 나서 못 견디죠?”
“네, 허투루 하면 되게 쪽팔리잖아요. 지적 받는 거 안 좋아해요. 어떻게든 완벽하게 해야 되는데, 한다고 한 거 자체가 후회가 되면서.(웃음) 뭔가 납기일이 닥쳤을 때, 해야 되는데, 하고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요. 쉽게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붙잡고는 있는데.”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라고 물었더니 ‘재능’이라고 한다. 세상에 진짜로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 중에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재능’이라고 한다.
“저는 재능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어서요,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반하는 경향이 있어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외의 것들이 어떻든 그 재능에 반해요.”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재능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이번 앨범의 <Gargle>이라는 곡에 피처링을 해준 검정치마의 조휴일이다. 그의 재능에 경외심 비슷한 걸 느낀다. 어떻게 저런 편곡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코러스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들을 때마다 감탄, 또 감탄한다. 피처링을 부탁할 때도 너무 떨려서 전화를 못하고, 직접 공연장 대기실에 찾아가서 “죄송한데 이거 드릴게요” 하고 편지를 주고 나왔다.
“제가 휴일 씨 칭찬을 워낙 많이 하고 좋아하는 티도 많이 냈는데요, 기타 치는 오빠가 그래요. 네가 데뷔도 훨씬 먼저 하고 나름 선배인데,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굴면 밴드 ‘가오’가 떨어진다고.(웃음)”
“근데, 내 경험으로는 재능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이에요.”
“그런가요? 사실 저도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정확하긴 해요.(웃음)”
“문제는 그걸 사람들한테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죠.”
“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만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똑같이 알아보는 사람 만나면 너무 반갑고.”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보는 건 한순간이죠? 어떤 찰나의 순간에?”
“네, 그냥 한 번에 느껴요. 처음 만났을 때 알아요.”
장기적으로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 그것 외에는 재능. 연진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힘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으면 한다. 쉽게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
그렇지만, 그 말 자체가 아이러니다. 재능을 가진 만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건 쉽지 않다. 사소한 것도 망각하지 못하는 재능을 가졌으니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꾸 되물으며 불안해하게 되니까. 그녀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마지막으로 묻는다. 운명론을 믿느냐고. 그녀는 안 믿진 않는다고 한다. 그냥 뭔가 정해진 게 있을 거란 생각은 한다고.
나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재능을 마주할 때마다 운명론을 잠시나마 희미하게 믿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 될 수 없도록 생겨먹은 사람들. 마음의 건반을 49개 가진 보통사람들보다 월등히 많은 88개의 건반을 가진 대신, 매일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들.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그들의 재능에 따라붙는 세금 같은 게 아닐까 한다.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괴리감과 소외, 불안, 애정결핍, 욕구불만의 표현형이다.
찰스 슐츠가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라이너스에게 투영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 말 듣고 생각해보니 작가는 지독하게 비관적이고 애정을 갈구하는 <피너츠>의 아이들 중에, 라이너스에게만 유일하게 실제적인 행복(담요)을 안겨준 것 같다. 행복은 상대적이라고들 하지만, 때로 행복처럼 절대적인 게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게 행복이라지만,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행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손에 잡힐지도 모르는 라이너스의 담요 같은 평화와 위안을. 그녀는 지금 어느 지점쯤에 서 있는 걸까.
* 월간 PAPER 2011년 10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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