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관한 짧은 낙서

이십 년 전 만난 사람

나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2023.09.15 | 조회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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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살면서 단 한 번,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 사람이 있다. 어디서 만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하려고 하면 만난 날짜까지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략 이십 년 전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그 사람의 인상은 별로 안 좋았다. 무례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뭔가 뻣뻣하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입장상 약간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그 사람이 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계속 눈에 띈다는 것이다. 나는 팔로우한 사이가 아닌데, 내가 아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사람의 지인인 탓이다. 그리고 그는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정보를 종합해 유추해보자면 그는 꽤 유능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또 그가 나를 기억할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 이름도 아예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럼에도 그를 온라인에서 마주칠 때마다, 만화의 효과음처럼 내 속에서 뭔가 ‘빠직’ 하는 걸 느낀다. 그가 나한테 사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이십 년 전의 그 인상이 저절로 떠올라서다.

아, 차단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심각한 얘기는 아니다.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

 

요즘 일 때문에 옛날 자료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흔적들도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놀라는 중이다.

뭐, 내 머리가 하드 디스크도 아니고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묘한 건 잊어버리는 게 대체로 ‘좋았던 기억’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서로 호의가 있었고, 부탁을 하거나 받았던 사람에 대한 것. 여기서 잊는다는 건 그 사람과 뭘 했는지 배경 상황은 뚜렷하게 떠오르지만, 얼굴이나 목소리, 분위기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식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은 나한테 뭐였는지.

 

***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사람이 뭘 잊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마뜩잖은 능력인가 하는 것이다. 좋은 기억은 휘발성이고, 음각문자처럼 오래 살아남는 건 안 좋은 기억이다. 그것이 사소하다는 말도 아까운 변변치 않은 것이라도.

그래서 잊지 못하는 계속 쌓일 때면, 그게 점점 데미지로 축적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마치 펀치 드렁크처럼. 그렇지만 반대로 무언가 잊게 되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같은 느낌에 혼란스러워진다. 이상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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