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단 한 번,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 사람이 있다. 어디서 만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하려고 하면 만난 날짜까지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략 이십 년 전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그 사람의 인상은 별로 안 좋았다. 무례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뭔가 뻣뻣하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입장상 약간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그 사람이 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계속 눈에 띈다는 것이다. 나는 팔로우한 사이가 아닌데, 내가 아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사람의 지인인 탓이다. 그리고 그는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정보를 종합해 유추해보자면 그는 꽤 유능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또 그가 나를 기억할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 이름도 아예 들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럼에도 그를 온라인에서 마주칠 때마다, 만화의 효과음처럼 내 속에서 뭔가 ‘빠직’ 하는 걸 느낀다. 그가 나한테 사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이십 년 전의 그 인상이 저절로 떠올라서다.
아, 차단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심각한 얘기는 아니다.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
요즘 일 때문에 옛날 자료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흔적들도 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의외로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놀라는 중이다.
뭐, 내 머리가 하드 디스크도 아니고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묘한 건 잊어버리는 게 대체로 ‘좋았던 기억’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서로 호의가 있었고, 부탁을 하거나 받았던 사람에 대한 것. 여기서 잊는다는 건 그 사람과 뭘 했는지 배경 상황은 뚜렷하게 떠오르지만, 얼굴이나 목소리, 분위기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식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은 나한테 뭐였는지.
***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사람이 뭘 잊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마뜩잖은 능력인가 하는 것이다. 좋은 기억은 휘발성이고, 음각문자처럼 오래 살아남는 건 안 좋은 기억이다. 그것이 사소하다는 말도 아까운 변변치 않은 것이라도.
그래서 잊지 못하는 게 계속 쌓일 때면, 그게 점점 데미지로 축적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마치 펀치 드렁크처럼. 그렇지만 반대로 무언가 잊게 되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은 느낌에 혼란스러워진다. 참 이상한 딜레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