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달변가였다. 늘 조리 있게 말했고, 미술 전공자라 그런지 비유와 예시를 풍부하게 이미지화 하곤 했다. 또 대화에서 상대 질문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다. 또 한 가지, 그는 퍽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직업상 많은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잦았던 그는, 그런 자리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웃겼다.
그의 특기는 독특한 개그 센스를 바탕으로 한 언어유희였다. 자신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다 싶을 만큼 매끄러운 화법으로 던지는 포커페이스의 하이 코미디. 언젠가 그는 자신의 개그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생각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게 그의 일상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처음 전화를 했을 때를 기억한다. 사람들 앞에서와는 판이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날아왔다. 첫 인상도 먼발치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생각보다 큰 키에 적당한 체격, 사진으로 볼 때는 몰랐던 선이 굵고 남성적인 매력이 있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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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 쉽사리 친해지기 힘든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깨진 건, 그가 사심이라고는 없고 바보 같을 정도로 맑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 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는 작게 웃는 법이 없었다. 아예 웃지 않든가, 아니면 안면 전체가 펴지면서 활짝 웃든가 둘 중 하나였다. 눈은 경직된 채 입꼬리만 끌어올리는 의례적인 웃음이나 썩소를, 그는 생전 지어보지 않았을 것 같았다. 문득 그가 앞으로 몇 살을 먹더라도 세상의 질서 따위 이해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의 퍼포먼스에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연극적인 거리감과 냉소가 있었다. 말하자면 연극용어로 ‘제4의 벽’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깨지기 쉬운 광물 같은 자신의 코어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나는 “유머는 공포에 대한 반응이자, 신을 찾아서 안도하고 싶은 몸짓”이라는 커트 보네거트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퍼포먼스는 마치 플라스틱 가면을 쓴 자신을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제3자가 되어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점점 더 세상과 고립되어 가는 이의 황량한 옆모습을, 나는 보았다. 천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에 누구보다도 가까이 있는 그의 재능은, 어쩌면 짙은 어둠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몇 년 동안 입을 막고 지냈던, 마음이 가난했던 과거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에서 나는 모든 문이 닫히고, 모든 벽이 높아진 세상을 상상했다. 그가 차갑고 외로운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나무 사이를 가르는 바람의 향기, 아버지의 테이블 밑에 누워 사각사각 펜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기억, 아무도 없는 학교 연습실에서 온몸에 추위를 묻힌 채 피아노를 치던 한겨울 새벽, 고기를 잡던 옛날 암사동 집 근처 냇가의 예쁜 조약돌에 대해.
그는 나에게 송사리의 독특한 수영법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직접 그 움직임을 흉내내는 C를 보며, 나는 그가 어딘가 물고기를 닮았다고 느꼈다.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는,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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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C는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어쩌면 나에게만 그리 보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날카롭게 떠돌던 두 다리가 땅에 뿌리를 내린 듯 보였다. 비록 휘청거리긴 해도 평탄한 도로 위를 천천히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다분히 의외의 방식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나선 직후였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실체 없는 자존심에 묶여서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있고 싶지 않았다고, 어떻게든 문을 열고 나가서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었다고.
그 뒤로 그가 특별히 행복해졌을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당장 행복하다 해도, 삶이란 연대기적으로 나아지는 게 아니고 무작위로 찢어서 붙인 모자이크 같은 것이니까. 다만 살아 있는 한 끝없이 건너야 할 무수한 삶의 강들을 피하지 않겠다는, 태엽이 풀리면 다시 감고 소용돌이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일종의 다짐 비슷한 게 그의 얼굴을 스쳤던 것을 기억한다. 그 표정에는 아주 희미한 비장함마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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