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라디오

내 현실이 되어줘

너의 땅의 되어줄게

2024.04.20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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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아주 사적이고 디테일한 에세이


파티는 끝났죠

잔을 비우고 싶다면 더 머물 수는 있겠지만
혼자인 게 싫어서라면 이곳은 도움이 안 되죠

은은한 재즈 연주는 없죠
행복한 바텐더도 없죠
그대를 궁금해 하던 호기심 많은 이들
악수를 청한 후 떠나가죠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른다면
미칠 듯 그리운 맘에 위로가 필요하다면 여긴 아니죠
하지만 나도 특별히 끝까지 여기 머물러 줄 순 없어요
Your night is over you can't stay here

파티는 끝났죠
이젠 비오는 거릴 마주할 시간이 됐죠
혼자인 게 정말 싫다면 이곳은 도움이 안 되죠


화려한 샹들리에는 없죠
웃음의 여운은 끝나죠
그대와 함께 꿈꾸던 행복을 찾는 이들
포옹을 나눈 후 떠나가죠

처음부터 난 알고 있었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그대임을
세상이 다 그렇듯 숨을 곳은 없어요
진통제 정도론 파티가 좋지만
사실 소용없죠

홀로 버려지는 게 두려웠다면
혹 그댈 데려다 줄 누군가 필요하다면 여긴 아니죠

 

그거, 슬픈 노래지? 밝은 노래 아니지? 슬프지?

Party라는 노래 알아?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밥 먹다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은 것처럼 소스라쳤다. 노래를 듣고 그녀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역시 슬프다. 근데 내 노래야. 그리고 당신 노래잖아.

그 말대로 슬픈 노래였다. 지독하게 슬펐다.

K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커트 보네거트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유머는 공포에 대한 반응이자, 신을 찾아서 안도하고 싶은 몸짓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조 없는 구관조처럼 늘 희극을 연기했다.

그녀가 연극을 한다면, 나는 밤마다 파티를 열었다. 컬러풀한 와인과 빛나는 샹들리에가 있는, 현실이라기에는 묘한 위화감이 있는 파티. 사람들은 파티에서 자신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제일 편한 자세를 취하고, 엉망으로 취하거나, 혹은 눈물을 흘리며 웃거나 하다가, 날이 밝으면 한결 가벼워진 영혼을 챙겨 떠났다. 현실의 나선으로 다시 자신을 밀어 넣을 용기가 생겼다는 듯이. 

그들은 몇 번이고 찾아왔다. 그리고 떠날 때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언제 커피라도 마셔요, 라고 어렵게 말을 꺼내면, 그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다음에요. 기회가 되면. 다음은 그 다음이었고,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당신은 이만큼만 필요해요, 라는 말로 들렸다.

그녀는 운명론자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나와 그녀는 같은 운명이라 했다. 난 평생 파티를 할 것이고, 그녀는 평생 희극을 연기할 것이다. 이 비현실적인 현실은 계속될 것이다. 그녀는 파티가 끝난 뒤 공허함에 몸서리치는 나에게 술잔을 건네고, 나는 연극이 끝난 무대 뒤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끌어안고.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가끔은 서로한테 현실을 주는 게 어떠니. 해파리처럼 부유하다가 아주 가끔이라도 발을 디딜 수 있는 마른 땅을.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비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인 곳을.

나한테 어떤 현실을 줄 건데?글쎄, 네가 환장하는 떡볶이는 맨날 사줄 수 있다.

후드를 눌러쓴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그녀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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