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구독자님!
매주 토요일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F1 뉴스레터 Pit.IN 발행인 오제형 입니다.
모나코에 이어 바르셀로나 그랑프리로 이어지는 백투백 GP가 시작하기도 전에 큰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알핀의 피에르 가슬리가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받은 페널티가 철회되며 최종 3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

올해 유난히 7위라는 순위를 많이 기록하며 "7ㅏ슬리"라고도 불렸던 피에르... 지난주말 레이스 또한 3위인줄 알고 좋아했다가 또 한번 7위가 되면서 낙심했을텐데요, 오늘은 이 이야기로 뉴스레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한 주간의 이슈 외에도 바르셀로나 그랑프리 프리뷰와 [기록 & 통계], [영웅은 기억된다]는 코너도 준비했으니 끝까지 보시는걸 강추!!
이 뉴스레터는 바르셀로나-카탈루냐 FP2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모나코 GP 포디움, 하자르 대신 가슬리!!

먼저 정황을 짧게 정리를 해드릴께요. 지난주 개최된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무더기 페널티가 나온건 알고계시죠? 그 중 가장 많은 페널티 사유가 '피트레인 구간 속도 위반'이었습니다. 해밀턴, 러셀, 피아스트리, 콜라핀토, 가슬리(2회)까지 다소 이해할수 없는 페널티를 받은데에는 '피트레인 속도 측정 방식의 오류'라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이런 페널티는 1년에 정말 3번 나올까 말까 하는데요..)
피트레인의 속도는 여러 개의 측정 루프 사이를 차량이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이 됩니다.
모나코는 시가지 서킷이라 피트레인 진입구간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이 피트레인 입구 초반 굴곡(모서리)을 빠르게 잘라 진입하려던 드라이버들의 피트레인 주행길이를 측정용 루프(센서)가 제 거리보다 더 짧게 인식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피트레인에서 규정상 요구되는 주행거리가 짧아지면, 계산상으로 피트레인에서의 평균 속도는 반대로 높아지기 때문에 속도 측정 시스템상 규정 속도를 초과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인데요.
사실 최고기술의 집합체라는 F1에서 이런 부분을 예상하지 못한 FIA의 촌극인가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부 팀은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대처를 하기도 했습니다.
(알론소는 한 인터뷰에서 종종 있을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피트 리미터 (Pit Limiter)를 조금 더 낮게 설정해 속력을 더 감속한다고도 했습니다.)
어쨌든 실제로 3위로 레이스를 피니쉬 했던 이 페널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알핀과 가슬리는 페널티 적용 후 7위로 밀려난 결정에 대해 즉각 항의를 제기했고, 목요일 첫 번째 심리가 열린 후에, 바르셀로나 GP 주간이 시작되는 금요일 낮에 판정이 뒤집혔습니다.
이로인해 3위 포디움 수상까지 했던 레드불과 이삭 하자르는 트로피를 반납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요.

하지만 이 판정 번복이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알핀 입장에선 부정하다 느낀 결과를 바로잡게되어 잘 된 일이지만, 다른 드라이버들은 이미 레이스 중에 해당 페널티를 모두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집행된 페널티를 되돌릴 수도 없고, 다른 팀들의 경우 사후적으로 어떻게 항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의 예시가 딱히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비슷한 페널티에서 구제받지 못한 메르세데스, 맥라렌이나 어쨌든 3위 자리를 다시 반납해야 하는 레드불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실제로 맥라렌과 레드불이 항의 의사 표명(intention to appeal)을 한다고 합니다.
메르세데스의 경우 현재 공식적인 항의 조치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실제로 조지 러셀은 이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두번째 페널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계산에 따르면 몬테카를로에서 3위로 레이스를 마칠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토토 볼프 수석의 금요일 인터뷰에 따르면 두번째 페널티의 경우 메르세데스 피트크루 스스로의 실수가 있던 것을 포함해 모든 결과를 "00 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말로 다 따지고 들 수는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막스둥절, 말해봐 왜 Redbull 엔진이 최고냐고오!! 😂
모나코 그랑프리 기간에 F1에서 엔진 개발 격차를 줄여주는 ADUO 첫 결과가 나온 것 알고 계실겁니다.
ADUO는 쉽게 말해, 엔진 개발이 조금 뒤처진 컨스트럭터가 따라갈 기회를 주는 제도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여기서 레드불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 WoW!

구독자님 께서도 당연히 레드불이 1위를 차지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가지실텐데요. 막스 베르스타펜 역시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르스타펜은 바르셀로나로 이동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본인들의 차량은 신뢰성 문제도 남아있는 상태인지라 스스로 베스트라 생각하지 않늗네 갑자기 1위로 평가를 받으니 꽤나 당혹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고로 1위를 차지한 엔진은 추가 개발이 금지되어 업그레이드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신규 제조사임에도 레드불-포드 엔진은 더 이상 개발할 수 없고 메르세데스나 페라리 같은 기존 제조사들만 추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레드불과 포드 입장에서는 경험 많은 팀들보다 높게 평가받은 게 한편으로는 엄청난 성과지만, 추가 개발 기회를 잃어버린 상황이라 팀은 좀 복잡한 심경입니다. 컨스트럭터 순위가 4위인 레드불이 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의문을 가지는게 당연하죠. 이 후 FIA랑 논의를 했고, 레드불이 재검토를 요청하는 바람에 현재는 공식 결과 발표도 미뤄진 상태인데요.
FIA는 지난 월요일부터 센서랑 데이터를 재확인 중이고 재발표까지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추가로 걸린다고 합니다.
이번 ADUO는 이번 측정을 오직 내연 기관만으로 순위를 매겼다고 하는데요. 엔진 출력의 절반이 전기로 작동되는 2026년 규정에 오직 내연 기관만 가지고 측정 했다는게 잘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혜택을 받는 팀들은 전기 부품까지 고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발에 제외된 팀이 어떤 손실을 입게 될지 감도 안옵니다. ㅎㅎㅎ;;;
F1 내연기관 비중이 2028년까지 다시 높아집니다.
F1 엔진 규정이 2027년과 2028년 두 단계에 거쳐서 다시 바뀝니다. 최종적으로는 현재 50:50 에서 60:40으로 내연기관 비중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그간 전기 에너지 관리 규정에 참 말이 많았죠?)
우선 2027년에는 내연기관 연료 유량을 5%만 높입니다. 출력을 400kW -> 420kW로 살짝 증가시키고 반대로 전기 모터 기본 출력은 350kW -> 300kW로 줄어드는데, 추월을 위한 오버테이크 모드는 350kW 그대로 둬서 배틀을 위한 경쟁력은 가질수 있게 했습니다. 에너지를 회수 양도 250kW -> 375kW로 늘려서 갑자기 배터리 동력을 잃지 않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내연기관 대 전기 모터 비율이 지금의 53:47에서 58:42 정도로 조정됩니다.
2028년에는 연료 유량을 13% 더 높여 내연기관을 450kW까지 만들어 내연기관 대 전기 모터 비율을 60:40으로 맞추게 됩니다. 파워 유닛 예산 상한선 규정도 이에 맞게 살짝 상향되죠.
이번 시즌 새 규정 도입 후 드라이버들은 레이싱 중 조작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특히 배터리 관리에 신경쓰면서 자신의 가장 빠른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는 퀄리파잉을 해야한다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슈퍼클리핑에 때문에 푸쉬랩과 쿨 다운 랩의 속도 갭이 너무 커서 큰 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F1에서 규정의 실패를 어느정도 빠르게 인정하고, 당장 큰 돈을 들여 시스템을 다시 갈아엎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잘 결정한 것 같습니다.
메르세데스나 레드불 포드는 내년부터 당장 교체하길 원했지만, 아우디나 페라리는 반대해서 나온 결과가 이번 결정입니다.

FP 세션까지의 타임라인으로 뉴스레터 내용 작성해 발행합니다. 제가 전달드리는 그랑프리의 백그라운드와 이야기들을 읽으시면 그랑프리 퀄리파잉과 레이스를 보시면 더욱 재밌습니다!
FP1 세션
몇몇 팀에선 리저브 드라이버들을 세션에 내보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드라이버는 작년 F2를 우승하고 맥라렌에서 리저브로 계약한 레오나르도 포르나롤리와 캐딜락과 계약하여 F2 드라이버로 현재 활약중인 인디카 최고 스타 콜튼 허타였는데요. 실제 어떤 활약을 했다기 보다는 이름값이 있어 눈길이 가는 정도였습니다.
아우디는 아직 주니어 명단이 없어서 알핀의 리저브인 폴 아론을 테스트 드라이버로 빌려왔습니다. (사실 작년에도 칵 자우버가 아론을 테스트 드라이버로 연습세션에 출전시킨적이 있음)
스페인 드라이버
페르난도 알론소는 공식 인터뷰에서 "내가 출전하는 마지막 바르셀로나 그랑프리가 될 것 같다."라고 이야기 했는데요. 알론소가 이런 이야기를 언론에 자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게 꽤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게 당장 내년에 은퇴하겠다는 이야기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선 바르셀로나는 2032년까지 F1과 계약이 되어있지만 벨기에 스파와 격년으로 번갈아가며 개최 예정이고, 그 순서에 따라 2027년에는 F1 캘린더에서 빠지게 됩니다. 정리하면 2년 내에는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듯 하네요.

타이어 컴파운드
2026년 시즌부터 F1 타이어 공급사인 피렐리의 모터스포츠 수장이 마리오 이솔라(Mario Isola)에서 다리오 마라푸스키(Dario Marrafuschi)로 교체되었는데요. 아직 이솔라가 인수인계 기간으로 6개월 더 남아있는 중이라 실제로 마라푸스키는 캐나다 그랑프리부터 미디어에 공식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제 벌써 세번째 그랑프리가 되고있고 확실히 작년보다는 피렐리가 레이싱에서 조금 더 많은 불확실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 바르셀로나-카탈루냐 그랑프리의 타이어 컴파운드 조합은 2025년 C1-C2-C3 조합에서 C2-C3-C4 조합으로 한결 소프트해졌는데요. 이번 바르셀로나 트랙 노면이 타이어를 꽤 거칠게 다루는 것 같고, 작년 타이어 컴파운드가 한 단계 더 단단했는데도 피트스탑을 두 번 하는 2-STOP 전략이 대세였기에 올해도 각 팀들은 2-STOP 이상을 기본으로 세팅할 것입니다.
결국 스틴트 전환 타이밍이 레이스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겠습니다.
차량 업데이트 (페라리 업데이트)
이번 바르셀로나 그랑프리에서는 특히 페라리가 SF-26 에어로 파츠를 거의 싹 다 바꾸게 되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선두권 경쟁을 위해서 첫 승부수를 띄운 셈인데요. 알핀, 애스턴마틴, 아우디를 제외하고 다들 자잘한 업뎃을 진행했지만 유독 페라리가 프론트 윙부터 디퓨저까지 전면 수정을 했기에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프론트 윙은 앞바퀴 쪽 공기 흐름을 정리해서 다운포스를 늘리게 개선됐습니다. 셋업 잡기가 더 편해질거라는 예측인데요, 실제로 해밀턴은 FP세션에서 다운포스보다 공기저항이 심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노즈 아래쪽은 살짝 들어 올려 차체 밑으로 공기가 더 잘 통하게끔 했습니다.

언더보드도 이번 업뎃에 핵심으로 보이는데, 디퓨저까지 이어지는 면들을 전부 손봐서 뒷부분으로 가는 공기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다운포스를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추가로 사이드포드랑 후면부 형태도 언더보드랑 세트로 움직이게 바꿔서 앞쪽 와류를 잡으려 노력했습니다.
롱런 페이스 & FP2 세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라리가 엄청난 반등을 했는지는 지켜봐야합니다. 많은 변화를 준 만큼 실패하면 리스크에 대한 댓가를 지어야하니까요.
FP2 세션에서는 노리스-러셀-피아스트리가 0.1초 이내로 1~3위를 기록하며 마무리됐습니다. 4위는 선두에 0.373 뒤진 르클레르고 막스 베르스타펜은 0.895초 차이로 6위를 기록하며 아직 선두권과는 갭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롱런 페이스를 테스트하는 팀들도 많았는데요. 페라리와 메르세데스가 롱런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르클레르는 메르세데스보다 스틴트에서 달린 랩 수가 훨씬 적었기에. 이를 환산해 보면 르클레르의 롱런 페이스가 메르세데스보다 떨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맥라렌은 한 랩을 도는 숏런은 좋았지만, 타이어 마모가 심해서 롱런 페이스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예상도 해봅니다.
전반적으로 타이어 갈리는 문제 때문에 본 레이스에서 소프트 타이를 과연 쓸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션 초반 RB의 리암 로슨은 엔진 문제로 차량을 메인 스트레이트에 세우면서 위험한 장면이 초래될 뻔 하기도 했는데요. 뭐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안드레아 키미 안토넬리의 활약에 연일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아직 10대인 이 청소년 청년의 그랑프리 우승 횟수가 벌써 5회입니다. 그 것도 5회 연속 우승이고요. 중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일본, 마이애미, 캐나다, 모나코에서도 연달아 트로피를 올렸습니다.
역대 F1 역사에 5회연속 GP 우승을 해본 드라이버는 안토넬리를 포함해 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코너인 "기록 & 통계"에서 준비해봤습니다. 역대 그랑프리를 최장 연속 우승한 드라이버는 누구일까요?

이 기록의 첫 시작은 1952년 시즌 세 번째 그랑프리인 스파-프랑코샹에서 페라리 소속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열었습니다. 지금도 드라이버들에게 까다로운 오 루즈(Eau Rouge) 코너가 당시에도 존재했다고 하네요. 아스카리는 1953년 시즌까지 총 7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연승 기록이 다시 등장한 건 1960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잭 브라밤이 쿠퍼-클라이맥스를 타고 잔드보르트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포르투 대회까지 5연승을 달성했습니다. 브라밤은 총 3회 월드챔피언입니다.
1965년에는 짐 클락이 6번의 레이스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모나코 그랑프리에 출전하지 않은 걸 제외하면 그중 5번이 전부 연속 우승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스트 런던 트랙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부터 이 연승의 마지막을 장식한 독일 호켄하임링까지 연승을 기록합니다. 나중에 이 트랙의 한 코너에 클락의 이름이 붙게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8년 이곳에서 열린 F2 경주 중 일어난 사고로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생각엔 클락이 사고 없이 조금 더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F1의 수많은 기록들이 일찍부터 꽤 많이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로부터 5연승 기록을 위해서는 약 3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번엔 나이젤 만셀이 시즌 초반 5연승을 달리며 1990년대 윌리엄스-르노 팀의 독주 시대를 열었습니다. 캬라미 개막전에서 팀 동료 리카르도 파트레세를 제치고 첫 승을 신고하며 연승을 이어가던 중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타이어 바람이 미세하게 빠지며 진행한 피트스톱만 아니었다면 연승은 아마 계속됐을 겁니다.

이어서 미하엘 슈마허와 페라리의 시대가 찾아옵니다. 슈마허는 2000년 몬차부터 2001년 세팡까지 총 6번 우승했습니다. 2004년에도 이몰라를 포함해 초반 5개 대회를 연속 우승하며 5연승, 그리고 같은 시즌에 또 한번 독일 그랑프리부터 헝가리 그랑프리까지 7연승의 기록을 추가했습니다.

2013년 시즌에는 셉바스티안 베텔이 9연승을 기록하며 당시 신기록을 썼고 1년 뒤, 루이스 해밀턴도 2014년 5연승을 거두며 월드챔피언을 차지합니다.
니코 로즈버그는 2015년 막판 3개의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2016년 첫 네 그랑프리에서도 우승하며 결과적으로 7연승을 달성했고, 그해 마침내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합니다.
2020년대 들어서는 여러분들이 많이 아시는 내용입니다. 2020년에는 해밀턴이 커리어 두 번째로 5연승을 기록했고, 최근 기록으로 넘어오면 역시 막스 베르스타펜이 2022년 5연승, 1년 후인 2023년엔 무려 10연승이라는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굵직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마이애미, 모나코, 바르셀로나, 몬트리올, 스필버그, 실버스톤, 부다페스트, 스파, 잔드보르트, 몬차에서 모두 우승했죠. 싱가포르에서 5위를 하며 연승이 끝났지만, 바로 일본 그랑프리에서 새로운 연승을 시작해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 두 번째 레이스 경기까지 통산 또 한번 9연승을 기록합니다.
매 레이스의 흐름을 봅니다만, 베르스타펜의 이런 꾸준하고 빈틈없는 주행은 앞으로 다른 드라이버들이 넘어서기 정말 힘든 벽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과거보다 더 경기 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그 시즌을 지배하면 연승을 하기는 더욱 쉬워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F1 기록: 영웅들은 기억된다』 시리즈 연재
알베르토 아스카리

1) 페라리 초대 우승자
1952년 포뮬러원 시즌도 모터스포츠 역사에 중대한 기점으로 기록된다. 알파 로메오의 급작스러운 철수로 인해 챔피언십 규정이 2000cc 포뮬러투(F2) 사양⌕으로 변경되면서, 그리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 속에서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그들의 에이스 드라이버 알베르토 아스카리에게는 우승 할 수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페라리는 이 규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레이싱카를 보유하고 있었고, 아스카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최상의 무대를 만난 셈이었다.
그 해 아스카리의 질주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시즌 초반, 1라운드인 스위스 그랑프리 대신⌕ 출전한 2라운드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그는 리타이어 했지만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치른 3라운드부터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승수를 쌓았다. 페라리 500 경주차에 몸을 실은 아스카리는 남은 6번의 챔피언십 레이스(벨기에,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의 드라이빙은 스피드 이상의 예술의 경지를 보였고, 각 레이스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Fastest Lap)까지 모두 기록할 정도였다. 섬세한 정밀함과 냉철하게 계산된 정확성을 바탕으로한 주행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 차이로 경쟁자들을 무력화시켰다. 1952년 그는 총 8번의 대회 중 6승이나 쓸어 담으며 완벽한 시즌을 완성했다.
1952년은 알베르토 아스카리에게 영웅적 모멘텀의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인으로서, 그리고 페라리 역사상 최초의 월드 챔피언으로 마침내 정상에 선 것이다.
2) 기묘한 이야기 - 상처와 징크스
알베르토 아스카리의 삶은 유명 레이싱 드라이버였던 아버지 안토니오 아스카리의 영향이라는 빛과 그림자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명성 덕에 레이싱계로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동시에 평생 떨쳐낼 수 없는 상처도 생겼다.
1918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스카리는 1920년대 그랑프리 스타였던 아버지 안토니오의 아들로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25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선두를 달리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며 사망했다. 당시 어린 아스카리의 나이는 불과 일곱 살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어린 아스카리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고, 마음 속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아스카리는 원래 레이싱 경력을 바이크로 시작했다. 19세에 비앙키(Bianchi) 팀과 계약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1940년에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엔초 페라리의 도움으로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레이스에 참가하며 4륜차량 경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충격으로 인해 어린 아스카리는 지독하게 미신(징크스)을 믿는 성격이 되었는데, 그는 검은 고양이를 피하고 불운한 숫자를 두려워했으며, 자신의 '행운의 파란색 헬멧'과 레이싱 장비가 든 가방은 다른 사람이 절대 만지지 못하게 했다. 남들보다 유난스러운 징크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처럼 그랑프리 레이서가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레이스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동료 드라이버 루이지 빌로레시와 함께 북아프리카의 군부대에 연료를 공급하는 운송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없던 빌로레시는 아스카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자 멘토였고, 전쟁이 끝난 후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레이싱을 망설이던 그를 설득하여 다시 트랙으로 이끈 결정적인 인물이 됐다.
3) 첫 단추를 꿰지 못했던 페라리와 아스카리
다시 아스카리의 F1 데뷔로 시간을 돌려보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랑프리 레이싱은 재건의 시기를 거쳐 1950년, 마침내 최초의 포뮬러원(F1) 월드 챔피언십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를 통해 아스카리가 많은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역대 F1 드라이버에 손꼽히는 위치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아스카리는 루이지 빌로레시와 함께 마세라티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엔초 페라리는 1949년, 마침내 그와 빌로레시를 스쿠데리아 페라리로 영입했다. 1950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F1 월드 챔피언십에 공식 데뷔한 아스카리는 2위를 차지하며 나름 화려한 시작을 알렸지만, 당시 페라리의 125 F1 레이싱카는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던 알파 로메오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스카리의 잠재력이 본격적으로 폭발한 것은 1951년 시즌. 그는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독일 그랑프리와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후안 마누엘 판지오와 치열한 챔피언십 경쟁을 펼쳤다. 시즌의 향방을 가를 마지막 레이스인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그는 폴 포지션을 차지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음에도, 레이스 도중 타이어 선택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판지오에게 우승과 챔피언 타이틀을 모두 내주고 만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951년의 이 뼈아픈 패배는 아스카리는 이후 성공의 시대를 여는 디딤돌이 된다.

4) 페라리를 위해 남긴 유산
1952년과 1953년 시즌은 알베르토 아스카리의 '황금기'로 정의된다. 이 2년간 그는 F1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지배력을 선보인 드라이버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포뮬러원 최초의 2회 연속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1952년 F1 규정이 포뮬러투(F2)로 변경되자, 아스카리와 페라리 500 경주차의 조합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시너지를 발휘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아스카리는 시즌 치러진 총 8번의 포인트 레이스 중 출전한 7번의 레이스에서 총 6회를 우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더욱이 우승한 6번의 레이스에서 모두 가장 빠른 랩 타임(Fastest Lap)을 기록해, 당시 규정상 획득 가능한 최대 점수를 모두 획득했다는 사실은 더 놀라웠다. 실로 완벽 그 자체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F1 지배력은 1953년에도 지속된다. 시즌 개막 후 3개 레이스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인디 500을 제외하면 9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게 된다. 이 시즌의 우승은 단순한 타이틀 방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꽤 경쟁력 있는 마세라티를 타고 그리드에 복귀해 경쟁한 시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카리는 2승을 더 추가하면서 시즌 총 5승으로 흔들림 없이 판지오를 꺾고 두 번째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확보하며, 자신이 논쟁의 여지 없는 최고 드라이버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게 된다.
아스카리의 드라이빙은 '신중한 정밀함(careful precision)'과 '정교하게 계산된 정확성(finely-judged accuracy)'으로 요약되는데, 엔초 페라리는 그의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가 선두에 있을 때, 그를 추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 엔초 페라리
이 말처럼, 그는 한번 리드를 잡으면 상대에게 단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철벽과 같은 존재였다.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오른 아스카리는 그러나, 그의 경력 경로를 극적으로 바꿀 운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5) 적응과 도전
위대한 드라이버의 역량은 종종 기술적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으로도 평가된다. 알베르토 아스카리는 포뮬러투(F2) 규정으로 변화한 단 한 번의 기회를 완벽하게 활용해 정상에 오른바 있다. 그런 그가 또 다른 변화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을 감행했던 적이 있다.
바로 1954년 시즌을 앞두고 그는 연봉 문제로 페라리를 떠나 란치아(Lancia)로 이적하게 된 사건이다. 그렇게 아스카리는 페라리 차량의 보장된 레이스 지배력을 포기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신차 란치아 D50의 잠재력에 도박을 걸었다. 하지만 D50의 개발은 점점 지연되면서 1954년 시즌 막판까지 그는 결장하거나, 구형 차량으로 경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출전한 그랑프리에서는 단 한 번도 완주하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을 겪게된다. 디펜딩 챔피언 아스카리의 입장에서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시즌 마지막 9라운드 스페인 그랑프리.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D50의 데뷔전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 경기를 이끌며 레이싱카가 가지고 있던 잠재력을 입증해 보였지만, 이 마저도 리타이어로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1954년은 그의 성적은 25위. 당시 포인트 획득자가 26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디펜딩 챔피언으로써 기술적인 면에서나 커리어면에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아스카리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1954년의 시즌이 그를 온전히 볼 수있는 마지막 시즌이었다는 것을...
6) 미스터리의 사고
대중에게 그는 '치치오(Ciccio, 통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친근하고 매력적인 드라이버였지만 사적으로는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는 예민한 남자였다. 검은 고양이나 불길한 숫자를 피하는 등 극도로 미신적인 성향을 보였다. 특히 '행운의 파란 헬멧과 티셔츠'가 담긴 서류 가방에 대한 집착은 유명했는데, 이는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와 깊이 연관되었던 것이다. 엔초 페라리가 왜 가족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아스카리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그들을 일부러 차갑게 대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그들이 저를 너무 많이 사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래야 언젠가 제가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왔을 때, 그들이 덜 고통받을 테니까요."
그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1955년 5월 22일,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선두를 달리던 그의 란치아 경주차는 시케인을 놓치고 그대로 항구의 바다로 추락했다. 모두가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코뼈 골절상만 입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불과 나흘 뒤인 5월 26일, 그는 이탈리아 몬차 서킷을 찾게된다. 경기가 없는 날이었음에도 말이다. 원래는 동료 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가 테스트하는 것을 지켜볼 예정이었으나, 주행을 지켜보던 아스카리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이 끝내 몇 바퀴만 달려보겠다고 부탁하게 된다. 아스카리는 평상복 차림이었고, 갑작스러운 주행으로 늘 가지고 다니던 행운의 파란 헬멧도 지참하지 않았다. 대신 카스텔로티의 헬멧을 빌려 쓰게된다. 그리고 세 번째 랩, 그의 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끄러지며 전복되었고, 알베르토 아스카리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지금까지 불충분한 이유들로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가 되었다.
7) 아스카리가 남긴 기록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모터스포츠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남긴 눈부신 기록과 압도적인 당시 경쟁력뿐만 아니라, 동시대 라이벌들이 그의 주행 스타일을 선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더욱 그를 오랜시간 기억하게 했다.
- 포뮬러 원 최초의 2회 연속 월드 챔피언 (1952, 1953)
- 페라리의 유일한 이탈리아인 월드 챔피언
- 페라리 소속으로 2회 연속 타이틀을 획득한 단 두 명의 드라이버 중 한 명 (2000-2004 미하엘 슈마허의 5연패가 최고 기록)
- 한 시즌 최고 승률(1952년, 75%) 기록을 70년 이상 보유 (이후 막스 베르스타펜에 의해 경신됨. 2023시즌 86.4%)
동시대 최고의 드라이버들은 그의 위대함을 이렇게 평가했다.
- 후안 마누엘 판지오: "나는 가장 위대한 경쟁자를 잃었다."
- 마이크 호손: "아스카리는 내가 본 드라이버 중 가장 빨랐다. 판지오보다도 말이다."
- 엔초 페라리: "선두에 있을 때, 그를 추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경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아버지 안토니오의 죽음과 소름 끼치도록 닮은 비극적인 평행이론에 대한 이야기다.
- 아버지와 아들 모두 36세에 사망.
- 두 사람 모두 월 26일에 사망.
- 두 사람 모두 심각한 트랙 위 사고에서 살아남은 지 나흘 만에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
- 두 사람 모두 빠르고 쉬운 왼쪽 코너 출구에서 사고가 발생.
- 두 사람 모두 13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기록.
- 두 사람 모두 슬하에 두 자녀를 남김.
사람들은 미신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오랜기간 크게 회자된 이유는 그가 압도적인 챔피언십 성적을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터스포츠의 가장 위험했던 시대인 1950년대. 그 위험한 시대에서 가장 화려했지만, 한편으론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했던 아스카리가 신화적인 본질의 양면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더 전설적으로 기억된다.
8) 주요 기록
- F1 출전: 34 (32 starts)
- 우승: 13
- 포디움: 17
- 폴포지션: 14
- 패스티스트 랩: 12
- 월드 챔피언십: 2 (1952, 1953)
- 데뷔년도 / 은퇴년도: 1950 / 1955
- 역사적 랭킹 특징: F1 최초의 2회 연속 월드 챔피언, 현재까지 페라리의 유일한 이탈리아인 월드 챔피언.
새로운 포멧으로 뉴스레터 시즌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성하는데 꽤 많은 (사실 아주 많은.. ㅠ)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많은 분들이 구독하실 수 있도록 널리 널리 퍼트려주세요. 제가 이 뉴스레터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롯이 여러분의 관심과 칭찬 뿐입니다!
드라이버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F1 기록: 영웅들은 기억된다』 시리즈는 제가 작년 12월부터 준비를 하다 멈춘 프로젝트입니다. 저도 공부할게 많아 할애되는 시간이 많은데.. 최대한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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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카탈루냐 그랑프리 잘 보시고 저는 다음주 토요일에 뉴스레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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