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형적인 교회언니였습니다"
ː 홍소라의 신앙 이야기
40대, 두 아이의 엄마, 오랜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대학원에서 언어병리학을 공부하는 학생 홍소라입니다. 저는 서울의 ○○교회(예장통합)에 출석하는 전형적인 교회 언니였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의 복음주의자로 교회학교 회장, 소그룹 리더, 반주자, 각종 교회행사와 모임에 빠지지 않는 성실하기만 한 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근주 교수님의 책을 읽었고, 그 읽기가 지금의 저를 가능케했습니다. 이제 교회의 담장을 넘어 일상의 공의와 정의에 대해 고민합니다. 희년을 상상합니다. 무너진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땀을 흘립니다.
ː <이사야가 본 환상>, 생각의 전환
제가 사는 동네, 학교, 주변 사람, 정치성향은 한마디로 ‘보수’입니다. 보수적 환경은 다른 입장과 관점을 상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저는 항상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관을 절대선처럼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몇년 전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언서’를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김근주 교수님의 『이사야가 본 환상』(비블리카아카데미아, 2010)을 만났습니다. 그때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진술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가르침에 관한 분명하고 실질적인 본문에 놀랐습니다. 그동안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한채 형식적 종교 예식만 반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복음의 공공성』, 『특강 예레미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등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리고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로 달려갔습니다.
"저항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미움 받을 수 있는 신앙"
ː 부끄러움에서 용기로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일이었습니다. 마땅히 보고, 느끼고, 관심을 가져야 했던 것들을 지나쳤음에, 몰랐음에,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신앙과 가치관의 변화는 곧 제 관심사의 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데모와 파업이 있는 곳,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에 시선이 갔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에 뿌리내리는 신앙을 고민했습니다. 보수교회가 추구하는 전형성을 답습하는 교인에서, 때로는 저항하고, 설득하고, 미움 받을 수 있는 신앙을 상상했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신앙, 어른들에게만 칭찬받는 교회용 교인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용기가 생겼습니다.
ː Living Jesus
2020년 제가 부감으로 있던 청년부에서 김근주 교수님의 『특강 예레미야』를 몇명의 청년들과 공부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자신의 신앙관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문제는 막상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들이 배우고 깨달은 것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였습니다. 몇몇 청년들은 마음에 갈등을 안고 이 교회를 떠나야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때마침 3명의 청년의 제안으로 일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모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Living Jesus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Living Jesus는 세미나와 실천 두 영역으로 활동합니다. 먼저 노동, 젠더,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공부합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살펴봅니다. 모임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복음의 공공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실천활동은 교회 근처의 도시형 대안학교와 연계해 검정고시와 입시에 도움을 주고, 서울 거주 난민 아동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함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노숙인 케어 봉사단체와 협력, 우리동네 플로깅 활동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6명의 청년으로 시작했던 모임은 어느새 15명 정도의 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불의하게 번 돈으로 살지 않겠다"
ː 특강 예레미야가 쏘아올린 작은 공
"특강 예레미야가 쏘아올린 작은 공" Living Jesus 모임의 청년이 언젠가 했던 말입니다. 청년 중 한 명은 『특강 예레미야』를 읽은 후, 부모님의 부동산 투기가 마음에 걸렸다고, 자신은 불의하게 번 돈으로 생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또 청년 몇 명은 북클럽을 운영하며 신앙서적을 나눕니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책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본인들이 깨달은 내용을 다른 청년들에게 알려줍니다.
Living Jesus는 우리가 하는 일을 '봉사활동'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선행'이라는 말 대신에 그냥 이웃이 되려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각자 삶에 치이고 바쁜 청년들이지만 신앙의 의미,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 서로 다름을 배우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손에는 이미 작은 공이있습니다.
ː 첫 아이의 난청, 좌절은 시작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당황스럽고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아이의 청력이 정상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신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천만금이 있어도 아이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습니다.
난청은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치료할 수는 없으며, 보청기나 인공와우 등의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물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눈물의 시간을 거치면서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장애아와 부모의 마음이 이해됐습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병을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슬픈 상황, 나의 괴로움과 그들의 좌절이 또렷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장애아와 부모의 마음 이해"
ː 나를 믿고 의지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난청인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언어치료를 꼭 받아야 합니다. 첫 아이의 질병으로 인해 언어병리학(언어치료라 불리는 학문)을 알게 됐습니다. 평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 저는 장애 아동과 부모들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언어병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언어치료를 받는 중증장애 아동의 경우 치료사와 부모는 아이에게 함께 있어 줄 유일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에 힘써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실습 담당 선생님에게 들은 말입니다. 나의 만족을 위한 공부에서 다른 이를 위한 이타적 공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ː 사교육 일번지에서 진짜해야 할 테스트
저는 한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 때문에 이곳에 사는 것은 아니어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곳 학원도 레벨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5세, 6세 나이와 상관없이 말을 하는 순간 레벨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학원이 부지기수입니다. 특히 인기 많은 학원에 들어가려면 레벨테스트 준비를 위해 다른 학원을 다니거나 개인 과외를 받기도 합니다. (헉! ㅠㅠ )
올초에 초등 2학년인 첫째 아이의 부모참관 수업에 갔습니다. '자신의 좋은 점과 고쳐야 할 점'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자신의 장점으로 "수학을 잘해요", "영어를 잘해요"라고 말하더군요. 놀라웠던 점은 아이들이 고쳐야 할 점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수학을 못해요" "저는 영어도 못해요" 9살 아이들에게 성적은 이미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학업과 성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Living Jesus에서 활동이 있을 때마다, 조금 힘들어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난민 아동들과 함께 뛰어놀고,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누고,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부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 불평등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가르칩니다. 그런 분들에게 다가가서 우리가 할 일이 있음도 이야기 합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시간과 노력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당연한 일부분임을 배우게 하고 싶습니다. 내 아이에게 "우리 부모님은 너무 위선적이야"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의견과 토론이 살아있는 교회가 필요해"
ː 권위적 남성중심의 허들
지나치게 목회자의 위계에 의존하거나 남성중심적 교회는 구성원을 힘들게 합니다. 평신도가 비평적 제안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건강한 교회입니다.
흔히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면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20년 넘게 교사를 하신 분이 개인적 사정으로 교사 모임에 불참할 수 밖에 없다고 담당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를 했는데, 그분께 더이상 교사를 하지 않는게 좋다고 답을 했다더군요.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요. 그 목회자는 본인의 신념대로 교회의 모든 것을 단번에 바꾸려고 했습니다. 교회를 자신이 생각하는 소명을 성취하는 장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목회자의 스타일을 높게 평가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을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질문도 토론도 수용하지 않습니다. 청년부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성경공부를 인도하느냐는 비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비난은 목회자들보다도 갑갑함으로 무장한 성도에게 더 많이 듣습니다.
한편 성공한 60대 남성 장로들만이 교회를 대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저희 교회의 경우 70%가 여자 성도입니다. 교회 내 많은 섬김은 여성들에 의해 이뤄집니다. 교회의 직분까지 남성, 사회적 성공여부, 재정적 기여도로 측량하는 것은 봉건성과 남성중심적 성과주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꼴입니다. 입으로는 교회의 내일을 위해 청년들과 젊은층에게 지원하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들 세대의 상황과 입장은 살펴보지 않습니다. 기존의 틀에 억지로 새로운 세대를 적응시키려고만 애씁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ː 느헤미아 여름 수련회
올 여름 느헤미야 교회협의회에서 주최한 여름 수련회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그룹 교제에서 서로의 교회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회, 청년들에 특화된 교회, 기존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운영되는 교회 등 여러 교회의 새로운 시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위로와 용기를 받았습니다.
"한 권의 읽기에서 시작됐습니다"
ː 스스로 같이 읽기, 김근주읽기
많은 경우 혼자 책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교회에서 책읽기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나눔을 하면서 혹시라도 상처 받는 사람이 있을까봐 말을 많이 아꼈습니다. 자기 검열을 너무 심하게 했지요. 김근주 읽기는, 김근주 교수님의 책을 자원해 읽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가요.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함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설렙니다.
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김근주읽기 북토크'
여러 교회, 다양한 연령층, 다른 지역에서 모인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나눌 수 있는 것도 반갑고 색다른 포인트입니다. 나와는 다른 경험, 신앙 배경을 지닌 분들의 솔직한 소감을 읽으며 미처 생각치 못한 새로운 관점과 생각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솔직함의 용기를 배웁니다.
책 읽기 후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너무 유익합니다. Q&A 시간이 있어서 좋습니다. 지난 시즌3 북토크 '부활과 성서'에서 전성민 교수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께서 일반인 입장에서 궁금할 만한 질문들을 적나라하게(?) 해주신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북토크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나의 배움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때도 좋은 참고가 되기에 귀중한 시간입니다. 다만, 좀더 다양한 방식의 북토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현장 참여, 온라인+오프라인 모두 시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근주읽기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좀 더 생동감 있는 북토크가 되지 않을까요.
(동영상: '부활과 성서' 북토크)
ː 김근주 읽기 계속 참여하나요
김근주 읽기가 사라지는 날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의 전부라 생각하는 순간, 욕심과 오만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위해 김근주 읽기에 계신 분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난 6호 뉴스레터에서 이영희 님이 "김근주 교수님께 부디 계속 책을 써 달라" 부탁하셨지요. (저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maily.so) 저도 같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근주 교수님의 책을 읽고 저도 변했지만, 제 남편도 이제 공의와 정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에서 수업을 듣고, 희년캠프에도 참석했습니다.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어떻게하면 희년 정신을 이룰지도 고민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한 권의 읽기로 시작됐습니다. 제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서로 동역자가 되고 서로 의지합니다. 부디 더 많은 책을 함께 읽고,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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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홍소라님! 감사합니다. 뉴스레터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라님이 너무나 자랑스럽네요^^우비를 입고 연탄을 나르는 따님의 사진은 그냥 '천사'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럽다니요. 전형적인 교회 언니가 하나님 사랑 장착하시고 용기를 얻으시니 좋은 일들을 이렇게 해내시는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언제 만나뵐 수 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홍소라님 참 멋지세요!! 무더위에 가족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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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
'그냥 이웃이 되려합니다.' 그냥 너무 평범한말 같은데, 심쿵하면서 확 와 닿는~~^^ 참으로 멋진 교회동생^^ ㅎ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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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빠
신앙생활을 하며 잘못된 틀에 갇혀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는 고민과 궁리를 통해 깨닫고, 직접 생활 속에서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는 모습에 큰 감동 받았습니다. 준비하시고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길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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