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성전기> 대담 2부 · 김근주&이광하 목사

김근주읽기 별지 30_'제2성전기' 더 깊이 읽기_김근주, 이광하

2025.12.03 | 조회 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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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읽기

'김근주읽기'는 신학자 김근주 목사의 저서를 함께 읽는 독서클럽으로, 책 이야기, 모임 안내,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뉴스레터로 전합니다.

김근주읽기 3년. 시즌10의 피날레로 김근주 · 이광하 목사님의 <제2성전기> *대담을 2회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대담 ②에서는 요시야 개혁의 관점에서 본 신명기 역사서와 예언서, 문서편집설과 역사비평, 제2이사야의 창조와 구원 사상 등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포로기는 유대 지역과 이스라엘 땅이라는 공간의 제약을 넘어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온 시기라 할 수 있다. 나라가 있을 때는 분열하고 깨졌으나, 나라가 사라지자 오직 야훼 신앙 하나만이 그들을 결속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_김근주, <제2성전기> 43~44쪽 * 본 대담은 2015년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진행한 김근주 교수님의 '주제별 전문 연구-제2성전기 연구'에서 이광하 목사님이 작성하신 문답 노트를 옮기고 재구성했습니다.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김근주 목사 & 이광하 목사_김은석, 복음과상황 제공
김근주 목사 & 이광하 목사_김은석, 복음과상황 제공

포로기에 이르러 야훼 신앙은 온 열방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이미 야훼 신앙 안에 존재했던 것이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명료하게 드러났다. 포로기가 야훼 신앙의 면모를 두드러지게 드러낸 것이다! 위기시에 위축되고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본질적 깊이가 드러나는 것도 있다. 구약 신앙을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시킨 중추는 '야훼께서 온 땅을 다스리신다'라는 이스라엘 신앙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신앙 고백이었다.❜❜

_김근주, <제2성전기>Ivp, 95쪽

 

part 2.1 ㅣ 요시야 개혁의 빛과 한계 2 

 

이광하 ː  요시야 개혁의 역사적 경험이 유배기에도 포로된 유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아닙니까? 유배기의 폐허에서 공동체적 희망을 볼 수 있는 사건과 경험이 없이 예언자들의 메시지만으로 희망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이런 질문을 갖게 합니다.

김근주 ː  신명기 역사서 역시, 왕정기 동안에 상당한 분량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신명기도 그렇고 신명기 역사서도 그렇고, 요시야 시대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전사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개혁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고 온 유다를 포괄하는 변화까지 이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요시야를 매우 높이 평가했지만(22:15-16), 요시야 개혁은 기울어가는 유다의 마지막 몸부림일 뿐,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신명기는 4장과 30장에서 이스라엘의 포로됨과 쫓겨남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바꾸실 것에 대한 기대가 이 부분에 있습니다.

신명기,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멸망 사건의 충격이 이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은 대담 1부에서 받아옴)(대담 1부 : <제2성전기> 대담 1부 · 김근주&이광하 목사)

 

이광하 ː  요시아 개혁과 관련해 신명기 역사서와 예언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겠습니다.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요시야 개혁의 배경에 신명기가 있고, 포로기 동안에 신명기가 다듬어지고 편집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시야 시대의 소망과 기대는 그의 갑작스러운 전사로 중단되고, 결국 위로부터의 개혁이 온 유다를 포괄하는 변화에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하셨어요. 

다시 궁금한 것은 신명기적 개혁은 에스라-느헤미야에게 더 적합하게 보이고,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신명기보다 더 보편적이고 철저한 변화로써 새언약을 전망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예레미야는 요시야 개혁의 한계를 보았다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요시야 개혁과 신명기를 다시 돌아가서 완성해야 할 기준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근주 ː  최종적인 형태로서의 신명기는 언제건 야훼께로 돌이킬 것, 그리고 야훼와 함께 그의 규례와 법도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신명기의 매우 강경한 어조는 멸망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경한 어조는 에스라-느헤미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개혁을 이루어가야 하는 에스라-느헤미야에게 신명기 역사서에 기반한 역사 반성, 그리고 규례와 율법 모음으로서의 신명기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역할은 규례와 법도에 따른 철저한 순종에 초점이 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날에 대한 기대와 비전을 증언하는 데 초점이 있다 여겨집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 두 예언서가 전하는 미래 회복은 전적으로 야훼께서 행하실 구원을 전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이 점은 멸망 시기와 포로기 초기 유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던 예언자들이 직면한 현실과 연관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되, 야훼께서는 친히 그들의 마음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그의 백성 삼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_에스겔 11:20

 

"야훼로 인해 토라를 알고 행하며, 지식을 얻는 세상은 더 이상 누군가가 토라를 독점하거나 그에 기반해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오직 하니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로 새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세상은 누구라도 동등하고 평등한 세상일 것입니다. 예언자들이 본 미래,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혁명적이고 가장 진보적인 것입니다."(88쪽)

마르텐 반 히엠스케르크Maarten van Heemskerck, '요시아에게 율법서를 읽어주는 사반' 1569년 _벨기에 왕립 도서관 도판
마르텐 반 히엠스케르크Maarten van Heemskerck, '요시아에게 율법서를 읽어주는 사반' 1569년 _벨기에 왕립 도서관 도판

이광하 ː 감사합니다. 신명기 역사서, 예언서 그리고 요시야의 개혁까지 포로기 이전의 역사보다 포로기 유배의 경험이 유대교와 기독교 형성에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계시적 사건이었구나 싶습니다.

 

김근주 ː 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유배의 충격이 결정적이다 싶습니다.

 

part 2.2 ㅣ 역사의 주름, 제2이사야서

 

❛ 제2이사야서에 이르러 야훼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로 확장된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주장인, 야훼 하나님 한 분만이 온 세상의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점도 선포된다. 야훼의 우주적 통치와 야훼 유일신 신앙은 단단히 결합한다. ... 그리고 야훼 한 분만이 하나님이시기에 논리적으로 당연하게 야훼의 다스리심 가운데는 이방 백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_김근주, <제2성전기>Ivp, 92쪽

 

이광하 ː 제2성전기 연구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성경이 한 번에 쓰인 책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적·신학적 과정을 거쳐 기록되고 편집되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창세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문서편집설'1)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엘로힘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차이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고, 창세기 곳곳에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이미 서사 속에 배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신명기는 더욱더 다양한 역사적인 배경과 전승이 주름처럼 접혀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성서 해석에서 역사비평은 필수적입니다. 모세 단일저작설을 전제로 한 공시적인 해석은 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무모한 전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차라리 비평적인 입장에서 출발해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하는 편이 더 적합한 방법론이 아닐까요? 

 

김근주 ː 역사비평학2)은 그저 성경을 파괴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본문 안에 존재하는 모순, 논리의 비일관성, 중복 등을 가장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와 연관됩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 본문이 단번에 주어진 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추가되고 병렬되고 편집되어 정리된 결과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사비평은 이처럼 본문이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 특정한 문제의식과 연관하여 형성되어갔다는 역사비평의 제안을 숙고하다보면, 결국 본문은 상황과의 대화 속에, 달리 말해 상황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형성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본문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필요로 인해 본문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본문이 상황을 납득하고 살아가게 합니다.

가령, 룻기가 사사 시대에 서술되었다는 진술은 지나치게 평면적인데,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볼 수 있는 외부인에 대한 지나친 배척과 배제에 맞서서,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증언하며, '하나님 백성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문제 제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때에, 룻기의 의미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문서편집설 : 문서편집설은 성경의 창세기 등 일부 문서들이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저자에 의해 편집, 추가, 수정된 것이라는 신학적 이론이다. 대표적으로 창세기, 신명기 등이 단일 저자가 아닌 여러 문서(예: J, E, D, P 등)가 합쳐져 완성된 것으로 본다. 문서편집설은 성경 해석의 다양성을 넓히고, 역사적·비평적 연구의 토대가 된 이론이다.  

2) 역사비평학 : 역사비평학(역사적 성서비평)은 성경을 역사적·과학적 관점에서 분석, 저자가 사용한 자료와 편집 구조, 문학 양식 분석, 본문 이면의 역사적 사건과 형성 과정을 밝히려는 학문적 방법이다.  본문비평, 자료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의 문헌학적 비평이 있고, 신학적·종교적 중립성을 중시한다. 


이광하 ː 2이사야의 창조와 구원의 사상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상을 언약 백성의 창조와 미래 전망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2이사야 활동 시기와 창세기 1장의 기록 연대와 저자는 겹쳐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2이사야에게서 우주 창조와 언약 백성 창조가 통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2이사야는 모세오경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세계 창조와 언약 백성을 창조하고 구원하는 두 흐름의 종합이 제2이사야 때에 새롭게 제시되었다고 하셨는데요. 모세오경을 최종적 형태로 구성하는 핵심적인 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창조라는 관점에서 언약 백성의 창조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생각이고요.

이광하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_복음과상황 제공
이광하 일산은혜교회 담임목사_복음과상황 제공

김근주 ː 이사야 40-66장에 '토라'라는 표현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2이사야에 다섯 번(42:4,21,24; 51:4,7) 나오고, 3이사야 부분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야훼의 토라' 혹은 '모세의 토라'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주전 5세기 초·중반 작품이라 여겨지는 말라기에서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기와 귀환 직후에 토라가 공동체 전체에 어떤 확고한 실체로 확립되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2이사야에서 언급되는 '토라' 역시 오경의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야훼의 말씀'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경과 제2이사야 사이에 어떤 연관을 바로 말하기는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포로기를 거치면서 골라 가운데 '야훼의 온 세상 창조', '출애굽 사건을 행하신 주님께서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시리라는 기대' 같은 것들이 형성되고 확산되었으리라고는 유추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가 제2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본문들이겠구요.

야훼 유일신 신앙의 확산이 온 세상 열방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로 이어졌고, 그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경의 '제사문서'(P)일 것입니다. 2이사야에서 제의에 대한 언급이나 강조가 전혀 없음을 생각할 때, 2이사야와 제사문서를 이루는 제사장 집단 사이의 어떤 연관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시대에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두 작품 사이의 연관을 말할 수는 있겠다 싶습니다.

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일산은혜교회 협동목사_강미경 제공
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일산은혜교회 협동목사_강미경 제공

"야훼의 통치를 드러내기 위해 제2이사야서가 강력하게 제시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창조주 야훼에 대한 선언입니다. 야훼께서 다스리신다는 선언에 이어(40:10-11), 본문은 야훼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임을 선언합니다.(10:12-26) 땅과 하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기에 그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며(43:19-26), 구원과 공의도 싹트게 하실 것입니다.(45:8) 이전에 태곳적 괴물이 라합과 용을 무찌르시고 바다를 말려 길을 내셨듯이 이제도 그의 백성을 회복하실 것입니다.(51:9-1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선포는 예루살렘 멸망을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로 복귀한 것으로 표현한 예레미야서의 환상(렘4:23-26)과 상응합니다. 예레미야서와 제2이사야서는 창조 신앙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회복을 표현하는 데 기여하는지를 명료하게 대조하여 보여 줍니다."(92쪽)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_예레미야 43:19

 

이광하 ː 네 .그렇다면, 2이사야와 골라 공동체는 어느 정도로 관련이 있을까요? 2이사야의 세계 보편적인 사상과 평화적인 전망을 생각하면, 골라 공동체는 어떤 형태로든지 이미 이방인과 북이스라엘 출신의 유민들을 포용하는 평화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근주 ː  제2이사야는 골라 가운데 살고 있던 그 누군가였을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첫머리는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소명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갔던 이스라엘은 이미 바벨론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백여 년 전에 이주해 와서 살고 있는 북왕국 유민들도 발견했을 것입니다. 골라 사이에서는 사실상 이때부터 남북 이스라엘의 연합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예레미야 30-31장에서 선포하는 남북의 연합과 회복이 디아스포라들에게서 이루어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실증적인 자료를 보기는 어렵지만, 토빗서나 유딧서 같은 작품은 이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외국 나가 살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간격이 덜 느껴지듯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북왕국 출신이냐 남왕국 출신이냐는 그리 관건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광하 ː 예. 교수님 감사합니다.

김근주 ː 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_예레미야 31:10


: 대담 1부) 

 2025년 11월 23일 일산은혜교회 예배당 앞에서 김근주&이광하 목사_김성신 제공
 2025년 11월 23일 일산은혜교회 예배당 앞에서 김근주&이광하 목사_김성신 제공

동영상) IVP 제2성전기 미니 특강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해소할 열쇠'-제2성전기를 이해하다 

제2성전기 | 김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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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미경의 프로필 이미지

    강미경

    1
    11 days 전

    역시~흥미진진합니다! 두분의 대담 기록을 읽다보니 성경을 역사비평적 관점으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다양한 관점으로 꼼꼼히 읽어봐야지 싶습니다. 이광하 목사님! 김근주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보물같은 두 분 덕분에 <제 2 성전기>를 공부하는 기쁨이 큽니다. 좋은 책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공부하는 우리 목사님들 🩷 멋져용🩷 깊은 질문과 대답 속에 사랑의 마음 가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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