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어떤 일을 하는가
650여 년, 넘실대는
『제2성전기』를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음료가 가득 담긴, 곧 넘칠 것같이 넘실대는 잔. 650여 년 역사가 400쪽 채 되지 않는 책에 담겨 있다 보니, 그 밀도가 상당하다(단순하게 수치로만 나누면 페이지당 약 1.7년인 셈이다).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 꽉꽉 담겨 있다.
그중 가장 매혹되었던 부분은 역시 책에 대한 이야기다. "제2성전기 연구는 곧 '정경 형성사' 연구라고도 말할 수 있다"1)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시기는 '책'과 떼어놓을 수 없다. 파란만장했던 역사 한가운데 책이 버티고 있다.
책은 어떤 필요에 의해 쓰이고, 어떤 이유에서 당대에 널리 읽히며, 또 이후 역사를 견딜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제2성전기』의 핵심에 닿아 있다.
"역사를 견디는 책"
성경, 긴장 속의 찬란함
"제2성전기는 책에 대한 관심이 뚜렷해진 시기였다." 특히 본서의 1, 2장에서 다루는 포로기와 페르시아 시대는 "구약성경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야말로 여러 책이 등장한 시기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전대미문의 상황, 그리고 귀환 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이스라엘을 치열한 고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스라엘은 왜 망했을까?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셨는가?' 포로기 속에서 이 질문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각자의 대답은 달랐다. 신명기 역사서는 멸망의 원인을 냉정하게 살피며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탄식시 전통에 서 있는 예레미야애가는 자기비판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에게 정의를 부르짖고 따진다. 이스라엘이 포로기에 대응하는 방식과 해석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왜 망했을까? 포로기에 대응하는 방식과 해석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이후 공동체를 재건하는 시기에서는,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러한 입장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에스라-느헤미야의 강력한 조치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이들이 극소수로 전락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한 사실상 필수적인 사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룻기도 있다. 유대인 남성이 아닌, 모압 여성 룻이 이끌고 가는 이야기가 정경에 있다. 룻기는 에스라-느헤미야의 조치가 정말 최선인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그 존재 자체로 질문한다.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의 주제에 관해 여러 입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쉽게 뭉뚱그릴 수 없는 긴장이 있다. 성경의 아름다움은 이 긴장 속의 찬란함이다.
"룻기와 레위기는…에스라-느헤미야서를 배제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지닌 구약성경은 다채롭다.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야훼 하나님의 영광이 비 오는 날 구름 속 무지개라 하였는데(겔 1:28), 무지개의 본질은 다채로움이다.…즉, 핵심이자 본질은 문자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당대 신앙 공동체의 현실과 위기에 대한 대응, 자유롭고 진지한 대응이다."
책, 시대의 산물
그뿐 아니라 책이 당대 상황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도 『제2성전기』를 통해 볼 수 있다. 전도서는 유대 사회로 밀려드는 헬레니즘의 물결 속에서 쓰였다. 당시 팽배했던 헬레니즘의 낙관주의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전통적(인과응보적) 낙관주의에 반대하며 나온 텍스트가 바로 전도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더 이상 관조할 수만 없는 급격하고 참담한 상황에 마주할 때, 역사에 대한 인식은 좀 더 비판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안티오코스가 극심하게 유대인을 박해하는 가운데서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 문학이 출현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새로운 상상력이 펼쳐졌다.
"책은 시대의 공기와 진액을 담는다."

이처럼 책은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의 공기와 진액이 책에 담긴다. 낙관주의가 팽배한 상황에 묵시 문학이 꽃필 수 없으며, 폭력과 박해의 시절에 전도서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책은 특정 정황 속에서 쓰이며 그렇게 쓰인 다양한 텍스트를 획일화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를 문자의 울타리 안에 숨을 수 없게 한다. 굳건하고 확실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흔들리게 한다. 그러나 흔들림은 생의 본질이다.
"초목은 살아 있을 때는 무르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에 속하고, 무르고 약한 것은 삶에 속한다."2)
초목은 바람에 휘청이고 빗줄기에 요동하지만 푸르르게 살아 있다. '가장 먼저 누울지라도, 가장 먼저 솟구쳐 일어난다.' 살아 있는 텍스트를 탈맥락화해서 고정시킨다면, 그렇게 '굳고 강하게' 만들려 한다면 결국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흔들림은 생의 본질이다."
제2성전기, 책-공동체-현실의 형성기
한편으로는 "야살의 책", "여호와의 전쟁기" 같은 책들이 눈에 밟힌다.3) 영영 사라져 버린 책들. 그런 책이 역사 속에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책 중 상당수도 그러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하지는 않다. 구약성경이라는 위대한 텍스트를 산출한 당시 이스라엘은 그것만을 쓰고 읽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이야기, 사상, 책과 대화한 자들이었고, 그 모든 요소가 상호 작용 했을 것이다. 저자는 『제2성전기』의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2성전기 신앙인들은 야훼 신앙에 기반하여 역사와 현실을 해석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구약성경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신앙인들은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그들의 시대를 해석하고 적용하며 살았고, 그에 따른 결과물로 또 다른 책들을 형성했다. 그야말로 제2성전기는 끊임없이 공동체가 책을 형성하고, 형성된 책이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의 결과로 책이 형성되던 시기이자, 책과 공동체, 현실이 한데 맞물리던 시기였다. 이 점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을 표현했던 책들은 '닫힌 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열린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제2성전기 유대교는 현실과 책, 해석하는 공동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열린 체제였다."
공동체가 책을 낳고, 책은 공동체를 움직인다. 그 가운데 어떤 책들은 시효를 다하고 양분이 되기도 한다. 그 숱한 반복 끝에 당대 공동체의 정수가 불멸의 텍스트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공동체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성경은 닫힌 책이 아니었다. 계시는 먼 시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 성경은 유대인이 텍스트와 대면하여, 거기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황을 거기에 적용하려 할 때마다 새로워졌다. 이 역동적인 비전은 세상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4)
파국과 격변 앞에서 그들은 온 존재를 걸고 텍스트와 씨름했다. 그렇게 함으로 새 길을 열었다. 우리 역시 텍스트에, 말씀에 마음을 연다면 그것은 새로운 차원을 보여 줄 것이다. 바로 그럴 때 텍스트는 현실을 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성전기, 책과 공동체, 현실이 한데 맞물리던 시기"

각주 ∥
1. 김근주,『제2성전기』, IVP, 2025. 이하 각주 없는 인용은 전부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2. 노자,『도덕경』, 76장
3. “‘야살의 책’(수 10:13)이나 ‘여호와의 전쟁기’(민 21:14) 같은 문헌은 역사의 어느 시기엔가 사라졌고 더 이상 후대에 전해지지 않는다. 단순히 잘 보존되지 않아서 사라졌다기보다는, 이와 같은 글이 후대의 상황에 잘 맞지 않았고, 기억하고 간직하며 확산되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카렌 암스트롱, 정영목 역,『축의 시대』, 교양인, 2010
IVP 출판사 소개)
동영상 1) IVP 제2성전기 미니 특강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해소할 열쇠'
[제2성전기 📘 미니특강 1강 ]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해소할 열쇠 — 제2성전기를 이해하다
동영상 2) 느헤미야 라이브 김근주 교수 도서 탐구'제2성전기'
https://youtu.be/FZ0y8rlTLkY?si=hE_-4u74FlON7uEm
동영상 3) 오늘의 구약공부, 전원희 목사, '제2성전기를 만나다'
구약과 신약을 온전히 이어 주는 핵심 고리, 제2성전기를 만나다 l 『제2성전기』리뷰
김근주읽기 활동 자료 모음
https://padlet.com/foucault525/padlet-vxeuxfcdbr47ty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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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박예찬님!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감동이네요. 흔들리며 걸어가는 세상을 향해 성경이 '열린 책'임을 하여 사람과 세상을 향해 하나님 사랑의 음성이 담긴 새역사을 매일 쓰는 책 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귀한 들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박예찬 편집자님🍁🍁 늘 행복한 길 걸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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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
흔들림은 생의 본질이다.. 공감백배입니다. ♡ 저에겐 어려운 책이지만 긴 산고의 과정을 거쳐서 세상의 빛을 보았을거라는 생각이듭니다. 믿음을 삶으로 증거하시는 김근주목사님을 응원합니다. [제2성전기]도 홧팅♡♡♡
김근주읽기
쥬디 님, 공감과 응원의 글 감사드립니다. 복된 날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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