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성전기 - 무너진 성전에서 피어난 신앙"
ː 신구약의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속된 역사
김근주는 제2성전기를 단순히 '신구약 중간기'로 부르지 않는다. 그 표현은 구약과 신약을 단절된 두 세계로 나누고, 그 사이에 공백기를 상정하는 전통적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구약 중간기’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시간적 구획으로 분리하는 잘못된 틀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제2성전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역사 안에서 신앙이 형성되고 진화하던 시기였다. 예수와 바울이 살았던 그 시대의 유일한 성경이 바로 ‘구약’이었다는 사실은, 신약이 새로운 종교의 출발이 아니라 구약 신앙의 결실임을 증언한다고 강조한다. 이 인식은 ‘연속성의 신학’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시간의 단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신앙의 선언이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시대’와 ‘침묵의 시대’를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 적이 없다. 다만 인간이 그분의 말씀을 역사 속에서 읽어내지 못할 때가 있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침묵하신 적이 없다. 다만"

ː 무너진 성전에서 다시 세워진 신앙
제2성전기의 시작은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주전 516년)이었다. 그러나 김근주에 따르면, 성전의 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재형성이다.“첫 번째 성전의 파괴의 직접적인 결과가 두 번째 성전 건립이라는 점에서, 제2성전기 연구는 포로기 이후 시기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벨론 포로라는 거대한 붕괴의 경험 속에서, 이스라엘은 신앙을 물리적 성전에서 말씀과 공동체의 삶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더 이상 제단에 제사드릴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말씀을 편집하고, 과거의 전승을 새롭게 해석했다. 이것이 곧 ‘구약의 형성’이자, 신앙의 재탄생이었다.
저자는 무너짐 속에서도 약속을 포기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상실을 통해 성숙해지는 믿음의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신앙의 구조가 무너질 때 무엇을 붙잡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건물과 제도 안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한다.
ː 헬레니즘과 율법 중심주의 - 열심이 의가 될 때
헬레니즘의 충격은 제2성전기를 흔들었다. 안티오코스 4세의 헬라화 정책은 유대교의 근본을 뒤흔들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율법을 위한 열심’이 신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까지 유대교 경건은 외적 표지를 목숨 걸고 지키는 ‘열심’이라는 말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10장에서 말한 바로 그 “열심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닌” 신앙은 이 시대의 산물이다. 율법 준수는 본래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위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정체성과 배타성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 대신 ‘자기 의’가 세워졌다.
김근주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예수의 등장을 읽는다. 예수는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본질을 회복한 분이었다. 그는 외적 표지의 신앙을 넘어, 인간의 마음과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정의로 율법을 ‘이루셨다’(마 5:17).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은 열심인가, 지식인가? 율법의 정신인 정의와 사랑보다, 외적 경건과 규범을 더 중시하지는 않는지 자문하게 한다.
"율법의 본질은 외적 표지가 아니라, 정의와 사랑이다"
ː 랍비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 두 갈래의 결론
김근주는 제2성전기의 끝을 “구약 신앙의 두 가지 결론”으로 묘사한다. “이 시기의 종교 공동체가 이르는 두 가지 대표적인 반응이 기독교와 유대교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구약에 ‘신약’을 더했고, 유대교는 구약에 ‘미쉬나’와 ‘탈무드’를 더했다. 둘 다 구약 신앙을 계승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기독교는 이방인과 함께하는 신앙, 곧 경계 밖으로 나아가는 복음의 길을 택했다.
반면 랍비 유대교는 율법과 혈통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 정체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김근주는 이것을 단순히 비판하지 않고, 제2성전기의 상처와 트라우마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 박해와 상실의 역사 속에서, ‘정체성의 울타리’를 세우는 것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울타리를 무너뜨렸다. 그는 “낯선 이방인”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따라서 김근주가 말하는 기독교의 본질은 낯선 이와 함께하는 개방성, 선교적 공동체성이다. 저자는 오늘의 교회가 여전히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낯선 자와 함께 걷는 신앙”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지없이 묻는다.
ː 율법을 넘어서,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김근주는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의 율법 해석을 구약 본문(출 21:14)과 직접 연결시킨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본질은 단지 행동이 아니라 이웃을 업신여기는 오만함이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은 율법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단은 이웃에게 오만히 행한 자를 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와 정의의 실천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회복하는 사건이었다.
이 통찰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신약은 구약의 폐기가 아니라, 그 완성이다. 저자는 나의 예배가 이웃과의 화해 위에 서 있는지, 율법의 정신이 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지를 점검하게 독려한다.
"예수는 그 울타리를 무너뜨렸다. 낯선 이방인과 함께 걸으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ː 제2성전기, 기다림의 신앙
김근주에게 제2성전기는 “기다림의 신앙”의 시대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아도, 백성은 말씀을 보존했고 신앙을 지켰다. 그 기다림 위에서 예수가 오셨고, 복음이 피어났다. 저자는 신약 성경을 전적으로 제2성전기의 기다림에서 피어난 꽃으로 본다.
그 꽃은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성전이 사라져도 신앙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도 새로운 제국과 문화의 파도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기다리고, 말씀을 붙잡고, 이웃과 함께 살아내는 ‘제2성전기의 신앙’으로 부름 받고 있다.
『제2성전기』는 과거의 역사서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위한 거울이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성전이 사라질 때, 신앙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율법이 변할 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는가?” 그리고, 낯선 이와 함께하는 믿음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와 정의의 실천이다"

ː 예언적 통찰을 말하는 우리 시대 '성경 선생'
‘김근주’는 이제 브랜드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아파하고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부심이다. 필자는 강의실에서 그리고 저서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저자에게 배움의 신세를 지고 있다. 배움을 청한 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김근주 교수님은 학문적 엄밀함과 예언적 통찰을 함께 지닌 신학자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성경 선생’이라 겸손하게 선을 그으신다.
『제2성전기』는 자신과의 약속을 가장 엄격하고 철저하게 여기시는 저자의 성실함이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물이다. ‘제2성전기’ 과목을 수강했던 그 학기는 교수님이 내어주시는 과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리곤 했다.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도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야 했다. 명절 연휴도 반납하고 밤샘을 하며 ‘제2성전기’ 문헌들을 마주했던 기억이 이제는 감사로 기억된다. 적어도 이 책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아주 저렴한 수강료를 내고 어마어마한 강의를 듣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셨다.
; 클릭) 주의교회 이현지 목사님이 청년들과 '경제공동체로 사역과 생계를 함께 합니다.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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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이현지목사님🌸감사해요! 함께 읽어서 영광입니다!! CBS 뉴스를 통해 귀한 일 하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멋지시네요!! 청년들과 경제공동체로 함께 하시네요.👏👏 '정의실천' 한 가운데에서 애쓰시는 목사님을 응원합니다. 이현지 목사님💕 건강하시고 목소리를 계속 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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