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1.1 ㅣ '제2성전기' 왜 알아야 할까요?
“구약성경은 하늘에서 단번에 뚝 떨어진 책이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간 책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성과 해석이 그들의 신앙 전승을 수집하고 형성하게 했고, 그렇게 형성된 문헌들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를 해석하며 살아가게 했다. 구약성경이라는 경전과 그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상호 작용 하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2성전기는 구약성경이 어떻게 형성되어 갔으며, 구약 신앙이 어떻게 굳건히 응집되어 갔는지를 보여주는 시기다.”
_김근주, <제2성전기> 머리말. 9쪽
이광하 ː 제2성전기를 공부하는 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김근주 ː 현재 우리가 지닌 구약 성경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왜 오늘과 같은 구약 정경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아울러 제2성전기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때이며, 사도 바울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약 성경은 전적으로 제2성전기의 기다림에서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2성전기의 기다림은 구약이 증언하고 선포했던 기대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약의 선포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떤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오랜 신앙 전승과 율법, 약속이 피어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은 반드시 구약에 기반하여 이해되어야 하며, 구약 신앙의 최종적 형태를 이룬 제2성전기와 연관하여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광하 ː 제2성전기가 기독교 형성에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김근주 ː 제2성전기 동안 종교 공동체가 이르게 된 두 가지 대표적 반응이 '기독교'와 '유대교' 입니다. 기독교는 그들이 받은 구약에 더하여 신약 성경을 추가하였고, 유대교는 구약에 더하여 미슈나와 탈무드를 추가하였습니다. 구약 신앙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흐름으로는 '쿰란 공동체'와 그들이 이룬 여러 문헌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세 집단, 기독교와 유대교, 쿰란 공동체는 모두 구약성경에 기반한 종교 공동체이면서 그들 나름의 독자적 문헌을 추가한 집단입니다.
제2성전기는 신약의 배경 정도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형성을 통해 구약 신앙이 응집되는 시기이며, 이 시기를 거쳐 쿰란 공동체, 신약의 기독교, 그리고 랍비 유대교(Rabbine Judaism)가 등장하고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신약의 배경사' 정도로만 여기는 것은 극히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러므로 제2성전기를 거치면서 유대교, 기독교, 쿰란 같은 다양한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계기로 생겼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광하 ː 바벨론 포로기가 이스라엘 신앙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_시편 137:1
김근주 ː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온통 부정하는 듯한 국가의 종말이라는 위기는 이스라엘 신앙의 종말도 초래할 것처럼 보였지만, 도리어 이 시기의 충격적인 현실은 놀랍게도 풍성하고 폭발적인 신학 작품의 양산을 가져왔다. 이것은 위기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그를 통한 현실의 극복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알베르츠: 189).
“포로 경험 없이는 이스라엘에 엄격히 문자적 의미로 단일신론이 결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며, 포로 경험 없이는 이스라엘은 국가종교의 한계를 결코 넘어서지 못했으며, 포로 경험 없이는 세계선교라는 사고가 그 가운데서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베르츠: 559).
"포로기 이래 포로민들은 성전 이후의 유대교, 국가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발전시켰고, 오직 제사장에게만 적용되던 정결 규정으로 연결된, 거룩하고 정결한 백성, 여러 나라 중의 제사장으로 자신을 이해하였다." (카: 268-269)
바빌론이라는 압도적인 문화 안에 살아가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돌아보고 과거를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항의하고 찬양하며 소통했습니다. 과거 역사를 기억했으며, 오래된 신화와 창조 신앙을 결합하여 회복에 대한 희망을 형성했고, 예언자들이 선포한 말씀을 간직하고 자신들의 시대에 활용했습니다. 디아스포라 혹은 포로라는 낯선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으로 고백하며 정체성을 형성했고, 에스겔 40-48장 같은 본문을 통해 그들 존재의 거룩함을 강력하게 표현했습니다.
part 1.2 ㅣ 유대교의 국가 회복 기대와 희년 사상
이광하 ː 바벨론 유배 이후의 유대교에 대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포로기 이스라엘 신앙 형태가 국가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 무국가 신앙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발전시켰다고 하셨는데요. 복음서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국가적 회복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포로기에 기록된 문서들은 이미 국가적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예수 시대에 와서 왜 그런 변화가 있었을까요?
김근주 ː 복음서에 나오는 유대인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국가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기대에는 주전 2세기 중반부터 존재했던 하스모네아 왕조의 영향이 클 것 같습니다. 국가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는데,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박해로 신앙 자체가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고, 그에 대한 저항을 통해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고 독자적인 국가까지 다시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카비 혁명의 성공과 국가의 재건은 이후로도 '유대인의 나라'에 대한 기대를 남아 있게 했다 싶습니다. (이후 수업 시간에 다시 보겠지만) 마카비 혁명의 전후에 무수한 성경 구절이 인용되어, 신앙적으로 채색되었습니다. 이 점 역시 이후 세대에게 '적은 수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새로운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을 것입니다.
이광하 ː 바벨론에 포로된 유민들이 국가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 공동체적 삶의 질서를 추구하게 되면서 국가적 단위의 희년의 이상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사야 61장에서 희년은 유배지에서 귀환하는 희망으로 제시되고, 누가복음 4장에서 희년은 하나님나라가 도래한 것으로 제시됩니다. 두 가지 모두 희년 선포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토지 무르기라는 국가적 질서 회복보다는 자유와 회복의 상징으로 환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근주 ː 제2성전기 동안 팔레스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신앙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가족 단위로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로 인해 '희년' 역시 '영성화'(spiritualization)됩니다. 제2성전기 문헌에 나오는 희년은 현실의 토지 문제의 변혁과 실질적인 자유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이루실 변화된 미래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고, <희년서> 같은 책에서는 아예 하나님의 경륜을 헤아리는 연대 단위가 되기도 합니다.
이사야 61장과 누가복음 4장의 희년 언급 역시 목사님이 지적하신 대로 '자유와 회복' 같은 개념으로 집중되었다 싶습니다. 이렇듯, '영성화'는 현실의 변화를 도외시하게 할 위험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 개념이나 선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게 하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희년 사상의 영성화’에 대해서는 김병하, <희년 사상의 영성화>(대한기독교서회2005)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_누가복음4:18
part 1.3 ㅣ신명기 역사서와 예언서
"애가는 재앙에 대한 응답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끝맺지 않고 불확실로, 확신할 수 없는 채 현재의 참상을 열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어떤 희망을 손쉽게 말하고 찾기보다는 현재의 참상을 충분하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탄식한다.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현재의 괴로움과 막막함을 격렬하게 토로하며 표현한다. 그것이 애가이며, 놀랍게도 애가는 긴 세월을 거치며 우리네 구약 성경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멸망 직후에 이처럼 재앙에 대한 기록, 상실과 슬픔을 표현한 문헌이 존재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재앙을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바로 희망으로 갈 것이 아니라 그저 슬퍼하며 그저 탄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_이광하 note, '예레미야 애가' 관하여
이광하 ː 신명기 역사서를 기록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김근주 ː 신명기 역사서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야훼 하나님의 분노로 멸망한 것이며, 야훼의 이 같은 격렬한 분노를 초래한 원인을 모색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역사서가 멸망에 대한 설명으로만 기능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북왕국의 멸망을 풀이하는 열왕기하 17장 역시 이스라엘의 멸절이 아니라 쫓겨남이라는 점 자체가 심판이라는 어둠 속에 “한 줄기 가냘픈 불빛”이 비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쳉어: 347). 복과 화를 제시하는 신명기 30:15-20과, 유배된 처지에서도 성전을 향한 기도를 들으시기를 구하는 솔로몬의 기도로 마무리되는 열왕기상 8:46-53은 이스라엘의 미래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열왕기서의 가장 마지막이 여호야긴의 석방을 다룬다는 점 역시 이 점을 확인 시켜줍니다. 신명기 역사서는 ‘회개’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면서, 언제라도 야훼께 돌이킬 때에 그들에게는 회복의 미래가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서는 심판만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심판 너머 희망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고 신명기 역사서의 사성적 기반인 신명기는 그 처음과 끝에서 이스라엘의 쫓겨남을 내다보며 쫓겨난 그곳에서 그들이 다시 돌이키게 될 것을 증언합니다.
이광하 ː 새언약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깨뜨린 옛언약을 새롭게 갱신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김근주 ː 종종 예레미야의 새 언약 본문을 기반으로 ‘구약을 옛 언약으로, 신약을 새 언약으로’ 보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습니다. 야훼께서 행하실 회복에 대해 구약은 다양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지닌 에스겔서는 회복의 미래를 두고 ‘야훼께서 새 영과 새마음 주시고 하나님의 영을 이스라엘의 속에 두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행하게 하리라’고 표현합니다(겔 11:19-20; 36:26-27).
제2이사야는 하나님이 하실 놀라운 회복을 ‘새 일’이라 표현하지요(사 42:9; 43:19-21; 48:6-7). 그러나 ‘새 일’을 ‘새 언약’이라 부르지 않는데, 이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깨진 적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브라이트: 533). 그러므로 ‘새 언약’이라는 표현이 말하고 싶은 초점은 야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 그리고 그런 삶에 있어서 기존에 견고하다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의 효력에 종언을 고한다는 점입니다.
part 1.4 ㅣ 요시야 개혁의 빛과 한계 1
이광하 ː 요시야 개혁과 신명기 역사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요시야 왕 때 제사장 힐기야가 신명기를 발견했고, 신명기를 텍스트로 삼았던 요시야 개혁은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 역사에 희망의 빛이 되었고, 유배기에도 신명기를 역사적 성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게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근주 ː 이 목사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요시야 개혁의 배경에 신명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단행한 개혁 조치의 중심에 지방 산당을 부순 것이 있다는 점이,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의 성소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신명기 12장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신명기 전체가 요시야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보기보다는 5-26장 정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요시야 이후, 포로기 동안에 신명기도 점차 다듬어 편집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광하 ː 그렇다면 요시야 개혁의 역사적 경험이 유배기에도 포로된 유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아닙니까? 유배기의 폐허에서 공동체적 희망을 볼 수 있는 사건과 경험이 없이 예언자들의 메시지만으로 희망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이런 질문을 갖게 합니다.
김근주 ː 신명기 역사서 역시, 왕정기 동안에 상당한 분량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신명기도 그렇고 신명기 역사서도 그렇고, 요시야 시대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전사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개혁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고 온 유다를 포괄하는 변화까지 이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요시야를 매우 높이 평가했지만(렘 22:15-16), 요시야 개혁은 기울어가는 유다의 마지막 몸부림일 뿐,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신명기는 지난 수업에서 나눈 것처럼, 4장과 30장에서 이스라엘의 포로됨과 쫓겨남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바꾸실 것에 대한 기대가 이 부분에 있습니다.
신명기,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실 것을 기대합니다. 멸망 사건의 충격이 이와 같은 내용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_에례미야 22:16
;) <제2성전기> 대담은 2편에 계속됩니다.
~ to be continued
김근주읽기 활동 자료 모음
https://padlet.com/foucault525/padlet-vxeuxfcdbr47ty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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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
제가 존경하는 두 목사님을 한 지면에서 뵙게 되서 너무 좋네요. ♡
김근주읽기
네. 저도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미경
쥬디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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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와!! 👏👏👏 심화과정이네요. ㅎㅎ 질문 클라스 무엇입니까? 감사합니다! 일산은혜교회와 김근주 읽기가 복이 넘치는구나 싶습니다. 열정적으로 성경을 연구하시고 공부 하시는 목사님께서 계시니 너무나 행복하네요. 🥰🥰 이광하 목사님, 존경합니다. 신명시 역사서를 기록한 목적에 관한 질문과 대답도 인상적이네요. 좋은 질문과 명쾌한 대답을 해주신 목사님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대담 2편은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합니다. 😊 레터를 발행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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