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쾌함, 내 삶의 원동력"
ː 나, 이종욱
저는 ‘대체로 유쾌한’ 사람입니다. 심각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죠. 때문에 가끔은 별생각 없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움을 삶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삼으려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서 극장도 자주 가고, OTT로 적지 않은 양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노래와 음악도 좋아해서, 어린 시절엔 동네 친구들과 노래방도 자주 갔었죠.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신 부모님을 따라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교회는 부모님의 승인 아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지요. 엄하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교회에서 뜻한 바(?)를 다 펼치지는 못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적절히 경계를 넘나들며 아버지의 염려와 분노를 섬세하게 피해 소소한 일탈도 했지요.
청년 시절에는 사회적 정의와 공의, 불편함과 부당함, 상식적이지 않은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무언가를 바꿔보기 위해 부단히 문제 의식을 품고 살았습니다. 김근주 목사님이나 김회권 목사님도 그 과정 속에서 알았고, 저와 제 주변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어요.
ː 결혼, 아이, 이사, 김근주?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기면서, 의도치 않은 층간 소음으로 아파트가 불편해졌어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일산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함께 다니던 교회를 떠나 일산은혜교회로 찾아왔어요. 와서 보니 그 유명한 김근주 목사님이 계시더라고요. 뭔가 하나님의 이끄심인가 싶었죠.
매주 예배는 언제나 감동이었습니다. 이전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메시지를 접하며 풍성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세월호, 코로나19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을 거치며, 교회라는 공동체가 해야 할 말과 행동, 마땅히 고민해야 할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처음보다는 조금 무뎌진 감도 있지만, 인상 깊은 목사님들의 설교는 생생한 단어들로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일산은혜교회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일산은혜교회는 일반 교회들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와 행동을 하고, 낯선 질문과 담론이 가득한 곳,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자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길을 걷는 공동체, 바로 '희년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희년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동체!"

ː 목장 공동체와 목자
처음 교회에 출석하고 정식으로 등록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어요. 이전 교회의 사역으로 인해 조금 지쳤기에 이곳에서는 잠시 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당시 목자님의 등살(?)에 못 이겨 예배 사진 촬영과 남성 중창단을 시작했습니다. 요즘도 예배 시간에 갑자기 등장해서 사진 찍곤 하지요. 지금은 목장 공동체의 목자와 목장사역원을 섬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목장 공동체를 섬기는 일은 부담도 있고 어려움도 따르지만, 그만큼 얻는 은혜가 큽니다. 원래 목자가 되려면 거쳐야 할 과정과 조건이 꽤 많다고 들었지만, 저와 아내는 2020년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속성으로 목자가 됐습니다. 여러 미숙함도 많지만, 목자로 좋은 점은 목장 모임이 끝나는 시간을 어느 정도는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구력이 부족해서 긴 시간 무언가를 하는 걸 몹시 어려워하거든요. 🙂
목자로서 받은 큰 배움은 목자가 공동체를 섬기는 것 같지만, 실은 섬김을 받을 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같은 기도 제목으로 함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경험하는 과정은 은혜입니다. 목자의 허술한 빈틈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경험은 목장 공동체가 아니면 쉽게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ː 담임 목사 이광하!
이광하 목사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꿈꾸는 시인이자 예언자’입니다. 목장 모임에서 설교 말씀을 요약해 나누는데, 목사님의 설교는 마치 ‘운문’처럼 읽히곤 합니다. 요약과 정리가 만만치 않았던 기억도 있네요. 🙂 요즘은 AI가 친절하고 자세히 요약을 해주고 있습니다만.
몇 년 전 일산은혜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되셨을 때, 목회 비전과 철학에 대해 여쭐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들려주셨던 핵심은 '74년 로잔 언약'과 두 개의 신약 말씀(마태복음 28:18~20, 누가복음 4:18~21)이었습니다. 덕분에 '케이프타운 서약'이라는 노란색 책도 읽게 되었죠. (그때 읽으면서 여전히 저는 운문보다 산문이 익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국어국문학과 출신임에도 🙂 )
담임 목사님이 강조하신 중보자 공동체, 희년 생태계를 가꾸는 교회, 마을 같은 교육 생태계, 복음의 공공성과 공교회 정신을 회복하는 교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 저는 이런 목사님의 지향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결국 이를 실천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과 목장 공동체의 방향성 또한 이와 맞닿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ː 일상의 전투에서 구하는 지혜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내면의 부대낌을 느낄 때가 많지요. 특히 사회적 성취와 개인의 '탐욕'에 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제가 애초부터 원했던 것인지, 누군가로부터 원하도록 학습된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고요. 잠언 30장에서 말하는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구절에서, 과연 ‘필요한 양식이란 대체 얼마만큼일까?' 이런 궁금증과 도전은 늘 제 안에서 충돌합니다.
또 다른 고민은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로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 서야하는 갈등입니다. 전인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봐야 하는 신앙인의 양심과 오직 성과와 결과로 타인을 평가하는 상황에서 고단함과 불편함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신앙과 일은 영역이 다르니, 월급 주는 사장님을 위해 하는 일과, 복음과 구원의 예수님을 위한 일은 달라야 하는 게 아닐까'도 싶어요. 이런 일상의 갈등과 혼란에서 무 자르듯 명확히 나뉠 수 없는 삶의 어려움을 숙제처럼 안고 살아갑니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제목처럼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이어지는' 끝없는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줄어들지 않는 탐욕과 싸우고, 직장에서 신앙적 양심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마주하는 저의 일상 역시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같이 덮쳐오는 세속의 파도 속에서 깨어 사유하지 않으면 휩쓸릴 수밖에 없기에, 이 끝없는 일상의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파도 속에서 깨어 있는 자"
ː 김근주읽기, 시작과 현재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밀어 넣는 것' 제가 익힌 삶의 요령 중의 하나죠. 김근주 읽기는 '일단 발을 담그고 후일을 도모하면 어떨까' 하는 태도로 시작했어요. 신앙인으로 무언가를 바꾸고 싶고, 세상과 나에게 의미 있는 그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최소치의 행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김근주 읽기'가 시작되기 전인 2021년 교단 탈퇴 이슈가 생겼을 때에 김근주 목사님의『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를 제법 촘촘하게 들여다보면서 목사님의 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어요. 도대체 어떤 주장을 했길래 교단에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인지? 왜 여성 목사는 안 된다는 건지?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입장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그래서인지 2022년 시작한 '김근주 읽기'가 신선하고 반가웠습니다. '이렇게도 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죠. 감사한 것은 김근주읽기가 김근주 목사님의 책을 통해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와 무브먼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발원지가 일산은혜교회이고 또한 놀랍게도 전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함께하며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좋습니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믿음의 공동체, 이것이야말로 복음의 공공성을 실천적 형태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가 아닐까요.
ː 아빠, 이종욱!
“공부해라”는 잔소리는 해도 “뛰지 마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서 층간 소음에서 자유로운 단독주택으로 옮겼습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였지만, 실은 저의 로망도 컸던 것 같아요.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독립주택'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독립적 자발성’이라는 키워드에 매료되었던 거 같습니다. 사실 단독주택 살이가 여름에는 벌레 잡고 잡초 뽑고, 겨울에는 장작을 나르고 쪼개고 재를 치우는 끊임없이 손이 가는 일의 연속이죠. 하지만 이런 아날로그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발적 불편함'이 이제 제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환경과 이웃을 위해 ‘자발적 불편 캠페인’을 전개했던 것이 떠오르는데요. 끝없이 편리함과 효율성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기꺼이 땀 흘리고 몸을 움직이는 이 자발적 불편함이야말로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다르게 살아가는 작은 실천이자 훈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러한 가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으로도 이어졌는데요.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판단하고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 중등과정으로 '대안학교'를 제안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미숙하고 본이 될 것 없는 아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신앙을 싹 틔우고 성숙에 이르기를 희망해요. ‘부모가 기독교인이면 아이들도 무조건 기독교인이 된다’는 선입견도 다르게 봐야 할 것 같아요.
주일에 교회 가는 차 안에서 고등학생이 된 딸에게 묻곤 합니다. “너에게 신앙은 뭐고, 너는 왜 교회를 다니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빠는?” 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저는 딸에게 제가 듣고 싶은 모범답안을 슬쩍 던져봅니다. 물론 반응은 시큰둥하죠. 저 역시 어린 시절 친구 만나러 교회를 열심히 다녔으니, 내 아이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 제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가정에서 그냥 나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입니다.
"너는 왜 교회를 다니니?” “아빠는 왜?”

ː 전투적 읽기 공동체, 김근주읽기
김근주읽기의 과정은 저에게는 무척 전투적입니다. 🙂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을 '이메일'처럼 확인하는 편이라, 실시간으로 잔뜩 쏟아지는 메시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대꾸하는 일이 여전히 익숙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처럼 즐겁고 현란한 것이 많은 시대에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전투적인 읽기 방식이 때로는 필요하겠다 싶어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자원은 '시간’인데요. 나의 시간을 어디에 쏟고 있는지를 보면, 결국 내가 어디를 지향하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주지요. 그래서 때로는 이런 전투적인 형태의 복음 경험하기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목장 공동체에서 김근주 목사님을 게스트로 모시고, 음식과 차를 나누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뵐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왠지 모를 목장 식구들의 부담감과 어색함(?) 때문에 끝내 실현하지 못했죠. 개인적으로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두 딸의 아버지로서의 삶은 어떠셨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언젠가 목사님께서 "아이들과 가장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세상 쓸데없고 하찮은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보내라"고 하신 말씀이 많이 생각나거든요. 요즘 김근주 목사님의 관심사, 개인적인 취미와 관점도 궁금하고요.
ː 두루뭉술 타협하지 않는 김근주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의 신앙적 양심과 신학적 지향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동성애 이슈가 뜨거웠던 터라, 목사님 개인의 의견을 묻는 순간이 몹시 긴장되고 엄숙했습니다. 그날 원로 권사님께서 김 목사님께 질문을 하셨어요. "목사님,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단의 논란도 주저 앉히고, 김 목사님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셨는지, 아마도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한다'는 답변 듣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감근주 목사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동성애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선 논의할 여지가 많습니다."라고 담담히 말씀하셨지요. 논란의 중심에 서더라도, 본인이 믿는 신앙적 양심 앞에서 결코 모호하거나 두루뭉술하게 타협하지 않으셨던 것이죠. 저에게는 그 순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목사님을 아끼시던 권사님의 애잔한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김 목사님은 흔한 표현으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기꺼이 성경에 대해 탐구하고 궁리한 바에 대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틀릴 수 있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하시는 분이죠. 말씀하시면서 본인의 생각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언제든 메일이든 카톡이든 연락을 달라 하시죠. 그리고 그 모든 분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십니다.
ː 제안해요! 청소년도 따라가는 김근주읽기
저처럼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신학적 깊이가 다소 얄팍한 사람들에게 '김근주 읽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아요. 역사적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매번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끝이 흐지부지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참여자들의 이해도에 따라 유형을 구분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A, B 방으로 나누는 것도 좋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김근주 읽기'를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퀴즈 이벤트로 성경의 맥락도 짚어보는 거죠. 매일 소화해야 하는 텍스트 분량도 조절해서 조금은 느슨하지만 치열하게 읽어나가는, 이른바 '김근주 느리게 읽기'도 제안해 봅니다.
또한 참여자들의 주옥 같은 감상평, 발견한 인상 깊은 문구들,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 등 제2의 창작물들을 카톡 공간을 넘어 별도의 저장 공간에 축적해 보아도 좋을 거 같아요. 다양한 강의와 인터뷰, 글로 남겨진 생각들이 뉴스레터나 블로그 형태로 기록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그 영향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나아가 이런 콘텐츠를 활용해 굿즈, 소량의 기념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것이 '지속 가능한 무브먼트'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읽기' 다음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김근주 읽고 실천하기"입니다. 열심히 읽고 나누었다면 마지막 매듭은 그것을 일상으로 가져와 살아내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것이 가장 엄청난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아주 '최소치의 실천적 행동'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서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가볍지만 진지한 궁리, 김근주읽기 참여자들이 함께 하면 모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소치의 실천적 행동"

"저는 꽃을 좋아해요. 중궁 왕홍에게 줄 꽃다발을 잠시 들고 찰칵. 그렇게 '꽃과 수염'은 제 메인 키워드가 되었답니다 ;"_이종욱 제공
클릭! 김근주읽기 자료 ▶ https://padlet.com/foucault525/padlet-vxeuxfcdbr47ty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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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이종욱 님🌸 감사해요! 교회와 일터, 가정에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올려주신 사진도 참 좋네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교회와 이웃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귀한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국문과 출신은 다르네요. 글이 술술 잘 읽힙니다^^무엇보다 김근주 읽기을 향한 여러 제안이 가장 반갑습니다. ’ 김근주 느리게 읽기‘ 정말 좋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안에서 멋지게 살아내도록 도와주는 안내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 부모에게 더욱 필요한 책이 될지도 몰라요^^ 이광하목사님(꿈꾸는 시인이자 예언자)과 마음 모아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목자 이종욱 님을 또한 응원합니다! 잡초를 뽑고 꽃을 매만지는 이종욱 님~사랑의 손길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늘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김근주 읽기 많이 도와주세요. 이미 도와주고 계신 거지만 ㅋ 와! 이종욱 님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김근주 느리게 읽기‘이미 다 준비된 것 같이 느껴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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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민
종욱집사님에 대해서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좋은 어른을 그래도 교회에서 많이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집사님과 함께 동역하며 그 매력을 더 깊게 알아가고 싶고, 김근주 느리게 읽기도 잘 만들어가보고 싶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강미경
종욱님은 '좋은 어른' 참말로 그렇네요~혜민님^^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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