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끊어졌던 다리 잇기
김근주, 『제2성전기』, IVP, 2025
안일한 통념에 반박
세상에는 알기 전까지는 그 존재감조차 희미하지만,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지식의 영역들이 있다. 렌즈를 갈아 끼운 듯 성경을 보는 해상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 김근주 교수의『제2성전기 : 신구약 중간사를 넘어서』가 다루는 세계가 바로 그러하다.
지금까지 알아서 어떤 일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것을 가까스로 익히면서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칠십인역을 다루다 보니 더 가까이 하게 되고, 또 곁에 계신 분들의 연구를 기웃거리다 보니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제2성전기에 대한 이해도 나에게 그러하다.
성경의 말라기에서 마태복음으로 넘어가는 단 한 장의 종이가 사실은 400년이라는 묵직한 시간의 절벽임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는 오랫동안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사’라 명명하며, 계시가 멈춘 암흑기 혹은 건너뛰어도 무방한 공백기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제2성전기』는 이러한 안일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역사 속에서 당신의 백성들과 호흡하고 계셨음을 입증해 낸다.
역사적 시기에 대한 명명은 단순한 라벨링이 아니라 그 시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짓는 권력적 행위다. 저자는 모호한 중간사 대신 ‘제2성전기’라는 명확한 역사적 실체를 제시한다. 이는 스룹바벨 성전 재건부터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까지의 약 600년을 아우른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시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신구약 중간기’라는 이름으로 이 시기를 다루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이 명칭은 언제나 제2성전기는 신약성경, 혹은 기독교 신앙의 배경사로 다룰 때 사용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증언하고 선포하는 내용은 제2성전기의 기다림에서 이어지거니와, 그 기다림은 구약 예언자의 선포, 그리고 오경의 율법과 분리하기 어렵다. 제2성전기는 신약의 배경 정도가 아니라 구약성경의 형성을 통해 구약 신앙이 응집되는 시기이다.”
-서론 19쪽
이 관점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명백하다. 예수와 바울은 하늘에서 떨어진 신약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제2성전기에 형성되고 읽히던 구약성경을 기반으로 사역했기 때문이다. 즉, 신약은 단절된 새로운 종교의 경전이 아니라, 치열했던 유대교의 역사 위에서 싹텄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신약은 구약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관계를 갖는다.
“신약성경은 전적으로 제2성전기의 기다림에서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다.”
-서론, 18쪽

묵시 문학, 가장 거룩한 형태의 저항
특히 묵시 문학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흥미롭다. 현대인들은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를 미래를 점치는 비결서나 지구 종말 시나리오 정도로 소비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묵시가 안티오코스 4세와 같은 강력한 제국의 박해 속에서 탄생한 저항 문학임을 강조한다. 현실이 참담할수록, 제국이 강력해 보일수록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가 누구인지 묻는 치열함이 바로 묵시였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악한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가장 거룩한 형태의 저항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현대 교회에 던지는 가장 묵직한 화두는 거룩함에 대한 정의다. 제2성전기 유대교, 특히 바리새인들의 실패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제의적 구별 짓기로 축소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5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며, 이것이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시사한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그리고 에세네파에 이르기까지 결혼,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 성전과 정결 규례가 논쟁 주제이며 서로 갈라선 원인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논쟁은 '어떤 외적 표지를 준수할 것인가'에 늘 국한된다. 정의로운 삶이 아니라, 절기가 논쟁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낯선 존재와 함께함'은 '정의로운 삶'의 본질에 속한다. 이 점에서 이후 신학 논쟁을 일삼은 기독교와 유대교는 제2성전기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졌고, 일상의 삶을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만들어 버려서 실제 일상과는 멀어졌다. ”
-5장 '하스몬 왕조' 350쪽
예배당 안에서의 경건이 사회적 정의로 확장되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대목이다. 거룩함은 종교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윤리다. 저자는 그의 저서『복음의 공공성』에서 이러한 거룩한 삶의 윤리적 요청을 현대적 언어로 더욱 구체화하여 선포한다.
“고용주에게 거룩함은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들의 품삯을 속이거나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 재판하는 이들에게 거룩함은 재판 당사자들의 외모를 보지 않고 오직 정의로 판결하는 것이다.”
-『복음의 공공성』2부 3장 '거룩한 삶' 227쪽
구약과 신약, 끊어진 다리의 연결
결국 성전이라는 물리적 건물이 무너진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텍스트, 즉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을 재편했다. 공간이 사라진 자리에서 말씀이 남았고, 제사가 멈춘 곳에서 삶으로 드리는 해석과 실천이 시작되었다. 이는 팬데믹 이후 공간 중심의 교회론이 위협 받는 이 시대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침묵기라 부르며 외면했던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붓을 들어 희망을 기록하고 있었다.
김근주 교수의 이 책은 물리적으로는 그리 두껍지 않아 손에 쥐기에 부담이 없으나,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사유의 밀도는 방대하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독자는 구약과 신약 사이의 끊어진 다리가 단숨에 연결되는 지적 희열을 맛보게 된다.
잃어버린 400년의 고리를 되찾는 것은 단순한 지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와 바울이 치열하게 호흡했던 거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오늘날 우리가 상실한 야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쉬신 적이 없는데, 우리만 400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면 그야말로 민망한 노릇이 아닌가.

김한원 목사
하늘샘 교회 담임목사, 총신대 신학대학원 겸임교수, 한국 칠십인번역위원회 위원
총신대 졸업, 총신대 언어 연구소, 한국 신학 정보연구원 등에서 성경 언어 연구.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성경 원어 연구 전문가, 로고스 성경 소프트웨어와 어코던스 등에 자문과 개발 참여. 대표 저서로 『바이블웍스 길라잡이』 『성경으로 고전을 만나다』 『바이블웍스 완전정복』 『로고스8 완전정복』『올댓보카 신약헬라어』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윌리엄 댄커『신약성서 그리스어 사전』, 대니얼 월리스 『월리스 중급 헬라어 문법: 신약 구문론의 기초』 , 『디오그네토스께 드리는 편지·디다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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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경
김한원목사님🌸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2성전기'를 함께 읽는 것이 기쁨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거룩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쉬신 적이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원하는 이유같습니다. 하늘샘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이길요! 귀한 책도 많이 쓰셨네요! 대단하십니다^^ 또한 70인 번역에 애쓰시네요! 걸어가시는 발걸음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원합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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