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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근로계약서, 이렇게 쓴다

2023.09.09 | 조회 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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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근로계약서 뽀개기

복사본에 메모한 흔적
복사본에 메모한 흔적

한식당 근무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세무소에서 계약서가 나왔으니 잠시 들러 사인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분량은 3장. 모든 페이지 하단에 사장님 사인이 적혀 있었고, 나도 그 옆에 사인을 했다. 1부는 사장님이 1부는 내가 보관. 이로써 계약 완료! 집에 가자마자 계약서를 펴 놓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프랑스 노동법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일하기 좋은 나라 아니던가? 실제로 근로자를 위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총 20개의 조항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읽기 귀찮다면 아래로 스크롤 내리셔요)



Article 1 - Conditions d’engagement 계약은 노동법 표준을 준수한다.

‘블라블라 : Hotels cafes restaurants라고 쓰여 있다. 이 계약서는 요식업법을 따른다는 뜻이다. 업종에 따라 준수해야 하는 기본법이 조금씩 다른가보.

 

Article 2 - Emploi et qualification 고용형태를 정한다

’temps partiel(임시직)’, ‘Serveuse(웨이터)’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의 고용형태로는 계약기간이 무한인 CDI(정규직)와 기간이 정해져 있는 CDD(비정규직)이 있다. 짧게 일하는 CTT(일용직)도 있다는데…. 더 깊게 알아볼 필요 없이 나는 당연히 CDD 비정규직!

 

Article 3 - Objet et Durée du contrat 계약기간을 정한다

근무를 시작하는 날짜와 근무하는 기간이 쓰여 있지만, 실제와 다르다사장님께 확인하니 형식적인 서류라서 대략적으로 작성한다고 했다.

 

Article 4 - Période d’essai 수습기간을 정한다.

내용이 상당히 길며 복잡해서 다 이해하지 못 했다. 어차피 나의 임금은 최저시급이므로 그냥 넘겼다. 수습기간에라도 최저시급은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훗날 풀타임 정규직으로 근무한다면 반드시 체크하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다.

 

Article 5 - Lieu du travail 근무지를 정한다

한식당의 주소가 쓰여 있다. 초간단.

 

Article 6 - Suivi médical à l’embauche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

신체적으로 일을 하기에 적합한지 확인한다는데, 아쉽지만 나는 너무 빨리 그만두는 바람에 이 과정은 겪지 못 했다. 한국의 보건증같은 게 아닐까 싶다. 진찰은 일을 시작한 후 3개월 이내에 진행해야 하며 진찰 내용은 고용주와 피고용인에게 동일하게 안내된다. 

 

Article 7 - Durée du contrat 계약기간을 정한다.

계약기간이 1달 후 만기로 쓰여 있다. 뭔가 이상해서 사장님께 확인하니 계약서를 3달 간 3번 쓰고, 그 뒤에는 정규직 계약서를 쓰게 된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3달이나 일하면 자동 정규직 전환. 이게 프랑스 법인가 보다.

 

Article 8 - Durée du travail - Répartition 근무시간을 정한다

무슨 요일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는 지 상세하게 쓰여 있다. 실제 근무를 하니 조금씩 더 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서조항으로 근무시간이 바뀔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Article 9 - Rémunération 보수를 정한다

 달에 000유로를 받는다.라고 너무나 간단하게 쓰여 있다. 세전인지 세후인지도 나와있지 않았다. 어떻게 계산이 된 것인지 조금 더 풀어서 써주면 좋으련만. 계산기를 여러번 두들겨 봤지만 딱 맞지 떨어지지 않았다. 계산법이 워낙 복잡해서 포기했다.

* 세전급여(salarie brut)는 ‘노동시간x최저임금(SMIC)+특별수당(primes)+보상금(indemnitiés)’으로 계산된다. 세후급여(salaire net)는 세전급여에서 건강보험, 산업재해, 퇴직연금, 고용보험, 일반사회부담금(CSG) 등을 뺀 금액을 말하는데, 워낙 항목이 많아서 계산을 포기했다.

프랑스 최저 시급은 11.52유로(Brut세전), 8.87유로(Net세후). 매년 바뀐다. salairebrutnet.fr 에서 최저 시급을 확인할 수 있고 월급 계산도 가능하다.

 

Article 10 - Heures complémentaires 필요 시 노동자의 추가근무는 의무사항이다.

추가근무를 하지 않을  퇴사 사유가   있다고 쓰여 있다. 보통 손님이 많은 날에 추가 근무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해봤자 15분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추가근무에 대한 금액적 보상은 없었다.

* 프랑스에서 초과근무를 하면,  초과하는 8시간에 대해서는 25% 가산,  이상의 시간부터는 50% 가산된다. 

* 프랑스는 21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일은 야근으로 분류된다. (그렇지 않은 업종도 있다고 함.) 야근으로 분류되면 뭐가 달라지는 지는 모른다… 알고 싶다… 돈 벌고 싶다…

* 프랑스는 다음 일을 시작하는 때까지 최소 11시간을 비워야 한다. 잠 잘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 같다. (새벽에 퇴근해 다음날 아침 출근하던 때 어지럽긴 했지…아련…) 금요일 밤 11시에 일을 마치고, 토요일 오전 10시에 일을 시작하므로 한식당에서도 딱 11시간 차이를 지켰다. 

 

Article 11 - Obligations professionnelles 노동자는 근무 중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정한다.

페이지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내용이 많다. 하나씩 살펴보면 너무 과하다. 휴대폰까지? 하지만 반대로 기본매너를 지키지 않아도 해고가 어려우므로 계약서에 넣은 건 아닐까… 잠깐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건 한국 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인데, 왜 더 심한 것 같지…? 

  1. 작업지침을 준수한다.
  2. 개인사항을 알린다.
  3. 무단결근을 금한다. 결근  즉시 알리고 48시간 이내 증빙서류를 제출한다.
  4. 정해진 근무 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이중취업을 금한다.
  5. 근무  알게  정보를 기밀로 유지한다.
  6. 근무  휴대폰 사용 금한다.
  7. 휴식시간과 근무시간을 엄수한다.

 

Article 12 - Déclaration sociales nominatives (DSN) 고용주는 행정정보기관 ‘DSN’에 직원 정보를 등록한다.

직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세금을 지불하고, 직원에 대한 휴업, 질병, 출산, 친자관계, 퇴사 등의 개인 정보를 사회단체에 전송하는 데 사용된다. 미등록 또는 지연 시 벌금이 부과된다. 가만보면 프랑스 행정 엄청 느리다면서, 벌금은 엄청 좋아해.

 

Article 13 - Priorité d’accès au temps plein et égalité de traitement 계약직 근무자를 우선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어려움. 생략)

 

Article 14 - Congé Payés 유급휴가를 정한다.

‘회사의 규정에 따라 유급휴가를 받는다.’라고 쓰여 있지만, 규정이 무엇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경영진과 협의가 필요하며 직원의 필요에 따라 지급된다.‘라고 하니까, 주말만 일하는 알바생이라서 유급휴가는 없는 것 같다.

* 프랑스는 매달 2.5일의 유급휴가를 받거나, 1년에 휴일을 제외한 30일을 유급휴가로 받을 수 있다. 유급휴가 20일로 한 달을 통으로 쉴 수 있다. 프랑스의 휴일은 또 어마어마하게 많다. 30일 유급휴가를 다 쓰면 진짜 언제 일을 하지? 

 

Article 15 - Fin de contrat 계약 종료 방법을 정한다.

첫 줄에 ‘절차없이 자동 종료된다.’고 쓰여 있어서 대충 훑었다. 내용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한 것 같다.

* 프랑스는 알바생에게도 실업수당(chômage)을 지급한다. 최저시급(SMIC)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100%를, 그보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35시간 기준 84%, 39시간 기준 70%를 지급한다. 더 오래 일한 사람에게 14%를 적게 준다. 이래서 일을 적당히 하나보다. 실업수당 때문에 코로나 시기에 국가재정이 휘청거렸다고 한다. 


Article 16 - Hygiène 노동자는 근무 중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당연... 일하면서 술 마시는 사람도 있구나...

 

Article 17 - Télésurveillance 고용주는 보안을 위해 CCTV를 설치해 모니터링한다.

위험한 프랑스니까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CCTV의 주목적은 1층에서 2층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함 같았다. 

 

Article 18 - Matériel et Documents 노동자에게 지급된 물건 및 서류는 모두 고용주 소유이며 퇴사 시 반환한다.

유니폼으로 앞치마와 검정 반팔티를 제공받는다. 잘 입고 잘 반납하면 됨.

 

Article 19 - Dispositions diverses 그 외. 

‘이중취업 금지, 개인 상황 공유’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Article 11에 있던 내용과 중복된다. 아마도 이전에 일하던 알바생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추가한 게 아닐까 싶다.   

 

Article 20 - Avantages Sociaux 사회보장혜택을 정한다.

원문) A daté de votre engagement vous serez affiliée au régime de retraite complémentaire, prévoyance et mutuelle obligatoire via : 

쌍점 뒤에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다. 글 그대로 해석하면 사회적 혜택, 즉 연금, 세금 공제, 상호 보험을 보장한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계약서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 조항은 뭐.. 중요하지 않은 거겠지.

 


퇴사 완료

밤 11시, 집에 갈 시간이지만 설거지 하는 사장님을 붙잡고, 계약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여쭤봤다. 그리고 이어서 퇴사 의사를 밝혔다. “저.. 8월에 여행 다녀온 다음에 10월까지만 더 일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계약서까지 쓴 마당에 3개월은 채우고 나가야할 것 같았다. 사유는 재즈바로 이직. 프랑스에 오기 전 목표는 재즈바에서 일하는 거였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La musique, C’est ma vie! 

불행히도? 그 다음주, 사장님은 그냥 이번 달까지만 일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게 낫다. 8월 휴가 끝나고 돌아오면 일을 또 새로 알려줘야 할테니 말이다. 그렇게 7월 한 달 동안 총 68.75시간을 일하고 한식당 알바는 끝이 났다. 

퇴사 사인을 하고, 봉투를 하나 받았다.
퇴사 사인을 하고, 봉투를 하나 받았다.

8월 휴가를 다녀온 후, 서류와 월급을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한식당에 방문했다. 그리고 봉투를 하나 받았다. 그 안에는 수표 2장과 현금 150유로 그리고 퇴직 관련 서류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근로 경력을 증명하는 '고용주 증명서'와 '재직증명서', 급여 계산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급여명세서', 퇴사했음을 확인하는 '최종정산 확인서' 이렇게 4종이었다.

무슨 서류가 이렇게나 많아.
무슨 서류가 이렇게나 많아.

* 급여명세서(Bulletin de salaire)는  5년 이내에 총액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 프랑스에서는 서류를 잘 관리해야 한다.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태어나서 수표라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음. 한국에서도 수표를 쓰나?
태어나서 수표라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음. 한국에서도 수표를 쓰나?

월급을 현금 또는 수표 1장으로 한꺼번에 주면 좋았을텐데 왜 이렇게 쪼개주셨을까. 세금이 관련되어 있는 걸까. 그만둔 마당에 여쭤볼 수 없었다. 수표를 들고 은행에 가니 수수료로 10유로를 떼갔다. 겨우 50만 원 입금하는데 1만 5천 원을 떼간 거다. 1천 5백 원을 떼가도 아까울 마당에 사기꾼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지금껏 한국돈을 유로로 환전해 사용해오다가, 처음으로 유로로 된 돈이 생기다니! 금융치료를 받으니 일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싹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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