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어제는 주프랑스한국문화원(Centre Culturel Coreen)에 들려 책을 세 권 빌렸다. 이번 일요일 이집트에 가져갈 생각이다. 여행짐이라고는 배낭 하나가 전부인데 책만 두 권을 챙겼으니 욕심을 좀 부린 셈이다. 바다 앞에서 책을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 벌써부터 설렌다.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는 대신 책을 펼쳐 들었다. 한강의 첫 소설, <검은 사슴>.
같은 한국어를 가지고 어떻게 이리 표현할 수 있을까. ‘이른 아침, 주방에 나 있는 조그만 창문을 열어 겨울 바람을 쐰다.’ 내가 쓰면 고작 두 문장으로 끝날 문장을 작가들은 한 문단을 만든다. 그날 아침의 하늘이 어떤 빛을 띄었는지, 공기가 어떻게 피부로 닿았는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주택가가 무슨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분명 글인데 그림을 감상하는 듯 했다.
부끄러워지는 파리우쟁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걸 들킬까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파리우쟁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문장의 오류도 있고, 지루하게 반복적인 내용도 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럴 듯 하게 꾸며내기 위해 미사어구를 남발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씩 퇴고를 할 때면 수정을 거듭한 뒤 부끄러워 숨고 싶어 진다.
파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쓴 내용은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 소설과 비교해선 안 되는 걸 알지만… 내 친구들도 소설의 인물들처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어느 국적이라서, 어떤 연령대라서, 어떤 일을 하고 있어서와 같은 뻔한 신상정보 대신 그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멋진 문장으로. 현재로선 불가능…
이제 글은 +265. 꽤 쌓였다. 몇 몇 게시글은 조회수가 400을 넘는다. 내 인맥이 이정도로 넓지 않으므로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일기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한다. 그나저나 어쩌다 내 일기를 알게 된 거지? 파리우쟁 계속 써도 괜찮은 건가..?
일기
한기연 간사회의가 끝날 무렵 윤기가 말했다. “아, 회의 끝내기 전에 한 가지 말할 게 있어요. 우정 누나 파리우쟁 글 너무 좋아. 잘 챙겨보고 있어. 어디서 베낀 건 아니지?” 정말 내가 베낀 내용은 없을지 다시 읽었을 정도로 의아했다. 내가? 회의에서는 부끄럽게 웃어 넘겼지만, 절친한 친구들이 잘 읽어주고 있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파리우쟁에 담긴 나의 안일하고 짧은 생각으로 인해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내게 ‘일기’는, 평범한 하루 하루를 기록하다가, 간혹 내게 힘이 되어주는 문장이 있으면 따라 써보고, 일기 말미에 ‘다 잘 풀리겠지’라는 긍정 주문을 외우는 일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끄러움이든, 개인적인 게으름이든 언젠가는 어떠한 사유로 파리우쟁을 끝맺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내 일기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꾸준히 쓰고 싶다. 그때까지 어설픈 내 일기를 꾸준히 지켜봐주실 분들에게 애정을 보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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