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생활이 끝나간다. 한 달 채 남지 않았다. 이렇게 1년이란 긴 기간을 두고 훌쩍 떠난 게 처음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10년을 주기로 장기간 쉬어 갔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 스무살 즈음에는 쉬느라 한 템포 늦어진 인생을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더 바쁘게, 더 치열하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데 빠르기가 뭣이 중요한가 싶다. 오늘도 아침 7시, 팍드소(Parc de seaux)에서 고래를 만나 아침 조깅을 뛰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힘껏 뛸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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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너 미국에서 공부해볼래?“ 영어 성적을 겨우 50점 정도 받는 실력으로 어떻게 미국을 혼자 가나 싶었지만, 나는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오클라호마 주라는 깡촌에서, 낯선 호스트패밀리와 1년을 동거동락했다. 안 되는 영어를 악착같이 뱉어 가며 밥을 먹어야 했던, 오해를 풀기 위해 처절하게 소리치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낭랑 16세, 용케 1년을 버티고 돌아온 내게 엄마는 또 뜬금없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강남으로 가볼래?“ 당시 나는 서울 북쪽에 있는, 둘리가 유명하고 포차 곱창이 상당히 맛있는 쌍문동에 살았다. 멀리 놀러 나가봤자 미아동, 창동이 다였던 내가 강남을?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양재동으로 이사해 숙명여고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빵빵한 재력과 두뇌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용케 3년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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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이 내 인생 노선을 크게 바꿔놓을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외국물 좀 먹은 사람들, 영어 잘 하는 사람은 세상에 깔리고 깔렸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다 대학에 입학했고, 학점 관리,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과외를 병행하면서 대학생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25살, 대학생도 번아웃이 오는지 졸업을 앞두고 희미해져버린 자아를 찾겠다는 명분으로,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나의 결정으로 또 떠났다.
그곳은 제주. 계기는 단순했다. 당시 영화수업을 하던 늘푸른자립학교에서 제주도로 수련회를 떠났다가 그곳에 그냥 눌러 앉게 된 것이다. 일단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시속 120km까지 나가는 스쿠터를 마련했다. 그리곤 제주 바다와 오름 사이를 자유롭게 달렸다. 대학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방랑자의 삶이었다.
포소랑, 토리의꿈, 쉘터, 강정, 향이네, 제니스하우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는 일들을 벌였다. 그러나 그 생활도 1년을 하고 나자 힘에 부쳤다. 제주가 어떻게 관광지로 파괴되는지, 집도 가족도 직장도 없는 내가 제주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서울로 올라와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필기에서 보기좋게 떨어진 후 일반 기업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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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1년은 순식간에 흘렀다. 일일업무, 주중업무, 월간업무, 상반기 워크숍, 하반기 워크숍… 촘촘하게 짜인 업무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다이어리가 온통 일 생각 뿐이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권태로운 삶을 견디지 못 하고 5년 차가 되던 해에 파리로 왔다. 더 지체하다간 정말 이 모습 그대로 40이란 숫자가 올 것만 같았다. 남들처럼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걸릴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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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33년 밖에 안 살았지만 꼰대같이 누군가에게 인생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Push hard, now“ 간단히 말해서 브레이크를 밟으란 소리다. 사람은 1년씩, 주기적으로 쉬어줘야 한다. 내 인생으로 실험해 봤는데, 안 죽는다. 세상 안 망한다.
이번 브레이크는 밟아도 너~무 세게 밟은 듯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부터 떼제공동체, 옥토버페스토, 다합 프리다이빙 등 수십 개의 버킷리스트를 깨버리고, 수많은 도시와 국가를 여행하면서 제대로 어린아이가 되었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도화지라고나 할까. 새하얘서 눈앞이 캄캄하지만 무엇부터 그릴지 대충 끄적여본다.
- (단기)언어 공부 - 프랑스 대학원을 입학하려면 영어와 불어 성적이 있어야 한다. 간혹 이 두 언어가 섞여서 골치가 아프지만 둘 다 필요하다. 그 외 입학에 필요한 것들, Motivation letter, reference, CV 등 차근차근 준비할 예정이다. 동시에 학비도 모으고…
- (중기)ERESP 전공 공중보건대학원 MPH 학위 취득 -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자료를 제작하면서 정작 발달장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장애학을 공부해 전문성을 보완하고 싶었다. 마침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렌 Rennes에 ’장애인 사회참여(Situations de handicap et participation sociale)‘라는 전공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심지어 담당 교수가 장애사회학의 개론(Introduction à la sociologie du handicap)을 쓴 Emmanuelle Fillion이다. 전공만 보고 찾은 학교인데, 알아볼수록 상당히 좋은 학교였다…. 좋긴 한데… 못 들어갈까봐 불안해진다.
- (장기)NGO, WHO, Unapei, APF 프로젝트 매니저 - 그동안 배운 것, 일한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장려, 지원하는 정보 전달(publication)역할을 하고 싶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와중에 한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을 도우러 프랑스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 웃프지만 :)
과연 10년 뒤에 또 떠날 수 있을지,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다. 꽤 잘 늙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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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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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56)
따봉 따따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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