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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 > 방랑 > 권태

2024.03.15 | 조회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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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우쟁

파리로 떠난 우정의 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아침 조깅 풍경
아침 조깅 풍경

파리생활이 끝나간다. 한 달 채 남지 않았다. 이렇게 1년이란 긴 기간을 두고 훌쩍 떠난 게 처음은 아니다. 어쩌다보니 10년을 주기로 장기간 쉬어 갔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뒤쳐져 있다. 스무살 즈음에는 쉬느라 한 템포 늦어진 인생을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더 바쁘게, 더 치열하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데 빠르기가 뭣이 중요한가 싶다. 오늘도 아침 7시, 팍드소(Parc de seaux)에서 고래를 만나 아침 조깅을 뛰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힘껏 뛸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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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너 미국에서 공부해볼래?“ 영어 성적을 겨우 50점 정도 받는 실력으로 어떻게 미국을 혼자 가나 싶었지만, 나는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오클라호마 주라는 깡촌에서, 낯선 호스트패밀리와 1년을 동거동락했다. 안 되는 영어를 악착같이 뱉어 가며 밥을 먹어야 했던, 오해를 풀기 위해 처절하게 소리치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낭랑 16세, 용케 1년을 버티고 돌아온 내게 엄마는 또 뜬금없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강남으로 가볼래?“ 당시 나는 서울 북쪽에 있는, 둘리가 유명하고 포차 곱창이 상당히 맛있는 쌍문동에 살았다. 멀리 놀러 나가봤자 미아동, 창동이 다였던 내가 강남을?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양재동으로 이사해 숙명여고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빵빵한 재력과 두뇌를 가진 친구들 사이에서 용케 3년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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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이 내 인생 노선을 크게 바꿔놓을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외국물 좀 먹은 사람들, 영어 잘 하는 사람은 세상에 깔리고 깔렸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다 대학에 입학했고, 학점 관리,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과외를 병행하면서 대학생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25살, 대학생도 번아웃이 오는지 졸업을 앞두고 희미해져버린 자아를 찾겠다는 명분으로,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나의 결정으로 또 떠났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렇지는 않아. 나는 가야만 한다고 느끼기에, 그리고 오늘 너무나 놀라운 일을 경험했기에 기꺼이 떠나는 거야. 그렇지만 순전히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 달려가는 건 아니야. 힘든 길이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멋진 길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 그건 비웃을 일이 아니야. 나에게는 사랑이 곧 삶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삶의 의미로 통하는 길이야. 아, 나르치스, 나는 네 곁을 떠나야만 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그곳은 제주. 계기는 단순했다. 당시 영화수업을 하던 늘푸른자립학교에서 제주도로 수련회를 떠났다가 그곳에 그냥 눌러 앉게 된 것이다. 일단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시속 120km까지 나가는 스쿠터를 마련했다. 그리곤 제주 바다와 오름 사이를 자유롭게 달렸다. 대학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방랑자의 삶이었다. 

포소랑, 토리의꿈, 쉘터, 강정, 향이네, 제니스하우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는 일들을 벌였다. 그러나 그 생활도 1년을 하고 나자 힘에 부쳤다. 제주가 어떻게 관광지로 파괴되는지, 집도 가족도 직장도 없는 내가 제주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서울로 올라와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필기에서 보기좋게 떨어진 후 일반 기업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때때로 골드문트는 얼마 전부터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아해하곤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사랑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허락을 얻어 길게 지속될 행복의 가망도 없었고, 지금까지 익히 그래 왔듯이 가볍게 욕망을 충족시킬 가망도 없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골드문트는 그렇게 행동했고 그 결과를 감수했다. 기꺼이 견뎌 냈다. 그러면서 은근히 행복했다. … 골드문트는 지난 몇 주 사이에 그 자신 역시 달라졌으며 성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전보다 더 지혜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더 노련해졌으며, 그의 영혼이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성숙하고 풍요로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그는 소년이 아니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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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1년은 순식간에 흘렀다. 일일업무, 주중업무, 월간업무, 상반기 워크숍, 하반기 워크숍… 촘촘하게 짜인 업무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다이어리가 온통 일 생각 뿐이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권태로운 삶을 견디지 못 하고 5년 차가 되던 해에 파리로 왔다. 더 지체하다간 정말 이 모습 그대로 40이란 숫자가 올 것만 같았다. 남들처럼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걸릴 게 없었다. 

아름다운 작품인 성모 마리아 상을 만들어 놓으신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해 왔으며,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야말로 저에겐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의 인물 상을, 사도요한 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마리아 상만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작품을 만들려면 아직도 훨씬 더 많은 경험과 체험을 쌓아야만 하겠지요. 어쩌면 삼사 년 후에 만들 수 있을 것도 같고, 어쩌면 십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까지는 손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각상에 니스 칠을 하고, 나무를 깎아서 설교 연단을 만들고, 작업실에서 기능공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래서 다른 기술자처럼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며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퇴사했을 때 내 마음과 똑같아!

 

 

4*

고작 33년 밖에 안 살았지만 꼰대같이 누군가에게 인생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Push hard, now“ 간단히 말해서 브레이크를 밟으란 소리다. 사람은 1년씩, 주기적으로 쉬어줘야 한다. 내 인생으로 실험해 봤는데, 안 죽는다. 세상 안 망한다.

어느 경우든 방랑자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는 어린아이와 같다. 언제나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의 어린아이처럼, 태초의 인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방랑자는 언제나 최소한의 단순한 욕구와 필요에 따라 살아간다. 그는 영리한 사람일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다. 또 일체의 삶이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덧없는 것인가를, 또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우주 공간 속에서 얼마나 가련하고 불안하게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따뜻한 피를 순환시키고 있는가를 깊이 체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유치하고 탐욕스럽게 주린 배의 명령에만 따를 수도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이번 브레이크는 밟아도 너~무 세게 밟은 듯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부터 떼제공동체, 옥토버페스토, 다합 프리다이빙 등 수십 개의 버킷리스트를 깨버리고, 수많은 도시와 국가를 여행하면서 제대로 어린아이가 되었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도화지라고나 할까. 새하얘서 눈앞이 캄캄하지만 무엇부터 그릴지 대충 끄적여본다.


  • (단기)언어 공부  -  프랑스 대학원을 입학하려면 영어와 불어 성적이 있어야 한다. 간혹 이 두 언어가 섞여서 골치가 아프지만 둘 다 필요하다. 그 외 입학에 필요한 것들, Motivation letter, reference, CV 등 차근차근 준비할 예정이다. 동시에 학비도 모으고…
  • (중기)ERESP 전공 공중보건대학원 MPH 학위 취득  -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자료를 제작하면서 정작 발달장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장애학을 공부해 전문성을 보완하고 싶었다. 마침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렌 Rennes에 ’장애인 사회참여(Situations de handicap et participation sociale)‘라는 전공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심지어 담당 교수가 장애사회학의 개론(Introduction à la sociologie du handicap)을 쓴 Emmanuelle Fillion이다. 전공만 보고 찾은 학교인데, 알아볼수록 상당히 좋은 학교였다…. 좋긴 한데… 못 들어갈까봐 불안해진다.  
  • (장기)NGO, WHO, Unapei, APF 프로젝트 매니저  -  그동안 배운 것, 일한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장려, 지원하는 정보 전달(publication)역할을 하고 싶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와중에 한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을 도우러 프랑스로 간다는 사실이 조금 웃프지만 :)

 

과연 10년 뒤에 또 떠날 수 있을지,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다. 꽤 잘 늙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원성과 대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여자 아니면 남자로 태어나고, 방랑자가 아니면 보통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성적이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쉰다거나, 남자인 동시에 여자이거나, 자유를 누리면서 질서를 찾거나, 충동대로 살면서 이성을 지킨다거나 하는 것은 어디서도 불가능했다. 그중 어느 한쪽을 택하면 반드시 다른 한쪽을 희생시켜야 하고, 어느 한쪽 못지않게 다른 한쪽도 소중하고 갖고 싶은 것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그나저나 책 느므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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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2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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