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우쟁이 또 뜸했군
한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마와 턱에 좁쌀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넓게 퍼졌다. 아무도 날씨 탓인 듯 하다. 하늘은 매일같이 뿌연 구름뿐이고, 수시로 눈과 비가 내렸으니말이다. 무릎이 시리다는 말을 이젠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아빠가 한 마디 했다. “너 곧 40이야.” “나도 알아! 하지만 파리에선 나를 20대로 본다구!” 애써 부정하다가 독감에 걸려부렸다.
Au pair jobs
독감으로 고생하는 내내 집주인은 각종 감기약을 나눠주셨다. 거기에 유자차, 꿀차, 각종 과일까지… 야무지게 챙겨주신 덕분에 평소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나처럼 현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오페어(au pair)라고 부른다. 지낼 만한 방 외에도 2~300유로의 적은 금액과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이곳은 월세가 높기로 유명한 파리이므로 오페어 자리를 찾기 힘들다. 더구나 맛 좋은 음식과 안전하고 큰 공간을 누리며 지낼 수 있는 건 그야말로 신이 도왔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클로에네 집에 오지 않았다면 과연 파리생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아마 개같이 일해야 했겠지. 그리고 그 돈 대부분을 월세로 탕진하고, 매일 빵 쪼가리만 뜯어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렸을테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금요일 저녁
금요일은 주중에 가장 바쁜 날이다. 오전에 어학원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 테니스 강습을 받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감기로 골골대면서도 쉬지 않고 몸을 던졌다. 저녁이 되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컨디션으로 클로에를 픽업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전자렌지만 돌리면 된다.)
조금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식사 후 클로에가 곧바로 샤워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얼마 후 샤워를 마친 클로에는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레고 놀이를 시작했다. 혼자서도 잘 놀길래 나는 그 옆에서 발라당 누워버렸다.
잔 건 아니었다. 눈만 잠깐 감고 있었다. 엄연히 일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워만 있으려니 맘이 편치 않았다. 조금 밍기적 대다가 클로에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올 시간이 되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 내게 클로에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눈이 빨개!“ 눈이 충혈된 모양이었다. “괜찮아 곧 사라질 거야.” 그렇게 또 한참 평화롭게 놀았다.
그러다 갑자기, 클로에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몇 날 며칠 공들여 만든 레고 집을 내가 망가뜨렸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밤 9시가 훌쩍 지난 밤이라 피곤함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때 마침 클로에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 클로에 엄마는 대문에서부터 들려오는 클로에의 울음소리에 많이 놀라셨는지 부츠를 벗다 말고 방까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클로에는 울먹이면서 답했다. “우정이 내가 만들어 놓은 걸 다 망쳐놨어!” 둘이 중국어로 얘기해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위기상 알 수 있었다. 클로에 엄마는 ‘고작 그거야?’하고 피식 웃었다. 안심하는 눈치였다. 나는 둘이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이렇게 피곤한 하루를 보냈음에도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다. 그 길에서 클로에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울려서 미안해요.’ 다행히 별 일 아니라고,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어서 클로에가 나랑 대화를 더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쿵!
클로에와 함께 동거동락한 지 벌써 8개월, 처음 클로에를 만나기 전에는 아이가 거짓말을 잘 하고 잘 운다는 말을 들어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보는 클로에는 혼자 목욕도 곧잘 하고, 밥도 잘 아니 왕창 먹고, 넘어져도 씩씩하게 울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좋은 아이다. 다만 늘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만 봐 와서 내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랑도 친해지고 싶어했다니 전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클로에는 수줍게 내 방 문을 열어 ‘굿모닝’하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도 인사를 하고, 어젠 미안했다고 팔을 벌려 화해의 제스쳐를 보였다. 클로에는 쪼르륵 와서 꼬옥 안겼다. 하루를 따뜻한 포옹으로 시작해선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나이, 국적, 언어를 모두 뛰어 넘어서 클로에와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
우정! 이것 좀 도와줘
하루는 이빨로 과자 봉지를 뜯어주었다. 그 뒤로 클로에는 비닐을 뜯어야 할 때마다 나를 찾았다. “뜯어줘!” 그럼 나는 “씰부쁠레!(부탁합니다!)라고 해야지“라고 말하며 잽싸게 뜯어줬다. 이번에도 방에 있던 나를 거실로 불러 내더니 새 장난감을 내밀었다. 내심 옆에 있는 엄마가 아닌 나를 부르는 클로에가 이상했지만,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장난감 포장지를 뜯는 동안 클로에는 옆에 있던 에이나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Woojung! C’est ma sœur. (얘 우리 언니야.) *#@@&@^!“ 뒤에 뭐라고 말한 건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를 언니라고 소개한 것만은 분명했다.
클로에는 원래 나를 ‘Nounou(누누)’나 ‘Babysitter(베이비시터)‘라고 불러왔다. 간혹 이웃들이 “왜 너를 베이비시터라고 불러?”라고 의아해 했지만,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었다. 그러던 내가 ‘서(Sœur,언니)’가 되었다. 왠지 지위가 상승한 느낌이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더 빠르고 힘차게 비닐을 뜯어제꼈다. 클로에의 언니가 된다면 이까짓 비닐 얼마든지 뜯어줄 수 있다는 듯이. 왠지 클로에가 나를 훈련시키는 것 같다.
어느 토요일 오후
토요일은 클로에를 데리고 파리 시내로 나가는 날이다. 그곳에서 Kpop 댄스과 중국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을 듣는 동안은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서 편하지만, 학원까지 가는 이동은 쉽지 않다. 30분이면 될 거리를, 클로에와 같이 가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클로에는 길가에 꽃이 보이면 뜯어서 ‘아~예쁘다~’ 감상하고, 눈이 오면 쌓인 눈들을 잠깐 만져주고, 높은 난간이 있으면 올라가 공주님처럼 사뿐 사뿐 걷고, 우연히 친구들을 만나면 안부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동네의 핵인싸다. 동네를 벗어나도 주변 사람들을 위한 관심은 계속된다. 입찰구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잘 지나갈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다가 무사히 해결되어야 발걸음을 옮기고 (도와줄 수도 없는데..), 광고 하나 하나, 아이 한 명 한 명 다 살피며 걸으니 오래 걸릴만도 하다.
그러길 수 개월. 이제는 빨리 이동하는 몇 가지 방법을 터득했다. “클로에! 투쉬 빠 드 린(선 밟지 말고) 꾸스 주스카 라 바!(저기까지 누가 빨리 가나 내기하자!)” 빨리 가는 데는 달리기 시합만 한 게 없었다. 승부욕 넘치는 클로에는 이기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전력질주했다. 단, 적당한 스피드로 달려야 했다. 혹여나 내가 이겨버리면 기분이 상해서 더는 뛰지 않았다. 클로에의 기분을 잘 - 살펴야 하는 고난이도의 방법이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빨리 가려는 마음을 비운다.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하는 애를 억지로 데리고 나오다보니 늘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간혹 뒤에서 때리고 꼬집고..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짜증을 내지만, 토마토학교 10년 경험으로 쌓은 내공으로, 어차피 집에 일찍 도착해봐야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집까지 무사히 돌아온다. 매주 베이비시터 능력치가 +1 씩, 클로에와의 정이 +1씩 상승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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