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ending studies

리즈 시절

지금이 제일 핫할 때

2026.03.19 | 조회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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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다이어리

Frances's Diary : Private journals from Frances Ko

3월, University of Leeds의 봄학기가 개강했다. 37살에 또 다시 26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 학번 개념은 없다. 하여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아침 9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선다. 요즘 부쩍 따스한 봄기운 받으면서 30분을 걷고 나면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밤 10시까지 머문다. 그야말로 머문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다. 베라에서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호화를 부리기도 하고, 때때로 도서관에서 열리는 특강을 듣기도 한다. 공부와 일, 취미, 그 사이 틈새가 생기면 일기를 쓴다. 모든 시간을 연결하는 의식과도 같다. 어쨌거나 오늘도 쌓인 일기가 산떠미다. 그중 새학기 느낌을 살려 학교 공부에 대한 일기만 골랐다. 

매주 월요일 밤 12시(영국 오후 3시)에 웨비나에 참여한다.
매주 월요일 밤 12시(영국 오후 3시)에 웨비나에 참여한다.

 

갑자기 대학원?

 

나는 어쩌다 장애학을 공부하게 됐을까? 사회복지 단체나 국제 기구로 취직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 스스로 답답함을 느껴서,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껴서 하게 됐다. 소소한소통이라는 사회적기업에서 쉬운 정보를 제작할 때를 돌아보면, 쉽게 만든 자료로 인해 발달장애인도 능동적인 사회 참여가 가능해졌고, 더 다양한 경험을 누리도록 지원하면서 꽤나 행복했던 것 같다. 멋진 일과, 멋진 사람들, 그 속에서 멋진 나의 모습도 꿈꿨다. 하지만.

  •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장애'가 과연 옳은가? 방금 한 말에 편견이 들어가 있진 않은가? 다른 혹은 더 나은 생각이 있을까?
  • 다른 사람들은 어떤 편견으로 장애를 생각하는가? 그 편견은 왜 그른가?
  • 토마토학교에서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신해서 결정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도움을 받는 것일까 차별을 받는 것일까?
  • 장애인은 교육해야 할 대상인가, 치료해야할 대상인가, 지원해야할 대상인가, 보호해야할 대상인가?
  • 장애인을 대상화하지 않고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장애'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자격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자격일까?
  • 장애인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에 가장 만족을 느낄까? 유럽국가에서 장애인은 어떤 평등을 누릴까?

커리어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모든 질문들이 내게 너무 어렵고 벅차기만 했다. 답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답답함? 어쩌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두 언니와의 술자리라도 생기는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들은 늘 내 생각을 깨주는 답들을 들려주었다. 콩떡같이 질문해도 찰떡같이 답해주는 두 사람을 보면서, 현장의 경험이 지식과 어우러지면 이런 모습이 되는구나 싶었다. (이 두 사람은 추천서를 써 준 나의 느님들이다.) 때문에 언니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늘 즐거웠고, 나 역시 이 언니들처럼 장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니들처럼 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면 나만의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왜 하필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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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해외 유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여윳돈이 있거나, 장학금을 받을 만큼 똑똑하거나.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래서 갖고 있는 돈이라고는 전세금 2천 만 원이 전부지만, 그걸 쓰기로 했다. 미국은 학비만 1억이 넘는다고 하니,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사실… 2천 만 원으로 대학원 유학이 말이 안 되는 금액이긴 하다. 하지만 영국 편도 25만 원 티켓도 잘 찾는 나니까. 다 방법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3개의 선택지가 내 앞에 놓였다. 

 

첫 번째 옵션, EHESP (프랑스)

  • 학비 총 2천 만 원 : 연 1천 만 원, 2년 과정
  • 공중보건학 MPH : 보건 정책 연구 중심이다. WHO, NGO 등 국제 기구로 인턴십이 활발하며, 그만큼 졸업 후 커리어 기회가 많다.
  • 특징 : 프랑스 서쪽에 있는 소도시 렌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의 낭만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다.

 

두 번째 옵션, Wits (남아공)

  • 학비 총 1천 만 원 : 연 5백 만 원, 2년 과정
  • 공중보건학 MPH : 남아프리카의 불평등(이민, 빈곤, 젠더, 장애 등)을 현장에서 실제로 경험하며 연구하고 액션을 기획한 뒤 곧바로 실행한다. 현장 중심의 연구 기회가 많다.
  • 특징 : 남자친구가 남아공에 살아서 아무래도.. 마음이 마구 기울었다.

 

세 번째 옵션, UOL (영국) 

  • 학비 총 3천 만 원 : 연 1천 5백만 원, 2년 과정
  • 장애학 Disability Studies, Rights and Inclusion : 장애학 연구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처음 사회모델*을 제안하여 장애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 장애운동, 장애정책에 집중해 연구한다. (사회모델 이란, 장애는 개인의 손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장벽으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모델 social model)
  • 특징 : 장애인도 공부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 100%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비자, 기숙사, 살인적인 파운드 환율, 영국 물가 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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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준비가 길어지다보니 그사이 수많은 타협과 절충을 고려하게 됐다. 이를테면 '그냥 취직할까' 같은 것. 남아공 학교도 그 타협 중 하나였다. 어디든 한국 땅을 떠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리즈대학교에 지원서를 넣으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장애학'이었지 참! 아니 그렇다면 세계 상위권, 그것도 장애학으로 저명한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생활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옵션인데!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어디있겠냐! 오늘도 방구석에서 밤 12시, 잠옷을 입고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로또야!'

 


 

뭔가 이상해

 

노선이 정해진 만큼 UOL로 쿨하게 지원했고, 2주만에 초고속 합격했다. 서류만으로 합격이 결정됐다. 다른 곳은 1달 이상씩 걸리는 절차라서 내심 '온라인 수업이라고 아무나 다 받아주는 곳인가...' 싶기도 했다. 그후로 이상한 점은 한 두개가 아니었다. 

 

(1) 영국에서 국제 전화가..?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44... 국제전화입니다.'라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영국 리즈대학교 입학처라고 했다. 버스 안이었고, 게다가 영어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중요한 전화라, 부끄러운 줄 모르게 승객들 사이에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합격을 축하해. 메일 잘 받았지?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건 없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전화를 끊은 뒤에는 그저 학생들을 일대일로 세심하게 챙겨주는 학교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 전화는 학생의 장애여부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입학 절차와 지원을 안내해주기 위함이었다.

 

(2) 첫 학비는 250만 원..?

오퍼(입학 제안)는 작년 11월에 받아둔 상태였다. 그런데 등록은 그로부터 세 달 뒤인 2월 말까지 하면 된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다. 메일 본문에 있는 링크로 들어가 카드결제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 모든 게 뭔가 이상했다. 등록 기간을 세 달이나 주는 것도, 링크에서 바로 결제하는 것도, 무엇보다도 금액이... 고작 250만 원이었다. 등록금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학비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그 비밀은 3월이 되어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풀렸다.

정리하면, 리즈대 장애학 온라인 수업은 한 번에 한 과목씩 진행된다. 그리고 한 과목은 2개월 동안 수강한다. 즉, 첫 1년 동안 총 6과목을 듣게 되는 구조다. 비용은 각 과목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까지 해당 과목의 수업료(두 달치)를 결제한다. 결국 나는 한 번에 큰 금액을 내는 대신, 격달로 약 250만 원씩을 꾸준히 내면 되는 것이다. 

Foundation Modules 기초 과목

Disability & Inequality 장애와 불평등 / 3,4월

Understanding Disability 장애의 이해 / 5,6월

Disability & Inclusion 장애와 포용 / 7,8월

Development Modules 심화 과목

Becoming Disability Change Makers 장애분야에서 체이지메이커 되기

Building Enabling Futures 가능성있는 미래 만들기 

A Human Rights Approach to Disability 장애를 기본적인 인권 관점으로 바라보는 접근 

Doing Disability Research 장애 연구 하기

Disability & Global Challenges 장애와 글로벌 과제

Realising Disability Equality Through Policy 정책을 통해 장애 평등 실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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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학기를 시작한 나는 3월과 4월에 한 과목, 5월과 6월에 한 과목, 7월과 8월에 한 과목을 수강해서 2026년 상반기 동안 Foundation Modules 기초과목 3개를 듣게 된다. 이후 하반기에는 Development Modules 심화과목 3개를 이수하고, 2027년 상반기에 남은 심화과목 3개를 들은 뒤, 마지막으로 논문 과정이 이어진다. 헥헥. 계속해서 치솟는 파운드 환율도 문제지만 방학도 없이 이걸 다 어떻게 따라가야할지 앞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막막하다. 

 

(3) 자꾸 뭘 계속 도와줘?

교수님과 학생들이 처음 만나는 OT모임도 조금 달랐다. 교수니믄 학내 장애인 지원 센터의 존재를 알리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그외에도 각자에게 맞는 지원이 있을 수 있으니 등록부터 하도록 독려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장애인임을 밝히며 도움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학습자료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를 고려해 필요한 형태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실제로 함께 공부하는 분들 중 시각장애인이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중동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학업이 힘든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라는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섬세함이 어디까지 미치는 것인지... 이제 감도 안 온다. 

OT에서 사용된 슬라이드
OT에서 사용된 슬라이드
읽기자료를 다양한 포맷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읽기자료를 다양한 포맷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실제로 가자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가자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이 있다.



 

 

온라인이지만 괜찮아

 

내가 느낀 낯섦은, 이전에 받아본 적 없는 방식의 보살핌이었다. 지원 방식을 미리 정해두고 신청하게 하는, 효율과 합리성을 기준으로 한 보살핌이 아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때로는 끈질기게 물어서 사람들마다 다른 필요를 파악해 그에 맞게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이 낯설었던 이유는, 그것이 지난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필요한 지원이었고, 이러한 방식은 나에게 사이드 이펙트처럼 다른 차원으로 작용했다. 이 학교의 학생이 되었다는 소속감, 나아가 자부심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거진 50통이 넘는 이메일을 학교측과 주고 받았다. 공무원처럼 문의를 빙빙 돌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00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어! 내가 그쪽으로 ~라고 문의 남겼으니까 기다려봐! 여기 문의 내용을 붙여둘게!"라는 식으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다만 혹시라도 입학을 놓칠까봐 불안해서 확인을 하고 또 했을 뿐이다. 이메일 외에도 전화, 팀즈, 홈페이지(티켓) 등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았다. '너는 공부만해! 힘든 건 우리가 도울게!'하는 응원같았다. 그 보살핌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전달되었다. 비록 온라인 형태였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배려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게임에서 퀘스트를 하나씩 깨듯, 보살핌이 하나둘 쌓여갈수록 나 역시 같이 공부하는 누군가를 돕게 되었다. 이메일 계정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나, 프로그램에서 특정 버튼을 찾는 일, 설문지 링크를 공유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현재 스무 명의 학생들이 왓츠앱 그룹을 만들어 함께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난주 읽기 자료도 다 못 읽었는데 큰일이야."라는 푸념부터, "그런데 이상하게 다 읽고 싶어져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못 놓겠어."라는 열정 어린 말, "트럼프의 ~기사 어떻게 생각해 다들?"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과거의 발자국들이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요 며칠 전 다시 아르바이트(영어 강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또 다시 나의 정처없음을 느꼈다. 하염없이 시간은 흐르는데, 공허하게 허우적거리고 있구나. 하지만 그 불안감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싹- 사라졌다. 불안해할 여유가 없다. 영어 공부 했을 때 그러했듯, 익숙해질 때까지, 될 때까지 다시 또 존버를 해야한다. 그러다보면 내 발자국들이 만드는 모양이 어떤지 알게 되겠지. 

'머리가 나쁘면 열정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드라마 속 괴짜 교수를 만나 카이스트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과학자 대신 의사가 되기로 타협했다가, 첫 환자인 민지를 만나 다시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의미 있는 많은 실패는 적당한 성공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제가 그랬듯 인생의 변곡점들을 기회로 이끌 힘과 인연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고단했던 순간이 오늘을 위한 연습이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성장할 것입니다.

카이스트 졸업생 차유진 박사의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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