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약 300km. 처음 걷기 시작할 무렵,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30일이나 걸을 수 있을까’ 혹은 ‘과연 가치있는 짓인가’ 하는 질문으로 가득 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길이 왜 좋을까‘, ’고작 걷는 것 뿐인데 무엇이 이렇게 나를 매료시키는 것일까‘하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길에서 만난 호주인 트로이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아서 타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워. 타본 사람도 그 짜릿한 감정을 설명하기 힘들지.“
10일차 뒷 이야기
닉의 농담에는 성희롱이 많았다. 못 알아 들은 척 넘겼지만 끝내 못 들어 주겠다 싶어 그건 bad joke니까 그만하라고 주의를 주기까지 했다.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하루면 충분했다. 그래서 리옹에게 내일 길에서 닉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따로 걸을 거라고 못박았다. 그렇게도 만나기 싫었던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놀라는 내색 없이 인사했다. 왜 호텔이 아니라 이쪽으로 왔냐고 물으니 이곳이 호텔인 줄 알았다고 했다. 니가 준 방이라서 내가 이미 체크인했다고 하니 미안하다며 자기 방에 침대가 2개 있으니 같이 쓰자고 했다. 이걸 노린 건가. 방이 100유로라고 해도 돈을 내고 말지.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방을 달라고 하고 23유로를 냈다. 화장실이 딸린 개인 방이라 긴장했건만 생각보다 저렴했다. 얼떨결에 아늑한 방을 얻게 되니 잠이 솔솔 왔다. 하여 저녁도 먹지 않고 아침까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다행이 닉의 방은 비어 있었다. 일찍 체크아웃하고 떠난 모양이었다. 내 발가락 양말은 받지 못 했다. 차라리 잘 됐어.
11일차 24.13km
Grañón Redecilla del Camino Castildelgado Viloria de Rioja Villamayor del Río Belorado Tosantos Villambistia Espinosa del Camino
오늘 코스는 마을 사이의 거리가 짧았다. 즉, 맥주를 마실 만한 마을들이 많았다는 거다. 하도 쉬다보니(마시다보니) 24km 밖에 안 걸었는데도 저녁 6시를 넘겼다. villambistia 마을에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서 그 다음 마을인 espinosa del camino까지 걸었고, 그곳의 마지막 침대를 얻었다.
이곳에는 어제 레지던스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스페인인 곤잘래스가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순례하는 특이한 친구다. 우리는 스페인 축구를 잠시 감상하다가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젊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선지 더 흥이 올랐고, 와인 한 병을 더 가지고 2층의 거실로 자리를 옮겨 2차까지 했다. 마침 2층에는 크로아티아인이 어둠 속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친구까지 합세해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 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토마토학교 뒷풀이 분위기였다. 아디오스.
그녀의 이름은 센다
곤잘래스와 함께 다니는 말의 이름은 ‘센다’. 그녀는 순례길의 인기스타다. 길에서 곤잘래스를 만나면 같이 담배를 피곤 했는데 그동안 센다는 배고팠는지 정신없이 잔디를 뜯어 먹었다. 그럼 센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 갔다. (센다의 초상권은 어디에…) 곤잘래스에 의하면 의외로 말을 탄다고 해서 순례길을 빠르게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동 거리의 반은 센다를 타지 않고 걸어야 하며, 센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 나타나면 달래고 달래다 결국 우회해야 한다고 했다. 부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기를.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2일차 21.75km
Espinosa del Camino Villafranca-Montes de Oca San Juan de Ortega Agés Atapuerca
리옹이랑 걸은 지 3일이나 됐다. 리옹은 뭐든 내 의사를 먼저 묻는다. 몇 시에 출발할래? 어디까지 갈래? 뭐 먹을래? 결정을 잘 못 하는 편인데 자꾸 결정하게 한다. 그리고 다리도 긴 녀석이 계속 나의 느린 걸음에 맞춰 걷는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성당을 둘러보았는데도 괜찮다며 나를 기다려주었고,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한 인도 음식도 코스로 함께 먹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내가 혼자 카페에 앉아 있으면 리옹을 찾는다. 슬슬 리옹이 왜 나랑만 다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저녁을 먹으면서 물었다. “Why do you walk with me?” 의외로 당황하지 않고 나에 대한 칭찬을 줄줄 읊어주었다. 이어서 그 질문이 내게 돌아왔다. 한참 고민하다가 너랑 있으면 말 없이도 편하게 걸을 수 있으니까 라고 답했다. 차마 잘 생겨서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책임이 두려운 30대
하루는 혼자 걷다가 이런 저런 생각이 깊어져 눈물이 났다. 뜨거운 눈물 딱 한 방울.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울컥했다. 책임을 회피하며 살아왔는데 그래도 버거운 것인가. 내 책임은 그냥이와 그래다. 냥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매달 한국에서 30만 원이 넘는 고정비용이 나간다. 월세,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사료와 모래 구입비, 후불교통비(엄마가 사용중. 그냥그래의 양육비인 셈), 나의 보험료, 더 있나...
이날 저녁에 또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밤 늦게까지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곤 주제 넘게 엄마가 생각하는 책임이 무엇인지 물었다. 애매한 답이었지만 어쨌든 응원을 보낸다. 현재 엄마는 미용실 문을 닫고 다단계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베트남에 가 계신다. 상품을 베트남으로 수출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미용실은 어쩌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어쩌랴. 책임이란 건 어쩌면 결국 맞닥드려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거니까. 각자 잘 살기를 바랄 수 밖에.
13일차 19.83km
Atapuerca Villalbal Cardeñuela Riopico Orbaneja Riopico Villafría Gamonal quarter Burgos
브르고스로 가는 길은 지루한 고속도로 옆길이다. 며칠 간 숲속에서만 지내선지 대형트럭이 오고 갈 때마다 소음이 크게 느껴졌다. 일정이 짧거나 연세가 많은 분들은 많이들 버스를 타고 도시 중심까지 이동한다. 리옹과 나는 얼마나 남은 거야 도대체! 라는 말을 수십번씩 내뱉으며 꾸역꾸역 끝까지 걸었다.
브루고스는 순례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내일 이곳에서 축구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쯤 쉬어 가기로 결정했다. 리옹도 나를 따라 호텔로 2박 예약했다. 자기도 발이 아파서 어차피 쉬어야 한다면서. 나를 또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내게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하여 브르고스에 머무는 동안은 만나지 말자고 했다. 서운한 티를 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어... 안-녕
내가 이 길의 킹왕짱 누나다.
브르고스 초입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한국인 폴을 만났다. 이분은 한국 이름보다 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듯 했다. 자신이 나이가 꽤 많다고 소개했으나 사실 내가 더 많았고, 그 사실을 듣자마자 바로 누나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보다 어리다니. 동안이라서 다행인 걸로. 아무튼 짧지만 또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녁에 시내에서 폴을 다시 만났다. 맥주와 요거트를 너무 많이 사서 하루 더 머무는 내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의 파리생활을 응원한다는 말도 전했다. 주머니에서 주섬 주섬 꺼내 주는 게 참 고마웠다. 피곤한 내색이 역력했지만 맥주 한 잔 하자고 붙잡았다. (내가 사야 하는데 오히려 사주심 누나란 사실보다 중요한 건 백수란 것) 산티아고 길에서는 인연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부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14일차 0km
Burgos
독일인 엔젤 아저씨가 오늘 분명 브르고스에서 축구경기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2박을 머물었건만 축구는 내일이란다. 아휴. 스페인 축구 응원 분위기 좀 느껴보려고 했건만 참 안 도와주네. 혼자 시내를 거느리다가 카페에 앉아 3시간 가량 일기를 썼다.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니 의외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성 꼭대기로 올라가 브루고스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또 3시간을 기다렸다. 여기 스페인은 9시까지도 해가 쨍하다. 그래서 10시 정도 되어야 야경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말이야
간혹 옆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말하는 걸 듣게 된다. “한국인들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걷기를 시작해.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한국인들은 햇빛을 가리기 위해 온 몸을 가리는데, 왜 그러는 걸까.“ “산티아고에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내가 한국인인데 왜 내 옆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지.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나? 차라리 내게 직접 물어보지. “시차 때문에 우리에겐 새벽 3시가 오전 10시야.” “살 타는 걸 싫어하니까.” “네가 카미노가 된 이유와 같겠지.” 한국인으로서 답해주고 싶은 적이 많았다.
한국인의 특징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날 브루고스에서 처음, 나를 부끄럽게 한 한국인이 있었다. 새벽 2시쯤이었던가 한참 자고 있는데 옆 침대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 아저씨가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계셨다. 3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자고 있는 곳이라서 어디선가 “쉬잇!” “Be quite plz(영어)” “@^&(!$(스페인어)” 등 조용해달라는 외침이 들렸다. 나는 아저씨가 외국어를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다 싶어 ”지금 새벽이에요.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한국어로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래도 통화를 계속 이어서 하셨다. 머지않아 한 외국인이 2층 침대에서 쾅하고 내려와 우다다다 오더니 “If you want to talk on the phone, you should go outside. Everyone is sleeping. Be quite.”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제서야 그 아저씨는 ”아우 짜증나 영어로 뭐 통화하지 말라네. 거참 피곤하구만“ 궁시렁 거린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짜증을 내시더니 전화를 끊으셨다. 귀가 안 좋으셨던 건가. 부디 산티아고까지 걷는 동안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를. 이 부끄러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끼는 것이길 바라본다.
Walking or Working
하루에 20km씩 걷기와 하루 8시간 일하기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이 좋을까? 리옹은 일하기를, 나는 걷기를 택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그게 일이되면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적절한 휴식을 하지 못 해서 그런 것 아닐까? 우리는 휴식이 필요할 때 타당한 목적 또는 명분이 필요하다. 업무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일이 많지 않은 시기를 잘 골라 쉬어야 한다. MBTI의 ‘I’라면 더욱 휴식을 갖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퇴사하고 온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멍 때리다가 “아, 행복하다.“ “암 그렇고 말고”라는 말로 적막을 깬다. 우리는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췄고, 이 길에서 다시 나아갈 힘을 기르고 있다. 쉼이 필요한 순간, 산티아고 순례길은 분명 최고의 선택이며, 이 길을 충분히 느끼며 걸으려면 ‘퇴사’ 밖에 없겠다는 답을 내렸다. 이게 정말 순수한 ‘휴식’이 아닐까.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쉼이 필요한 순간, 또 다시 걸으리라 다짐했다.
15일차 20.87km
Burgos Tardajos Rabé de las Calzadas Hornillos del Camino
10시쯤 리옹을 만났다. 겨우 하루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새삼 반가웠다. 내가 알베르게에서 묵는 동안 그는 호텔에서 지냈다. 비싼 곳에서 푹 쉬었으면서 왠지 컨디션이 안 좋아보였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지쳐보였다. 그래도 체력이 나보다 좋으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그는 20km를 걸은 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택시를 불렀다. 걸어온 거리를 다시 돌아가 응급실로 갔다.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침대 구하기 대작전
리옹을 보내고, 나는 이 마을의 숙소를 샅샅이 돌며 침대를 찾았다. 시간은 이미 6시를 넘겨 다음 마을로 갈 수 없던 상황. 우연히 만난 나댓 아주머니가 옆에서 “이 마을의 숙소는 1시쯤 꽉 찼어. 그래서 사람들이 다음 마을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젠 거기도 침대가 없다고 하더라.“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택시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 만만해 보이는 알베르게에 들어가 카우치(소파)에서 잘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랐다. 주인 두 명이 스페인어로 쉘라쉘라 얘기하더니. “OK” 사인을 보냈다. 어디선가 매트리스를 가져오더니 거실이 내 방이 되었다. 방 안에서 울려퍼지는 코고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리던데 넓은 방에서 푹 잘 잤다.
16일차 28.87km
Hornillos del Camino Arroyo San Bol Hontanas Castrojeriz Itero del Castillo
혼자 걷기를 시작했다. 지난 밤 리옹은 입원 수속을 밟았다. 검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걱정되긴 했으나 당장 내 발의 통증에 집중하며 걷다보니 금세 잊고 혼자 걷기를 즐겼다. 이 자연을 매일 걷다보면 당연한 풍경이 된다. 하여 어느샌가 바닥만 보며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혹은 너무 힘들어서.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한 번이라도 더 뒤를 돌아보려 애쓴다.
하루 하루 정해진 걸음만큼 정직하게 걸으면서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자연을 듬뿍 느끼고 와요.
날마다 여유로워지고 날마다 새로운 길이 되길 기도합니다.
사강 님이 전해주신 응원 메시지다.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800km를 완주하는 것보다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자연을 흡수하는 게 이 길의 목표다. 문득 사강 님이 걸었던 길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요 레터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Mente Positiva
표지판에 ‘positive mind’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이 순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했다. 굵은 소나기가 쏟아져서 시원해진 길. 멋있는 풍경 속에 말을 타는 곤잘래스를 감상하는 것. (걷다보면 내 앞에 있음) 맛있는 스페인 와인을 갖고 다녀서 힘들 때 멈춰 서서 한 모금씩 마시는 것. 좋은 게 이렇게나 많았다니 새삼 또 뭉클해졌다.
Salud
오늘도 어김없이 거실에 침대를 얻었다. 이미 시간은 7시를 넘겨서 저녁을 먹으러 바(Bar)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스페인 사람들 여덟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들이 건배를 외치는 건 흡사 예술행위 같았다. 잔을 아래로 내리며 @&*( 위로 올리며 !(!*&@$ 잔을 부딪히며 @(*! 그리고 원샷. 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니 배워 놓으려고 영상으로 남겼다. 스페인 사람들은 내가 앉은 테이블에도 와인을 두 병이나 나눠주었다. 공짜 술이 제일이다. 벌컥 벌컥 마시니 취기가 좀 올랐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한국인 한 분이 계셨다. 그 분도 술에 취했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술술 풀어주셨다. 철학 수업 분위기가 어땠는지, 교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좋았는지,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재밌게 읽은 <데미안>이 얼마나 감명 깊었는지, 하던 업무가 무엇이었는지, 직장 스트레스와 가정사 등. 오랜만에 한국어를 하게 되어 좋았으나 대충 사는 나에게는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더구나 그분은 무척 홀리하신 분이었다. 걸으면서 성경의 ‘로마서’를 암기하고 있다고 하니…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나는 건 상당히 흥미롭고 즐겁지만 딱 하루만. 그런 의미로 건배!
17일차 28.66km
Itero del Castillo Itero de la Vega Boadilla del Camino Frómista Población de Campos Revenga de Campos Villarmentero de Campos Villalcázar de Sirga
오늘은 무려 30km를 걸었다.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다. 거실에서 같이 매트리스를 펴고 잤던 GP 아저씨가 내려주신 모닝커피 덕분이다. GP 아저씨는 니스에서 온 프랑스인이다. 한국에서 2년 정도 머물며 일을 하셨고, 현재는 은퇴하시고 고문으로 계신다. 캠핑용품부터 버너, 커피 용품 등 모두 들고 다니신다. 이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또 한 번 마주쳤는데, 소설을 읽고 계셨다. 대화를 하다보면 상당히 박학다식한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연락처를 받아서 조금 더 친해져야지.
침낭에 숨기
보통 한국인은 새벽 5~6시에 출발해서 25km를 걷고 1시면 체크인을 한다. 부지런히 씻고, 빨래하고, 앞마당에 젖은 빨래를 넌다. 이곳 스페인은 1시부터 4시까지 태양이 굉장히 뜨겁기 때문에 다들 그리도 서둘러 빨래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녁 7시까지 걷기 때문에 말릴 시간이 없다. 괜히 빨아서 냄새 날 바에야 최소한의 옷만 빨래한다. 그날 입은 속옷과 그날 신은 양말만. 그리곤 자는 동안 침대 틀에 말린다. 속옷을 어떻게 밖에 널어 부끄럽게시리.
다만 오늘처럼 옷에서 냄새가 나면 알베르게에서 6~8유로를 내고 세탁+건조 서비스를 받는다. 이틀 정도 땀에 절었으니 냄새가 날 만도 하지. 특히 오늘같은 날은 모든 옷이 더러운 상태여서 빨래가 절실했다. 하여 빨래 바구니에 있는 옷을 모두 담았다. 입고 있는 옷이 없다는 말이다. 침낭에 숨어서 주인아저씨를 기다렸다. 한참 뒤에 오시더니 바구니를 가져가셨다. 그꼴이 조금 웃겼다. 그분은 눈치껏 내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아셨던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2시간 후 뽀송하고 향기나는 옷을 침대까지 갖다 주셨다. 그동안 나는 푹 - 잘 잤다.
18일차 28.82km
Villalcázar de Sirga Carrión de los Condes Calzadilla de la Cueza Lédigos
어제 맡긴 빨래가 살짝 젖어 있었다. 하여 드라이를 다시 맡겼다. 이 빨래는 오늘 아침 아홉 시가 되어서야 내 침대로 배달이 왔고 그리하여 느즈막하게 출발하게 되었다. 오늘의 코스는 Santiago 에서 가장 긴코스로 알려진 17.06km 다. 긴 길을 걷는 동안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물통에 있던 와인을 다 마셔서 비운 뒤 물을 채웠다. 알콜의 힘으로? 오늘도 거의 30km 잘 걸었다.
오늘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
17km를 막 시작할 때쯤 호주 아주머니 다비드를 만났다. 빠르게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도중에 신발에 돌이 들어간 것 같다며 멈춰섰다. 아주머니 신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경악했다. 발뒤꿈치에는 고름을 덮은 두꺼운 고무밴드가 있었고, 양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발가락에도 역시 촘촘하게 밴드가 붙어져 있었다. 고통이 심했을텐데 어떻게 나와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인가. 알고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신발 안에 통증 하나씩을 꽁꽁 숨겨 놓고 정신력으로 걷고 있는 것 같다.
아주머니가 앞서 걸어가고 나는 천천히 걷기를 택했다. 그 길에서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전역한지 한 달이 안 된, 아주 어린 친구였다. (친구인가?) 한국어가 그리웠는지 내가 편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술술 풀어줬다. 우리는 남은 거리를 두고 맥주 내기를 했고, 내가 지는 바람에 다음 마을에서 맥주를 샀다. 이 친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적을 수 없지만 포부와 꿈이 창창했다. 이런 게 폴이 말하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구나 싶었다. 술값이 아깝지 않은 느낌?
이 친구는 맥주를 마신 마을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는 한 마을 더 걸었다. 어떻게 맥주를 마시고 더 걸을 수 있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모른다. 술을 마신 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걸음이 얼마나 상쾌하고 좋은지. 아무튼 7km를 더 걸어서 머물게 된 Lédigos에는 폴이 있었다. 폴은 이직이 결정되어 산티아고 순례 일정이 짧다. 그래서 하루 3~40km씩 빠르게 걷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천천히 걷게 됐다고 했다. 그 덕분에 같이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서로의 건강을 기도하며, 또 다음을 기약했다.
19일차 19.84km
Lédigos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Moratinos San Nicolás del Real Camino Sahagún Calzada del Coto
어제 충분히 걸었으니까 오늘은 늦잠을 푹 잤다. 내 옆에서 자던 호주인 트로이는 “나보다 늦게 출발하는 애는 네가 처음이야”라며 인사하고 나갔다. 길을 걷다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호주의 고기와 술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요리사였다. 곧 벨기에에서 행사가 있어서 그때 600인분의 음식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맛있으면 사는 거고 아님 말고, 쿨하게 얘기하는 걸 보아 실력이 대단한 듯 했다. 모라치노 라는 곳까지 같이 걷다가 그는 먼저 가고, 나는 2시간 가량 머물며 일기를 썼다. 그뒤로 다신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오는 걸 보면 하루 40km씩 걷고 있어서 곧 산티아고에 도착할 듯 하다.
3시쯤 사하군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사하군은 400km, 즉 순례의 절반을 해냈음을 인증받을 수 있는 곳이다. 조금 더 걸을 생각으로 바에 들어가 파에야와 맥주를 시켰다.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짰다. 먹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 그칠 비일테니 시원하게 걸을 것을 기대하며 좋아했는데 6시가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빗줄기는 곧 굵어졌고… 비를 맞으며 5km를 더 걸었다. 빗줄기를 맞으며 혹여나 달팽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생각이란 걸 했다. 나라는 인간은 왜, 사하군에서 숙소를 잡아도 됐을텐데, 왜 더 걷기를 택했을까. 홀딱 젖은 몸으로, 덜덜 떨면서 체크인을 했다.
분실
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산을 선물해준 남재에게 미안한 마음. 비가 오면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며 움직이고 있다. 도시에 도착하면 중국산으로 제일 싼 걸 사야지. 그리고 수건도 잃어버린지 꽤 되었다. 넓은 거실에서 자던 날, 의자에서 널어 놓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 수건없이도 잘 씻을 수 있다. 그저 5분가량 몸을 열심히 비벼주기만 하면 된다.
또 하나 잊지 못할 분실 사건이 있다. 똥 싸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크리덴셜(순례자 여권)을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 한참 걷다가 생각나서 레스토랑에 전화하니 ‘소피’가 발견해 가져간다고 했다. 길에서 30분 가량 기다리니 곤잘래스가 “소피 무슨 옷 입고 있는 지 알아? 파란 티셔츠와 반바지, 금발 머리를 하고 있어“라고 얘기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또 30분을 더 기다려 결국 소피를 만났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 허그를 열심히 하고 우리는 함께 걸으며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20일차 38.29km
Calzada del Coto Bercianos del Real Camino El Burgo Ranero Reliegos Mansilla de Las Mulas Villamoros de Mansilla Puente Villarente
새벽 6시, 길을 나섰다. 리옹이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차를 타고 대도시 León 레온에서 나를 2박이나 기다린다고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이 친구는 왜 자꾸 나를 기다려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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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썬
우정아 블로그를 읽는것 만으로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단단해지고 성숙해 지고 있는 너의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끝까지 건강하게 잘 걸어야해. 응원할게.. 늙은언니가 열심히..ㅋㅋ
파리우쟁 (56)
끝까지 건강하게 800km 성공! 다 걷고 나니까 생각보다 내가 강한 사람이였어요. 그걸 느낀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답니다. 아마도 늘 먼 곳에서 보내주는 언니의 응원 덕분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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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냐J
푹 빠져서 읽었어~ 소설책의 한 파트를 읽는 느낌 ! 한걸음한걸음 여정이 쉽지 않겠지만..내가 감히 알순 없지만 항상 응원합니다 ♥ (모청 메세지도 고마워 친구야:))
파리우쟁 (56)
ㅎㅎ 그걸 줄여서 모청 메시지라고 하는 구나. 신행 사진 잘 봤어. 숙고 교복입고 있던 울 소은이가 결혼이라니! 결혼 생활도 내가 감히 알 순 없지만 보다 성숙해지는 거겠지? 잘 살아야 해. 내가 더, 더 부러워하도록 행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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