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에게
예은으로부터 14호
뉴질랜드 편지 서랍 : 예은의 단상집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에세이 뉴스레터, [예은으로부터]의 예은입니다.
12월 1일, 저는 뉴질랜드 한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캠핑카를 빌려 뉴질랜드 남섬을 돌아 다닌지..
어느덧 12일이 지났어요.
12월,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보고 듣고, 겪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나간 12월의 매일은 고작 12일 뿐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말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말이죠.
뉴질랜드에서 한달동안 환상적인 풍경을 마음껏 누비고,
원 없이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걷다보면
세상 모든 행복이 제게 다 올 줄 알았습니다.
이제 막 12일이 지났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을 많이 하는 날엔 피곤해서
‘굳이 내가~’를 입에 달고 살고,
또 캠핑카에 누워 쌓여 있는 빨래감을 볼 때면
‘내가 괜히~’로 혼잣말을 시작합니다.
행복은 아주 잠깐 찾아오고 또 금새 귀찮아져요.
24시간 중 8시간은 잠을 자는 시간으로 치고,
남은 16시간을 감정으로 쪼개어 볼까요?
10시간은 내 감정을 모른채 지나가고
2시간은 짜증나고
2시간은 귀찮고
2시간은 아주 행복합니다.
요즘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16시간 중 14시간은 평균 혹은 평균 이하의 감정이더라도
반드시 행복했던 짧은 2시간의 힘이 더 강합니다.
걱정과 불안, 두려움, 버겁고 짜증나는 하루 속에서
‘아 ㅋㅋ 좀 좋네.’ 했던 그 순간의 위력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가끔식 찾아오는 행복을 다 합쳐봐도
2시간이 채 안되는 것 같긴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주 짤막한 그 감정은
기어코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는 겁니다.
뉴질랜드에서 매일 뉴스레터를 보내기가 목표였는데요.
참나.. 벌써 12일이 됐으니 저는 11일 동안 실패한 셈입니다.
뭐, 실패하면 어떤가요.
다시 도전 하면 되죠.
12월은 매주 단상집을 엮어 보내드리려 합니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난 예은의 짧은 생각들!
이 글에 그녀가 겪는 매일의 감정이
필름처럼 겹겹이 감겨 있을 겁니다.
일상의 환희, 기쁨, 귀찮음, 불평, 불만, 외로움,
그러나 혼자 있고 싶음.
( 예를 들자면 말이죠. )
부디, 2024년 시린 겨울을 겪고 다시 나아갈 여러분에게
이 글이 아주 짤막한 미소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짤막한 2분 정도? ㅎㅎ..
그럼 12월 1주차, 뉴질랜드의 편지서랍
하나, 둘 그 이야기를 꺼내어 볼까요?
12월 1일
뉴질랜드를 향하는 비행기에서.
뉴질랜드로 한달 살기 하러 가고 있다. 여행이지만 단순히 놀고, 쉬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다.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통해 마음껏 실패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처음 투성이인 나라로 떠난다. 미지의 세계로. 한달 중 2주는 캠핑카, 남은 2주는 캠핑카를 타고 다니다 좋았던 곳에 머물러 보는 것. 그것이 나만의 한달살기 규칙이다. 내게 주어진 온갖 안전지대를 아주 제대로 벗어나고 싶다. 미지의 영역에서 겪게 되는 모든 순간은 결국 내게 켜켜이 쌓여 나의 서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겪게 되는 모든 사건과 감정을 매일 매일 글로 써볼 생각이다. 문장의 길이와 문법에 상관 없이 마구 마구. 짐도 한달살기 치고 많이 챙기지 않았다. 큰 캐리어 하나와 기내용 작은 캐리어 하나. 그리고 우쿠렐레 정도? 너무 많은 행낭은 나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욕망이나 강박이 되어 내가 나아갈 길에 짐이 될 수 있다.
12월 2일
크라이스트 처치, Peter 할아버지
뉴질랜드에 도착하니 하루가 지났다. (1일 출발해서 이곳에 도착하니 2일이다.)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캠핑카를 받기 하루 전날인 오늘은 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에어비앤비에서 머문다. 오늘은 이 집에서 특별한 것 없이 집 주인 Peter 할아버지의 '퍼펙트 데이즈'를 하루종일 구경했다. 집 앞에 택시를 타고 도착했을 때, 그는 큰 키를 구부리고 앉아 울타리 아래쪽 땅을 꾹 꾹 매만지고 있었다. 꽃 뿌리 쪽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가 맨손으로 검붉은 흙을 만지다 뒤를 돌아 택시에서 내리는 나를 바라본다. 어서 오라며 환영하고 방 문을 여는 법부터 시작해 그의 집 구석 구석을 소개한다. 그의 손톱 밑, 켜켜이 묵어 있는 흙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밭을 일구는, 그러니까 생명을 일구는 사람들의 흔적. 때때론 그들의 손톱을 보는 것만으로도 강한 생명력을 느낄 때가 있다.
방 안에서 책을 읽는 동안, 열어둔 창 틈 사이로 칙- 칙- 물뿌리개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면 또다시 Peter 할아버지. 울타리로 가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정원을 할아버지는 온종일 열심히 가꾼다. 정원에 있는 꽃 한송이마다 천천히 물을 준다. 나였다면, 구석탱이는 누가 안보니까... 대충 잘 보이는 꽃, 커다란 꽃만 집중 했을지 모른다. Peter는 그렇게 3시간 동안 정원을 빙글 돌며 흙을 매꾸고, 생명을 가꿨다. 어쩌면 피터 할아버지가 가꾼 것은 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할아버지의 뒷모습. 그의 군더더기 없는 정원 가꾸기 루틴은 결국 할아버지 스스로를 단정하는, 아주 오래된 삶의 그릇임이 분명하다.
12월 3일
캠핑카 여행 1일차, 생애 최초 우측 운전 + 캠핑카 운전
캠핑카를 빌려서 뉴질랜드 한달살기를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내게 물었다. "너 캠핑카 몰아봤어?" 아니. 또 누군가는 묻는다. "오른쪽 운전은?" 아니. 맞아. 나는 우측 운전도, 캠핑카 운전도 모두 무경험 상태이다. 캠핑카를 처음 받아 캐리어를 정리하는데도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한국에서 짐을 한참 줄여서 챙겨왔다고 생각했지만 캠핑카의 수납장소 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의 짐의 부피였다. 나는 캠핑카 회사 주차장에서 한시간 반을 끙끙 거리며 가방 넣을 장소를 찾아야했다. 이 상황이 마치 나의 현재 삶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은 잔뜩 있는데 현실에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주 한정적인 그런 상태.
우측 운전 그리고 캠핑카 운전은 낯설고 또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차량의 크기감, 운전의 방향. 모든 것이 생경하다. 차를 출발하자마자 뒤 따라오던 승용차 한대가 옆차선으로 비켜가며 내게 클락션을 울린다. '뭐야!? 내 차 문 어디 열렸나?(캠핑카는 출발하기 전 외부에 있는 모든 작은 문들의 닫힘 상태를 확인해야한다.)' 하고 안절부절하던 찰나, 내 차가 왼쪽 차선에 치우쳐진 채로 주행 중인 것을 알아차렸다. 나의 운전 경험과 감각대로 나름 중앙선을 맞춰서 갈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나의 이전 기준은 적합하지 않았던거야. 내가 경험했던 것 보다 덜 움직이거나, 또는 더 움직여야 맞았다. 30분쯤 직진 운전을 하고 나서야 '아, 중앙 화살표의 이쯤(?)에 나를 맞춰야 내 차가 차선 중앙에 있구나.'하고 감을 찾는다. 손에 익지 않은 도구를 쥔 채, 생애 최초의 길을 나선다는 것. 이제껏 경험하며 익숙했던 세상은 다 과거의 흔적일 뿐, 지금의 내게는 새로운 기준과 감각이 필요하다. 손에 쥐어진 운전대를 그렇게 꼭 쥔 채 테카포 호수를 향했다.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12월 4일
테카포 호수에서.
어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테카포 호수까지 3시간 운전하며 기가 잔뜩 빨렸다.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는 시속 90km로 속도가 제한된다. 90km로 내 기준에 맞춰 주행하는데, 내 뒤로 길게 늘어선 다른 차를 보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 때문에 다른 차들이 못 가는 것 같고 (한국에서는 한마리 야생마처럼 운전하는 나라..) 자존심이 상했다. 뉴질랜드에서 운전하면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니. 누군가에게 쫓기듯 앞만 보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러다, 마운트 쿡이 보이는 어느 길목이 나타난다. 내 눈 앞에 있는 차창을 다 채운 파란 호수와 커다란 설산. 나를 압도하는 자연이 등장했을 때, 그때서야 나는 생각한다.
시간도, 여유도 많았는데. 나는 내 속도를 지켰을 뿐인데. 왜 갑자기 나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을까.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지.
12월 5일
(1) 음유시인
이번 한달살기에서 나는 뚜렷한 계획 일정, 숙소 예약도 하지 않았다. (98퍼센트의 계획형 인간으로서 본능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그저 마음가는 대로 걸어보고, 운전하고, 머물러보며 내 마음의 소리를 많이 듣고 싶어 나의 철저한 준비성을 꾹 꾹 눌러 참았다.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예견했던 상황을 마주하는 것 역시 나를 성장시키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때 심연 깊은 곳에 울리는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뭐랄까. 내 스스로가 음유시인이 된 것 같아 여행하는 내내 키득 키득 웃음이 나온달까. 둘이라면 힘들지도 모른다. 혼자라, 그러니까, 이런 무계획 여행에서 찾아오는 여파는 결국 나 혼자 감당하니 다행이다. (나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2) 휴식 장면
밥먹고 사진 찍으며 산책을 했다. 글을 쓰고, 동영상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세상을 더 미세하게 쪼개어 바라보게 된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요소 요소를 하나씩 천천히 들여본다. 헤드셋을 머리에 끼고, 편한 옷차림에 배낭 하나 맨채로 그렇게 카메라를 한손에 쥐어들고 천천히 걸으며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럴 때면 가끔, 주위의 모든 움직임이 영화 속 한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만발한 언덕 위 캠핑카. 그리고 그 앞에 앉아 밥을 먹는 커플의 장면이라던가, 혼자 호수변에 돗자리도 없이 털썩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를 볼 때.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휴식이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예술적인 장면이 되곤 한다.
(3) 목적지
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푸드트럭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맛집인가 싶어 나도 따라 줄을 섰다. 푸드트럭 안에서 하얀 얼굴, 토끼 같은 미소로 사람들과 너털 웃음 지으며 영어로 대화하던 여자 사장님이 내 앞 한국인 손님들과 한국어로 대화한다. 관심 없는 척, 꺼진 헤드폰 너머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9년 전,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테카포를 방문해 이곳이 너무 좋아 영영 그곳에 정착한 그녀의 사연. '저는 시골이 좋아요.하하하' 하고 웃는 그녀를 보는 것이 또 흥미롭다. 왜 사람 일이 그렇지 않나. 당장 내가 짧게 머물던 자취방을 떠나는 것도 큰 결심을 해야하는데, 모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주를 하는 일에 필요한 강단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내 차례가 오고, 음식을 기다리며 그녀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캠핑카 로드트립 중이라는 내 말에 그녀가 내게 질문을 건넨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에요?". 없어요. "흠, 그러면 Omarama 어때요? 그 동네 아주 조용하고 한적해요. 좋아할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처음 만난 사장님의 추천에 매혹되어 Omarama로 향했다.
12월 6일
오마라마 12:57
아침 9시쯤 일어나 캠핑카 안에 있는 커튼을 모두 열고, 창문도 열었다. 이불보를 모두 빼내고 빨래 줄에 널어 햇볕에 이불을 말린다. 캠핑카 회사에서 차에 실어준 손바닥 크기의 빗자루로 차 안 구석 구석 청소를 한다. 먼지를 뒤집어 쓴 상태로 공용 샤워장에 들어가 6분동안 샤워를 한다. (환경을 위한 6분 온수 제한이 있다.) 샤워를 끝내고 차에 돌아와 아침 겸 점심을 만든다. 냉장고에 있는 온갖 채소를 모두 꺼내어 가위로 댕강 잘라 계란과 섞어 만든 스크램블 에그. 캠핑카 앞에 의자와 책상을 펴고 앉아 밥을 먹는다. 혼자 밥을 먹지만 그동안 노래도, 영상도 볼 틈이 없다. 두 눈 앞에 살랑거리는 나무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적당한 속도로 살살, 바람에 나부끼며 햇살에 잎부분이 살짝 반짝인다. 행복이 별 거 있나. 나무잎 흔들리는 장면, 코 끝에 스치는 초록잎의 향기, 반짝이는 나무 윤슬. 전에 느끼지 못한 세상의 장면을 보고 마음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면, 그게 행복이겠다.
오마라마 16:21
비상. 비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루 한잔, 꼭 먹어줘야 하는 카페인 중독자인 나. 얼음 들어간 커피를 못마신지 6일이 됐다. 캠핑카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뜨거운 커피를 만들 순 있지만, 얼음은 도구 없이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얼음을 살 요량으로 마트를 갔지만, 시골 중에 시골인 마을이라 얼음은 공업용만 있을 뿐, 얼음을 얼릴 수 있는 도구 역시 살 수 없다. 미치겠다. 마지막 동앗줄을 잡는 심정으로 주유소 앞에 있는 모텔을 들어간다. [$$BEVERAGE$$] 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은 내게 간절한 한줄기 빛이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메뉴에 없지만, 얼음과 에스프레소를 섞어서 주겠다는 점원. 성은이 망극합니다. 그렇게 6일만에 얼음 동동 커피를 마셨다. 이제껏 살면서 마셔본 아이스 커피 중에 제일 맛있다. 한 모금씩 커피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아주 느릿하게 음미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주유소 앞 여관 카페에 앉아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상황이 퍽 웃기다. 한국이었다면 리뷰를 찾아 읽으며 여기 인테리어는 내 취향인가 아닌가를 따져가며 골라댔을 카페인데. 한국에서의 내 기준으로 치면 살면서 영영 올까말까 한 여관 카페를 '내일 캠핑장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들렸다 갈까?' 그런 생각까지 하며 들여다본다. 주유소 앞, 모텔의 카페. 천장에 붙은 벽걸이 TV에는 Mtv 방송국의 세기말 pop 뮤직비디오가 연달아 나온다.(예를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 등등..). 여행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머무를지 보다 그곳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음미하고 있는지를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달까.
12월 7일
캠핑카를 빌리고 6일만에 처음으로 오수, 오물통을 비워내고 주유를 했다. 이 세가지를 하는데 글쎄 한시간이 걸렸다. 오수 버리기, 오물 버리기, 주유하기. 그냥 갖다 부어 버리면 될 줄 알았는데, 살면서 캠핑카 오물통은 또 처음 버려봐서 애를 좀 먹었다. 내다 버리는 것에도 경험과 요령이 필요하다. 처음 오물을 버리는 거라..(더럽지만) 장갑을 낀 손가락이 꽤나 고생을 했다. 두번 다신 캠핑카에서 볼일 안본다. 다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다음'을 생각한다. 한번 버리는 게 어렵지 두번 세번 버리면 그 속도도 단정하게 (?) 버리는 것도 가능할거다.
잠시 후 운전대를 잡고 푸카키 호수를 향하다 나는 좀 전의 '버리는'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나 자신은 과연 일전의 생활 속에서 버림의 미학을 알고 있었나. 옷이나 물건을 사면 버릴 줄 모르고 옷장과 방에 쌓아두다가 2년쯤 되어야 겨우 하나씩 버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옷이든, 경험이든, 관계든 마찬가지이다. 여백 없이 꽉 찬 서랍장은 결국 터지고야 만다. 공백이 결여된 경험은 결국 나를 번아웃에 빠지게 하고, 공백이 결여된 옷장은 내가 어떤 옷을 갖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하기 마련이다. 오물 버리며, 버림의 미학을 배운다.
그럼 열다섯번째 편지에서 만나요 :)
24년 12월 12일 목요일.
예은으로부터.
의견을 남겨주세요
성춘
미지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용기부터 부럽습니다 ㅜ,ㅜ 지나고보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듯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