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에 찍힌 8억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차트, 매일 올라가는 수익률, 정상적으로 보이는 입출금 기록. 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8억 원을 보냈다가 몇 주 만에 전 재산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코인의 가격이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래소라고 믿었던 앱 자체가 가짜였습니다. 화면에 표시된 잔고도, 수익률도, 거래 내역도 사기 조직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숫자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는 수익률
※ 아래 사례는 가짜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한 실제 피해 유형을 참고해 일부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A씨는 올해 쉰두 살로, 인천에서 기계 부품 무역을 하며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해왔고, 최근에는 동남아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늘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A씨에게 어느 날 유튜브 영상 하나가 추천됐습니다.
“월 15% 수익.”
“원금 보장.”
“전문가가 대신 거래하는 안전한 코인 단타 투자.”
A씨도 유튜브에 허위 광고가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하면서 영상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영상이 시작된 지 30초쯤 지나자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3개월 수익 인증’이라는 제목의 엑셀 화면이 지나갔습니다. 거래 내역과 수익 그래프도 이어졌습니다. 고객과 주고받았다는 상담 대화에는 “승률 관리”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화면에 등장한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금까지 한 명도 원금 손실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화면은 오피스텔 형태의 사무실로 바뀌었습니다. 회의실 탁자에는 노트북과 실시간 차트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회원제 트레이딩 클럽’이라는 로고가 보였습니다. 얼굴을 가린 고객은 화상 상담에서 “처음에는 의심했는데 실제로 수익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끝에는 “선착순 20명 모집, 일반인 가입 불가”라는 문구와 카카오톡 채널 링크가 나타났습니다. A씨는 링크를 눌렀습니다.
채널에 들어가자 ‘김현수 팀장’이라는 상담자가 연락해왔습니다. 프로필 사진은 정장을 입은 30대 후반 남성이었습니다. A씨가 요즘 이런 광고가 너무 많아 믿기 어렵다고 하자 팀장은 오히려 A씨가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맞장구를 치며,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광고로 아무나 받지 않고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팀장은 바이낸스보다 수수료가 낮은 거래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 트레이더의 거래를 그대로 따라 하는 자동 카피트레이딩 시스템이 있고, 전체 자산 가운데 아주 작은 비율만 여러 포지션에 나누어 투자하기 때문에 위험도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A씨가 소액으로 먼저 시작하겠다고 하자 팀장은 화상 상담을 열어 플랫폼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화면에는 실시간 차트, 매수·매도 포지션, 수익률이 깔끔하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실제 회원 계좌입니다. 지금 실시간 수익률 8.6% 보이시죠?”
팀장은 전문가가 대신 거래하므로 A씨는 승인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가 다시 망설이자 수익이 나야 자신들도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라며 이해관계가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일단 소액으로 경험해 보세요. 수익이 난 다음에 판단하시면 됩니다.”
A씨는 바이낸스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 가운데 10만 달러를 해당 플랫폼으로 보냈습니다. 송금 직후 앱을 열자 입금한 자산이 잔고에 표시됐습니다. 차트도 움직였고 포지션도 바뀌었습니다. 로그인과 출금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며칠 뒤에는 수익률이 3.2%로 표시됐습니다. A씨는 매일 아침 앱을 열어 잔고를 확인했습니다.
숫자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의심했던 A씨도 이 정도면 실제로 수익이 나는 시스템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이 다시 연락했습니다.
“이번 달 안에 20% 수익이 가능합니다. 지금이 투자 규모를 늘릴 시점입니다.”
A씨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수익 그래프를 믿었습니다. 동남아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마련해두었던 돈을 포함해 남은 50만 달러도 모두 보냈습니다. 처음 보낸 돈과 합하면 우리 돈으로 약 8억 원이었습니다.
며칠 뒤 앱에 접속한 A씨는 잔고가 절반 이상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팀장에게 손실이 왜 발생했느냐고 묻자 시장이 급락해 대응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빠르게 청산했기 때문에 이 정도 손실로 막았다는 설명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따라왔습니다.
“복구를 원하시면 추가 입금이 필요합니다.”
A씨는 추가 송금을 거절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앱에 접속하자 출금 버튼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거래 내역도 모두 삭제돼 있었습니다. 로그인 오류가 반복됐고, 곧 “해외 IP에서만 접속할 수 있다”는 안내까지 나타났습니다.
A씨가 거래소라고 믿었던 것은 거래소가 아니었습니다. 앱 안에 남아 있던 잔고는 되찾을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사기 조직이 입력해둔 숫자였습니다.
거래 화면은 금고가 아니라 전광판이었습니다.
정상적인 금융회사나 가상자산사업자의 잔고 화면은 고객이 실제로 보유한 자산과 연결돼 있습니다. 화면에 숫자가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숫자만큼의 자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법적인 관계와 거래 기록이 뒤에 있죠.
하지만 가짜 거래소의 화면은 다릅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표시됐다고 해서 그 숫자를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차트가 움직이고 잔고가 늘어도, 그 뒤에 실제 코인이나 고객 자산이 없다면 화면은 그저 사기 조직이 조종하는 전광판일 뿐인 것이죠.
그래서 소액 출금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소가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기 조직은 처음에 작은 돈을 돌려주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출금까지 됐으니 진짜다”라고 믿게 만든 뒤 투자 규모를 수십 배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금융감독원도 가짜 거래소 사기의 공통된 흐름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했습니다. 투자방 참여형, 온라인 친분 이용형, 유명 거래소 사칭형으로 접근 경로는 다르지만, 처음에는 소액 수익을 경험하게 하고 거액이 들어오면 출금을 거절합니다. 이름과 접근 방식이 달라도 돈을 빼앗는 순서는 같습니다.
소액의 출금 한 번은 거래소가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예요. 더 큰 입금을 끌어내기 위해 사기 조직이 지불한 비용일 수 있습니다.
‘카피트레이딩’ 이름만 바뀌고 있을 뿐, 사기 수법은 동일합니다.
이 수법은 예전처럼 텔레그램에서 “좋은 코인이 있다”고 말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습니다. 유튜브 광고, 그럴듯한 사무실, 화상 상담, 고객 후기, 실시간 차트, 전용 앱을 한꺼번에 사용합니다. 피해자가 의심할 만한 부분을 미리 알고 하나씩 막아놓는 것이죠.
최근에는 ‘카피트레이딩’ 대신 ‘AI 자동매매’, ‘기관 전용 계좌’, ‘빅데이터 투자’, ‘손실 복구 프로젝트’라는 이름도 사용합니다. 2026년 2월 공개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불법 투자리딩방·온라인 투자 유도형 사기 신고는 6,853건, 피해액은 6,581억 원이었습니다. 한 사건당 평균 피해액은 약 9,603만 원이었습니다. 이 통계는 코인 사기만을 집계한 수치는 아니지만, 투자 권유와 가짜 거래 화면을 결합한 사기가 이미 거액 피해를 반복해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같은 시기에 확인된 리딩방에서도 별도 앱을 설치하게 한 뒤 가짜 수익을 보여주고, 출금을 요청하면 수수료와 승인비를 요구하는 방식이 반복됐습니다. 이미 피해를 본 사람에게 “예전 손실을 복구해주겠다”고 접근해 다시 돈을 받는 2차 사기도 확인됐습니다.
A씨에게 “시장 급락으로 손실이 났지만 추가 입금하면 복구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도 같습니다. 사기 조직은 피해자가 아직 벌지 못한 수익보다 이미 보낸 돈을 더 아까워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8억 원을 잃은 사람에게 1억 원을 더 보내면 8억 원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면, 처음 1억 원을 투자할 때보다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복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손실을 복구하려면 왜 새로운 돈이 필요한지, 그 돈은 누구에게 가는지, 출금할 자산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사기 사이트 안에서 만든 수익 보고서와 고객센터의 설명은 그런 독립적인 확인이 아닙니다.
돈을 보내기 전에 반드시 이 다섯 가지를 확인하세요.
1. 거래소 이름을 소개받은 링크 밖에서 다시 검색하세요
상담자가 보낸 링크를 누르면 사기 조직이 만든 사이트 안에서만 정보를 보게 됩니다. 포털 검색, 공식 앱 마켓, 금융정보분석원 홈페이지의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현황을 각각 확인하세요.
국내에서 영업하면서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되지 않은 업체라면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유명 해외 거래소와 이름이나 로고가 비슷하다는 사실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아요. 철자 하나, 인터넷 주소 한 글자만 바꾼 사칭 사이트일 수 있습니다.
2. 원금 보장과 고정 수익률이 함께 나오면 멈추세요
카피트레이딩은 다른 사람의 거래를 따라 하는 방식일 뿐, 시장의 위험을 없애는 장치가 아닙니다. 전문 트레이더가 대신 거래하더라도 손실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원금은 보장되고 매달 15%를 번다”, “한 명도 손실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투자 설명이 아니라 입금을 유도하기 위한 거짓말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3. 화면 공유와 원격제어 요청을 구별하세요
화상 상담에서 상대방의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짜 계좌를 실제 회원의 계좌처럼 믿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까지 설치하면 위험은 훨씬 커집니다.
거래 지원이나 보안 업데이트를 이유로 원격제어 앱 설치를 요구하거나, 인증번호·지갑 복구문구·거래소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 즉시 상담을 끝내세요. 정상적인 고객센터는 고객의 자산을 움직이기 위해 지갑 복구문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4. 출금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믿지 마세요
세금, 보증금, 보안 인증비, 계좌 활성화 비용, 손실 복구금. 이름은 달라도 출금 전에 별도의 돈을 보내라는 요구는 대표적인 사기 신호입니다.
정상적인 수수료라면 보유 잔액에서 공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이미 잔고가 충분한데도 외부 계좌나 다른 지갑으로 새 돈을 보내야 출금할 수 있다고 하면 추가 송금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5. 단체 대화방 밖의 사람에게 보여주세요
사기 조직은 “선착순”, “VIP 승인”, “이번 주가 마지막 기회”라는 말로 판단 시간을 줄입니다. 단체 대화방 안에는 수익 인증과 칭찬만 보이게 만들고, 의심하는 사람은 내보냅니다.
송금하기 전 하루만 멈추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광고, 거래소 주소, 상담 대화를 그대로 보여주세요. 사기 조직이 만든 화면과 시간표에서 벗어난 사람은 당사자가 놓친 이상한 부분을 훨씬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돈을 보냈다면 이렇게 하세요.
1. 추가 송금을 중단하세요
출금을 위해 세금이나 인증비가 필요하다는 말, 손실을 복구하려면 투자금을 더 넣어야 한다는 말에 응하지 마세요. 이미 보낸 돈을 되찾기 위한 절차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피해액을 늘리는 다음 단계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기 피해금을 찾아주겠다며 먼저 연락해오는 업체도 바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수사기관이나 거래소 직원, 변호사를 사칭해 착수금이나 추적 비용부터 요구하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112와 돈을 보낸 금융회사·거래소에 바로 알리세요
은행 계좌로 원화를 송금했다면 112와 송금 금융회사에 즉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지급정지 가능 여부를 확인하세요. 가상자산을 보냈다면 출금에 이용한 거래소에 사기 피해 사실을 접수해야 합니다.
코인 전송은 은행 이체처럼 간단히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빨리 알리는 게 좋습니다. 가상자산이 다른 거래소의 지갑으로 들어간 경우 수사기관의 요청과 거래소의 협조를 통해 이동 경로를 확인하거나 해당 계정의 출금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갑 주소와 거래 식별번호를 보존하세요
상대방이 알려준 지갑 주소, 보낸 코인의 종류와 수량, 전송 일시, 거래 식별번호인 TXID를 저장하세요. TXID는 블록체인에서 해당 전송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거래 영수증과 같습니다.
가짜 거래소의 인터넷 주소, 앱 설치파일, 고객센터 번호, 카카오톡·텔레그램 아이디, 화상 상담 기록, 수익 보고서와 출금 거절 화면도 함께 보존해야 합니다. 사이트가 사라지기 전에 전체 화면을 날짜와 시간이 보이도록 캡처하는 것이 좋습니다.
4. 형사고소와 재산 보전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세요
처음부터 실제 거래소나 수익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거짓 화면을 보여주고 돈이나 코인을 보내게 했다면 사기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A씨처럼 한 피해자의 피해액만 5억 원을 넘는 경우에는 범죄로 얻은 이익의 계산과 각 송금 행위의 관계에 따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형사고소를 했다고 피해금이 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실명과 자금이 들어간 계좌, 가상자산이 도착한 지갑과 이후 이동 경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된 국내 계좌나 재산이 있다면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를 검토할 수 있지만, 자산이 해외 지갑이나 개인 지갑으로 여러 차례 이동했다면 회수는 훨씬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고소장에는 “가짜 거래소에서 출금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만 적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처음 어떤 광고를 봤는지, 누가 어떤 수익을 약속했는지, 거래소가 실제라고 믿게 만든 자료는 무엇인지, 각 송금 전에 어떤 말을 들었는지, 출금할 때 어떤 추가 비용을 요구받았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화면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가짜 거래소 사기에서 가장 기억해야 할 기준은 하나입니다.
거래소 화면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그 거래소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자산을 실제로 보관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실시간 차트는 다른 거래소의 데이터를 가져오면 만들 수 있습니다. 수익률과 잔고는 운영자가 숫자를 입력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고객 후기와 출금 인증 화면도 사기 조직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소액 출금을 하면서 신뢰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피트레이딩, AI 자동매매, 기관 전용 프로젝트라는 말이 붙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선 플랫폼으로 자산을 옮기게 하고, 원금을 보장하며, 출금을 위해 돈을 더 보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기일 가능성이 100%입니다.
이미 피해를 입었다면 추가 송금을 중단하고, 대화와 거래 기록을 보존한 뒤, 112와 금융회사 또는 거래소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좌와 지갑에서 자산이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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