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만들기 VI: 민족주의파』의 큰 줄기를 잡느라 여름내내 퇴촌 골방에서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파헤치다 보니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하고 영국의 ‘대문호’로 격상시킨 것이 18-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사상가들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희한하죠? 셰익스피어는 물론 영국내에서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었고 그의 작품들은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었죠. 그렇지만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봉의 지위로 격상된 것은 독일사람들 때문이었죠.
그 중에서도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 ~ 1803)는 1773년 「셰익스피어(Shakespeare)」라는 글을 발표하죠. 헤르더 이전의 프랑스, 영국의 계몽주의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를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한 무질서한 극작가로 평가하였답니다.
그러나 헤르더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겉보기에는 불규칙해 보이는 요소들이야말로 생명력과 문화적 진정성의 표현이며, 셰익스피어는 영국 민족의 영혼을 가장 완전하게 표현한 시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헤르더에게 진정한 예술적 천재란 기존의 규칙을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민족과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르더로 인하여 셰익스피어는 창조적 독창성(originality)의 상징이 되어버립니다. 헤르더를 따르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괴테의 문학은 셰익스피어를 모방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독일의 민족문학, 즉 ‘독문학’은 셰익스피어를 추종, 모방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독일 지성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운동의 문학적 이상을 형성하였고, 독일 낭만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셰익스피어를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관점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면 저는 왜 셰익스피어와 헤르더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헤르더가 바로 ‘민족주의’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헤르더는 ‘민족주의’라는 담론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헤르더는 ‘민족’의 핵심이 민족의 언어와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민족’의 내용은 그 민족의 ‘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민족주의는 민족문학이 그 핵심이고 민족문학이 없는 민족은 없는거죠. 그러니까 헤르더 이후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중심인 ‘영문학’이,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를 중심으로 하는 ‘불문학’이, 독일에서는 괴테를 중심으로 하는 ‘독문학’이라는 담론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국문학(national literature)’들이 곧 각 민족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거죠.
다음 번에는 일본에서 어떻게 '일본 문학'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이를 목격한 춘원 이광수 등이 '한국 문학'을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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