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만들기』는 우리가 조선 사람의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한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은 봉건 유교 이념과 체제를 근간으로 ‘양반/사대부’라는 인간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은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시민’이라는 인간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봉건’에서 ‘근대’로 가는 과정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말하는 ‘탈아입구’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탈아입구’는 물리적으로 일본을 유럽으로 옮기자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아시아의 봉건 유교 정신과 체제에서 벗어나 유럽의 근대 정신과 제도를 적극 받아들이자는 주장입니다. 후쿠자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양 근대[近時] 문명이 우리 일본에 들어온 것은 가에이(嘉永)의 개국을 그 발단으로 한다. 국민이 마침내 이를 채용해야 함을 알고 점차 활발한 기풍을 가지게 되었으나, 진보의 길[道]에 고풍노대(古風老大)한 정부가 가로막고 있어 어쩔 수 없다. 정부를 보존하자면 문명은 결코 들어올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근대[近時] 문명은 일본의 구투(舊套)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구투를 벗으려면 동시에 정부 역시 폐멸(廢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곧 문명을 막아 그 침입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면 일본국은 독립할 수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세계 문명의 싸움[喧嘩]·번망[繁劇]이 동양 외딴 섬[孤島]의 독수(獨睡)를 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일본의 지사들[士人]은 국가를 중시하고 정부를 경시하는 대의에 기초하여, 또한 다행스럽게도 황실의 신성존엄에 의뢰하여, 마침내 구 정부를 타도하고 신 정부를 수립하였으니, 나라 가운데 조야(朝野)의 구별 없이 모두 서양 근대[近時] 문명을 채택하여, 단지 일본이 구태를 벗어날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全洲]에 새로운 하나의 기축(機軸)을 내어 주의(主義)로 삼아야 할 것이니, 이는 오직 탈아(脱亜)라는 두 글자에 있을 뿐이다.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의 동편[東邊]에 있지만, 국민의 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고루함을 벗고 서양의 문명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이웃[近隣] 나라들에 있는데, 하나가 중국[支那]이고, 다른 하나가 조선이다. [『한국 사람 만들기 III: 친미기독교파 1』, 부록7: 「탈아입구론」, pp. 985-988, p. 986.]
후쿠자와가 「탈이입구론」을 발표한 것은 자신이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던 갑신정변(1884. 12. 4-7.)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선의 개화파가 전멸하고 수구파가 청의 도움으로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을 본 직후인 1885년 3월 16일입니다.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중국 역시 지리멸렬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 두 나라가 자력으로 부국강병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이 두 나라를 보고 있으면, 지금 문명 동점(東漸)의 풍조에 임하여, 도저히 그 독립을 유지할 길이 없다. 다행히 그 나라 가운데 지사(志士)가 출현하여, 먼저 국사개진(國事開進)의 수단[手]을 시작하여 크게 그 정부를 개혁하고, 우리 유신처럼 대거(大擧)를 기회로 삼아 우선 정부를 고치고 함께 인심을 일신(一新)한 것과 같은 활동이 있다면 각별하겠으나, 혹여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망국(亡國)하여 그 국토를 세계문명의 여러나라[諸國]가 분할하게 될 것임은 한 점의 의심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홍역[麻疹]과 같은 문명개화의 유행에 임하여, 중[支]·한 양국은 그 전염의 순리[天然]에 역행하여 무리하게 이를 피하려 하며, 집 안에 폐거(閉居)하여 공기의 유통을 막으니 질식[窒塞]하는 지경에 이를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만들기 III: 친미기독교파 1』, 부록7: 「탈아입구론」, pp. 985-988, p. 987.]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의 근대 국가 건설에 성공하였습니다. 한국은 비록 아시아에 있지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고루함을 벗고 서양의 문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프린스턴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후버연구소에 몸담고 있으며 작년 '매경지식포럼'에도 참석한 역사학자 스티브 코트킨(Stephen Kotkin)은 ‘West’는 지리적인 개념이 아닌 문명적인 개념이라면서 한국, 일본, 대만은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들과 달리 이미 ‘서방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자신을 진정한 ‘근대 서방 선진국’으로 만드는 ‘탈아입구’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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