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히 바쿠마츠(幕末, 막부말기) 시대 관련 강연을 하면 많은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일본에서는 그토록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는가?'입니다. 특히 조선과 비교해서요. '바쿠마츠'에는 사쿠마 쇼잔,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유신삼걸(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 '조슈 5(長州五傑, 장주오걸)', 이와쿠라 도모미, 산조 사네토미, 다카스기 신사쿠, 니시 아마네, 후쿠자와 유키치, 가스 가이슈 등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도 수 없이 있습니다. 조선 말의 국정을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의 척족들과 한 줌의 인물들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 계속해서 실권을 장악하고 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간 것과는 너무나 대조가 되죠. 그렇다면 왜 조선말과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인재 풀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났을까요?
저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조선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일본의 봉건적 지방분권체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그토록 많은 인재들이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은 에도시대의 철저한 지방분권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70개 번(藩, 일본 발음 '한') 이 각자 정부를 갖고 있으면서 정치, 경제, 행정, 외교, 국방, 교육, 문화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인재들을 키워냅니다. 조선에는 삼정승과 육조판서가 동시에 한 명씩 밖에 없었지만 일본에는 270 명씩 있었던 셈입니다. 그 외 사무라이, 학자, 상인, 장인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그랬기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무수한 인재들이 조슈와 사츠마, 도사와 같은 '시골'에서도 나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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