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행부입니다.
어느덧 차가웠던 바람에도 조금씩 온기가 스미는 요즘입니다.
벌써 목련 꽃봉오리가 붓처럼 봉긋해져 있더라고요.
다가오는 봄이 반갑기도 하고,
춥고 아득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꽃샘추위가 맴돌던 다리 위에서
2019년 이맘때였습니다.
쌀쌀한 한강바람을 맞으며 영동대교 위에 서 있던 그날,
성공을 향해 띄웠던 배는 사업 6년 만에 파산이란 암초에 걸려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미래는 어둡기만 했고,
저는 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만 한참 바라봤습니다.
그날 이후, 살고자 시작한 건 뜻밖에도 명상이었습니다.
사실 전엔 명상같은 걸 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빠 죽겠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있어?!’
하지만 단단히 발 딛고 있던 일상이 무너지고,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명상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여유를 만들기 위해 해야한다는 걸.
제가 명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다 틀렸다는 혹독한 무력감 덕분이었습니다.
이거라도 붙들어야 살 수 있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지요.
가라앉은 마음이 닻을 내리는 시간
명상은 한가롭게 고즈넉한 정원에 앉아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폭풍우 한가운데로 들어가
마음의 가장 깊고 고요한 곳에 닻을 내리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생각이라는 거친 물살에 휩쓸릴 때
버티려 애쓰는 대신 힘을 빼보는 것.
걱정과 두려움을 쥐고 있던 주먹을
마음 속에서 조금씩 펴보는 것.
그건 거창한 변화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고자
나를 다시 붙드는 연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호흡을 고르며,
저는 명상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현장으로 흘러온 호흡
그건 명상이 꼭 조용한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일상 속 일도 충분히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가령 건물을 짓는 현장에서
무거운 벽돌을 나르고 있다면,
이 벽돌이 누군가의 든든한 공간이 된다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여 보는 거죠.
택배를 포장한다면,
물건이 안전하게 이동해서
택배를 받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는 마음으로
해볼 수도 있고요.
그러면 같은 일도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저 버텨내야 하는 노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받쳐주는 일로요.
삶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낼지는
조금씩 바꿔볼 수 있다는 걸
뒤늦게 배웠습니다.
아마 명상을 이롭게 쓴다는 건
오래 앉아 있는 기술을 익히기 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 위에
어떤 마음을 얹고 살아가느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조금 덜 뾰족하게,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나와 남을 함께 위하는 쪽으로
마음 방향을 잡아보는 일.
제게 명상은
삶에서 도망치기 위한 고요가 아니라
삶을 조금 더 이롭게 살아내기 위한 고요가 되었습니다.
영동대교 위에서
어둑한 한강을 바라보던 그날의 저에게도,
지금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걷고 있을
구독자님에게도
그런 작은 고요가 닿기를.
오늘의 질문
새로운 한 주도 분주히 흘러갈 거예요.
그럼에도 당신이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중심은 무엇인가요?
행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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