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행부입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햇살과 꼬맹쓰들 소리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오십미터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거든요.
엄마와 티격태격하며 걷는 아이,
학교엔 들어가지 않고
집 앞 놀이터 그네를 타는 아이,
뭘 두고 왔는지
다시 집으로 다다다 뛰어가는 아이.
저는 그 모습을 2층 창문 너머로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럼 스르르 미소가 번져요.
이런 날은 하늘도 참 파랗습니다.
요즘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많아서
공기마저 맑은 아침은 더 반갑습니다.
눈에 푸른 하늘을 담고,
귀에 아이들 웃음소리를 담고,
가슴에 맑은 공기를 가득 담아 봅니다.
그럼 아침이, 그리고 삶이
유난히 더 생생하게 느껴져요.
기쁨에 너그러운 아이들
저는 아이들 보는 걸 좋아합니다.
하츄핑 인형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도,
몇 분 뒤엔 젤리를 하나씩 나눠 먹는
그 놀라운 순수함이란.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환해집니다.
돈을 많이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
뭔가를 크게 이뤘을 때의 짜릿함과는 다른 환함이에요.
팡! 하고 터지는 느낌이 아니라,
조용히, 은은하게 마음 안쪽이 따뜻해지는 느낌.
곰곰이 보다 보니
아이들이 왜 기쁨에 너그러운지 살짝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삶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거예요.
늘 타던 그네도,
매일 만나는 친구도,
어제 먹고 오늘 또 먹는 사탕도.
아이들에겐
또 새로운 발견이고, 놀이고, 선물입니다.
반면 어른이 된 저는 익숙함에 푹 젖어있습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화창한 아침 햇살,
땀에 젖은 몸을 씻어주는 깨끗한 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 시간.
처음엔 참 좋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당연해집니다.
기쁨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익숙함이 슬며시 기쁨을 가려버린 거죠.

죽음과 친근해지기
그렇다면 익숙함의 장막을 걷어낼 방법은 없을까요?
어제 해질 무렵,
언덕길을 달리며 어떤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상하게 늘 뛰던 길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어요.
고개를 숙이고 오르막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리막이 시작되려는 지점.
딱 그쯤,
여기가 지금 제 모습 같았습니다.
인생의 정오를 지나고 있는 제 모습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머리로만 아는 개념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내 이야기로 느껴지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느껴집니다.
죽음이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손 흔들며 다가오는
오래된 친구처럼요.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가 손을 흔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날 공기는 더 맑게 느껴졌고,
아이들 웃음소리에 킥킥 따라 웃고,
매일 뛰던 공원은 여행지처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몸으로 알아가고 있습니다.
삶에 익숙해지면 기쁨에 인색해지고,
죽음과 친근해지면 기쁨에 너그러워진다는 것을요.
죽음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기를 그친다.
— 미셸 드 몽테뉴
오늘의 질문
구독자님, 잠시만요.
혹시 오늘, 익숙함에 가려져
알아보지 못한 선물은 없었을까요?
새로운 한 주, 익숙한 것들이 다시 빛나기를🙏
행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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