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행부입니다.
어느덧 〈애씀 없는 편지〉를 발행한 지 반년이 됐습니다.
1년 52주 중 절반, 26번째 편지까지 왔네요:)
그 사이 편지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초기 편지는 꽤 속도감 있었어요.
기욤 뮈소 소설 같은 느낌이랄까요.
사실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꽤 극적이었거든요.
그 계기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살던 대로 살았을 거예요.
자꾸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착각하면서요.
9년 전.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쳐 유리를 깨뜨린 날이 있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물을 파손한 날.
그리곤 동생과 주먹다짐을 했죠.
말리시던 어머니를 밀치면서까지요.
엉망이었습니다. 정말.
동생이 뭘 잘못해서 싸운 건 아니었어요.
사업이 풀리지 않으면서 쪼그라든 제 마음탓이었죠.
지나가는 말에도 '날 무시하나?' 경계했던 날들.
마음은 한껏 뾰족해져 있었어요.
그 뾰족함은 남보다 나 자신을 더 찔러댔어요.
실수 하나조차 견딜 수 없어하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너는 은근히 권위적이다.”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 난 부드러운 남잔데?'
그런데 과거의 저는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특히 동생 앞에서는요.
제 마음 깊은 곳엔 이런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형은 강해야 한다.
큰아들은 듬직해야 한다.
빈틈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저는 그걸 당연하게 믿고 살았어요.
그래서 실수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혼자 버티는 걸 독립이라 여기며 고립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세상은 제 사업을 망가뜨렸습니다.
세상을 바꾼다고 까불지 말고,
너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바꾸라는 가르침을 주려고요.
덕분에 진지하게 묻기 시작할 수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라 믿던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을까?'
사회가 원하는 것, 주변이 바라는 것,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그걸 내 욕망이라 착각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결국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됐습니다.
그게 벌써 8년 전이에요.
그 동안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제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늘 애쓰고 있던 나를 만나게 됐어요.
괜찮은 척 애쓰던 나.
강해 보이려 애쓰던 나.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 버티던 나.
지난 8년은 더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렇게 애쓰던 나와 화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굳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위로와 함께.
그러자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오? 그래? 몰랐네." 하며 새로운 걸 배우기도 하고,
동생 세차를 도와주기도 하고, 돈을 빌리기도 하고요.
제가 편해지자 가족들도 조금씩 편해졌습니다.

어제는 동생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굽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도 잘랐습니다.
작년 겨울,
동생과 부둥켜안고 엉엉 울던 날이 떠오릅니다.
물론 술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영포티 아저씨 둘이 길에서 끌어안고 울다니...
이거 흔치 않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있어 참 다행이고 고마웠습니다.
9년 전엔 치고박던 형제가 이제는 서로를 안고 기대는 사이가 되다니.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애쓸 때는 몰랐습니다.
빈틈이 있어야, 서로의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다는 걸요.
아마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깨달음을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실해질수록 삶은 조용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나누고 싶어서요.
오늘의 질문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줬지만, 이제는 내려놓아도 되는 믿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행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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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
믿으려고 애쓰는 마음 자체요.
애씀 없는 편지
새로운 한 주는 애쓰며 꼭 쥐고 있던 마음의 주먹을 풀고 조금 더 말랑해지기를🙏 편안한 밤 되세요 원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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