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좀 이뻐해 봐, 임마. (中)
내가 다녔던 기숙 학원은 군대식 스파르타 학원이 아니랄까봐 휴가 제도가 있었다. 한두 달에 한 번 2박 3일 정도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휴가를 보내 주었다. 나중에 군대를 다녀와서 안 것이지만 그 학원은 이외에도 군대와 비슷한 것들이 꽤 많이 있었다. 유니폼만 입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매일 자기 전 기숙사에서는 점호를 하며 호실별 인원을 보고하기도 했다. "이천십년 이월 삼일 이십일시 생활관 삼백일호 인원 보고, 총원 사명, 결원 무, 이상 점호준비 끝." 그 보고 멘트는 군대 훈련소에서 생활관별로 점호 때 하던 멘트와 판박이었다.
휴가를 나오자마자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앞에서 눈물보가 터져 펑펑 울었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대학 잘 가려면 버텨야지, 그것도 못 견뎌서 어쩔까, 그런 말을 몇 마디 하셨지만 어머니도 아들의 눈물 앞에선 별 재간이 없으셨던 것 같다. 눈물을 쏟는 아들의 등을 몇 번 토닥이다 어머니는 그래, 네가 나오고 싶으면 나와야지, 중얼거리듯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나를 한참 더 울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을 만났다. 아버지와 대면하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기숙 학원에서 나와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대책은 없었다. 기숙 학원에서 일 년 버티는 것보다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생각해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부터가 이미 짧은 시간 동안 성적을 적잖이 올리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것은 내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린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건 간헐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친구 하나 없이 유령처럼 학교를 겉돌던 초등학생 시절이 최초의 경험이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학교를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마침 아무도 없었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나는 식칼을 꺼내들고 어두컴컴한 내 방에 들어가 시퍼런 칼날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울었다.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는 식칼을 제자리에 돌려 놓고 세수를 하며 눈물자국을 빡빡 문질러 지우고 말았다. 곧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어머니를 맞았다.
그럼에도 나는 살고 싶었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 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절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도 그 친구들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내가 친구들로부터 얻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용기였다. 내가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더라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들이 여전히 내 주변에 있다는 확신이었다. 짧았던 휴가의 마지막 밤, 나는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로부터 내가 기숙 학원을 나와 다른 학원으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해들은 후였다.
나는 처음으로 술상이란 걸 차려 보았다. 어머니가 집에 있던 마른 오징어를 구워서 안주로 올려 주셨다. 그리고 작은 상에 그걸 받쳐들고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술을 따르는 것도 난생 처음이었고, 잔을 들고 있던 아버지의 손 위로 소주가 벌컥 쏟아져 아버지의 손이 흠뻑 젖고 말았다. 소주 냄새가 풀풀 풍기는 가운데 아버지와 나는 대화를 나눴다.
아니,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을 했을 뿐이었다. 대학 제대로 가고 싶으면 거기서 일 년만 버텨라. 네 형도 한 걸 네가 왜 못 하냐. 군대 가면 훨씬 힘들텐데 그것도 못 견뎌서 어떻게 할 거냐. 때려 치울 거면 썩 군대로 가라. 너는 군대에서 그런 정신머리부터 고쳐 나와야 한다. 그게 아버지의 말이었다. 여전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앵무새처럼 이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이 다 맞습니다. 저도 다른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수능에서 또 실패하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런데요, 또 실패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백만 번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그 ‘대화’가 얼마나 길었는지는 모르겠다. 5분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두 시간도 훌쩍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가 녹음기를 틀어 둔 것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 앵무새 두 마리를 앉혀 놓아도 우리보다 훨씬 더 다채롭게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구경꾼이 있었다면 그 구경꾼이 분명히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그 시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긴박한 경험 중 하나였다. 나는 아들의 술잔을 받던 아버지가 분명 내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 지루하면서도 긴박한 자리는 아버지의 그래, 네 뜻대로 해보거라, 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이 날의 기억을 나는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의견을 존중해주신 날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누구 한 사람은 죽을 것처럼 싸우며 자라왔고, 지금도 아주 이따금은 그렇게 싸움판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내가 낭떠러지의 끄트머리에 몰릴 때 아버지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분이었다. 우리가 대화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도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알았다.
조금만 더 쓸까요?
벌써 여덟 번째 글을 보냅니다. 처음에 예정했던 대로라면 이번이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한 달간 여덟 편의 글을 쓰는 게 왜 그리 버거웠는지, 그런데 버거운 게 왜 이렇게 보람차게(!) 버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예정했던’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네, 조금 더 써야 할 것 같아서요. 메일링을 기획하면서는 내가 경험한 우울이라는 소재로 글을 여덟 편이나 어떻게 쓰나 싶었는데 이게 글을 쓸수록 자꾸자꾸 분량이 하염없이 늘어지네요. 신기한 경험입니다. 제 삶이란 게 이렇게 이야깃거리로 가득찬 보물 창고인 줄은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지금 쓰고 있는 ‘널 좀 이뻐해 봐, 임마’편은 아마 한두 편 정도 더 글을 써야 내용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던 이야기를 중간에 애매하게 끊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여러분께도, 그리고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인 저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주까지는 메일을 보내 드리며 이번 연재를 마무리지어볼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 뒤에도 한참 많은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한 달 정도는 더 연재해도 될 것 같아요. 어쩌면 두 달까지도요. 예상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걸 보니 조금 더 수고하더라도 이걸 책으로 묶을 수 있게끔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지금의 계획을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 5월의 메일링은 ‘널 좀 이뻐해 봐, 임마’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두 편 정도 더 작업해 발송해드리려 합니다. 독자 피드백은 이번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면 요청을 드리려 해요.
- 6월 한 달간은 지금까지 메일로 보내드렸던 원고를 정리해서 제 브런치와 네이버 카페 흰 종이 위의 날개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 7월에는 지금과 같이 메일링 연재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역시 지금과 같은 제목으로 조금 더 제 어둠에 대해 다뤄보고 싶네요. 7월에 메일링 연재로 보내드린 분량은 마찬가지로 좀 더 다듬어서 그 다음 달인 8월에 브런치와 흰 종이 위의 날개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 유료화 계획은 일단 보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독자 수를 봐서는 아마 한동안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러나 구독자 신청을 받으며 약속했던 것처럼, 무료로 제 에세이를 구독해주신 분들께는 추후에 유료 연재로 전환할 때 50% 할인을 제공해드릴 예정입니다.
시작할 때 공언하였듯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글을 쓰려 했는데, 이번 글은 쓸수록 마음이 갑니다. 최근 친구들과 독자님들에게 소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제 생각보다도 훨씬 많았습니다. 뿌듯하더라구요. 글을 쓰며 이따금 접해왔던 그런 뿌듯함과는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저에게도 참 어렵고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울하고 어두컴컴한 줄만 알았던 제 삶도 감히 여러분께 사랑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걸 저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랑받지 못할 것이 어디 있고, 사랑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을까요. 저의 삶 또한 그러한 것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여러분도 여러분의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조금 더 사랑해 드릴게요.
p.s.
놀랍게도 오늘의 글은 kdasom97님이 추천해주신 쿨의 '애상'을 들으며 썼습니다. 늘 잔잔한 노래만 틀어놓다 이런 노래를 틀고 글을 써보니 의외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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