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의 한 주는 어떠셨나요?
저는 지난 주에 뜬금없이 계획에도 없었던 자격증 시험을 봤습니다. 대학원생 시절 제가 공부했었던 학회에서 문학심리상담사라는 새로운 자격증을 만들었거든요. 덕분에 제 1회 문학심리상담사 자격시험 응시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곧 대한민국 최초의 문학심리상담사 중 한 명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회에서 처음으로 자격증이란 걸 만들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올해 초 공지되었던 필기시험이 무기한으로 연기되기도 했지요. 결국 시험 일정이 다시 공지되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걸 2주일 전에야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다이나믹한 벼락치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공부를 놓고 살았더니 안 굴러가는 머리를 쓰느라 참 고생했지요.
아무튼 시험은 쫄딱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필 제 지도교수님이 제 시험지를 직접 채점하신 모양인데, 채점을 끝내고 저한테 전화를 하시더군요. 쉬운 시험인데 왜 그렇게 못 봤냐고,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웠었냐고요. 에… 교수님들이야 항상 시험 문제가 쉬우시겠지요… 교수님께선 걱정이 되어서 하신 전화였지만 저는 확인사살을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쯤에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찍은 게 다 맞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벼락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지난 연재분은 참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오늘은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립니다. 8월 연재 공지를 띄우면서 새로 구독해주신 독자님이 꽤 늘었는데, 정신없는 모습만 보인 것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하네요.
조금 늦었고, 조금 많이 뜬금없지만, 새로 구독해주신 독자님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구독해주셔서 감사하고 환영해요. 메일을 통해서나마 우리가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여러분도 나누고 싶은 마음 한 조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을 남겨 주세요. 저도 꼭 읽어보도록 할게요!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 볼까요?
내게 어울리는 곳 (1)
내가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내게 간부들이 권유해서 받게 된 상담이었다. 부대 안에 마련된 상담실에서 이런저런 심리검사를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검사는 애니어그램과 MBTI, 두 가지이다. 아마 MMPI나 SCT 정도 검사를 더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검사 결과보다 기억에 훨씬 선명하게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검사 결과를 받아든 상담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낮게 중얼거린 말이었다.
“이건… 제가 연구를 좀 해봐야겠는데요?”
내 성격이 연구 대상이라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스스로도 내 성격이 별난 편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전문가의 입에서 저런 소리까지 들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런데 그 날의 진실은 뜻밖에도 시시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채점이 잘못된 것이었다. 다시 채점한 검사 결과는 그래도 연구가 필요할 만큼 별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 일은 망각의 저 편에 싱겁게 묻혀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게 되었다. 학부 때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공부했던 내가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군대에서 접했던 그 상담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전공 수업에서 심리검사를 배우며 다양한 심리검사들을 해보게 되었다. 그 중에는 TCI라는 검사가 있었다. 선천적인 정서적 경향성인 기질과, 후천적인 가치관인 성격을 측정해서 보여주는 검사인데, 내 검사결과를 받아들고 나서 나는 저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쯤 되면 연구 대상 맞네.”
검사 영역에서 중위권에서 노는 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백분위 기준으로 상위 99%도 아닌 100%가 무려 두 개, 99%는 한 개, 그 외에 90%대 점수가 두 개… 수능 성적 백분위가 이렇게 나왔더라면 내가 전교 1등에게 그렇게 열등감에 시달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무튼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의 기질이다. 즉 내가 타고난 정서적 경향성이다. 나는 사회적 민감성과 자극추구가 극단적으로 높았다. 감수성이 발달해 타인의 감정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동시에 충동적이면서도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마음이 쉽게 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위험회피도 유의미하게 높은 편으로 나타났는데, 걱정과 조심성이 많다는 뜻이다.
내가 봐도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엄청나게 지루한 걸 싫어하고 충동적인데, 사람들 눈치도 엄청나게 본다고? 게다가 걱정이 태산인 쫄보라고? 도대체 어떤 사람의 심리가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았다. 세 점수가 모두 높은 경우는 H-H-H 기질 유형에 해당하는데, 예민하고 수동공격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내 경우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감정 표현에는 신중한 덕분에 글을 써서 감정을 다스리는 걸 좋아하고, 자신의 충동성을 잘 절제하지만 그 강한 충동성을 억누르느라 쉽게 피곤해지는 편인 것 같다.
성격 부분은 후천적인 영역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기질은 내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경향성이다. 즉 어릴 때 학교에도 내내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그 시절에도 나는 저렇게 생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내가 쫄보지만 가끔 엉뚱한 데에서 용감하다고 생각하는데, 저 기질 유형이 어린 시절 나의 그 엉뚱한 용감함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학교가 너무도 싫었던 낮별의 용감함은 “학교가 싫으면 내가 직접 맘에 드는 곳을 만들면 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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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내 나는 외로운 아이였다. 이따금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린 기억은 있지만, 학교에서 만난 그 어떤 관계에도 깊은 마음을 주지는 못했다. 그건 내가 사회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순서대로 백 명을 순서대로 줄세우면 제일 앞자리에 앉혀도 될 만큼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다른 사람과 제대로 의사소통하는 법은 몰랐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나는 온갖 몸부림을 쳤다.
그 중 하나는 글쓰기였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었다. 매일같이 골목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던 도서 대여점에서 드래곤 라자와 룬의 아이들, 묵향 같은 판타지 소설을 독파해대던 중학생이 어느 날 마영전 같은 불쏘시개를 읽다가 ‘내가 쓰면 이것보단 잘 쓰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건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유튜브 세대인 요즘 학생들이 유튜버를 꿈꾸듯 나는 잘 나가는 판타지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남의 칭찬을 받아보고 싶어서 부푼 마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내 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최초의 세대였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나는 쉽게 나와 비슷한 부류의 또래를 찾을 수 있었다. 학교나 가족의 울타리 대신, 모니터 속의 세상에서 사람의 온기를 찾는 꼬맹이들이었다. 나는 좋아하던 게임을 잔뜩 표절한 설정들을 이리저리 기워 만든 소설을 ‘세이크의 판타지’라는 판타지 소설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유리칼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 소설의 알맹이 중에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아무튼 내가 국어 숙제로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소설이었다.
다행인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래도 내게 글줄을 끼적이는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다는 것과, 그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꽤나 죽이 잘 맞았다는 것이다. 반 친구들과 뭉쳐다니는 대신 나는 인터넷 채팅창에서 중학생다운 온갖 유치한 말장난을 쳤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인터넷 친구들은 내가 쓴 소설의 장황하고 거추장스럽도록 반짝반짝한 묘사를 칭찬해주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상 주눅이 들어 눈을 내리깔고 다니던 꼬맹이의 가슴에 처음으로 자신감이란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에 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사이트,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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