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4월 세 번째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저는 REPORT EDITION으로 인사드리는 에디터 오진달래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정치, 노동, 지역, 돌봄, 국제결혼, 성소수자, 건강, 스포츠 등 다양한 의제들 속 여성 뉴스들을 모아 전해드립니다.
4.10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당선인 비율은 20%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지역구 후보는 14.16%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 모두 공직선거법에서 지역구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한 법 규정을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색정의당은 올해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41.18%를 여성으로 채워 국내에서 최초로 법 규정을 이행한 정당으로 기록됐으나 선거 결과 1석도 얻지 못하고 원외로 밀려났습니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국회에 입성한 임미애 당선인이 TK 선거전략에 대해 조언한 인터뷰 기사도 준비했습니다.
구미 옵티컬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중인 박정혜·소현숙 노동자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드립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통한 가사노동 시장화를 추진하고 있는 돌봄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이혼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베트남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한·베 가정 해체’의 문제를 짚어보았습니다. 4월 26일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을 맞이해 레즈비언 부부의 결혼과 결혼식의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남성 중심적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지역에서 남성에게는 자원으로 여성에게는 억압으로 작동하는 지역 문화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읽어보았습니다.
환자들이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 사망률이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보다 낮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 유니폼이 여성 선수들에게만 신체 노출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남성의 신체가 ‘기본값’인 스포츠계에서 자신의 몸과 불화하는 여성 선수들의 현실을 짚었습니다. 여성 엘리트 스포츠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며 10억 달러대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성 엘리트 스포츠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으나 그 성장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 살해가 급증한 호주에서 여성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암스테르담 시의회가 여성과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태어난 여성 중 50.1%가 30세가 된 2020년에 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헐리버리에서 전해드리는 여성 뉴스와 함께 분야별로, 지역별로, 의제별로 여성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시고 영감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다음 번 레터에서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오진달래 드림
여성 당선인 ‘최다’ 맞지만…‘지역구 30% 할당’도 못 지켰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이 최근 4·10 총선까지 지난 20년 동안 지역구 후보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한 권고 법 규정을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정의당은 올해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41.18%를 여성으로 채워 국내에서 최초로 법 규정을 이행한 정당으로 기록됐으나,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1석도 얻지 못해 원외로 밀려났다.
4·10 총선 개표 결과를 15일 보면, 여성 당선인 비율은 20%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전체 300석 가운데 60명이 여성으로 지역구는 36명, 비례대표는 24명이었다. 21대 총선 여성 당선인 비율 19%(총 57명, 지역구 29명·비례대표 28명)보다 1%포인트 상승한 데 그친다. 오이시디(OECD) 회원국의 2023년 기준 여성 국회의원 평균 비율은 33.8%(양원제 국가는 하원 기준)엔 여전히 한참 못 미친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선 전체 지역구 후보 699명 중 여성은 99명으로 14.16%에 불과했다. 21대 총선의 지역구 여성 후보 비율 19.05%(전체 1118명 중 213명)보다 외려 5%포인트가량 하락했다. 각 정당의 여성 정치인 발굴 노력이 그만큼 부진했다는 의미다. 정당별 지역구 후보 가운데 여성 비율을 보면 녹색정의당은 41.18%였으나 더불어민주당 16.73%, 국민의힘 11.81%에 그쳤다.
공직선거법 47조 4항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를 추천할 때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지난 2004년 3월 처음 도입돼 20년간 이어진 권고 조항이다. 그동안 6번의 총선이 치러지는 동안 지역구 후보 3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한 정당은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유일했다.
(최윤아 기자, 한겨레, 24.04.15)
“TK에서 더 고전한 민주당, 총선 영남권 득표의 의미 분석해야”
4·10 총선에서 경북 의성의 한 ‘농민 가족’이 ‘두 개의 선거’를 치렀다. 남편인 김현권 전 의원(더불어민주당 후보)은 경북 구미을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아내인 임미애 후보(비례정당 더불어민주연합)는 13번으로 겨우 턱걸이 당선했다. 비례투표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연합은 14석을 확보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군의원·도의원 등으로 풀뿌리 정치를 해온 임 후보는 경력만으로 독특하다. 이번 당선 역시 진기한 기록을 낳았다. 22대 국회에서 대구·경북(TK)을 대표하는 유일한 야권 당선인이다. 그리고 22대 국회를 통틀어 유일한 농민 출신 의원이 됐다. 18대 국회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과 20대 국회 김현권 의원(민주당) 이후 농민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15일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앞에서 인터뷰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22대 국회에서 풀뿌리 정치의 발전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꼭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략)
-2년 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어떻게 TK 선거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보나.
“대선 승리로 가는 디딤돌을 놔야 한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패배한 0.73%포인트가 약 24만 표다. TK에서 24만 표를 더 얻으려면 30%의 득표율을 기록해야 한다. 지금 지역에 25명의 민주당 출신 기초의원이 있는데 2026년 지방 선거에서는 ‘골목 정치인’을 더 많이 당선시켜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회에 들어가면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려고 한다. 첫째로는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를 늘려 지방자치가 충분히 구현되도록 하고 싶다.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와 광주 등에서 무투표 당선이 50%를 훨씬 넘어간다. 한계를 드러낸 거다. 전체 지역은 힘들더라도 경북·전남 같은 광역의원 선거에서 시범적으로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윤호우 기자, 경향신문, 24.04.20)
외투기업 노동자들, 밥 한 끼 함께 나눠요
"고용 승계 없이 공장 철거는 없습니다. 투쟁 없는 승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용 승계 투쟁으로 쟁취해서 꼭 살아 내려갑니다. 동지들과 함께 노동자의 봄을 맞이하려고, 불타버린 공장에 올랐습니다. 여기가 노동자의 길이고 희망입니다."
지난 18일, 불타버린 구미 옵티컬하이테크 공장을 찾았다. 입구에선 같은 처지인 아사히글라스, KEC 일본계 외국인투자기업(아래 외투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쫓겨난 노동자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공장 벽면에는 103일째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소현숙 노동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펼침막이 보였다. 방문의 목적은 별 이유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원했다. 외투기업에서 노동하는 같은 처지의 마음이 닿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박정혜·소현숙 노동자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박정혜와 소현숙 여성노동자에게서 일제 강점기 평양 평원고무공장에서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던 강주룡을 봤기 때문이다. 1931년 5월 16일, 평원고무공장은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 계획을 통보한다. 이에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항의했다.
여성 노동자 49명이 단식 농성 돌입한다. 평원고무공장은 농성에 참여하려는 49명을 모두 해고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단식 농성에 들어간다. 하지만 농성이 시작되자, 자본가들은 경찰을 앞세워 농성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낸다.
강주룡은 자본가의 횡포를 알리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겠다고 각오한다. 그녀는 평양에서 유명한 장소였던 '을밀대' 지붕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연설한다. 그 당시 기록에 의하면 발언은 이렇다.
"우리는 49명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하여 내 한 몸둥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해서는 (중략)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위에 올라왔습니다.
(...) 나는 평원고무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자본가의 (중략) 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구태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끌어낼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입니다." (중략)
2024년 1월 8일, 93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두 명의 여성 노동자는 또다시 공장 옥상에 올라갔다.
일본 자본인 니토는 한국에서 니톰스코리아, 한국니토덴코, 한국니토옵티칼,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한국니토덴코는 1987년 일본니토덴코 서울판매소로 출발 2000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한 한국니토덴코로 재설립했다.
한국옵티컬은 니토덴코의 자회사로써 2003년 설립 이후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서 LG전자에 납품하다가 2022년 10월 대형화재로 구미공장이 불탔다. 니토덴코는 공장 화제 이후 1300억 원 이상의 화재보험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사는 청산을 결정하고, 20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하지만 희망퇴직을 거부한 13명의 노동자는 니토덴코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구미공장 화재 이후 평택에 위치한 니토옵티칼은 구미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생산물량을 평택공장으로 이관했다. 이와 함께 30여 명을 신규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웅헌 기자, 오마이뉴스, 24.04.19)
‘돌봄’은 최저가 경쟁 상품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무보수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부모를 부양하는 일이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에 얼마나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이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저출생이 심각해지면서 일·가정의 양립이 중요한 화두가 된 점도 가사노동의 가치를 부각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저출생·고령화로 급격히 늘고 있는 노인 돌봄 수요에 대한 고민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엄마의 헌신’에 기댄 ‘무보수 가사노동’으로는 더 이상 저출생을 막을 수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케 할 수도, 노후의 돌봄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는 점이 확실해진 것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발표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 가사노동 가치 총액은 GDP의 25.5%에 해당하는 490조9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나라 경제 규모의 4분의 1 규모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56조원으로 72%에 달했고, 남자는 134조9000억원으로 28%의 가사노동 가치를 창출했다.
이처럼 그간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무보수 가사노동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더 싸게 가사노동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경제 분야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 가족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학생이나 결혼이민자 가족을 최저임금 미만의 가사·돌봄 노동자로 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늘어나는 가사·돌봄 수요에 대한 해결을 ‘시장화’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는 가사노동,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깔고 있다.
(이윤주 기자, 경향신문, 24.04.15)
‘한·베 가정’ 해체 그 후…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의 눈물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결혼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급증했다. 2022년 다문화 혼인의 국적별 비중을 보면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베트남이 27.6%로 1위를 차지했다. 한·베 결혼은 중매업체를 통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최근에는 한국이나 베트남 현지에서 만나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혼 그 이후’는 어떨까. 여기 돌아간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베트남 북부 하이퐁과 남부 껀터에 있는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에서 이혼, 사실상 이혼에 가까운 별거, 사별 등의 이유로 한국 남성과의 혼인 관계가 끝나 베트남으로 돌아온 여성과 그 자녀들을 만났다.
하이퐁과 껀터는 베트남 내에서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 건수가 많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코쿤센터에서 인터뷰한 귀환 결혼이주여성(귀환여성)들은 베트남으로 돌아온 이유와 돌아오고 나서 겪은 고충,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의 어려움을 들려줬다.
그동안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한국 내 한·베 가족에 집중됐고, 결혼이주여성뿐만 아니라 그 자녀를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비교적 최근이다.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귀환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동들은 ‘한·베 가정 해체 1세대’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처지다. 이들은 한국과 베트남에 모두 걸친,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자라나고 있다. (중략)
기자가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귀환 여성들은 전부 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왔다.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를 직접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한·베트남 자녀를 둔 귀환 여성 87.38%가 자녀와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갔다는 2017년 베트남 남부 귀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와도 별로 다르지 않다.
경제·생활·교육 여건을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나은데도 아이를 베트남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성들은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 이미 자녀가 있고, 남편이 출산을 원치 않았고, 한국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고, 경제력이나 성격 등을 감안하면 남편에게 차마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는 것 등을 이유로 꼽았다.
(김서영 기자, 경향신문, 24.04.29)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식' 열고 100명 앞에서 커밍아웃한 이유
나는 경기도에 살고 서울로 출근하는 서른 중반 평범한 직장인 여성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2년 조금 안 되게 연애하고 작년에 결혼했다. 결혼식은 아름다웠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 간 혼인은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서류상 동거인일 뿐이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신혼부부에게 특별히 제공하는 혜택도 받을 수 없고,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고하지 못할 결혼을 위해 1년 간 정성스레 결혼식을 준비했다. 양가 부모님과 친인척을 포함한 백여명의 하객들 앞에서 서로에게 진실한 혼인서약을 했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지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런 질문은 예비 부부에게 결혼 상대라는 확신을 어떻게 얻었냐는 뜻인 경우가 많지만, 신부가 둘인 우리에게는 어떻게 이런 큰 일(결혼식)을 도모할 결심을 했냐는 감탄이 섞인 묘한 말이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사이에 그치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부부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 나는 늘 죽음 이후를 두려워 하고, 소멸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를 만난 뒤로는 이 사람과 함께 인생을 가득차게 살아 낸다면 죽는 것도 그리 무섭지 않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계속해서 서로의 인생을 함께 설계하며 살아갈 거라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있고 싶었다. 가족이 되어, 그 사람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배우자로.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내게는 결혼이었다. (중략)
우리의 결혼식을 가부장제와 정상성에 편입하려는 퀴어들의 몸부림으로 해석하고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신부와 저 신부 둘중 누가 가부장인가? 좀 더 머리가 짧은 쪽? 좀 더 근육량이 많은 쪽? 혹시 바지를 더 자주 입는 쪽?
성별이 같은 부부는 가부장제 공식을 망가뜨리고 정상성에 금을 내면 냈지, 그것들을 강화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게 산다. 정답도 없고 아무에게도 답을 논할 자격도 없다. 우리처럼 로맨틱한 감정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는 길이다.
나는 그중 동성부부의 형태인 것일뿐. 가족이 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좁은 가족의 정의가 문제다. 어쩌면 ‘퀴어-가족주의’는 ‘전통-가족주의’와는 또 다른 가치와 형태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라온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이사, 여성신문, 24.04.26)
지역의 미래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고도 성장기 시절,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서울로 몰렸다. 공장과 건물, 아파트가 끝도 없이 올라가는 도시는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남성적 공간이었다. 반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전통적인 관습이 여전히 존재하는 시골-지역은 낙후하고 정체된 여성적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저성장기인 오늘날, 도시와 지역에 부여된 젠더화된 이미지는 바뀌고 있다. 지역은 건실한 남성 청년의 모습을 내세워 다른 가능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소위 ‘지역 소멸’에 대응한다는 지자체의 프로젝트, 행사, 언론 기사가 내세우는 얼굴들을 보라. 남성 일색인 지역 정치인과 유지들, 청년 기획자와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사라져 가는 지역과 한국 사회를 구할 사명을 부여받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역 사회가 실제로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 지역민, 결혼이주민, 농업이주민은 이런 얼굴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가정폭력이라든가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등 사건 사고의 피해 당사자로 등장한다. 이들의 얼굴을 대신하는 것은 한 줄도 안 되는 신상정보다. (중략)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이들이 바로 도시로 이동했다가 돌아온 여성들이다. 이 교수는 이들이 ‘꼭꼭 숨어 있다’고 표현했다. 이웃, 가족,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기에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들과의 연결이 단절된 이들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휘청이며 더 불행해지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돌아간 남성들이 연고를 활용해 농사, 장사, 사업을 벌이며 지역 일꾼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돌아온 아들은 가족과 이웃이 도와줘야 할 지역의 얼굴인 반면, 돌아온 딸은 도시에서 ‘신세 망치고’ 여기까지 온 거라는 수군거림을 듣기 일쑤다. 남성 중심적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지역에서 연고는 남성에게는 자원으로, 여성에게는 억압으로 작동한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한국일보, 24.04.27)
"여성환자, 남자의사보다 여의사한테 치료받으면 사망률 낮아"
환자들이 여자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 사망률이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보다 낮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연구팀은 80만명의 병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러한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특히 연구팀은 여성 환자가 여의사에게 치료받으면 퇴원 후 30일 내 재입원할 가능성이 낮게 나타났다면서 여의사 치료의 혜택이 여성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차이는 남성 의사들이 여성 환자가 가진 질병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여성 환자가 여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 사망률이 8.15%였지만 남자 의사에게 치료받았을 때는 8.38%의 사망률을 보였다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차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의사의 치료를 받은 남성 환자가 퇴원 후 30일 이내에 사망한 경우는 10.15%였지만 남자 의사의 치료를 받았을 때는 사망률이 10.23%로 소폭 높았다고 설명했다.
(김계환 기자, 연합뉴스, 24.04.23)
여성이 남성 의사에게 수술받을 때 사망률 더 높다는 연구 결과... 이유는?
여성 선수 경기복만 골반 드러내…다시 드러난 스포츠계 성차별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육상 선수 유니폼이 여성 선수들에게만 신체 노출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나이키는 오는 7월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육상 선수들이 착용할 경기복을 제작해 지난 11일 선보였다.
그러나 해당 경기복은 공개 직후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 선수들의 유니폼은 반바지 형태로 제작됐지만, 여성 유니폼은 다리 전체와 골반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사진을 접한 누리꾼들은 “남성 선수들은 운동능력에 집중하는 동안 여성들은 생식기가 노출되지 않을지, 찰과상이 생기지는 않을지, 왁싱을 받아야 하는 건지 걱정해야 한다. 이게 동등한 기회라고 할 수 있냐” “왜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옷을 입지 못하냐” “이건 수영복인 듯. 여성 러닝 복은 어디 있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실제 선수들도 실용성을 고려하지 못한 성차별적 디자인이라고 비판했다.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 선수인 콜린 퀴글리는 로이터통신에 “이 경기복은 절대 성능을 고려한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 장거리 육상 국가대표인 로런 플레시먼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수들은 민감한 신체 부위 노출에 대한 걱정 없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옷이 정말 기능적으로 훌륭하다면 왜 남성들은 입지 않냐”고 지적했다.
(최혜린 기자, 경향신문, 24.04.17)
남성의 신체가 ‘기본값’인 스포츠계, 자신의 몸과 불화하는 여성 선수들
여성 엘리트 스포츠 매출 10억 달러 돌파 전망...축구가 절반 육박
여성 엘리트 스포츠 매출이 팬과 방송사, 광고 파트너들의 관심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대표이사 홍종성)이 발행한 '여성 엘리트 스포츠 매출, 10억달러 규모 넘어선다' 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여성 엘리트 스포츠는 광고(6억9600만달러, 55%), 중계(3억4000만달러, 27%), 경기(2억4000만달러, 18%) 등에서 총 12억8000만달러 매출을 올려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대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광고 매출이 전체 매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가운데 중계, 경기 매출이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역별로는 북미(6억7000만달러, 52%)와 유럽(1억8100만달러, 14%)이 최대 시장으로 꼽히며, 매출이 가장 높은 스포츠는 축구(5억5500만달러, 43%)와 농구(3억5400만달러, 28%)로 나타났다. 국제 대회가 전체 매출의 33%인 4억2500만달러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 팀과 리그의 시장가치가 높아지며 일부 팀의 경우 2024년 시장가치가 1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성장 초기 단계인 여성 엘리트 스포츠를 부작용 없이 육성하고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남성 엘리트 스포츠와의 차별화 및 인프라 확장, 여성 스포츠 리더 육성 등 다각도의 신중한 접근도 필요하다. (중략)
한편 여성 엘리트 스포츠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으나 그 성장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정동섭 한국 딜로이트 그룹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여성 엘리트 스포츠는 전통적인 남성 스포츠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성 스포츠의 성장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선수 파이프라인 구축, 미디어 및 인프라에 대한 전폭적 투자, 다수의 여성 스포츠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보고서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여성 스포츠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풋볼리스트, 24.04.24)
“올해만 27명의 여성이 친밀한 남성의 폭력으로 사망했다” 전국적 시위 열린 호주
최근 여성 살해가 급증한 호주에서 여성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호주 AAP통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수도 캔버라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 5000여명은 의회의사당으로 행진하며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여성 폭력을 규탄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 26일부터 시드니, 멜버른 등 호주 각지에서 이어졌으며 이날 캔버라에서 마무리됐다.
시위대는 “지금 당장 폭력을 멈춰라” “더 이상 폭력과 혐오를 참을 수 없다”라고 외치며 여성 폭력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집회는 최근 호주에서 여성을 겨냥한 살인사건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달에는 시드니의 한 대형 쇼핑센터에서 벌어진 흉기난동으로 여성 5명이 사망하면서 시민들의 공분이 커졌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시위를 조직한 인권단체 ‘디스트로이 더 조인트’는 올해만 27명이 넘는 여성이 파트너 등 친밀한 남성의 폭력으로 사망했다며 “나흘에 1명꼴로 여성들이 살해된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공영언론 ABC방송은 “이는 지난해 발생한 여성 살해 건수와 비교했을 때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었지만 정부가 가정폭력 조사위원회 설치를 거부하는 등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고 보도했다.
(최혜린 기자, 경향신문, 24.04.30)
변기 때문에 법원까지 갔다…‘화장실 성평등’ 외친 네덜란드 여성들
“암스테르담 같은 관광도시에서 여성들이 갈 화장실이 없다는 게 부끄럽지 않나요?”
네덜란드 대학생 헤이르터 피닝은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남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같이 외쳤다. 여기서 시작된 네덜란드 ‘화장실 성평등’이 9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29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시의회가 여성과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오는 10월부터 시작되며, 총 400만유로(약 59억원)가 투입된다고 현지 공영언론 NOS방송는 전했다.
시작은 2015년이었다. 당시 21세였던 피닝은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소변을 보다 140유로(약 20만원) 벌금을 물게 됐다. 친구들과 놀던 중이었던 피닝은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양변기가 있는 공중화장실은 약 2㎞ 떨어져 있었고, 주위 상점은 모두 문을 닫은 시각이었다. 결국 피닝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골목에서 소변을 보다 경찰에게 발각됐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에 설치된 남성용 소변기는 35개였지만 양변기가 있는 공중화장실은 3곳뿐이었다.
피닝은 벌금형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여성도 이용 가능한 공중화장실이 부족한 도시 구조를 고려하면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억울한 마음에 시작한 싸움은 아니었다. 당시 피닝은 “이 문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며 “모두가 접근 가능한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닝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판사는 “여성용 화장실이 부족하다면 남성용 소변기에서 해결했어야 한다” “조금 불쾌하겠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혜린 기자, 경향신문, 24.04.30)
'자녀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괴물이 된 것 같았어요'
전 세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출산율 또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부터 개인적인 경제 상태 혹은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자녀 없이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러한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종종 외면당하거나 소외된 기분이 든다고 토로했다.
BBC는 '브리스톨의 자녀 없는 여성들'의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자녀 없이 살기로 결정한 여성들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 단체로, 현재 그 회원 수는 500명을 웃돈다.
캐롤라인 미첼(46)은 자신이 자녀를 원치 않는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으나, ‘임신이 가능한 나이’ 내내 얼마나 힘들진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과 브리스톨 브리슬링턴에서 살고 있는 미첼은 어렸을 때만 해도 별다른 고충이 없었지만, 지인과 친구들이 아이를 갖기 시작하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이토록 많은 개인적인 질문이 자신에게 쏟아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첼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 때문에 내가 괴물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제 관점과 경험은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합니다.”
미쳴의 눈에 사회는 모성을 위한 곳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얼마나 삶에서 많이 배제돼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미첼은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학교 교문이나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클럽에서 서로를 만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략)
영국 정부가 지난 2022년 발표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자녀가 없는 30대 여성의 수는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태어난 여성 중 50.1%가 30세가 된 2020년에 자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30세의 나이에 절반 이상이 자녀가 없는 첫 여성 세대다.
(새미 젠킨스, BBC뉴스, 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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